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호] 재생산을 중심으로 뉴딜 정책 다시 보기 ― 복지국가가 기획한 가족과 여성 / 남승현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02 21:40
조회
1529
재생산을 중심으로 뉴딜 정책 다시 보기 ― 복지국가가 기획한 가족과 여성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집안의 노동자』 (갈무리, 2017)


남승현(이화여대 여성학과)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맑스주의 페미니즘에서 ‘자연’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노동력의 재생산에 많은 관심을 두어왔다. 여기서의 노동력 재생산이란 한 노동자가 다시 노동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조건을 만드는 것부터 출산·양육과 같이 새로운 세대의 노동력을 생산해내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물론 전통적인 맑스주의 내에서도 노동력의 재생산 양식의 역사적 변화에 대해 논한 『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과 같은 고전적인 텍스트가 있지만, 이 역시 생산력에 따라 변화하는 가족형태의 변화에 대해 분석했을 뿐,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차원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기존 맑스주의적 분석에서는 재생산은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상품 경제가 작동하는 기반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페미니스트들은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부분이 가부장적 구성물임을 문제제기 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노동과 자본, 혹은 노동과 국가와의 관계로서 조망되는 뉴딜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인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영역을 통해 뉴딜 시기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계급관계의 안정화를 위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해석에서 간과되어 온 새로운 지점들을 드러낸다. 사람에게 재화·임금·물질이 제공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삶과 세대의 재생산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 사이의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된 듯하지만, 그 사이에는 재화,임금,물질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노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재생산 영역에 주목하여 본 뉴딜 정책은 국가가 사회보장이라는 것을 통해 직접적으로 노동력의 재생산에 개입하게 된 사건으로 한 편으로는 직접적 소득의 보장이라는 사회보장적 전환점이었다. 또한 다른 한 편으로는 기본적 경제 단위로서의 가족을 강화하고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주부’로서 재정의 함으로써, 여성의 보이지 않는, 무급 노동 위에서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이 책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개인을 가족으로 흡수, 재생산 하고 새로운 세대를 생산하며, 경제활동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등 뉴딜 정책에서 여성의 역할을 보여준다.

대량생산의 시대와 국가의 가족 강화

이 책은 20세기 초반, 대공황 직전까지의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으로는 포드의 1일 5달러 정책과 가족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짚어낼 수 있다. 포드의 1일 5달러 정책은 자본이 노동계급 가족의 재생산을 고려해야 한다는, 그리고 이를 통해 대량생산에 따른 수요를 부양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가족부양임금을 받는 ‘남편’과 합리적인 소비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주부’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는 생산주체와 소비주체를 성별화된 방식으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접근이 여성에게 교육된다. 그러나 이는 노동이라기보다는 중산층 주부에 대한 상상 속에서 ‘사랑으로 하는 노동’, ‘어머니 훈련’ 등으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이 국가는 여성의 돌봄과 가사노동을 자연스러운 여성의 역할로서 위치시키고, ‘모성 강화’와 ‘가족 강화’를 꾀했다. 이 책은 대공황 시기, 가족이 와해되자 국가가 이러한 가족의 재건을 통해 뉴딜 정책을 추진했음을 보여준다.

뉴딜이 강화한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나?

그렇다면 뉴딜이 강화하려고 했던 기본적 경제단위로서의 ‘가족’은 도대체 누구의, 어떤 가족을 의미했는가? 달라 코스따는 뉴딜 정책이 사회적 노동력 재생산에 있어서 어떠한 표준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그러한 ‘표준’이 아닌 존재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재생산의 위기에 대응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29년 대공황 이후, 전반적인 가족 해체 속에서 백인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달라 코스따의 분석에는 이러한 대공황의 영향 역시 매우 성별화·인종화되어 있었음이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가족을 재건하기 위한 국가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와 자본은 백인 가족을 재건하는데 집중했다. 이는 “백인 가족이 노동계급의 생산을 대규모로 지탱하고 사회의 질서나 무질서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73)이었다. 이는 한 편으로는 그 당시 노동계급에서 백인의 양적 비율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표준’적인 미국의 가족이 어떻게 상상되는지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와 자본의 차원에서는 다른 인종보다 백인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이성애적 핵가족을 재건하는 것에 더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안정적인’ 사회 질서가 누구를 통해, 어떤 관계를 통해 대표되는지, 그리고 경제적 정책이 인종적, 젠더 담론과 어떤 방식으로 절합되는지에 대한 사례를 제공한다.

