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호]『로지스틱스』 출간 기념 저자 데보라 코웬 화상강연회 강연문

강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01 19:07
조회
252
Common City Project 30 ― 전지구적으로 소통하라!
『로지스틱스』 출간 기념 저자 데보라 코웬과의 만남
서울 - 토론토 실시간 인터넷 화상강연회

삶과 죽음의 로지스틱스: 제국의 지도제작과 그 너머
The Logistics of Life and Death: Cartographies of Empire, and Beyond


강연 : 데보라 코웬 (『로지스틱스』 지은이)


**이 강연문은 2017년 6월 24일 토요일 낮 12시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린 데보라 코웬 화상강연회에서 발표되었습니다.


I am deeply grateful to Galmuri for translating the book and for organizing this event today. It is an honour to share some of my work with you today as a way of opening up the Deadly Life of Logistics – both the book and the relations in the world.
『로지스틱스』(갈무리, 2017)를 번역하고 오늘 행사를 기획한 갈무리 출판사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 책 ―책뿐만 아니라 세계에서의 관계― 을 여는 방법으로서 오늘 저의 작업의 일부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For the last few years I have been interested in the question of empire in the present.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오늘날의 제국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Focusing on questions of goods movements as I have, may not seem obvious place to start.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재화의 운동이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확실한 출발지점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In this era of the financialization of life which is simultaneously an era of digitization, cargo seems so uninspired.
디지털화의 시대이자 동시에 삶이 금융화되는 이 시대에 화물은 너무 평범하게 보입니다.

Why would anyone want to focus on the banal, seemingly straightforward world of goods movement in an era where we are stunned by the near instant, seemingly immaterial, movement of capital around the world?

세계 전역에서 거의 즉각적이며 겉으로 보기에 비물질적인 자본의 운동으로 어안이 벙벙한 시대에 누가 따분하고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재화 운동의 세계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My focus on the material comes in part from the approach I take to questions of the economy.
물질적인 것에 대한 저의 초점은 부분적으로는 제가 경제 문제에 대해 취하는 접근법에서 나옵니다.

That is, I approach economy asking about the limits of the consensual. From the perspective of security.
즉 저는 합의된 것(the consensual)의 한계에 질문을 던지면서 경제에 접근합니다. 보안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Asking about empire requires that we question the edges of legality, the exceptions to the rules, and the rules that make the exceptions.
제국에 대해 묻기 위해서는 합법성의 가장자리에 대해, 규칙의 예외에 대해, 그리고 예외를 만드는 규칙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And warfare, of which security is something of a special branch, is a big exception made by the rules.
그리고 보안의 특수한 부문인 전쟁은 규칙이 만드는 큰 예외입니다.

When you look at the world from behind borders (of many kinds) you cannot fail to see bodies and commodities.
(많은 종류의) 국경 뒤에서 세계를 볼 때 신체와 상품 들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Borders are all about moderating the movement of particular kinds of flow.
국경이란 특정한 흐름의 운동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And it is not only the persistence of longstanding, profoundly material question of goods movement that is a central problem of government today, but we can trace newfound forms and complexities to the problems of the circulation of stuff that make logistics so pivotal.
그리고 오늘날 통치의 핵심 문제인 재화 운동이라는 오래되고 완전히 물질적인 문제가 존속할 뿐 아니라, 로지스틱스를 매우 중차대하게 만드는 사물의 순환 문제에 대해 새로운 형태와 복잡성을 추적할 수 있다.

These questions are the how of empire.
이러한 질문들은 제국의 '어떻게'에 해당합니다.

When I looked around with these questions in mind, I began to see logistics in all sorts of places.
이 문제들을 유념하면서 주위를 돌아보자 저는 모든 종류의 장소에서 로지스틱스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arted to see our era, and our empires, as profoundly logistical.
저는 우리 시대를, 그리고 우리의 제국을 완전히 로지스티스적인 것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I also came to believe that logistics industries, logistics infrastructures, logistical warfare and logistical forms of calculation, offer us a map of contemporary imperialism.
저는 또한 로지스틱스 산업, 로지스틱스 인프라, 로지스틱스 전쟁 그리고 로지스틱스적 계산 형태가 우리에게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지도를 제공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In a sense, I ask: ‘what happens if, instead of ‘following the money’ in our analyses of local and global power, we follow the circulation of stuff?’
어떤 의미에서 저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 및 전지구적 권력에 대한 분석에서 ‘화폐를 추적하는’ 대신 사물의 순환을 추적한다면 어떻게 될까?”

This includes the movements of commodities that makes the capitalist circulation of value possible, but it also includes the distribution of the necessities of life that distributes life itself and its collective reproduction so unevenly.
여기에는 자본주의적 가치 순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상품의 운동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삶 자체와 그것의 집합적 재생산을 매우 불균등하게 분배하는 생활필수품의 분배도 포함됩니다.

I suggest that when we do this, we are much better equipped to map contemporary imperialism… not as an abstract system, but in the specific violence it enacts over a complex network of actual lived spaces.
저는 우리가 이렇게 하면[사물의 순환을 추적하면], 현대 제국주의를 훨씬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추상적인 시스템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생활공간의 복잡한 네트워크에 작용하는 특정한 폭력으로 말입니다.

When we do this we are also able to better see creative forms of resistance, contestation and alternative futurity. And here is another place where I want to push a bit again today.
우리가 이렇게 하면 저항과 경합 그리고 대안적인 미래상의 창조적인 형태들도 더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오늘 다시 한 번 조금 강조하고 싶은 또 다른 지점입니다.

Some exciting debates have emerged over the last few years about the project of ‘counterlogistics’.
지난 몇 년 동안 ‘대항 로지스틱스’ 프로젝트에 대한 흥미로운 몇 가지 논의들이 있었습니다.

Most of these debates center on the emancipatory potential of capitalist technologies, asking whether the (class) politics of disruption, understood as interrupting or blockading the flows of goods, can remake the relations of logistical production.
이 논의들의 대부분은 자본주의적 기술의 해방적 잠재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재화의 흐름을 방해하고 봉쇄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교란의 (계급) 정치가 로지스틱스적 생산관계를 개조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These are crucial questions, but a little more specific or confident than mine.
이것은 중요한 질문들이지만 저의 질문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거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My own experience with disruptive movements and engagement with feminist and queer politics demand a lot more questions about the who and the how of disruption and, like Toscano suggested in 2014, require an engagement with the reproductive (social, intimate, biological) relations of production.
교란 운동에 대한 저 자신의 경험과 페미니스트 및 퀴어 정치에 대한 참여는 교란의 주체와 방식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질문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2014년에 토스카노가 암시했듯이 생산의 재생산적(사회적인, 친밀한, 생물학적인) 관계들에 대한 개입을 요구합니다.

This means foregrounding the imperial politics of a war machine that we may know as the racial state and racial capitalism, as well as the settler colonial relations upon which logistical infrastructures are built.
이것은 우리가 로지스틱스 인프라가 건설되는 정착형 식민 관계뿐 아니라, 인종 국가와 인종 자본주의로 알려진 전쟁 기계의 제국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뜻합니다.

