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_발제] 제8고원 (p.378-386)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9-01-19 15:36
조회
590
제8고원. 1874년-세 개의 단편소설,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 분할선, 절단선 : 견고한 분할선 또는 그램분자적 절단선
2. 분자적 분할선, 파열선 : 유연한 분할선 또는 분자적인 파열선
3. 추상적 선(도주선), 단절선 : 추상적이고, 죽어 있고, 살아 있는, 비절편적인 도주선 또는 단절선

p. 378-,
두번째 단편소설, 피츠제럴드의 파열, 1936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것은 피츠제럴드가 “물론 모든 삶은 파괴의 과정이다.”(The Crack-up”)라고 말한 다음에 끝에 가서 끊임없이 문제 삼는 물음이다. 이 “물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삶은 점점 더 견고하고 메말라가는 절편성 안으로 끊임없이 참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에 피츠제럴드는 그의 천재성을 발견하게 된다. “바깥으로부터 오는 또는 바깥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보이는 갑작스런 커다란 타격들” 그리고 매우 의미심장한 절단들에 의해 진행되는 갑작스런 커다란 타격들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부자-가난뱅이>같은 잇단 이항적 “선택지” 속에서 한 항에서 다른 항으로 이행하게 된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완전히 다른 절편성을 따라 일어나는 다른 유형의 파열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더 이상 거대한 절단들이 아니라 접시 위의 금과 같은 미시적인 균열들이다. 그것들은 보다 미세하고 보다 유연하며, 달리 보자면 오히려 일이 더 좋아질 때 생산된다. 설사 이 선 위에 노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노쇠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선 위에서 그것을 느끼지 못할 때에만 여기에서 나이를 먹는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이미 여기에서 일어났을 때에만 다른 선 위에서 그것을 감지한다. 다른 선의 나이들에 대응하지 않는 그런 순간에 우리는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없는 정도, 양자, 강렬함에 도달한 것이다. (이 강렬함들의 역사는 매우 미묘하다. 가장 아름다운 강렬함은 어떤 순간 우리의 힘을 넘어선다면 해롭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견딜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제 상태로 놔둘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실은 지정 가능한 어떤 것도, 지각 가능한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이 경우에는 나무의 초월성에 의해 규정된 거대한 운동들과 거대한 절단들 대신에 리솜의 내재성 안에 있는 격동들과 파열들이 있다. 균열은 “거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생기지만 정말 갑작스럽게 깨닫게 된다.”

Inq. 6개월의 심리치료 후 행동의 변화가 있었으나 종결 후 2개월만에 원상복귀된 내담자, 이후 치료를 재시작한 후 1개월만에 행동의 변화가 감지
Inq. 통합사례회의 속 심리치료사의 반투명한 역할과 존재감

게다가 세번째 선이 존재한다. 이 선은 단절의 선과 같은 선이며 다른 두 선의 폭발과 충돌 등을 표시한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 “나는 살아남은 자들은 뭔가 진정한 단절(clean break)을 이뤄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하며, 탈옥과는 상관이 없다. 탈옥의 경우 우리는 대개 새로운 감옥으로 가게 되든지 옛 감옥으로 강제 송환된 것이다.”
“저 유명한 <탈주> 또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망>은 덫 안에서의 소풍이다. 그 덫이 남태평양을 포함한다 해도 말이다. ... 진정한 단절은 되돌아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은 과거를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Inq. 두 번의 타락이 필요하다던 라깡
Inq. 같은 동 12층에서 느낀 이국

베케트의 잊을 수 없는 문장이 모든 여행을 짓누르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우리는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 여행하지 않는다. 우리는 멍청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까지는 아니다.”

단절 속에서 과거의 물질은 휘발된다. (...)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났을 수 없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나에게 찬성하거나 반대할 게 없다. 나의 영토는 잡을 수 있는 곳 바깥에 있다. 영토가 상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내가 영토를 그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 더 이상 나는 아무런 비밀도 갖고 있지 않다. 얼굴, 그 형식과 질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하나의 선일 뿐이다.

절대적 탈영토화가 일어났다. 사람은 모든 사람들처럼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도 모든 사람들처럼 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은 자기 위에 세상을 그렸지 세상 위에 자기를 그리지 않았다. (...) 천재는 모든 사람들을 생성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은 동물-되기, 분자-되기, 마침내 지각 불가능하게-되기에 들어갔다.

p. 382-, 세 번째 단편소설. 피에레트 플뢰티오, 심연과 망원경 이야기, 1976

각각의 절편 위에는 두 종류의 감시자가 있다. 그들이 감시하는 것은 심연 안에서 생산되는 운동, 돌출, 범법 행위, 소요, 반란이다.

1. 짧게 보는 자 : 짧게 보는 자의 망원경은 단순하다. 이들은 심연 안에서 거대 세포의 윤곽, 거대한 이항적 나뉨의 윤곽, 이분법의 윤곽, “교실, 병영, 서민 아파트, 또는 비행기에서 본 교회”와 같은 유형의 잘 규정된 절편들 자체의 윤곽을 본다. 이들은 가지들, 연쇄들, 열과 행들, 도미노들, 줄무늬들을 본다. 때때로 이들은 가장자리에서 잘못 만들어진 형태, 떨리는 윤곽을 본다. (...) 재단하는 망원경은 모든 것을 덧코드화한다. (...) 왜냐하면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글이 아닌 선, 개인이건 집단이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의 윤곽에 따라 판단되고 교정되는 견고한 분할선을 효과적으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길게 보는 자 : 길게 보기, 길게 보는 자의 상황은 모호하지만 이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수가 극히 적으며, 많아야 절편마다 하나이다. 그들은 미세하고 복잡한 망원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은 우두머리는 아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사물을 본다. 그들이 보는 것은 미시-절편성 전체이고, 세부의 세부이고, “가능성들의 미끄럼틀”이고, 가장자리에 이르기를 기다리지 않는 작은 운동들이고, 윤곽이 생기기 오래 전에 형태가 잡히는 선들이나 진동들이고, “요동을 통해 발아하는 절편들”이다. 리좀 전체. 재단 기계처럼 기표에 의해 덧코드화되지 않으며, 나아가 그런 형태, 그런 집합, 그런 요소에 귀속되지 않는 분자적 절편성. (...)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길게 보는 자는 미래를 점칠 수 있지만 점치는 방식은 항상 분자적 질료, 발견할 수 없는 입자들 속에서 이미 일어난 어떤 일의 생성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 대규모의 세포 분열이나 이분화가 그 윤곽 속에서 이주, 함입, 치환, 형태 발생적 도약을 동반하는 방식.

길게 보는 자들이 처한 상황의 애매함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심연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가장 가벼운 미시-위반들을 쉽게 간파해낸다. 하지만 그들은 재단하는 <망원경>이 허울뿐인 기하학적 정의 아래에서 야기하는 끔찍한 폐해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들은 예견하고 앞서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진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들의 눈에는 이미 일어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예고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재단하는 망원경은 예고 없이, 예견할 필요도 가능성도 없이 모든 것을 규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경직되고 가장 잔인한 통제의 기획에 가담하지만 그들에게 계시된 지하 활동에 대한 모호한 공감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 분자적 선의 애매함은 그 선이 두 개의 비탈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어느 날(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길게 보는 어떤 자가 자기 절편을 버리고, 검은 심연 위에 걸린 좁은 가교로 올라가서, 자신의 망원경을 부순 후 도주선 위에서 다른 쪽 끝에서 다가오는 눈먼 <분신>을 만나러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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