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관객』 5장 발제

작성자
moony
작성일
2019-07-17 01:45
조회
716
『해방된 관객』
V. 생각에 잠긴 이미지

20190714 희음

<생각에 잠긴 이미지>

- 생각에 잠김이란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사이의 비규정 상태를 가리키는데, 이미지가 생각에 잠긴다는 건 생각되지 않은 생각을 이미지 자체가 내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생각의 대상으로만 간주되던 이미지가, 그 이미지를 대상으로 놓는 자에게 스스로 영향을 끼침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에 잠긴 이미지의 비규정성은 사유와 비사유, 능동성과 수동성 사이의 비규정 지대에 대해 말할 뿐 아니라,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비규정 지대에 대해서도 말한다.

- 생각에 잠김이라는 관념은, 이미지에서 생각에 저항하는 어떤 것,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 자의 생각과 그 이미지를 식별하려고 애쓰는 자의 생각에 저항하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 저항은 이미지들의 본성을 구성하는 특성이 아니라, 같은 표면 위에 있는 여러 이미지-기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간극(긴장)의 작용이다.

- 미학적 시대의 예술: 각 매체가 다른 매체와 자신의 효과를 섞고, 자신의 역할을 맡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이 소진시켰던 감각적 가능성을 깨우는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는 데 제공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끊임없이 활용했다. 새로운 기술과 지지체는 이처럼 이미지가 생각에 잠기는 일을 지속하게 할 것이다.

<예술과 비예술, 능동성과 수동성, 제의적인 것과 전시적인 것>

- 발터 벤야민: 기계적 복제 예술을 예술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복하는 원리로 삼음. 그는 기계적 이미지를 종교적·예술적 숭배와 단절하는 이미지로 본다(‘아우라’ 비판을 통해). ex. 아우구스트 잔더, 외젠 앗제의 사진.

- 롤랑 바르트: 그럼의 현전 방식을 흉내 내는 사진에 회화가 차지하던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 ex. 리네커 딕스트라의 사진 연작. 사진에 의한 복제를 사물의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유출로 간주. 사진은 예술과 사유에 저항하는 유일한 현실로서의 이미지라는 관념을 구현하게 되는데 이를 정식화한 대표적 인물이 바르트이다. 그는 푼크툼의 생각에 잠기는 힘을 스투디움으로 대표되는 정보 전달의 측면에 맞세운다. 그런데 그가 푼크툼의 촉발물로서 주목하는 루이스 하인의 <지적 장애아, 뉴저지> 안의 ‘당통식 칼라’는, 단순히 ‘시선의 광기를 폭발시키며 사진 찍힌 피사체가 갖는 감각적 성질의 ‘촉각적’ 운반 과정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통’이 참수형을 당한 확실한 한 인물의 이름(정보)에 빚지고 있는 ‘부분 대상’이다. 푼크툼이 단지 감각적 부분 대상에 대한 집중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알렉산더 가드너의 <루이스 페인의 초상>에 대한 그의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수갑을 찬 청년의 이미지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을 읽는 일 역시, 그가 1865년 미국무장관 암살 기도 혐의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비극적 사실(정보)로 인해 비로소 가능해진다(아름다움은 사형수라는 사회적으로 한정된 이미지와 무기력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청년의 이미지 사이의 간극 혹은 미끄러짐에서 온다).

- 사진의 생각에 잠김은 여러 비규정성 사이의 매듭들로 정의될 수 있다. 그것은 피사체, 사진가, 우리(관객) 사이의 순환 효과로서, 의도적인 것과 비의도적인 것의,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의, 표현된 것과 표현되지 않은 것의, 현재와 과거의 순환 효과로서 특징지어질 수 있다.

- 다시, 발터 벤야민: 그는 초상화가 제의가치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하지만, 인간이 부재할 때 사진의 전시가치가 결정적으로 우세하다는 언급을 하기도 한다(의도적인 것과 비의도적인 것의 구분?). 에번스의 사진 <버드 필즈 가족 농가의 부엌 벽. 앨라배마 헤일 카운티>를 보자. 이 사진에서 우리는, 예술과 사회적 르포르타주의 긴장이 단순히 사회에 관한 증언을 예술 작품으로 변형하는 시간의 작업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님을 지각한다. 긴장은 이미 이미지의 핵심에 있다. 미학적 요소들이 빈곤한 삶의 우연들의 효과인지 아닌지, 그것이 거주자들의 취향의 결과인지 아닌지, 이것들이 무심결에 기록된 것인지 일부러 배치하고 부각했는지, 사진가가 장식을 생활방식 지표로 보았는지 선과 오브제의 특별함으로 보았는지 알 수 없다. 플로베르를 참조한 에번스는 범속한 것에 예술을 첨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삭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지의 작업은 사회적 범속성을 예술의 비인격성 속에서 취한다. 이미지의 작업은 사회적 범속성을 단순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사회적 범속성에서 걷어낸다(다른 것으로 보게 하기! 다른 맥락과 다른 장면과 다른 조명으로 보게 하기!).