It also means acknowledging that a logistical society remains tightly tethered to biopolitics that sustains and provisions some lives at the expense of others.
그것은 또한 로지스틱스 사회가 어떤 이들의 삶의 유지와 부양을 위해 다른 이들의 삶을 희생하는 생명정치에 단단히 매여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I will end my talk today by looking to the brilliant work of North American, Indigenous, Two Spirited artist Kent Monkman explore how this second push is profoundly related to the first.
저는 two spirited 북미 원주민 예술가 켄트 몽크맨(Kent Monkman)의 뛰어난 작업을 살펴보고 이 두 번째 강조가 첫 번째 강조와 어떻게 깊이 연관 되어 있는지 탐구하면서 오늘 강연을 마치려고 합니다.

* two spirited : 일부 북미원주민들이 자신의 공동체에 있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변종 젠더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포괄적인 용어. 직역하면 영혼이 두 개라는 뜻.

Monkman offers us a form of futurity that is not just about ‘the economy’ and class struggle but which sees social reproduction, everyday spaces, and desire as necessary sites for radical transformation.
몽크맨은 ‘경제’와 계급 투쟁에 대한 미래상뿐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과 일상 공간 그리고 욕망을 급진적 전환을 위해 필요한 장소로 파악하는 미래상의 형태를 제공합니다.

1. PANAMA PAPERS
1. 파나마 페이퍼스

I want to start with the revelations of the last couple of months that emerge out of the release of the Panama papers.
저는 ‘파나마 페이퍼스’의 유출로 일어난 지난 몇 개월간의 폭로와 함께 시작하고 싶습니다.

* Panama Papers : 파나마 법률 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가 보유하고 있던 200,000개 이상의 역외회사에 관한 기밀문서 자료. 각국의 정치인, 유명인사들의 조세 회피 관련 정보가 있어 큰 파장을 낳았다.

Where better to start a talk on the circulation of physical, material stuff than with the seemingly immaterial flows of wealth.
겉으로 보기에 비물질적인 부의 흐름보다, 물리적이며 물질적인 사물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더 좋은 시작점은 없을 것입니다.

The leak of thousands of confidential documents from Panama law firm Mossack Fonseca has exposed some of the sordid details of the making of the 0.01% through complex manipulation of uneven legal geographies.
파나마 법률 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에서 수천 개의 기밀문서가 유출되면서 불균등한 법적 지리의 복잡한 시장 조작을 통해 0.01%를 만드는 추악한 세부 사항들이 일부 드러났습니다.

In addition to notorious individuals named in the files, American corporations have, according to The Atlantic, “stashed billions of dollars via more than 1,500 subsidiaries in tax havens.”
그 파일에 이름을 올린 악명 높은 개인들 외에도 <아틀란틱>(The Atlantic)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조세 피난지에 1,500개가 넘는 자회사를 두고 수십억 달러를 은닉해” 왔습니다.

In one of the more helpful analyses to emerge so far, Oxfam highlights that, “in 2012… American corporations shifted between $500 and $700 billion in profits from countries where their real economic activities took place to countries where lower effective tax rates apply. That year US multinational companies reported earning $104 billion in profits in Bermuda alone, 1884% of the country’s GDP, “costing the US government $111 billion each year in lost revenue.
지금까지 나온 좀 더 유익한 분석 중 하나에서, 옥스팜(Oxfam)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2012년 ... 미국 기업들이 자신들의 실제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국가에서 실효세율이 좀 더 낮게 적용되는 국가로 옮긴 수익은 5천억에서 7천억 달러에 이른다. 그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버뮤다에서만 1천 4십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버뮤다 GDP의 1884%에 해당하며,” 미국 정부는 해마다 1천 1백 1십억 달러의 세입을 잃었습니다.

Oxfam also highlights some of the immediate implications of this legal theft from the heart of Empire:
옥스팜은 또한 이러한 제국의 심장부에서의 합법적 절도가 지닌 즉각적인 함의를 강조합니다.

In 2014, facing demands to slash spending on anti-poverty aid, the US Congress cut food stamps by $8.7 billion, causing 850,000 households to lose an average of $90 per month. “Since 2010,” the report highlights, “federal policymakers have cut 85% of US federal programs supporting low income families.”
2014년 반빈곤 지원에 대한 대폭 삭감 요구에 직면하여 미국 의회는 푸드 스탬프를 87억 달러까지 삭감했고 이로써 85만 가구는 한 달 평균 90달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강조합니다. “2010년부터”, “연방 정책 입안자들은 저소득 가정을 지원하는 미국 연방 프로그램의 85%를 삭감했다.”

* 푸드 스탬프 : 미국에서 저소득층에 식품 구입용 바우처나 전자카드를 매달 제공하는 식비지원 제도

Some of the most reprehensible findings so far highlight the scale of dispossession on the African continent where, “G7 based companies and investors cheated Africa out of an estimated US $6 billion in 2010 through just one form of tax dodging... This is equivalent to three times the amount needed to plug the healthcare funding gap in Ebola affected countries of Sierra Leone, Liberia, Guinea and Guinea Bissau.”
지금까지 가장 비난받을 만한 조사 결과 중 일부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강탈의 규모를 강조합니다. 그곳에서 “G7에 기반을 둔 기업과 투자자들은 탈세를 통해 아프리카를 기만하여 2010년 미화 60억 달러로 추산되는 금액을 사취했다. ... 이것은 에볼라가 발생한 국가들, 즉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기니, 기니비사우에서 의료기금 격차를 메꾸기 위해 필요한 액수의 3배와 같다.”

For some, it is the scale of the figures that is shocking, for others it is the legality of all this that startles.
어떤 이들에게 충격적인 것은 그 수치의 규모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의 합법성입니다.

And then for some of us, it is startling simply to see the mainstream media reporting what many have known for so long…. that the contemporary economy is based on theft – of workers wages, of indigenous peoples lands, of global south and racialized peoples’ lives.
그리고 우리 중 일부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을 주류 언론이 보도한다는 것이 그저 놀랍습니다. 현대 경제가 절도에 기초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노동자들의 임금, 토착민들의 땅, 지구적 남부와 인종화된 사람들의 삶의 절도에 말입니다.

Mainstream media is after all one of the sites of the greatest concentration of corporate wealth.
사실 주류 언론이야말로 기업적 부가 가장 많이 집중되는 곳 중 하나입니다.

Also not surprisingly - one of the world’s largest corporations was named in the Panama Papers for hiding some of the largest stores of wealth in tax havens.

또한 놀랍지 않은 것은, 조세 피난지에 가장 많은 부를 쌓아두고 있는 업체 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업체 중 하나가 파나마 페이퍼스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Walmart has close 5000 stores in the US, and over 11,500 retail units ‘under 63 banners in 28 countries’.
월마트는 미국에만 5천 개가량의 매장을 갖고 있고, "28개국에서 63개의 브랜드명(banners) 아래" 11,500개의 소매 단위를 운영합니다.

