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2_발제] 제10고원(p.550-563)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9-03-01 19:43
조회
457
제 10고원. 1730년 –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 불가능하게-되기

회상들과 생성들, 점들과 블록들
p. 550-,
남성의 생성들은 그토록 많은데 왜 남성-되기는 없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남성이 유달리 다수적인 반면, 생성들은 소수적이며, 모든 생성은 소수자-되기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의 다수성은 남성의 권리나 권력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여성, 아이, 그리고 동물, 식물, 분자는 소수파이다. 아마도 남성-기준과 관련한 여성의 특별한 위치가 소수파 그 자체인 모든 생성들이 여성-되기를 통과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①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와 집합이나 ② 상태로서의 “소수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 상태로서의 소수성 위에서 우리는 재영토화되거나 재영토화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성 속에서는 탈영토화된다. 블랙 팬더 활동가들이 말했듯이, 흑인들조차 흑인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되기, 여성-되기 등은 이중의 운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내포하는데, 그 중 ① 한 운동을 통해 하나의 항(주체)이 다수성에서 벗어나며, ② 다른 운동을 통해 하나의 항(매체 또는 인자agent)가 소수성에서 빠져나온다.)

소수자 되기는 자신의 요소들인 탈영토화된 매체와 주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생성의 주체는 다수성의 탈영토화된 변수로서만 존재하며, 생성의 매체는 소수성의 탈영토화하는 변수로서만 존재한다.
역사와 달리 생성은 과거와 미래라는 관점에서 사고되지 않는다. 혁명적인 것-되기는 혁명의 미래와 과거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혁명적인 것은 미래와 과거의 틈 사이를 통과한다. 모든 되기는 공존의 블록이다. 이른바 역사 없는 사회는 역사의 밖에 위치한다. 불변의 모델을 재생산하거나 고정된 구조에 의해 지배되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 없는 사회 자체가 생성의 사회(전쟁 결사, 비밀 결사 등)이기 때문이다.

남성-되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은 그램분자적 존재물인 반면, 생성들은 분자적이기 때문이다. (...) 중심점 또는 제 3의 눈은 이원적 기계들 속에서 이항적 분배들을 조직하고 주요한 대립 항에서 재생산된다는 특성을 가지며, 동시에 이 대립 전체가 그 중심점 또는 제 3의 눈 안에서 공명한다. “다수성”은 잉여로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남성은 중심점의 위치에 따라 거대한 기억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이 중심점이 각각의 지배적인 점에 의해 필연적으로 재생산되는 경우를 그 기억의 주파수라 할 수 있고, 점들의 집합이 중심점과 관련되는 경우를 그 기억의 공명이라 할 수 있다. 그램분자적 체계의 집합 속에서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향하고, 따라서 주파수와 공명이라는 기억의 두 조건에 응답하는 점들에 의해 규정되는 모든 선은 나무형 그물망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떨어진 점들 간의 관계보다는 오히려 인접한 점들의 접합접속이나 묶음을 통해 작동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회상보다는 환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 그렇지만 이러한 잡종을 구성하면 우리는 참된 생성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선이 떨어진 두 점과 관련되거나 인접한 점들로 합성되는 한 나무성의 도식과 단절될 수 없으며, 생성이나 분자적인 것에 도달할 수 없다.

p. 555-, 생성의 선
생성의 선은 이 선이 연결하는 점들에 의해서도, 이 선을 합성하는 점들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생성의 선은 점들 사이를 지나가며, 중간을 통해서만 돌출하며, 우리가 먼저 구분한 점들 쪽으로 곧장 흘러가며, 인접해 있거나 떨어진 점들 사이를 결정 가능한 비율로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나의 점은 언제나 기원적이다. 하지만 생성의 선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고, 기원도 목적지도 없다. (...) 생성은 언제나 중간에 있다. 우리는 중간에서만 생성을 얻을 수 있다. 생성은 하나도 둘도, 또 둘 사이의 관계도 아니다. 생성은 둘-사이이며, 경계선 또는 도주선, 추락선, 이 둘의 수직선이다.

말벌과 서양란의 공통적인 탈영토화 – 선별 압력이 밀어닥치는 도주선 위에서 블록을 만드는 비대칭적인 두 운동의 공존. 선 또는 블록은 말벌과 서양란을 연결시키지 않으며, 또한 결합시키거나 혼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선은 점들의 식별 가능성이 사라지는 공통의 근방으로 말벌과 서양란을 데려가면서 그 둘 사이를 지나간다. 생성의 선-체계(또는 블록-체계)는 기억의 점-체계와 대립된다.

생성의 운동을 통해 선은 점에서 해방되고, 점들을 식별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무성의 반대인 리좀은 나무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생성은 반(反)-기억이다. (...) 회상은 언제나 재영토화 기능을 갖는다. 이와 반대로 탈영토화의 벡터는 결코 규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자적 층위들에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탈영토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그러한 연결도 더 강해진다. 분자적 성분들을 한데 “모아주는” 것이 바로 탈영토화인 것이다.

