[1/3]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1권 발제 329~353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21-01-03 07:55
조회
368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발제 329~353

1. 요약

328쪽
생산과정의 끝에서 자본이 가지는 잉여가치는
- 생산물의 보다 높은 가격으로서 유통에서 비로소 실현되지만, 모든 가격과 마찬가지로 이미 유통에 관념적으로 전제되어 있고, 유통에 들어가기 전에 규정됨으로써 유통에서 실현되는 잉여 가치이다.
- 이 잉여가치는 생산물에 대상화된 노동시간이 자본의 본래적인 구성요소들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시간보다 크다.
- 이는 노동가격에 대상화된 노동이 그것으로 구매된 산 노동시간보다 작아야만 가능하다.

329쪽
자본에 대상화된 노동시간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 원료에 대상화된 노동시간
2. 노동도구에 대상화된 노동시간
3. 노동가격에 대상화된 노동시간
- 1, 2 부분은 불변인 채로 자본의 구성 요소들로 존재한다. 형체가 변하더라도 가치로서는 불변이기 때문이다.
- 자본이 ‘질적으로 다른 것’과 교환하는 것은 3이다. - 자본은 3과 관련하여 ‘일정량의 산 노동’과 ‘주어진 양의 대상화된 노동’을 교환한다.

====== 참고 (산 노동 개념에 대한 발췌문. 꼭 안 읽어도 됨) =======

산 노동 living labor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312쪽 “노동자는 노동을 지난 과정에 의해 결정된, 단순하고 사전에 결정된 교환가치로 교환한다. - 그는 노동 자체를 대상화된 노동으로 교환한다. ... 자본은 산 노동, 부의 일반적 생산력, 부를 증대시키는 활동으로서의 노동을 사들인다.”
→ 대상화된 노동은 지난 과정에 의해 결정된 노동이다. 산 노동은 부의 일반적 생산력이다.

327쪽 “자본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축적을 전제로 하는데, 이 축적은 이미 산 노동과 대상화된 노동 사이의 자립적 대립, 이 대립의 자립적 존립에 머물러 있다.” → 번역 수정 제안? : 이 자립적 대립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But in order to come into being, capital presupposes a certain accumulation; which is already contained in the independent antithesis between objectified and living labour.

<개념무기들>

53쪽
“자본은 산 노동을 죽은 노동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축적을 계속한다. 축적이란 산 노동의 활동에 반복을 강제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자유로운 활동을 동질적인 노동으로 변형하는 것을 통해 가능해진다.”

248쪽 <디오니소스의 노동> 인용문
“산 노동은 .. 역동적인 협업의 그물망 속에서 사회, 즉 자본에 의해 제시된 시간의 안과 밖에 있는 그 과정들의 생산과 재생산 속에서 언제나 이미 활동하고 있는 삶의 힘이다.”

249쪽 <요강> 인용문
산 노동은 “살아있는 시간에 의한 사물들의 형성으로서 사물들의 과도성, 그것들의 순간성이다.”

275쪽
“자본주의 추상기계 속에서 산 노동은 유통과정에서는 자본에 팔릴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나타나고, 판매 후의 생산과정에서는 가치를 증식시킬 자본의 가변자본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노동력 상품이자 가변자본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 노동은 자본주의적 추상기계 속에 내재하는 탈영토화의 특이점으로 실존한다.”

404쪽
”이들(하트와 네그리)은 산 노동을 노동관계 속에서의 특이성으로 파악하고 그 특이점이 노동거부로 나타난다.”