They directly employ 2.3 million ‘associates’ around the world.
그들은 전 세계에서 230만 명의 '제휴자'들을 직접 고용합니다.

Walmart workers are subsidized by US taxpayers to the tune of more than $6 billion a year, in public nutrition, health care, and housing assistance programs.
미국 납세자들은 월마트 노동자들의 보건 영양, 의료, 주거 지원 프로그램을 위해 매해 무려 6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합니다.

Even before the Panama Papers – research by the United Food & Commercial Workers International Union found that Walmart hides over $76b in offshore tax havens.
파나마 페이퍼스 전에도 <국제 식품 및 상업 노동자 연합>은 월마트가 760억 달러가 넘는 돈을 해외 조세피난지에 숨겨두었다고 폭로했습니다.

UFCW reports that units in Luxembourg — where the company has no stores — reported $1.3 billion in profits between 2010 and 2013 and paid tax at a rate of less than 1 percent.
<국제 식품 및 상업 노동자 연합>에 의하면 월마트가 단 한 개의 점포도 운영하고 있지 않은 룩셈부르크에서 [월마트의 한] 단위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13억 달러 수익을 올렸다고 보고했고 1% 이하의 세금을 납부했다고 합니다.

The UFCW further highlights that nearly a decade ago, Wal-Mart ran into trouble over strategies to avoid U.S. state income taxes.
<국제 식품 및 상업 노동자 연합>는 또한 약 10여 년 전에 월마트가 미국 주 소득세를 회피하려는 전략으로 곤란했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합니다.

It used a real estate investment trust to pay rent to itself, generating big tax deductions, even though the rent payments never left the company.
월마트는 부동산 투자 신탁을 이용해 자기 자신에게 임대료를 냈고, 임대료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세금 공제를 받았습니다.

At least six states changed their tax laws after publicity about the tactics.
이 전략이 공론화되면서 미국에서 적어도 여섯 개의 주가 세법을 개정했습니다.

Since then, Wal-Mart has stepped up its use of offshore tax havens.
그 사건 이래로 월마트는 해외 조세피난지의 사용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It has created 20 new subsidiaries in Luxembourg alone since 2009.
이 업체는 2009년에만 룩셈부르크에 20개의 새 자회사를 차렸습니다.

Walmart is perhaps even more famous for manipulating complex cartographies of regulation and uneven development in the sphere of labour.
아마 월마트는 규제의 복잡한 지도제작을 조작하고 노동 영역에서 불균등한 발전을 하는 것으로 더 유명할지 모릅니다.

Walmart is the mascot of flexibilization through space.
월마트는 공간을 통한 유연화의 마스코트 같은 회사입니다.

It is worth highlighting, and not surprising that this penchant for manipulating space to its own financial advantage is walmarts primary industry… not just in avoiding taxes but in accumulating capital.
자사의 재정적 이득을 위해 공간을 조작하는 것에 대한 이 애호가 바로 월마트의 주된 산업이라는 점... 납세를 회피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주된 산업이라는 점..은 놀랍지 않으며 또한 짚고 넘어갈 가치가 있는 부분입니다.

Walmart as logistics company – not just retailer.
로지스틱스 기업으로서의 월마트 - 그저 소매상이 아니라 말입니다.

It is a company that specializes in the management and coordination of goods circulation.
월마트는 재화 순환의 관리와 조직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2. A fiNANCIAL flag of convenience / 편의치적

*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은 선주의 국적과는 다른 국가에 상선을 등록하고 그 국가의 상선기를 배에 다는 사업 관행이다. 선주는 운영비용을 줄이거나 선주 국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배를 편의치적으로 등록한다. 이러한 등록을 개방 등록(Open registries)이라고 부른다.

And in fact, the movement of capital documented in the Panama Papers is built on the legal strategies of elites to remake the world of global shipping decades ago- strategies upon which the world of logistics – and globalizing trade – is organized.
그리고 사실 파나마 페이퍼스에 문서화된 자본의 이동은 수십 년 전에 엘리트들이 지구적 해운의 세계를 개조하기 위해 사용했던 법적 전략들 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로지스틱스의 세계와 지구화되는 무역의 세계가 조직되는 전략이 바로 그 전략들입니다.

The tax evasion documented in the Panama Papers might be better thought of as the financial flag of convenience.
파나마 페이퍼스에 문서화된 조세회피를 금융 편의치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It borrows its logic and form from much older strategies in the shipping industry for legally hoarding wealth by shifting its geography.
지리 변화를 통해 합법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해운 산업의 보다 오래된 전략들로부터 그 논리와 형태를 빌려온 것입니다.

The Flag of Convenience remade the law or more specifically, remade legal space, to make these practices legal.
편의치적은 법을 개조했습니다. 또는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행위들을 합법으로 만들기 위해 법적 공간을 개조하였습니다.

The world of logistics and logistical corporations like Walmart were literally built on the flag of convenience.
로지스틱스의 세계와 월마트 같은 로지스틱스 기업들은 문자 그대로 편의치적 위에 세워졌습니다.

To see the implications of this demands that we shift from an imaginary of immaterial flows of digital capital to thinking about the very material circulation of commodities.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려면 우리는 디지털 자본의 비물질적 상상계를 떠나 상품들의 매우 물질적인 순환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가야만 합니다.

Strangely, but perhaps not coincidentally… this also entails a return to Panama - a country carved out by the United States precisely for control of the canal corridor.
기이하게도, 그러나 아마도 우연치 않게도, 이것은 또한 우리가 (정확히 운하 통제라는 목적을 위해 미국이 조각하여 만들어낸 나라인) 파나마로 되돌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The Panama Papers expose tax sheltering schemes that were developed in the 1970s by the US govt and financial companies, but many decades earlier it was in Panama that the legal capacity to delink the geography of ship ownership from the legal geography of regulation were disaggregated through the FOC – formally known as the Open Registry.
파나마 페이퍼스는 1970년대에 미국 정부와 금융 회사들이 발전시킨 절세 수단들을 폭로하지만, 수십년 전에, 선박 소유권의 지리를, 규제의 법적 지리에서 분리시키는 법적 능력이 (그 전에는 개방 등록이라고 알려졌던) 편의치적(FOC)을 통해 분해되었던 장소가 바로 파나마였습니다.

The history of Panama as a tax haven began in 1919 when US firm Standard Oil experimented with escape “Open registries” or “flags of convenience” to escape US taxes and regulations.
조세 도피처로서의 파나마의 역사는 1919년에 미국 업체 <스탠다드 오일>이 미국 세제와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개방등록" 또는 "편의치적"을 실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Other US ship owners followed, seeking to avoid higher wages and better working conditions won by labor militancy in the industry.
해운업 노동자들의 전투성으로 얻어낸 임금 상승과 노동조건 개선을 피하기 위해 다른 미국 선주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By 1949 Panama - had already become the fourth-largest shipping nation, following the United States, the United Kingdom, and Norway—yet, the vast majority of registered ships were American owned.
1949년에 이르면 파나마는 미국, 영국,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4위의 해운 국가가 되었는데, 파나마에 등록된 대다수의 선박이 미국인의 소유였습니다.