국가의 소득보장요구와 자율적 재생산의 조직화

이 책의 3장은 대공황 시기, 재생산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실업자들과 퇴역군인, 노인 등을 중심으로 국가에 소득보장을 요구하는 흐름이었다. 예를 들어 기아행진, 워싱턴 재향 군인 시위, 전국의 주요 실업자 시위에서 노동자의 요구는 국가가 직접 화폐와 생필품으로 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개별 업주가 아닌 국가가 직접적으로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요구하는 강력한 세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갈래는 국가에 대한 소득보장 요구와 함께 자립 및 교환 협동 조합 운동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지점이다. 이는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자본주의적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을 구조화하려던 시도로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달라 코스따가 “소득”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의 문제의식을 넘어 ‘재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주목했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지점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소득에 대한 요구로 환원되지 않는 자본주의적 경제 외부의 재생산에 대한 상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산에의 개입으로서의 뉴딜정책

위와 같이 재생산을 둘러싼 다양한 노동계급의 요구 및 실천이 존재할 때, 뉴딜정책은 사실상 국가가 자본주의적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재생산을 재조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뉴딜정책은 다양한 방식의 자율 조직과 (비교적 시장논리로부터 자율적인)자체적 재생산의 방식을 한편으로는 소득의 보장이라는 방식으로 포섭하고, 이와 동시에 이성애적 핵가족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를 재개하려는 정책적 개입으로 작동하였다. 가족은 이러한 재생산에 따르는 노동을 바탕으로 실업자가 ‘예비 인력’으로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단위이자,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고, 못하는 존재를 부양하는 단위였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여성의 역할로서 재생산에 따르는 무급노동의 자리를 부여받았고, ‘주부’로서 그 과정을 책임지게 되었다.

또한 이는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단위의 문제뿐만 아니라 재생산 방식에 대한 개입이기도 했다. 페데리치는 이 책의 서문에서 노동자들이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여 주도적으로 자율조직을 만들고 자체 재생산의 방법을 강구한 점에 주목한다. 즉, 재생산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복지국가를 부활시키거나 강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자율적인 재생산 방식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뉴딜정책은 그 중에서 복지국가를 통해 전 사회적 소비능력을 유지, 재건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동시에 이는 국가가 특정한 재생산 방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입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삶의 재생산을 상상할 수 있는가?

노동력의 재생산 측면에서 바라본 달라 코스따의 뉴딜정책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의 사회 운동의 전략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복지의 확대 및 축소에 대한 논의에 집중된 한국사회에서 아래의 두 가지 질문을 떠올려보게 한다. (1)현재 복지 시스템이 어떠한 재생산 구조에 기반하고 있는가? 즉, 재생산은 어떠한 단위를 기본으로, 어떠한 구성원들을 ‘시민’으로 간주하고 또 생산해내면서, 누구의 노동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가? 이 질문은 성별분업과 이성애적 핵가족을 기본 단위로 이뤄지고 있는, 아직 많은 부분이 여성의 무급노동으로 이뤄지는 한국사회에서 복지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2)사회구성원에 대한 재생산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물론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우리는 국가에게 재생산을 보장하라는 방식으로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율적이고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공간들을 확장시켜나갈 것인가?

아직 많은 부분 여성의 무급노동에 기대고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재생산이 상품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삶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이 낮은 가치평가 속에서 여성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이 책의 문제의식은 시야를 확대시키는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득의 보장이라는 틀이 아닌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방향에서 복지국가를 분석할 때, 문제의식은 현재 상황에서 국가에게 특정한 서비스 제공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다른 방식의 관계와 공동체의 구성에 대한 고민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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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영점』(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 2013)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을 요구했던 1970년대 여성운동에서 출발하여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더욱 열악해진 삶의 조건들을 회복하기 위한 공유재 재구축을 위한 운동까지, 급진주의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혁명의 영점』은 이러한 여성투쟁의 본질에 대한 페데리치의 40년간의 연구와 이론 작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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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의 저자로 알려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고전적 저작.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 5백년 동안 여성, 자연, 식민지는 문명사회 외부로 축출되고, 가려져 왔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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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1부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 강의, 2부에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삐올로 비르노의 글을 실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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