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임스 4장 '영화의 시간들' - sw님 발제문입니다.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08-08 14:43
조회
683
영화의 시간들


랑시에르에게 영화의 시간들이란 ‘시간의 허구들’을 탐구하는 과제의 일환이다. ‘시간의 허구들’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반의 지각 방식을 구조화하는 시간적 연쇄의 합리성 양식들 그리고 시간적 관계를 구조화하는 형식들로 정의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허구란 행위의 현실과 대립되는 상상적 존재의 발명이 아니다. 랑시에르에게 허구란 상황, 사물, 사건을 인식하거나 이해 가능하게 하는 틀 즉 합리성의 구조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허구는 사건들 사이에 공존 잇달음 인과성의 형식을 구축하고, 이 형식에 가능 현실 필연의 양상을 부여하는 연쇄양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합리성의 구조로 말미암아 허구는 현실감을 창출한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허구에 대한 재정의가 정치와 예술 그리고 사회과학이 맺는 관계를 사고하는 우리의 방식에 변화를 줄 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작품을 사회적 원인의 결과로 해석하는 대신, 이러한 미디어의 다양한 서술형태들을 사실의 제시, 시간의 구조화, 합리적 연쇄의 모델로 분석하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랑시에르는 영화사의 상이한 세 순간(1920년 실험적 순간, 1940년 헐리우드 순간, 동시대의 순간)에 속하는 세 필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필름들은 그것의 시간에 대해 말하려고 시간성의 영화적 형식들을 사용 한다. 이 세 영화적 순간은 시간성을 구축하는 다양한 방식(연속성과 단편화, 연쇄와 반복, 잇달음과 공존) 사이에 다수의 조합을 통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조합은 시간성의 주요 형식인 서사의 시간, 신화의 시간 그리고 퍼포먼스의 시간의 긴장을 통해 나타나고 역사적 시간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제공한다. 랑시에르는 이 세 필름들을 통해서 영화의 본질적인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각기 다른 시간들을 하나의 시간으로 포괄하는 영화의 능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도 설명한다.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시간적 동질성을 긍정하는 작품이다. 이 필름은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자막, 대본, 배우의 도움 없이 “진상을 영화적으로 소통하는 실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영화는 현실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언어가 아닌 일상생활과 노동에서 빌려온 순간, 운동, 몸짓 같은 현실 자체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소통은 연결을 뜻하며 영화에서의 소통은 운동을 뜻한다. 랑시에르는 “영화적 소통은 모든 운동이 그 안에서 함께 연결되는 전반적 운동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그것은 “운동 기계를 써서 모든 운동을 동원”한다고 설명한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운동 덕분에 공산주의의 감각적 현실을 구축하고 새로운 삶의 감각적 직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베르토프는 하나의 시간 단위 안에서 공통의 시간을 수립하며 그의 몽타주는 떨어진 이미지가 아닌 시간들을 근접시키는 방식이다. 이 필름의 시간 단위는 아침의 기상에서 사무실 상점 공장의 노동일을 거쳐 저녁의 여흥에 이르는 하루의 기간이 주어지는데 평등주의적공존의 시간을 발견한 근대 소설의 논리를 따른다. 이 시간은 개인의 삶이 무명의 삶과 연결되고 모두 의미가 있거나 없는 다수의 감각적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즉 연대기적 시간이 아닌 하루의 모든 활동을 동기화하는 공통의 시간이다. 이 형식은 모든 활동을 짧은 단편으로 자른 뒤, 빠른 집단적 리듬(가속화) 속에서 그 단편들이 서로를 침투하게 하는 몽타주로 형성된다. 랑시에르는 “요소들이 단편화될수록…내러티브 연쇄보다 훨씬 더 엄격한 합리적 연쇄의 형태로 전체에 더 접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편화는 하나의 활동 안에 모든 차이 그리고 활동들 사이의 모든 차이를 제거한다. 즉 “모든 활동을 동일한 운동 단위로 만들어 유일한 감각적 연속체 안에 병합한다.” 이로 인하여 단편화는 운동과 몸짓의 종별성을 기각하고 그것들의 고유한 목적에 의해 결정된 시간성에서 분리하며, 그것들이 속한 삶의 형태들의 위계에서 분리한다. 한 마디로 모두가 등가적으로 된다.(손톱 관리사, 교환원, 부르주아) 이 모든 활동들은 하나같이 같은 현재(하나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수작업이다. 이러한 점에서, 베르토프의 필름은 인과성에 기반한 재현적 허구의 시간성에 대해 모더니티의 퍼포먼스 시간성 (‘예술의 정치’에서 시간들의 수렴에 해당된다)을 대적시키는 것이다. 이 시간적 형식은 일련의 변신을 펼치고 겪은 뒤 자기 자신 안으로 접히는 운동을 하는 퍼포먼스 형식을 말한다.(하루 교향곡, 영화관의 중첩, 카메라의 인사..)