====== 산노동 참고자료 끝 ==========

- 노동 가격을 그 결과로 산출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교환은, 그것이 노동자 쪽에서 보면 단순 교환일지라도 자본가 쪽에서 보면 비교환이야 한다. 자본가는 그가 준 것보다 많은 가치를 받아야 한다. 자본 쪽에서 볼 때 교환은 외견상의 교환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으로서의 자본과 이것에 대립하는 노동으로서의 노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

330쪽
- 경제학자들은 자본을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해서 ... 이렇게 자본의 현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자본을 실증하기 위해서 자본을 사라지게 만든다.
- 노동자가 자본과 교환한 것은 그의 노동 자체(교환에서는 노동에 대한 처분 능력)이다. 그는 노동을 양도한다. 그가 가격으로 지불받는 것은 이러한 양도의 가치다. 활동의 결과를 도외시한다면, 그는 가치 정립활동을 사전에 결정된 가치와 교환한다.
- 바스티아는 임금 노동이 자본의 경제적 관계와는 무관한 결사 형태라고 주장한다. ... 폐해는 임금 제도가 아니라 그와는 무관한 조건들(노동자가 생산물의 완성과 판매를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 못하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 자체가 임금 제도의 조건들이다.

331쪽
- 노동자의 가치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 노동자의 생명력에 포함되어 있는 대상화된 노동량이 자본에 의해서 그에게 지불된다. 자본은 그것을 소비한다.

332쪽
- 자본의 자기 보존은 자기 증식이다. ... 자본가를 자본가로 만드는 것은 교환이 아니라 대상화된 노동 시간, 즉 가치를 받는 과정이다. (따라서 자본은 반드시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는 일정 시간의 노동시간을 필요로 한다.) 가치 증대는 등가물을 초과하는 가치가 획득, 창출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333쪽
- 잉여가치란 등가물을 초과하는 가치다. 잉여가치는 등가물로부터도, 유통으로부터도 유래할 수 없고 자본의 생산 과정에서 유래해야 한다.
- 자본 쪽에서 잉여가치로 나타나는 것이 노동자 쪽에서는 노동자로서의 그의 욕구를 초과하는, 즉 자신의 생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직접적인 욕구를 초과하는 잉여노동으로 나타난다.
- 자본의 위대한 역사적 측면은 이 잉여노동(사용가치라는 단순한 실체의 관점에서 보면 불필요한 노동)을 창출하는 것이다.
- 자본의 역사적 규정은 1) 잉여노동 자체가 개인적 욕구들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일반적 욕구가 되자마자(근면이 일반적인 속성(property)이 되자마자), 2) 사회적 부의 점유와 보존이 사회 전체를 위해 더 적은 노동시간을 필요로 하고, 3) 노동하는 사회가 재생산 과정에 과학적으로 관계하자마자(기계화) 충족된다.

334쪽
- 자본이 창출하는 개별성(individuality)란 이런 것이다.
1. 그것의 소비에 있어서만큼 생산에 있어서도 전측면적이다.
2. 그 개별성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활동 자체의 완벽한 발전으로 나타난다.
3. 자연적 욕구의 자연필연성이 사라지고 역사적으로 창조된 욕구로 대체되었다.
- 자립화된 부는 직접적인(direct) 강제노동, 노예제에 의해서나 또는 매개된(indirect) 강제노동, 즉 임노동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 부는 직접적인 강제노동에게 자본으로 마주서지 않고 지배관계로 마주 선다.

335쪽
가치의 등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1. 리카도가 가치를 이해했음에도 ... 그에게서 가치와 부가 절대적으로 대립하게 되고 ... 임금에 의한 가치 규정과 대상화된 노동에 의한 가치 규정의 차이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를 연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그가 어디에서도 매개 형태를 연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36쪽
2. 중농주의자들에게서는 자본, 가치의 자기 증식, 자본이 생산과정에서 창출하는 잉여가치를 이해하는 데서의 어려움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금주의), 중상주의자들에게 산업자본의 형태는 부의 원천으로 인정되었으나, 화폐를 창출하는 한에서만 그러했다. 그래서 교환가치는 자본 형태로 파악되지 않았다.

