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 자해 현상에 대하여

작성자
absinth
작성일
2018-10-09 18:27
조회
1113
최근 청소년 자해가 심각한 문제다. 거의 Epidemic한 수준이다.

중세 말기 서양은 흑사병을 겪으면서 Epidemic한 수준의 '고행 관습'에 시달린 적이 있다. 어떤 면에서 청소년 자해는 고행이라는 기현상의 현대적 판본이다.

일단 '자해'와 '자살'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걸 염두에 두기 바란다. 자살이 '죽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를 갖고 이루어지는 거라면, '자해'는 '죽고자 하는 의도 이외의 의도'를 갖고 이루어지는 거라고 봐야 한다.

시간이 되고, 무엇보다 비위가 강하다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자해'라는 해쉬태그로 검색을 해보라. 이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나 놀랄 정도로 새로운 세계의 단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 때 싸이월드에 오글거리는 감성글과 함께 눈물샷 올리는 게 유행인 적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 없었던 것이었고, 따라서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해의 틀이 필요하게 됐다. 대중적 이론가들은 이를 현대인의 나르시시스틱한 본성에 기반을 둔 '관심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해사진을 올리는 것도 같은 부류에 속하는 걸까? 충족되지 않은 나르시시즘과 관심받고자 하는 욕구로 그것이 모두 설명될 수 있을까? 사진을 올리는 행위 자체야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자해를 하는 행동 자체를 그 '사진을 찍어 올리는 행위'로 모두 귀속시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게 아닐까?

요즘 정신과 의사들은 이 '청소년 자해'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이 방법들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기 바란다. 이들은 상호 간에 중첩되는 면이 많다.)

첫째로, 제일 설명하기 편한 방법은 기존의 범주에 귀속시켜주는 것이다. 가령 환자에게 MDD(주요우울장애)나 Borderline PD(경계성 인격장애)같은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나 같은 경우 현재 대부분의 입원 환자에게 MDD나 Borderline PD라는 진단명을 부여해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진단 기준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들이 과잉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과잉과 잉여들을 봉합하는 방법들이, 꼼수들이 존재한다. 진단 기준을 여러 개 붙여주든가, 아니면 보다 상위의 진단 기준, 가령 현재 DSM-5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의사들은, 다른 모든 학문 분야에서와 같이, 오컴의 면도날을 매우 좋아해서, 진단명을 많이 내릴 수록 그 진단의 유의성을 낮게 평가하곤 한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 더 적은 진단명으로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훌륭한 진단이고 훌륭한 이론이다. 그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가령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라는 진단 기준은 단순히 '자해'라는 행동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면이 있어서 그 배후의 역동 같은 것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개념도 문제가 많은데,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인격 장애'의 진단은 '인격'이라는 게 형성될 수 있는 청소년기 이후에만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자해하는 청소년들이 성인에 이르러까지 자해를 유지한다면 마음 놓고 '경계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겠지만, 실제로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양상이 변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둘째는 생물학적 또는 행동주의적 측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생물학의 관점이라는 건 사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거다. 자해를 하면 인간의 생리적 반응 상 자연스럽게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된다. 이런 것이 반복되다보면 그러한 물질의 담지자인 인간의 뇌, 인간의 신체는 그런 행동에서 일종의 보상을 느끼게 되고 이 때문에 자해 행동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장 '눈에 보이게'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고, 어디 가서 친구에게 설명할 때도 가장 이해를 잘 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조악한 관점이고 다분히 환원주의적인 관점이 아닐 수 없다. 행동주의적 측면이라는 건 앞에서 말한 '보상'을 행동의 측면에서 심리적으로 다룬 것이다. 가령 우리는, 개가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리게 만든 파블로프의 유산을 따라, 우리의 심리적 과정들이 '강화'라는 과정을 거쳐 특정한 행동을 습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청소년이 자해를 하면 앞에서 말한 생물학적 보상과 더불어 부모님과 친구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또한 자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압도되는 감정'으로부터 잠시 도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데, 이것이 일종의 '부정적 강화'(처벌을 없애면 특정 행동이 강화되는 것)로 기능할 것이다. 최근 자해 청소년을 치료할 때 대세라고 간주되는 DBT(변증법적 행동 치료)라는 건 이 부분을 타겟에 둔 방법이다. 청소년이 이러한 강화에 의해 자해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강화 행동을 차단하고, 대신 다른 대처 행동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현재 영미계통의 정신의학자들은 DBT를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데, 국내의 의료환경 상 그것을 완전히 구현하기는 조금 어려운 점이 사실이다. 그리고 설사 구현이 가능하다고 해도, DBT는 '치료의 효과'에 중점을 둔 것이지, 자해의 원인을 이론적으로 평가하고자 도입된 방법론은 아니라 우리의 궁금점을 해소시켜주지는 못 한다.