Today Panama has more ships registered than China and US combined.
오늘날 파나마에는 중국과 미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선박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Panama now has the largest registry in the world.
이제 파나마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등록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By last year, almost three quarters of the world's fleet was registered under a flag of a country other than its own.
작년까지 거의 전 세계 선박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선박이 자기 것이 아닌 나라의 이름으로 등록돼 있었습니다.

Flag of convenience shipping enabled firms to radically cut costs through international sourcing of labor and manufactured goods by making it easy to swiftly lower transportation costs.
편의치적 해운은 기업들이 운송비용을 신속하게 절감하는 것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노동력과 제품의 해외 소싱을 통해 비용을 근본적으로 절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Writing in 1969, Guy Heineman and Donald Moss explained that flags of convenience offer ship owners advantages including “immunity from direct taxation, lower repair costs, circumvention of strict Coast Guard safety requirements, and avoidance of high wages paid to American seamen.”
1969년에 가이 하이네만과 도널드 모스는 편의치적이 선주에게 “직접 과세의 면제, 보다 저렴한 수리비, 엄격한 연안 경비대 안전성 요건의 우회, 미국 선원에게 지불되는 높은 임금의 회피”를 비롯한 [여러] 이점들을 제공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More recently, Edna Bonacich notes that this became a tool for companies to “escape U.S. regulation and strong seafaring unions” and select countries with “weak to nonexistent” laws on the books.
더 최근에는 에드나 보나시치가 편의치적은 기업들에게 "미국의 규제와 강력한 선원노조를 피해", "약하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법을 가진 국가들을 선택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Barton (149) asserted the significance of the flags of convenience debates, which “traditionally only concerned shipping but now has wider ramifications in terms of the globalizing of other sectors.”
바튼은 편의치적 논란이 지닌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그 논란은 “전통적으로 선박에만 관련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경제 부문들의 지구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보다 넓은 파생 효과를 지닌다.”고 말했습니다.

The radical transformation in the geography of shipping regulation “has provided a model of interstate failure to regulate flexible, globalizing, geoeconomic forces.”
선박 규제 지리학의 급진적 전이는 “유연하고 지구화하는 지경학적 힘들의 규제에 실패하는 국가 간 모델을 제공했습니다.”

By allowing firms to geographically circumvent “nation-state legislative and economic controls, the Open Registries issue provides an intriguing yet disturbing example of the problems of international agreement and international management of the transboundary geoeconomic ecumeme” (Barton 1999, 149).
사실 “국민국가의 법률적·경제적 통제를” 기업이 지리적으로 우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방 등록 이슈는 국경을 넘는 지경학적 에쿠메네에 대한 국제 합의와 국제 관리 문제의 흥미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사례를 제공합니다”(Barton 1999, 149).

“Beyond the purely economic benefits,” Barton (1999, 148) asserts that flags of convenience “provide an advantageous blanket of anonymity for ship owners since the associated difficulties of the investigation of shipping casualties and the tracing of owners, holding companies and operating companies makes for a complex web that international maritime agencies are left to unravel.”
바튼(1999, 148)은 편의치적이 “순수한 경제적 혜택을 넘어서” “선주에게 익명성이라는 유익한 장막을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주와 지주회사 그리고 자회사의 추적과 해난 조사가 결합된 어려움이 국제 해양 기관들이 풀어야 할 복잡한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While US imperialism has been persistently contested in the region since the land grab from Columbia that allowed for the creation of the Panama canal zone under US control, maritime workers around the world also fought these specific developments since the 1950s.
파나마는 이 핵심적인 수송 항로의 통제를 위해 미국이 콜롬비아에서 토지를 강탈함으로써 탄생했기 떄문에 미국 제국주의는 이 지역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해운 노동자들은 1950년대부터 이 사태의 구체적인 전개와 싸웠습니다.

The Seafarers International Union and National Maritime Union launched a global boycott of vessels in 1958, which had most impact within the United States, “where 129 vessels were picketed, rendering the docks around these vessels unworkable when other dock workers refused to cross the picket lines.” After another round of actions in 1961, the US president issued a Taft-Hartley injunction in order to break eighteen days of disruption to the industry.
<국제선원노조>와 <전국해운노조>는 1958년 전지구적인 선박 보이콧에 돌입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29개의 선박에서 피켓 시위가 벌어져 이 선박들 주변의 부두들은 기능할 수 없었고 다른 부두 노동자들은 피켓 라인을 넘어가기를 거부했다”. 1961년 또 한 번의 [시위] 행동 이후, 대통령은 18일간의 산업 교란을 끝내기 위해 <태프트-하틀리 명령>을 발동했습니다.

* <태프트-하틀리(Taft-Hartley) 법>은 노동조합에 유리했던 기존의 와그너법을 수정하여 1947년에 제정된 노사관계법이다. 노조의 단결권 제약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파업이 국가 경제 또는 안보를 위협할 경우 대통령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 노동자들의 직장 복귀를 명령할 수 있다.

The expansion of flags of convenience was not only protected by the U.S. government but actively engineered by the same.
편의치적의 팽창은 미국 정부가 보호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작했습니다.

Cafruny (1987, 94) outlines how an active coalition between “extractive multinationals, large independent shipowners, and the executive branch”—“implicitly endorsed” by the inactivity of Congress—established this powerful precedent.
캐프루니(1987, 94)는 ― 의회의 비활동이 “암묵적으로 지지한” ― “다국적 채굴 기업들과 대규모 독립 선주들과 행정부” 간의 적극적인 제휴가 어떻게 전후 시기에 이 강력한 선례를 수립했는지 개괄합니다.

The FOC allowed for a kind of offshoring of the industry upon which the offshore economy was built.
편의치적은 연안 경제가 그 위에 구축된 산업에 대해서 일종의 연안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Today between as much as 90% of trade moves through maritime space, so the ability to offshore this mobile industry to take advantage of the world’s dramatic inequalities… deepening them in the process… was pivotal.
오늘날 무역의 90% 정도가 해양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세계의 극적 불평등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그 불평등을 심화하면서... 거기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이 이동 산업을 이전할 수 있는 능력은 핵심적이었습니다.

And indeed, logistics is not just moving stuff around, but remaking the space of legal jurisdiction for desired forms of circulation.
그리고 실제로 로지스틱스는 그저 사물을 여기저기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순환 형태를 위해 법적 관할권의 공간을 개조하는 것입니다

I explored this in the context of the ‘crisis of Somali piracy’ in my book.
저는 이것을 제 책에서 '소말리아 해적 위기'라는 맥락에서 다루었습니다.

3. [the logistics revolution] / 로지스틱스 혁명

The world of logistics and logistical corporations like Walmart were literally built on the flag of convenience.
로지스틱스의 세계와 월마트 같은 로지스틱스 기업들은 문자 그대로 편의치적 위에 세워졌습니다.