<탈고유화된 유사성>

- 이 유사성은 이미지와 비교 가능한 어떤 실재하는 존재도 참조하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임의의 존재의 현전이다. 임의의 존재는 자신의 얼굴을 내놓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감춘다.

- 헤겔과 빙켈만: 무리요가 그린 ‘세비야의 거지 소년들’에 대해 헤겔은 그 거지 소년들이 올림포스 신들의 지복과 흡사한 지복을 증언한다고 말한다. 최고의 미는 소년들의 그 무관심을 표현하는 미라고. 빙켈만도 <벨베데레의 토르소>를 분석하면서 이 ‘올림포스의 미’를 들어 걱정 없는 신성의 미라고 이야기했다. 그것은 생각에 잠긴 헤라클레스의 등과 굴곡에 나타난다. 활동은 생각이 되고 생각 자체는 부동의 운동으로 변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서 중요한 것은 생각, 예술, 이미지 사이 관계들의 지위 변화일 것이다. 바로 이 변화가 표현의 재현적 체제에서 미학적 체제로 가는 이행을 표식한다.

- 이미지의 생각에 잠김은 두 표현 체제(재현적 체제와 현전 체제)를 동질화하지 않으면서 결합시키는 형상이 갖는 이 새로운 지위의 산물이다.

- 발자크의 <사라진느>>: “후작 부인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이야기의 끝이 데리고 오는 것은 ‘끝이 아님’이다. ‘생각에 잠김’이 끝을 거부하러 오는 것. 생각에 잠김은 행위의 논리를 저지하러 온다. 중단되려 하던 행위를 연장한다. 모든 결론을 중지시킨다. 중단된 것은 바로 서사와 표현의 관계이다. 이야기는 그림 위에서 정체된다. 시각성의 논리는 더는 행위를 보충하지 않는다. 그것은 행위를 중지시킨다. 혹은 오히려 행위를 배가한다.

- 다시,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에 구두점을 찍은 연애의 순간 각각은 사실 하나의 그림들, 시각적인 작은 장면으로 표식된다. 이 그림들은 연애 장면의 단순한 장식이 아니며, 연애 감정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잎 위의 곤충과 사랑의 시작 사이에는 어떤 유비도 없다. 서사를 돕는 표현성의 보충이 아닌 것. 그것은 오히려 묘사와 서사, 회화와 문학 사이의 역할 교환이다. 비인격화 과정은 여기서 회화적 수동성이 문학적 능동성에 침입한 것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 시각적 요소는 상이한 서사 연쇄를 구축하는 요소이며, 고전적 연쇄를 배가시키는 감각적 미시 사건의 연쇄이다. 사진 역시 ‘하찮은 것(평범한, 임의의, 익명적인 것)’을 인수함으로써 예술의 지위를 확보했다.

- 영화 <키아로스타미의 길>: 카메라는 사진들을 훑고 그것이 다시 영화가 된다. 카메라는 데생 종이와 비슷한 표면들을 찢고 이 그래픽 아트를 그것이 추상됐던 풍경으로 되돌리는 절단 도구가 되는 것 같다. 교환·융합·간극의 독특한 조합을 창조하는 표현의 체제. 이 조합은 이미지의 생각에 잠김 형태들을 만들어낸다. 상이한 매체들이 지닌 힘 사이의 교환 게임이기도 한 표현 체제들 사이의 어떤 긴장이다.

- 바술카의 영화 <기억의 기술>: 챙 달린 모자를 쓴 인물, 암벽 위의 신화적 피조물이 나타나는 사막의 경관 및 온갖 계열의 변신 형태. 어떤 자연적 형태와도 상응하지 않는 것 같지만 세기의 기억을 특징짓는 이미지(핵폭탄의 버섯구름, 스페인 내전 에피소드)가 투사되기도 한다. 이때 스크린은 현시의 표면이면서 동일시를 방해하는 불투명한 표면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생각에 잠김은 두 현전 사이(원색 이미지 문서고 : 회색이미지)의 간극이다. 전자 붓이 그려낸 추상적 형식은 정신적 공간을 창조한다. 바술카는 이미지의 리얼리즘과 그것의 감동력에 대한 불신으로 초래된 재현 불가능한 것에 관한 논의를 물리친다. 이미지의 생각에 잠김이란 지나치게 순수한 형식 또는 지나치게 현실을 짊어진 사건을, 그것들 바깥에 두는 두 조작 사이의 관계이다.

-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 은유의 형제애(이질적인 것들의 동족성을 강조하는 신비). 고야가 연필로 그린 자세가 영화 쇼트의 스케치와 결합되거나 사진기 렌즈로 포착한 나치 수용소에서 고문당해 죽은 신체의 형태와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 -> 이미지를 이미지의 도덕과 규범과 지배적 문법에서 해방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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