337쪽
중농주의자들은
- 자본을 화폐와 구분한다.
- 자본을, 생산에서 보존되고, 생산을 통해 증대되는 자립화된 교환가치라는 일반적 형태로 파악한다.
- 그들은 단순유통의 계기가 아니라 오히려 단순유통의 전제이고, 단순유통으로부터 끊임없이 다시 단순유통의 전제로 산출되는 대자적 관계를 고찰한다.
- 임노동에 의한 잉여가치의 정립이 자본의 자기 증식, 즉 실현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 잉여가치가 어떻게 자본, 즉 주어진 가치에 의해서 노동을 매개로 창출되는가라는 문제에서 그들은 형태를 버리고 단순한 생산 과정만을 관찰한다.
- 중농주의자들은 노동도구의 자연력이 노동자로 하여금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분명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만이 생산적일 수 있다.
- 여기에서 그들은 형태를 버리고 단순한 생산 과정만을 관찰한다.
- 잉여가치는 노동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노동에 의해 이용되고 경영되는 자연력(농업)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농업만이 유일하게 생산적인 노동이다.

338쪽
- 중농주의자들에게 생산물 잉여는 생산물에 대한 자연적 종자의 관계에서만 명백하게 나타난다.
- 인간 노동은 보조적인 역할만 한다.
- 일반적 부의 진정한 형체는 대지 생산물들(곡식, 가축, 원료)의 잉여이다.
- 중농주의자들에게 경제적으로 고찰하면 ‘지대’만이 부의 형태이다. 이들에게는 봉건적 토지 소유자들이 부르주아적 부의 대표자들이다.

339쪽
- 애덤 스미스 시대에는 산업에서 자연력의 이용은 발전하지 않았고, 노동의 자연력 자체를 증가시켜 주는 분업도 발전하기 않았다. .. 그래서 스미스에게 노동 일체는 가치의 원천이고 부의 원천이지만, 노동이 원래 잉여가치를 정립하는 것은 분업에서 잉여가 자연의 하사품, 사회의 자연력으로 나타나는 한에 있어서만이다. 이것은 중농주의자들에게 잉여가 분업에서 대지의 자연력으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스미스에게 자본은 본래적으로 임노동의 계기로서 대립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현상하지 않고, 유통에서 유래하는 바와 같은 화폐로 현상하고, 따라서 유통에서 유래하는, 절약에 의해 형성되는 화폐로 현상한다.

340쪽
- 리카도에게 임노동과 자본은 사용가치로서의 부를 다시 산출하기 위한 일정한 역사적 사회 형태가 아니라, 자연적인 사회형태로 이해된다. ... 따라서 부르주아적 부의 특정한 성격이 이해되지 않는다.

341쪽
- 자본 개념이 근대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므로, 자본 개념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관계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게 되는 한계와 같은 부르주아적 생산의 모든 모순은 기본 전제에 관한 엄밀한 견해로부터 나와야 한다.
- 부 자체, 즉 부르주아적 부는 그것이 매개자, 즉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라는 극단들의 매개자로 정립된 교환가치에서 언제나 가장 강력한 활력으로 표현된다. 이 중간자는 언제나 대립물들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완성된 경제적 관계로 현상하고, 마침내 극단들에 비해 언제나 일방적으로 더 강력한 활력으로 현상한다.
- 운동, 또는 본원적으로 극단들 사이를 매개하는 것으로 현상하는 관계는 그것이 변증법적으로 그 자신과의 매개, 그것이 자립적인 전제들을 지양해버리는 극단들을 계기로 하고, 이것들의 지양에 의해 스스로 유일한 자립자로 정립되는 주체로서 필연적으로 현상하게 한다.
- 예수는 종교 영역에서 교환가치와 같다. 매개가 신이 되는 현상이 ‘화폐-신’ ‘자본-신’의 출현현상이다.
- 자본 안에서 그것의 한 형태는 다시 교환가치로서의 다른 한 형태에 대하여 사용가치의 지위를 가진다.
- 산업자본 (생산자-사용가치) - 상인 (유통-교환가치)
- 상업자본은 생산(산업자본-사용가치)과 유통(소비대중-교환가치) 사이의 매개자이다.

342쪽
- 부 자체는 그것이 직접적인 생산에서 멀어질수록, 그 자체로 각각을 대자적으로 고찰할 때 이미 경제적 형태관계로 정립되어 있는 측면들 사이를 매개할수록, 가장 명확하고 광범하게 대표된다.
- 화폐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는 것.
- 보다 높은 매개형태는 도처에서 자본으로 정립되고, 보다 낮은 형태는 다시 노동, 단순히 잉여가치의 원천으로 정립된다.