Indeed, the FOC was a crucial technology (along with the shipping container and the computer) for the revolution to come.
실로, 편의치적은 (해운 컨테이너와 컴퓨터와 더불어) 앞으로 닥칠 혁명에서 핵심적인 테크놀로지였습니다.

I have spent some time in past work trying to wrap my head around events in the 1960s and since that are usually called ‘The Revolution in logistics”.
과거에 저는, 보통 '로지스틱스 혁명'이라고 불리는 1960년대와 그 이후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였습니다.

This revolution of the post WWII period transformed geographies of trade, not simply by coordinating the movement of production to new and distant places.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의 혁명은 무역의 지리를 변형하였는데, 생산을 새롭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Rather, production itself was systematized; disaggregated into component parts and distributed into complex geographical arrangements.
오히려 생산 그 자체는 체계화되었고, 구성 부품으로 분해되어 복잡한 지리적 배치 속으로 분배되었습니다.

The supply chain now supersedes the factory.
이제 공급사슬이 공장을 대체하였습니다.

In a sense – the vast logistical network – the supply chain – IS today’s factory- the factory is now ‘stretched’ across a highly uneven economic and political geography.
어떤 의미에서는 이 광범한 로지스틱스 네트워크 즉 공급사실이야말로 오늘날의 공장입니다. 이제 공장은 극심하게 불균등한 경제적 정치적 지리를 가로질러 '펼쳐져' 있습니다.

It is oft repeated that competition today takes place on the basis of supply chains not individual firms.
오늘날 경쟁은 개별 기업에서가 아니라 공급 사슬을 기초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This revolution took shape through deliberate learning across corporate and military worlds.
이 혁명은 기업 및 군사 세계를 가로질러 이루어진 의도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Logistics on the rise in the battlefield for some time.
로지스틱스는 상당 기간 동안 전장에서 그 사용이 증가하였습니다.

Modern military logistics – strategy – tactics, especially as a feature of the growing technological complexity of warfare and the rise of POL.
현대 군사 로지스틱스 - 전략 - 전술, 특히 유류(POL)의 부상과, 전쟁술에서 과학기술적 복잡성의 증가의 한 특질로서 말입니다.

The second world war… Korea – mass war, multiple fronts, POL… logistics.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대량 전쟁, 다수의 전선, 유류 ... 로지스틱스.

But while the revolution in logistics gave us the very particular conditions of early 21st century global supply chains, what Anna Tsing calls ‘Supply Chain Capitalism”, it is no accident that the supply chain of contemporary capitalism resonates so clearly with the supply line of the colonial frontier.
로지스틱스 혁명이 (아나 칭이 "공급 사슬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21세기 초의 지구적 공급사슬의 매우 특수한 조건들을 제공했다면, 현대 자본주의의 공급사슬이 식민지 변경(邊境)의 공급선과 아주 뚜렷하게 공명하는 것은 우연히 아닙니다.

It is not only striking but diagnostic that old enemies of empire—“indians” and “pirates”—are among the groups that pose the biggest threats to the “security of supply” today.
제국의 오랜 적들 ― “인디언”과 “해적” ― 이 오늘날 “공급의 보안”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집단들 중 하나라는 점은 눈에 띌 뿐 아니라 징후적입니다.

4. follow the STUFF / 사물을 추적하라

Despite a recent flurry of activity in expanding and securitizing logistics workers and infrastructures, concern for the systemic vulnerability of logistics systems is not new.

로지스틱스 노동자와 인프라를 확장하고 보안화하는 데 쏟아지는 최근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로지스틱스 체계의 체계적 취약성에 대한 우려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Logistics has a long history in warfare that dates back at least to Alexander, if not Sun Tzu.
로지스틱스는 전쟁술에서 손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알렉산더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Logistics played a fundamental role in making the map of Europe, in European imperialism in Africa, South and East Asia, and the maritime corridors in between.
로지스틱스는 유럽, 아프리카/남아시아/동아시아의 유럽 제국주의, 그리고 그 사이의 해상 경로들의 지도를 제작하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So too the colonial settlement of North America was a profoundly logistical project.
북미의 식민지 정착 또한 완전히 로지스틱스적인 기획이었습니다.

Stefano Harney suggests that the first large-scale exercise in logistics was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
이 실천에 작동하는 더 오래된 계보학들도 있지만 [아프리가 노예 무역에 사용되었던] 중간 항로가 로지스틱스의 가장 초기의 성능 시험장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And remember, this was legal – ‘regulated’.
그리고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것이 합법적이었다는 것, ‘규제되었다’라는 것입니다.

Legality is not ethics, morals, or justice.
합법성은 윤리, 도덕이나 정의가 아닙니다.

Law is an infrastructure of social order.
법은 인프리나 사회적 질서입니다.

It can be challenged and transformed but it responds to relations of power in the present in sculpting particular futures.
그것은 도전받을 수 있고 변형될 수도 있지만 특정한 미래를 만들어내는 현존하는 권력관계에 상응합니다.

But just to make some of this more concrete I want to come back to the idea of following the commodity instead of the money.
이 모든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화폐를 추적하는 대신 상품을 추적한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If I had more time, we could follow some stuff as it is moved and remade around the world in order to trace the organized violence that underpins logistical flows.
시간이 좀더 있었다면 몇몇 사물이 전 세계를 움직이면서 개조되는 동선을 좇아서 로지스틱스 흐름을 뒷받침하는 조직된 폭력을 추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But this would be limited because routes can be changed all the time as logistics companies play actual places off each other.
그러나 이런 분석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왜냐하면 로지스틱스 회사들이 실제 장소들을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경로는 항상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Instead I will just briefly highlight some flashpoint spaces.
이렇게 하는 대신 인화점 격인 몇몇 공간들을 강조하겠습니다.

The ‘Logistics City’ – Basra, Dubai / 로지스틱스 도시 – 바스라, 두바이

The convergence of war and trade in urban infrastructures.
도시 인프라에서의 전쟁과 무역의 합류

The conversion of military detention facilities to logistics cities (eg- Basra Logistics City) that make use of the physical infrastructure for expediting logistics labour, but that also exploit the security infrastructure to keep locals people out.
로지스틱스 노동을 촉진하기 위해서 군사 구금 시설의 물리적 인프라를 사용하고 또 지역민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서 그 시설의 보안 인프라를 활용하는, 군사 구금 시설의 로지스틱스 도시로의 전환(예 : 바스라 로지스틱스 도시)

The Maritime Corridor – The Gulf of Aden & the Suez
해양 회랑 – 아덴 만과 수에즈 운하

The making of new political spaces that are policed intensely by a range of national governments using police and military force in response to a so-called 'crisis of piracy'.
소위 ‘해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경찰력과 군사력을 사용하는 정부들에 의해 고강도로 치안되고 있는 새로운 정치적 공간의 창조.

