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호] 『기린은 왜 목이 길까?』 서평 / 이신재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01 12:21
조회
1675
『기린은 왜 목이 길까?』 서평

유디트 샬란스키의 『기린은 왜 목이 길까?』 (갈무리, 2017)


이신재 (국회도서관 근무)


통일된 독일의 구 동독 지역 고등학교에서 생물과 체육을 가르치는 로마르크.

진화론의 적자생존을 철석같이 신봉하면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사회적으로 잘 살아남을 아이들과 그렇지 못할 아이들을 구분하며 대해 왔던 사람이다.

기린은 왜 목이 길까?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을 변화하는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종의 오랜 적응 과정의 결과로 볼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종의 진화과정에 걸치는 엄청난 시간은 아니지만, 동독체제에서 살아왔던 한 여교사가 통일이라는 격변에 의해 자신의 생존공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의 심리상태를 그리고 있다. 자본의 이동과 그에 따른 지역주민들의 이주, 익숙했던 고장의 퇴폐화로 학교는 학생이 줄어들고 그래서 몇 년후면 학교는 문을 닫을 예정이다. 딸 클라우디아는 이미 오래전 이곳을 떠났고, 동독시절 소를 돌보던 전직 수의사로 삶의 별 재미를 갖고 있지 않았던 남편은 타조를 키우면서 이제는 나름대로 지역의 명사가 되었다. 학교의 동료교사들 역시 학교 폐쇄를 주도하고 관리하며 지역 센터로 변신하는 학교의 다음을 기약하기도 하고 혹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외치며 주장하고 강요하면서 이미 왔던 변화와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응하기도 한다. 로마르크는 자신의 믿는 바대로 한다면 이러한 변화에 살아남기 위한 적응방식을 택하여야 한다. 끝까지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라는 말처럼 로마르크는 지금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결과가 뻔하게 보이는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좋은 적응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로마르크는 그러나 적응의 방식을 택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딸처럼 적절한 환경을 찾아 다른곳으로의 이동을 꾀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변화를 주시하여 보기는 하지만 그 변화의 와중에 자신을 던지지는 않아 보인다.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패배자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대응은 혹시 도태의 방식이 아닐까?

무한경쟁에 내몰려 실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똑부러지고 진화론적 셈법에 철저한 로마르크가 이렇게 대응하다니, 이것은 정말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종의 진화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시간에 걸친 결과일 뿐, 이 무한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생존을 위한 변이를 해 왔을까? 진화론란 변화하는 환경에 살아남은 종의 적응 결과에 대한 설명일 수는 있으나, 환경변화에 대하여 어떤 대응방식이 종의 생존을 위한 최적인지를 결정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소설에서 보인 바와 같이 다른 환경으로 이동하는 방식도,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도, 혹은 아무 대책 없이 그냥 기존의 생존방식을 유지할 수도 있다. 종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인간 개체의 관점에서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떠한 방식이 인간개체의 생존과 번영 혹은 성공을 결정지을 수 있는지는 다만 확률적인 문제가 아닐까? 더욱이 자연선택이 아닌, 의지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간 개개인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확률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은 로마르크의 진화 혹은 적응에 대한 그녀의 믿음과 실제 사이의 이율배반을 보여주고 있다. 정신없이 변화하고 그 변화를 따라잡기에 정신없는 많은 우리들에게 이 소설은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에 밀려 살아가는 정신없고 피로한 또 한편의 우리에게 단 하나의 적응 방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커다란 흐름을 이루는 주류의 적응방식은 아닐지라도 그래서 도태되어지고 조금은 소외되어지는 모습일지라도 내 방식의 적응 방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 준다.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서 도도하게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의 시간도 존재하지만, 그 물결을 벗어나 자신의 방식으로 물결과 속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간도 같은 사람의 인생에서 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체 0

전체 484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444
[77호] 『건축과 객체』에 대하여 / 그레이엄 하먼 『건축과 객체』 한국어판 출간 기념 강연 원고
ludante | 2023.08.19 | 추천 0 | 조회 647
ludante 2023.08.19 0 647
443
[77호] '실재론적 마술'을 읽고ㅣ탁선경
자율평론 | 2023.07.24 | 추천 0 | 조회 406
자율평론 2023.07.24 0 406
442
[76호] 이름 없는 독립영화만이 가진 가치가 있다ㅣ채희숙
자율평론 | 2023.06.14 | 추천 0 | 조회 617
자율평론 2023.06.14 0 617
441
[76호] 이름 없는 영화들의 장소ㅣ박동수
자율평론 | 2023.06.14 | 추천 0 | 조회 400
자율평론 2023.06.14 0 400
440
[76호] 신체를 경유해 감각하는 영화 이미지의 시대ㅣ박소연
자율평론 | 2023.06.14 | 추천 0 | 조회 480
자율평론 2023.06.14 0 480
439
[76호] 『카메라 소메티카』, 영화라는 존재를 성찰하다ㅣ이준엽
자율평론 | 2023.06.14 | 추천 0 | 조회 410
자율평론 2023.06.14 0 410
438
[76호] 인류가 사라진다면, 지구는 인간을 그리워할까ㅣ박범순
자율평론 | 2023.06.14 | 추천 0 | 조회 447
자율평론 2023.06.14 0 447
437
[76호] 저항하고, 나를 지키고, 주변을 돌보는 우리는, 마녀의 후손이다ㅣ지혜
자율평론 | 2023.06.13 | 추천 0 | 조회 476
자율평론 2023.06.13 0 476
436
[76호]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ㅣ오온
자율평론 | 2023.06.13 | 추천 0 | 조회 392
자율평론 2023.06.13 0 392
435
[76호] 페미사이드, 경제구조적 맥락을 간과하지 말라ㅣ김미선
자율평론 | 2023.06.13 | 추천 0 | 조회 338
자율평론 2023.06.13 0 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