셋째는 정신분석학의 가르침을 따라 증상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관점은 자해를 일종의 '처벌'로 보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쌍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기를 처벌하고자 하는 경향에 대해 말한다. 굳이 대응시키자면 '자해'는 일종의 '마조히즘'이다. 사도마조히즘의 배경에는 '공격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것이 외부를 향하는 경우 사디즘이 되고 자신의 내부를 향하는 경우 마조히즘이 된다. 이 공격성이 나중에 '죽음본능' 개념으로 발전하는데, 이 죽음본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이론가들마다 관점이 갈린다. 가령 멜라니 클라인은 애초에 공격성을 가진채로 우리가 태어난다고 본다. 프로이트의 후기 이론을 따르자면 죽음본능 즉 타나토스는 에로스와 함께 모든 생명적 삶을 관통하는 두 가지 대립되는 경향이다. 마조히즘을 '도착증' 개념으로 다루는 경우 라깡을 끌어올 수도 있다. 상징계로의 진입 실패는 주체로 하여금 상징적 남근을 스스로 '세우게' 추동하는데, 이런 경향 속에서 부재하는 '처벌하고 금지하는 아버지'를 '스스로 처벌'하는 과정으로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모두에서 주체를 처벌하는 것이 '아버지'라고 본다. 설사 여성이 남성 마조히스트를 처벌하는 장면이 상연된다고 해도 거기에서 남성 마조히스트를 처벌하는 것은 '아버지의 얼굴을 숨기고 있는 여성 처벌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해가 '자기 처벌'적 의미의 '마조히즘'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그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자기 처벌적 외향 뒤에 엄청난 나르시시즘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적이 많다. 물론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많은 이론가들이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 들뢰즈는 마조히스트들을 보면서 그들이 '굴복 뒤에 위반'의 측면을 숨기고 있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이런 나르시시즘적 측면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닌가 생각한다. 들뢰즈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완전히 별개의 개념으로 본다. 들뢰즈는 사디즘이 '처벌하는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내포하는 반면 마조히즘은 '아버지와의 동일시에 대한 수치감'으로 인해 '아버지를 무효화'하고자 하는, 다시 말해 아버지를 무화함으로써 아버지 없는 아들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경향을 내포한다고 본다.

앞으로 이론을 더 풍부하기 위해서 몇 가지 연구가 덧붙여져야 겠다. 첫째로 동물에서 나타나는 자해 현상을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자해의 보편성을 발견하는 곳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둘째로 '공격성', '처벌', '마조히즘', '죽음본능' 같은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신분석학적 도구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셋째로 '자살'과 '자해'의 개념 구분을 더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아직도 많은 이론가들이 '자살'과 '자해'를 뭉뚱그려 다루는 경향이 있다. 자살 현상의 대표적 이론가라고 불리는 토마스 조이너 같은 경우 '통증에 대한 감내력'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의 감소' 같은 개념을 경유해, 한 개인이 반복적 자해를 통한 학습효과를 통해 자살에 이른다는 선형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자해'에 고유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누가 되었든지 간에, 현대의 대이론가로 거듭나려는 사람이라면 이 '자해'를 제대로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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