Transit zones like the one in the Gulf of Aden reveal how advanced capitalist states like Canada and the US treat these maritime spaces as 'internal' to domestic supply chains, and requiring military intervention to protect commodity flows.
아덴만 같은 환승지역은 캐나다와 미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 해양 공간들은 얼마만큼 자국의 공급사슬의 ‘내부’로 취급하는지 그리하여 상품 흐름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The Maritime Corridor - The Panama Canal
해양 회랑 – 파나마 운하

The expansion of 'global infrastructures' like the Panama canal have relied on both the dispossession of indegnous peoples and the displacement of residents in the community of Colon, in processes reminsent of US urban renewal projects.
파나마 운하 같은 ‘지구적 인프라’의 확장은 토착민들에 대한 강탈과 콜론 지역민들의 강제 이동에 의존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미국의 도시 재생 사업을 연상시킵니다.

The National Border - Ports and 'Seam' Space
국경 – 항구와 ‘홈’ 공간

The securitization of the border spaces and those who labour in them.
국경 공간과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안화

Aggressive national security policies developed over the last 15 years target workers and create new legal spaces that are subject to a mixture of domestic and international law and policing.
지난 15년간 개발된 공격적인 국가안보 정책들은 노동자들을 겨냥하며, 국내적이고 국제적인 법률과 치안의 혼합물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법적 공간들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Part of the reconfiguration of national security around a networked, supply chain model and geography that articulates in complicated ways with territorial models of national security.
국가 안보의 영토적 모델들과 복잡한 방식으로 접합되는 네트워크된, 공급사슬 모델과 지리를 중심으로 한 국가안보의 구조변경.

5. The Rise of Civilization / 문명의 출현

I want to turn now for the last section of my time with you to the incredible work of Kent Monkman and his bold recent installation The Rise of Civilization, that opened in Toronto in the fall of 2015.
오늘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시간의 마지막 섹션으로 켄트 몽크맨의 놀라운 작업과 2015년 가을 토론토에서 전시된 그의 강렬한 최근 설치 작품 <문명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Monkman – a Two-Spirited Cree artist, who works in video, installation, performance and paint, was invited to undertake this high profile work in an unlikely place – a ceramics museum.
Two-spirited 크리족 예술가인 몽크맨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 그림 등을 작업하는데, 도자기 박물관이라는 예상 밖의 공간에서 그의 이목을 끄는 작업을 하도록 초대되었습니다.

I say this is an unlikely place because Monkman is known for his intransigence, playfulness, and in-your-face queerness as he engages first and foremost the ongoing violence of North American (settler) colonialism.
제가 예상 밖의 공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몽크맨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북미 (정착민) 식민주의의 지속적인 폭력이라는 문제에 관여하면서 그의 타협하지 않음, 명랑함, 노골적인 퀴어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The ceramic museum is known for its excellent collection of antique teacups.
도자기 박물관은 훌륭한 골동품 찻잔 컬렉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Not only does Monkman’s work take on hard topics – of cultural genocide, of racism and sexual violence, but his work is made even more edgy by its flamboyantly queer lens.
몽크맨의 작업은 문화적 대량학살, 인종주의, 성폭력 같은 어려운 주제들을 다룰 뿐 아니라 그의 작업은 그 대담한 퀴어적 접근에 의해서 한층 더 선명하게 됩니다.

Monkman’s work has been called “both kitsch and caustic.”
몽크맨의 작업은 “키치[인기 있지만 저속하다]하고 신랄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Noted for being “charged with homoerotic tension that notably echoes a desire — often troubled and malevolent —for the Other… the artist’s work upholds that the sexual oppression of the First Nations people went hand in hand with racial oppression,” (De Blois 2009).
“타자에 대한 (종종 불안하고 적대적인) 욕망을 눈에 띄게 반향하는 동성애적 긴장에 휩싸인” 것으로 지적되는 “그의 작품은 캐나다 선주민(First Nations)들에 대한 성적 억압이 인종적 억압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De Blois 2009).

For instance, In one thread of Monkman’s work - Dance of the Berdashe – Monkman revisits 19th century painter and pseudo-enthnographer George Caitlin’s fascination and disgust with the Berdashe tradition -
예를 들어서 몽크맨의 작업 중 하나인 <버데이쉬(Berdashe)의 춤>에서 몽크맨은 19세기 화가이자 유사-민족지학자 조지 케이트린이 버데이쉬 전통에 매료됨과 동시에 그것을 역겨워하였던 사실로 되돌아갑니다.

* 버데이쉬(Berdashe) : (아메리칸 인디언의 어떤 종족 사이에서) 이성의 옷을 입고, 이성처럼 행동하며, 이성의 역할을 하는 사람; (특히) 여성의 역할을 하는 남자.

described by Catlin as “one of the most unaccountable and disgusting customs that I have ever met in the Indian country...and where I should wish that it might be extinguished before it be more fully recorded.”
케이트린은 “[버데이쉬가] 제가 인디언 나라에서 마주친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역겨운 관습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기록되기 전에 사라졌으면 한다.”고 설명합니다.

In response, Monkman offers his own ‘Dance of the Berdashe’ – which features the inimitable Miss Chief.
이에 대한 응답으로, 몽크맨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미스 치프[직역하면 미스 추장]가 등장하는 그 자신만의 <버데이쉬(Berdashe)의 춤>을 제시합니다.

Monkman’s alter ego – Miss Chief Eagle Testikle - is often featured in his work and she brings a sense of the fabulous and the absurd to these tough topics.
몽크맨의 또 다른 자아인 미스 치프 이글 테스티클[직역하면 미스 추장 독수리 고환, testikle은 고환 testicle과 철자가 한 글자 다르지만 소리는 같다]은 그의 작업에 종종 출현하며, 그녀는 이 난제들에 어떤 우화적이고 기이한 느낌을 불러옵니다.

“He’s dealing with a very brutal and violent history of oppression, but the first layer is this campy humour.
“그는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억압의 역사를 다루는데, 첫 번째 층위는 바로 이 색다른 유머입니다.”

That’s how he gets you in, and that’s where the conversation starts.”
그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이고 그래서 대화가 시작되는 곳이 거기입니다.”

Monkman has been described as “an anthropologist of anthropology,” fascinated with the production of colonial vision through white settler representations of indigenous peoples, and with undoing this vision through his own brand of queer rearranging.
몽크맨은 토착민들에 대한 백인 정착민들의 재현을 통한 식민적 시선의 생산 그리고 그 시선을 그 자신만의 퀴어 재배치를 통해 흐트러트리기에 몰두함으로써 “인류학의 인류학자”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Monkman embraced the irony of the invitation to a seemingly staid ceramics museum, even titling one of the pieces in the exhibit ‘Bull in a China Shop’.
몽크맨은, 겉으로 보기에 고루한 도자기 박물관에서 온 초대의 역설을 받아들여 그 전시장의 작품 중 하나에 ‘사기점 안의 황소’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 사기점 안의 황소(Bull in a China Shop) :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사람, 거칠게 (세련되지 못하게) 구는 사람.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뜻.