344쪽
- 자본은 자신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무제약적이고 무한한 충동이다. 어떤 한계든 자본을 위한 제약이고 제약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본 - 자기 생산하는 화폐이기를 중지하게 된다.
- 그것이 일정한 한계를 제약으로 느끼지 않고, 한계로서 그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게 되자마자, 그것은 스스로 교환가치로부터 사용가치로, 부의 일반적 형태로부터 부의 특정한 실체적 존립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346쪽
- 생산력의 승수는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의 승수가 아니다.
- 잉여가치는 언제나 원래의 비율을 생산력의 승수로 나눈 것과 같다.

350쪽
지금까지의 논의 내용 요약
- 첫째, 살아있는 노동의 생산력 증대가 자본의 가치를 증대(또는 노동자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은, 그것이 동일한 노동으로 창출된 생산물 또는 사용가치의 양을 증가시킴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이 필요노동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 둘째, 자본의 잉여 가치는 생산력의 승수 즉 생산력이 증대되는 수치만큼 증대되지 않고, 원래 필요노동을 나타내는 살아있는 노동일 부분의 잉여를 생산력의 승수로 나눈 만큼 증대된다.
- 셋째, 생산력 증대 이전에 자본의 잉여가치가 클수록, 자본의 전제된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 양이 클수록, 또는 노동자의 등가물을 형성하는 노동일 부분이 이미 작을수록, 자본이 생산력 증대로부터 얻는 잉여가치 증가는 적다.

353쪽
- 노동생산력의 발전(일단 잉여노동의 정립)은 가치 증가 또는 자본 증식을 위한 필요 조건이다.
- 요컨대 자본은 무한한 치부 충동으로서 노동생산력의 무한한 증대를 추구하며 이것을 낳는다.
- 다른 한편 노동 생산력의 모든 증대도 (그것이 자본가를 위한 사용가치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자본의 생산력의 증대이며,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자본의 생산력인 한에서만 노동의 생산력이다.

2. 토론거리

1) 328쪽 : 생산과정의 끝에서 자본이 가지는 잉여가치는 생산물의 보다 높은 가격으로서 유통에서 비로소 실현되지만, 모든 가격과 마찬가지로 이미 유통에 관념적으로 전제되어 있고, 유통에 들어가기 전에 규정됨으로써 유통에서 실현되는 잉여 가치이다.
-> 무엇보다 높은 가격인가?

2) 329쪽 : 그렇지 않으면 자본으로서의 자본과 이것에 대립하는 노동으로서의 노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
-> 왜 불가능할까?

3) 330쪽 : 그에게는 본질적인 형태들이 내용을 결여한 것으로, 즉 실재적인 형태가 아닌 것으로 현상한다.
-> 무슨 뜻일까?

4) 333쪽 : 자본이 부의 일반적 형태라면, 노동은 직접적인 소비를 목표로 하는 실체이다. (the other only the substance destined for immediate consumption.)
-> 무슨 뜻인가? 여기에서 실체와 형태의 의미는 무엇일까?

5) 334쪽
직접적인 강제 노동에 기초해서는 지배관계만이 재생산된다. 이 관계에서 부는 부 자체가 아니라 향유로서만 가치를 가지며, 일반적 근면성을 결코 창조할 수 없다.
-> 왜 일반적 근면성을 결코 창조할 수 없나?

6) 342쪽
자본은 생산물과 화폐, 생산과 유통의 직접적인(direct) 통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자체로 다시 직접적인 것(immediate)이며, 그것의 발전은 규정되고, 따라서 단순한 관계로 정립된 통일로 그 자체로 정립되고 지향되는 데 있다. 자본에서 통일은 일단 단순한 것으로 현상한다.

Capital is direct unity of product and money or, better, of production and circulation. Thus it itself is again something immediate, and its development consists of positing and suspending itself as this unity – which is posited as a specific and therefore simple relation. The unity at first appears in capital as something simple.

-> 왜 "직접적인 통일"이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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