유년기의 블록 또는 아이-되기 VS 유년기의 회상
분자적인 “한” 아이가 생산된다. ... “한” 아이는 우리와 공존한다, 근방역 또는 생성의 블록에서, 우리들을 온통 둘로 가져가버리는 탈영토화의 선상에서. 이 아이는 한때 우리였던 아이, 우리가 회상하고 환상을 만들어내는 아이, 어른은 그의 미래일 뿐인 그램분자적인 아이와 정반대인 것이다.
“이것은 유년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유년기여서는 안 된다.” -버지니아 울프
수십 페이지에 걸쳐 우리가 사용한 “회상”이라는 단어는, 따라서 잘못 사용된 것이었다. 우리는 “생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며, 생성을 말했던 것이다.
inq. 승화

선이 점과(또는 블록이 회상과, 생성이 기억과) 대립한다 해도, 절대적인 방식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점 체계는 어떻든 선들을 이용하며, 블록 자체는 점에 새로운 기능들을 할당한다. 실제로 점 체계 안에서 하나의 점은 우선 선의 좌표를 가리킨다. (...) 이처럼 어떤 체계 안에서 선들이 좌표로 여겨지거나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연결로 여겨지는 경우 이 체계를 점의 체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나무형 체계, 그램분자적 체계 또는 기억의 체계는 점의 체계이다. <기억>이 점적인 조직을 갖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즉 거기에서 모든 현재는 옛 현재로부터 지금의 현재로 가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수평선(운동학적 선)과 현재에서 과거 또는 옛 현재의 표상으로 가는 시간의 질서라는 수직선(지층학적 선)을 동시에 지칭하기 때문이다.

1) 음악의 재현 : 수평의 선율 선에 다른 선율의 선들이 중첩 (대위법적 관계) + 수직의 화음의 선 또는 명(이것은 수평선들을 따라 이동하지만 그것에 종속되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가고, 이어지는 협화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협화음을 확정한다.)
2) 회화의 재현 : 음악과 유사한 형식을 갖는다. 선과 색은 각각 이동하는 수직선과 중첩되는 수평선을 지칭함. (가령 수직선은 차가운 형태, 백색, 빛 또는 색조 등과 연관, 그리고 수평선은 따뜻한 형태, 흑색, 색채, 양식 등과 연관)

p. 558-,
점 체계의 주된 특성
1) 점 체계는 두 가지 기본선, 즉 수평선과 수직선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두 선은 점들을 지정하는 데 쓰이는 좌표로서 기능한다.
2) 수평선은 수직으로 중첩될 수 있고 수직선은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 수평의 주파수와 수직의 공명이라는 조건 아래서 새로운 점들이 생산되거나 재생산된다.
3) 어떤 점에서 다른 점으로 선이 그어질 수(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려지는 경우 그것은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연결선의 형태를 취한다. 이 경우 시선은 층위와 시기가 서로 다른 점들을 위한 연결선의 역할을 하며, 서로 인집하거나 떨어진 다양한 수평과 수직의 점들과 함께 빈도와 공명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체계는 나무형으로, 기억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램분자적이고, 구조적이며, 영토화나 재영토화에 속해 있다. 직선과 사선은 전적으로 점에 종속된다. 직선과 사선은 하나의 점에 대해서는 좌표의 역할을 하며, 한 점과 다른 점에 대해서는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연결선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inq. 주106) 정신분석의 역할에 대한 구상적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음. 정신분석 중 꿈-작업 방법인 압축의 도상적 면을 본 듯 한 느낌. 사람은 책인 듯한 모습.

점의 체계에 대립하는 것이 바로 선의 체계, 아니 차라리 다선적 체계이다. 선을 해방시키고 사선을 해방시켜라. 이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음악가와 화가는 없다. 선의 체계에서 점의 체계나 교육학적 표상을 만들어내더라도, 그것은 이것들을 무너뜨리고 지진동을 일으키기 위해서인 것이다.

즉 선과 사선을 해방시키고, 점을 만드는 대신 선을 긋고, 까다로운 또는 개량된 수직선과 수평선에 달라붙는 대신 지각할 수 없는 사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항상 <역사>에 회수될 테지만, 그것이 역사에서 유래하는 일은 결코 없다.

경계선은 역사와 기억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역사”라는 점 체계들과 사선적인 또는 다선적인 배치물들 사이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결코 영원이 아니고, 생성과 관련되며, 얼마간은 순수한 상태의 생성이며, 초역사적이다. 이처럼 초역사적이지 않은 창조 행위는 없으며, 배후를 공격하지 않는 또는 해방된 선을 지나가지 않은 창조 행위도 없다.