And indeed, the installation goes for the ceramic lover’s jugular, provoked by Monkman’s meditation on the colonial history of bone china, of which The Gardiner Museum holds over 300 pieces from the nineteenth century.
그래서 실제로 이 전시는 도자기 애호가의 급소를 겨냥합니다. 가디너 박물관은 19세기 본차이나 300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몽크맨은 본차이나의 식민적 역사에 대한 숙고로서 도자기 애호가들의 급소를 칩니다.

The Rise of civilization occupied the entire space of an enormous room.
문명의 출현 전시는 하나의 넓은 방 전체를 차지하였습니다.

Like the title of the work, the installation unfolds on a vast scale, anchored by a giant cliff that rises out from the floor a dozen feet into the air.
제목처럼 이 설치는 매우 큰 스케일로 펼쳐집니다. 바닥에서 12피트(약 3미터66센치) 위로 솟아오른 엄청나게 큰 절벽에 작품이 매달려 있습니다.

At the top of the cliff stands Miss Chief Eagle Testikle, tall, in red gown and headdress, gesturing forward.
절벽 꼭대기에는 키가 크고, 빨강색 가운과 머리 장식을 입고 앞으로 손짓하는 미스 치프 이글 테스티클이 서있습니다.

Life sized stuffed bison surround mischief, one leaping into the air.
실제 크기의 가짜 들소들이 미스 치프를 둘러싸고 있고 그중 한 마리는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있습니다.

The installation retells the story of the colonial decimation and near extinction of the bison population in North America.
이 설치는 북미 식민지 시대에 들소가 엄청나게 떼죽음 당하고 거의 멸종되기에 이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고 있습니다.

In just a few short decades, European settlers killed 50 million bison, destroying the herds, and the lives of the peoples that relied on them.
짧은 수십년 동안 유럽 정착민들은 5000만 마리의 들소를 죽였고 무리를 파괴하고 그 들소에 의존했던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The bison were killed as part of a land grab, they were killed for their furs and bones, but most importantly here is that the bison were killed in order to exterminate indigenous people.
들소는 토지 수탈의 일부로 살상되었고, 그 털과 뼈를 위해서도 죽임을 당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들소들이 토착민을 몰살하기 위해 죽임 당했다는 것입니다.

“Kill every buffalo you can! Every buffalo dead is an Indian gone.” - General Custer
“죽일 수 있는 모든 물소를 죽여라. 물소 한 마리가 죽으면 한 명의 인디언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 커스터 장군

And kill they did.
그리고 그들은 죽였습니다.

Sherman told Grant the year before, “we must act with vindictive earnestness against the Sioux, even to their extermination, men, women and children.”
그 전 해에 셔먼은 그랜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수(Sioux)족에 맞서서 악의적인 진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수 남성, 여성, 아이들의 몰살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When Grant assumed the presidency in 1869, he appointed Sherman Commanding General of the Army, and Sherman was responsible for U.S. engagement in the Indian Wars.
그랜트가 1869년에 대통령직에 다시 올랐을 때 그는 셔먼을 군 사령관으로 임명했고, 셔먼은 인디언 전쟁에서의 미국의 참여의 책임자였습니다.

The railways were central in the simultaneous slaughter of the bison heards and the fragmentation of indigenous lands.
들소 무리 살상과 토착민 토지의 분열이라는 동시적 사건에서 핵심에 철도가 있었습니다.

According to the Smithsonian, “the massive slaughter” was “made possible by the railroad.”
스미스오니언 박물관에 따르면 “대량 살상”은 “철도로 인해서 가능해졌습니다.”

“Nearly every railroad train which leaves or arrives at Fort Hays on the Kansas Pacific Railroad has its race with these herds of buffalo; and a most interesting and exciting scene is the result.
캔자스 태평양 철도를 통해 헤이스항에 도착하거나 헤이스항을 출발하는 거의 모든 기차가 버팔로 떼와 경쟁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흥미롭고 흥미진진한 풍경이다.

The train is “slowed” to a rate of speed about equal to that of the herd;
열차는 버팔로 무리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속도를 “늦춘다.”

the passengers get out fire-arms which are provided for the defense of the train against the Indians, and open from the windows and platforms of the cars a fire that resembles a brisk skirmish.”
탑승자들은 인디언에 대한 열차 방어 목적으로 제공되는 총기를 꺼내고, 열차 창과 플랫폼에서 총을 쏘는데 마치 활기 넘치는 소규모 접전 같은 것이 일어난다.”

By the late 19th century there were only 300 bison in the wild, and this was in effect the end of the Indian Wars.
19세기 말에 이르면 300마리의 야생 들소만이 남았고, 이것이 사실상 인디언 전쟁의 종식이었습니다.

Indigenous people who survived were pushed onto reserves.
살아남은 토착민들은 지정지역으로 내몰렸습니다.

“We took away their country and their means of support, broke up their mode of living, their habits of life, introduced disease and decay among them, and it was for this and against this they made war.
우리가 그들의 나라를 빼앗고 그들의 생존유지 수단을 빼앗고, 그들의 삶의 양식과 삶의 습관을 파괴하였으며, 질병과 부패를 그들에게 도입했고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맞서서 그들이 전쟁에 나선 것입니다.

Could any one expect less? Then, why wonder at Indian difficulties?”
뭔가 덜한 것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인디언들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합니까?”

- Sheridan, Annual Report of the General of the U.S. Army in 1878
셰리던, 1878년 미군 장교의 연례 보고서

But Monkman recounts this gruesome history in a profoundly queer way – recentering the scene on the millennia old sustainable indigenous hunting practice of the Buffalo Jump.
그러나 몽크맨은 이 잔학한 역사를 매우 퀴어적인 방식으로, 그 장면을 천 년이 넘은 오래된, 지소 가능한 토착민들의 사냥 실천인 버팔로 점프를 중심으로 위치시킴으로써 다시 이야기합니다.

The Buffalo Jump – a practice of both using and sculpting the landscape in such a way that buffalo could be skillfully driven to and off the edge of cliffs, providing food and sustenance for plains people.
버팔로 점프는 버팔로를 솜씨 있게 절벽 끝으로 몰고 가서 거기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식으로 풍경을 사용하고 조각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평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식량과 생계수단이 제공됩니다.

But here, in Monkman’s queer account, there is a different casualty to Miss Chief’s buffalo jump.
그러나 여기 몽크맨의 퀴어적 설명에서는 미스 치프의 버팔로 점프에 피해자가 따로 있습니다.

It is not the buffalo but rather the bone china that is broken.
파괴되는 것은 버팔로가 아니라 본차이나입니다.

In pieces is the industry built on genocide, and perhaps too the hard yet fragile whiteness of the bone china.
대량살상 위에 지어진 산업, 그리고 아마도 또한 본차이나의 강력하면서도 취약한 흼(whiteness)이 조각조각 납니다.

The buffalo, the source of that bone, the sustenance of a people that was rerouted into the source material to be extracted for this brittle white industry… rises again.
그 본(뼈)의 원천인 버팔로, 이 덧없는 백색 산업을 위해 추출될 원료로서 내몰렸던 사람들의 생존이 다시 출현합니다.