두 번째 시간성의 필름은 존 포드가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을 각색하여 1940년에 연출한 <분노의 포도>이다. 랑시에르는 필름이 이야기하는 스토리와 필름이 증언하는 역사적 과정 사이에서 시간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이 필름은 표면적으로 보기에 직선으로 뻗은 내러티브가 다른 시간성에 의해 균열되고 있음을 느낀다. 소설에서는 농부들의 퇴거가 일어난 방식에 대해 종합적 설명이 이루어지는 반면, 필름에서는 뮬리의 독백에 의해 설명된다. 톰과 그의 사제가 폐가에 들어갔을 때 환각에 빠진 듯한 얼굴로 뮬리가 나타난다. 퇴거에 대한 그의 표정과 독백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말하기 보단 앞으로도 이어질 현재 진행형의 일을 말하는 듯하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유령같은 캐릭터 뮬리의 퍼포먼스는 필름 전체의 동력을 결정하고 사라진다. 랑시에르는 이 퍼포먼스와 더불어 이야기와 역사 사이 관계가 둘로 분열되는 것처럼 일어난다고 말한다. 퇴거 일화는 톰의 가족과 사제를 캘리포니아로 보내는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그 땅을 떠나지 않을 개인의 악몽이나 트라우마로서 존재하게 한다. “역사는 그 개인에게 타격을 가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행위를 그 행위의 목적으로 이끌고 스토리를 그 스토리의 결론으로 이끄는 서사 조합에서 그 개인을 빼낸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속 뮬리의 행위는 미국 역사의 한순간을 나타내는 상징일 수 있고, 그의 퍼포먼스는 “역사의 상처들을 외화면 시간, 역사적 시간 바깥의 시간, 신화의 시간에 접속한다.” 랑시에르는 뮬리의 외화면 시간은 구제할 수 없는 것을 기입하는 시간이며 스토리에 양립할 수 없는 것을 새기는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필름은 무지에서 앎으로 옮아가는 내러티브 안에서 그림자들의 스토리가 덧대어진다. 밤에서 밤으로 환각에서 다른 환각으로 진행되는 정서 안에서 미래의 투사 탐도 결국 비가시적 현존이 된다. 이러한 사라짐은 계급착취에 관한 증언의 폭력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 차원을 통해 강화된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영화적 플롯은 상이한 ‘이미지성’ 체제들 사이의 긴장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바꿔 말하면, 이 체제들의 충돌은 동일한 시간적 연속체 안에서 상이한 시간성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필름은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불빛들의 환각적 계열의 반복을 그리는 것이고 두 시간성의 이접을 통해 역사적 순간과 충격을 증언하는 것이다.

세 번째 필름은 페드로 코스타의 <행진하는 청춘> 이다. 카보베르데 이주민과 리스본 변두리에 사는 사람의 삶을 다룬 연작필름 네편 중의 하나다. 이 필름들은 일 없고 계급투쟁도 없으며 아무 기대도 없는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필름 속의 노동자들에 걸맞는 시간성이 연대기의 비연대기적 시간성이라고 할 지 모른다고 말했다. 희망 없는 노동자들의 파편화 된 일상의 장면들과 긴 대화들로 이루어진 까닭에 이 필름들은 다큐멘터리로 보일지 모르나 사회적 현실의 상황을 특징 지을 수 있게 할 만한 기호들이나 다큐멘터리식의 뚜렸한 주제의식은 없다. 그리고 코스타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거주자 겸 연기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장시간 촬영을 한다. 랑시에르는 이 장면들의 양식을 초과-시간이라고 부른다. 초과-시간에 의해 캐릭터들은 신체에 소란을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데, 관객은 상황, 원인, 결과로 이어지는 정상적 접속들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필름을 체험하게 된다. 초과-시간의 인물들의 조건에 관해, 그들이 그런 조건을 겪는것에 관해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그 장면들은 시간 연속체 안에서는 정렬하기 어려워진다.

랑시에르는 <행진하는 청춘>의 말미에 위치한 장면에서 두 공간과 두 시간을 분리하는 갑작스러운 중단이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문맹 이주 노동자인 렌토는 자신의 비참함에 절망스러운 나머지 매트리스에 성냥 불을 질러 아내와 네 아이를 잃었다고 벤투라에게 고백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면의 다른 시공간에서 나온듯한 렌토는 그 화재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한다.랑시에르는 이 렌토가 뮬리와 같은 방식으로 밤에서 온 예언자라고 말했다. 이 장면에서 렌토는 불을 피해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서사적 시간에 연결할 수 없는 이 에피소드들은 아리스토텔리스의 허구와 대립하는 특정 유형의 허구이다. 이야기 속에 감추기 위한 허구가 아니라 의도 되어지고 드러나기 위한 허구이다. 실제로 화재 사건은 카보베르데 이주민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랑시에르는 “벤투라와 렌토가 배우로서가 아니라 신체들로서 즉 역사의 표식과 상흔이 새겨진 신체들로서, 그리고 이 때문에 공통의 운명을 상징할 수 있는 신체들로서 상연하는 퍼포먼스”였다고 말한다. 렌토는 우리 세계의 지옥을 증언하는 산송장이 같은 존재이다. 포드의 필름과 마찬가지로이들의 퍼포먼스의 시간은 외화면 시간에 위치되어지고 신화의 시간과 연결하게 하여 역사의 폭력을 증언한다. 더 나아가 랑시에르는 동시대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가 서사적 연속체에 부조화하는 시간성을 포함시킬 수 있었던 고전 영화의 양식을 더이상 수용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이 필름들의 핵심은 구제할 수 없는 것과 신화의 외화면 시간으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서사 전개는 사회와 역사의 법칙을 읽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 세 필름을 통해 정치 자체의 시간성으로 돌아간다면, 베르토프는 하루 교향곡의 운동 속에서 계급투쟁의 종언을 무대화한것이고 포드는 역사적 시간과 외화면 신화 시간의 접속을 통해 계급투쟁을 이야기한 것이다. 코스타의 경우는, 퍼포먼스의 시간과 신화 시간사이의 얽힘을 통해 내레이션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착취의 폭력을 거부하는 폭력의 유일한 가능태로 스스로를 긍정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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