<비시대적인 것>은 <이것임>, 생성, 생성의 결백함을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이다. (다시 말해 기억에 대립되는 망각, 역사에 대립되는 지리, 사본에 대립되는 지도, 나무형에 대립되는 리좀)
“비역사적인 것은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 비슷하다. 생은 오직 이 대기 안에서만 태어나고 대기가 소멸하면 생도 다시 사라진다. (...) 우선 비역사적인 구름에 둘러싸이지 않는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는 어디에 있겠는가?” -니체, 『반시대적인 고찰』 중

창조는 세계를 재현하는 업무에서 빠져나온 돌연변이 추상적인 선과 같다. 창조는 역사가 점의 체계 안에서 기껏해야 다시 파악하거나 다시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유형의 실재를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560-, 음악 속의 사선
위대한 음악사가 제각기 아주 다른 방식으로 화음의 수직선과 선율의 수평선 사이를 지나가는 일종의 사선을 어떻게 발명하고 실행하는가? (음악사가 불레즈) 그리고 매번 그것은 또다른 사선, 또다른 테크닉, 하나의 창조인 것이다. 그 때 실제로는 탈영토화의 선인 이 횡단선 위에서는 하나의 음의 블록이 움직인다. 음의 블록은 기원점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이미 선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음의 블록은 수평과 수직의 좌표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고유한 좌표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음의 블록은 한 점과 다른 점 사이에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연결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박동이 없는 시간”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점도 좌표도 박자도 모두 버린 탈영토화된 리듬 블록으로, 이른바 선과 일체를 이루거나 고른판을 그리는 술 취한 배와 같다.

음악가는 특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기억을 증오한다, 회상을 증오한다.” 음악가는 생성의 역량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즉, 점 밖에서, 좌표와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연결 밖에서, 불안정하더라도 사선을 긋고, 그리하여 해방되고 창조된 선 위에서 음의 블록이 떠다니게 하고, 이 움직이고 변이하는 블록, 즉 <이것임>을 공간 내에 풀어놓는 식으로.

“비스듬한 벡터” 사선은 종종 극히 복잡한 음의 선과 음의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이 소악절 또는 리듬블록의 비밀일까? 그렇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점은 이제 창조적이고 본질적인 새로운 기능을 획득한다. 점적인 체계를 재구성하는 불가피한 운명만이 단순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제 선에 종속된 것은 바로 점이다. 선의 증식, 또는 선의 돌연한 우회, 선의 가속과 감속, 선의 분노와 고통을 표시하는 것은 바로 점이다.
전체 0

전체 457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새책공지〕 들뢰즈, <차이와 반복> - 3월 6일시작
voov11 | 2022.02.25 | 추천 1 | 조회 3253
voov11 2022.02.25 1 3253
공지사항
세미나 홍보 요청 양식
다중지성의정원 | 2022.01.11 | 추천 0 | 조회 2165
다중지성의정원 2022.01.11 0 2165
공지사항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회원님들께 요청드립니다.
다중지성의정원 | 2019.11.03 | 추천 1 | 조회 4343
다중지성의정원 2019.11.03 1 4343
공지사항
[꼭 읽어주세요!] 강의실/세미나실에서 식음료를 드시는 경우
ludante | 2019.02.10 | 추천 0 | 조회 4692
ludante 2019.02.10 0 4692
공지사항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ludante | 2019.01.27 | 추천 0 | 조회 4615
ludante 2019.01.27 0 4615
공지사항
비밀글 <들뢰즈와의 마주침> 세미나 참가자 목록 - 2019년 1월
다중지성의정원 | 2018.02.25 | 추천 0 | 조회 41
다중지성의정원 2018.02.25 0 41
411
<차이와 반복> 들뢰즈의 영어판 서문 번역.
영수 | 2022.03.06 | 추천 0 | 조회 445
영수 2022.03.06 0 445
410
발제문 p 25~ 34
commons | 2022.03.05 | 추천 0 | 조회 331
commons 2022.03.05 0 331
409
<차이와 반복> 3월 공부 범위와 발제 순서
bomi | 2022.03.03 | 추천 1 | 조회 604
bomi 2022.03.03 1 604
408
샤를르 폐기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
commons | 2022.03.02 | 추천 0 | 조회 570
commons 2022.03.02 0 570
407
보르헤스의 글「삐에르 메나르: 돈 끼 호떼의 저자」 에 대한 양운덕님의 글
commons | 2022.03.02 | 추천 0 | 조회 930
commons 2022.03.02 0 930
406
[발제]니체와 철학 326-337
수수 | 2022.02.20 | 추천 0 | 조회 1045
수수 2022.02.20 0 1045
405
[발제] 2/20 312~326 (내일 드디어 마지막!)
voov11 | 2022.02.19 | 추천 0 | 조회 550
voov11 2022.02.19 0 550
404
2/13
bomi | 2022.02.13 | 추천 0 | 조회 425
bomi 2022.02.13 0 425
403
발제문 297 ~ 311
commons | 2022.02.12 | 추천 0 | 조회 386
commons 2022.02.12 0 386
402
니체와 철학(13) 발제문.
영수 | 2022.02.06 | 추천 0 | 조회 420
영수 2022.02.06 0 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