It is not the same buffalo as before.
이 버팔로는 이전의 버팔로와 같지 않습니다.

It is a frame, a gesture, a potential.
그것은 프레임이고 제스쳐이고 잠재력입니다.

Crawling out from this rubble, a small heard of modernist cyborgian bison rise towards a very different future life.
이 폐허에서부터 기어 나오는 것은 매우 다른 미래 삶을 향해 일어나는 현대풍의 사이보그 들소의 소규모 무리입니다.

The future for Monkman offers us is of a different life.
몽크맨에게 미래는 우리에게 다른 삶을 제공하는 어떤 것입니다.

A queer remaking of the present past.
현재의 과거를 퀴어적으로 개조하는 것.

Monkman does not give us a logistics plan. But he does give us a map of sorts.
몽크맨은 우리에게 로지스틱스 계획을 주지는 않지만 일종의 지도를 제공해 줍니다.

Writing in 2013, my colleague Michelle Murphy asks us to return to a politics of reproduction in an exciting paper ‘Distributed reproduction, chemical violence, and latency’, Murphy engages the question of ‘reproduction’ differently.
2013년에 저의 동료 미셸 머피는 매우 흥미로운 논문 “분배된 재생산[생식], 화학적 폭력, 그리고 잠복기”에서 우리가 재생산[생식]의 정치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요청하면서 “재생산[생식]” 문제에 다르게 접근합니다.

Hers is not the reproduction of the heteronormative imperative of individual liberal subjects,
여기에서는 개인적 자유주의적 주체의 이성애규범적 책무가 재생산[생식]이 아닙니다.

rather, Murphy draws on diverse but specific feminisms- women of colour, indigenous, Marxist, queer, and techno-scientific- to think through the ways that reproduction is a practice “occurring beyond bodies within uneven spatial and temporal infrastructures.”
오히려 머피는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페미니즘을 불러옵니다. 유색인종, 토착민, 맑스주의자, 퀴어, 기술-과학적 여성들 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불균등한 공간적 시간적 인프라 내의 신체들 너머에서 발생하는” 실천으로서 재생산[생식]을 사유하고자 합니다.

Murphy wants to re-center the question of reproduction in a coalitional feminist politics without its normative biopolitical baggage.
머피는 재생산[생식]이라는 질문에서 규범적 생명정치적 짐을 덜어내고 연합의 페미니즘 정치를 중심으로 재생산[생식]이라는 질문을 재위치시키고자 합니다.

She approaches reproduction as something ‘assisted’ by the extensive infrastructures of “state, military, chemical, ecological, agricultural, economic, architectural—that “assist,” alter, rearrange, foreclose, harm, and participate in the process of creating, maintaining, averting, and transforming life in inter-generational time.”
그녀는 재생산[생식]이 광범한 “국가, 군대, 화학적, 생태적, 농업적, 경제적, 건축적” 인프라에 의해 보조되는 어떤 것으로 접근합니다. 이런 인프라는 “간-세대적 시간에서 삶이 창출되고 유지되고 예방하고 변경하는 과정에서, 보조하고 변경하고 재배치하고 소유권을 뺴앗고, 해를 끼치고 참여한다.”

Thus ‘assisted reproduction’ is violently uneven and distributed along profoundly racialized lines.
따라서 “보조된 재생산”[의학의 도움을 받은 생식을 뜻하기도 함]은 폭력적으로 불균등하며 매우 인종화된 선을 따라 분배되어 있습니다.

This resonates with Ruthie Gilmore’s conception of racism as, “the state-sanctioned or extralegal production and exploitation of group-differentiated vulnerability to premature death” (2007, 28).
이것은 루디 길모가 인종주의를 “집단별로 차별화된 조기 사망 취약성에 대한, 국가 규제를 받거나 법외적인 생산과 착취”라고 생각하는 것과 공명합니다.

For Murphy, what is crucial to the politics of distributed reproduction is not the maintenance of proper heteronormative human and nonhuman bodies, but instead the sustaining of capacities to live intergenerationally.”
머피에게, 분배된 재생산의 정치에서 핵심인 것은 적합한 이성애규범적 인간 신체와 비인간 신체의 유지가 아니라 간세대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존속입니다.

Murphy asks, “If, in studying reproduction and participating in reproductive politics, one aims not just to reproduce the same, not just to give in to the breathless futurism of contemporary anticipatory impulses, then how might our attention to the responsiveness and generativity of life in contemporary technoscience be interrupted, supplemented, and reoriented?”
머피는 묻습니다. “만일 재생산[생식]을 연구하고 재생산[생식] 정치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동일한 것을 재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의 예상가능한 충동들의 숨 막히는 미래주의에 굴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면, 현대 기술과학에서의 생명에 대한 민감성과 생식성에 대한 우리 관심이 어떻게 중단되고, 보충되고, 재정향될 수 있을 것인가?”

What does this mean for Walmart? For Panama?
이러한 것은 월마트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파나마에는요?

Toscano (in viewpoint): “Can we define or declare a relocation of political and class conflict, in the overdeveloped de-industrializing countries of the “Global North,” from the point of production to the chokepoints of circulation?”
토스카노 : “우리가 ‘전지구적 북부’의 과잉개발된 탈산업 국가들에서, 정치적 계급적 갈등의 재배치를 정의하거나 선언할 수 있을까? 생산 지점에서 순환의 관문으로 말이다.”

If logistics is essentially about provisioning and sustaining both human life and the non-human animals, machines and infrastructures that constitute our ecologies,
만일 로지스틱스가 본질적으로 인간 생명과 우리 생태계를 구성하는 비인간 동물, 기계, 인프라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유지시키는 것이라면,

then it is in fact not a practice, industry or assemblage that could ever be ceded to the corporate and military worlds that today work and fight under its banner.
그렇다면 로지스틱스는 오늘날 로지스틱스라는 기치 아래 작동하고 싸우는 기업적 군사적 세계에 양도될 수 있는 실천이나 산업, 배치가 절대로 아니다.

Provisioning and sustaining are ironically the highly gendered labors of social reproduction that peoples and movements have always done.
공급과 유지는 역설적으로 사람들과 운동들이 항상 해온 고도로 젠더화된 노동들이다.

Today, however, we can see explicit take-up of logistics by disruptive movements, in an alternative register.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다른 대안적인 등록영역에서 분명하게 로지스틱스에 가담하는 교란운동들을 볼 수 있다.

Now a critical element of social movements (occupy, social forum), organized under this name, and a field that activists are actively exploring investing in further for the future,
이제는 [로지스틱스가] 이러한 이름 아래 조직되는 사회운동(점거하라, 사회적 포럼)들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미래를 위해 가담하고 탐구하는 장이 되었다.

we might also include earlier experiments with provisioning and sustaining movements – for instance the black panthers breakfast programs – as alternative logistical politics par excellence.
우리는 또한 공급와 유지 운동들의 보다 초기의 실험들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블랜팬서들의 아침식사 프로그램들 같은 것들이 바로 탁월한 대안적 로지스틱스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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