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34-44

작성자
Nomad
작성일
2020-05-10 09:02
조회
493
2 기관없는 몸

1) 반생산. 밀쳐 냄과 편집증 기계

기관-기계들에 맞서, 기관 없는 몸은 미끄럽고 불투명하고 팽팽한 자신의 표면을 대립시킨다. 묶이고 연결되고 재절단된 흐름들에 맞서, 그 몸은 자신의 미분화된 무형의 유체를 대립시킨다. (...)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른바 본원적 억압이 뜻하는 것은, 일종의 <대체-투자>가 아니라 기관 없는 몸에 의한 욕망 기계들의 이 밀쳐 냄이다.

그리고 편집증 기계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욕망 기계들의 기관 없는 몸으로의 불법 침입작용 및 욕망 기계들을 전반적으로 박해 장치로 느끼는 기관 없는 몸의 밀쳐 내는 반작용이다. (...) 편집증 기계의 발생은, 욕망 기계들의 생산의 경과와 기관 없는 몸의 비생산적 멈춤의 대립 속에서, 그 즉시 생겨난다. (...) 하지만 그 자체로는 편집증 기계는 욕망 기계들의 아바타이다. 즉, 그것은 기관 없는 몸이 욕망 기계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에서 이 둘의 관계에서 귀결한다.

2) 욕망적 생산과 사회적 생산-반생산은 어떻게 생산력들을 전유하는가

하지만 만일 우리가 중단 없는 과정 속에서 기관 없는 몸이 나중에 행하는 힘들에 대해 뭔가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욕망적 생산과 사회적 생산의 병렬을 경유해야 한다. (...) 그런데 가만 보면, 사회적 생산의 형식들 역시도 출산되지 않은 비생산적 멈춤, 경과와 짝지어진 반생산의 요소, 사회체라고 규정된 충만한 몸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토지의 몸일 수도, 전제군주의 몸일 수도, 자본일 수도 있다.

충만한 몸은 생산력들 그 자체와 대립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생산 전체로 복귀하고, 생산력들과 생산 담당자들이 분배되는 하나의 표면을 구성하며, 그렇게 해서, 그것은 잉여 생산물을 전유하고, 경과의 전체를 착복하며, 동시에 지금은 준-원인으로서 그것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과의 부분들을 착복한다. (...) 자본은 돈의 불모성에 돈이 돈을 생산하는 형식을 부여하게 한다. 기관없는 몸이 자신을 재생산하듯, 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싹을 터서, 우주 끝까지 뻗어나간다. (...) 그리고 기계들과 담당자들은 자본에 매달려서, 그것들이 작동하는 것 자체가 자본에 의해 기적적으로 일어난 일이 되는 지점까지 간다. 모든 것은 준-원인으로서의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듯 보인다.

3) 전유 또는 끌어당김 그리고 기적 기계

기관없는 몸은 욕망적 생산으로 복귀하며, 그것을 끌어당기고, 그것을 전유한다. (...) 편집증 기계 다음에 기적 기계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둘은 공존한다. 그리고 여기서 블랙 유머가 떠맡는 일은 모순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들이 없는 듯이, 모순들이 전혀 없었던 듯이 만드는 것이다. 비생산적이고 소비될 수 없는 것인 기관 없는 몸은 욕망의 생산의 모든 경과를 등록하는 표면 노릇을 하기에, 욕망 기계들과 기관없는 몸을 관련시키는 외견상의 객관적 운동 속에서 전자가 후자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 분열자가 정치경제학을 한다는 것도, 성욕 전체가 경제의 사안이라는 것도 그야말로 진실이다.

4) 둘째 종합-분리 종합 또는 등록의 생산
……이건 ……이건

다만 생산은 자신이 생산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등록되지는 않는다. (...)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등록의 생산의 영역으로 옮겨 간 셈인데, 등록의 생산의 법칙은 생산의 생산법칙과는 같지 않다. 생산의 생산의 법칙은 연결 종합 또는 짝짓기였다. 하지만 생산적 연결들이 기계들에서 기관 없는 몸으로 이행할 때(노동에서 자본으로 이행하듯), 그것들은 <자연적인 또는 성스러운 전제>로서의 비생산적 요소와 관련해 하나의 분배를 표현하는 다른 법칙 아래 들어간다고 할 수 있으리라(자본의 분리들).

분열증적인 <……이건 ……이건>이 <그다음에>와 교대한다. 어떤 임의의 두 기관을 고려하건, 그 둘이 기관 없는 몸에 매다릴는 방식은 그 둘 사이의 모든 분리 종합이 미끄러운 표면 위에서 결국 같은 것으로 회귀하는 그런 식이어야 한다. (...)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애처로운 자본의 소유자인 분열자는 자신의 몸 위에 분리들을 지루하게 열거해 가며, 또 그는 가장 사소한 교체도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응이나 무례한 질문자에 대한 대답이라고 여겨지는 과시용 세계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등록의 분리 종합은 생산의 연결 종합들을 다시 덮기에 이른다.

기관 없는 몸은 신이 아니다. 차라리 정반대다. 하지만 기관 없는 몸이 생산 전부를 끌어당겨 기적을 낳는 마법적 표면 노릇을 하고, 생산 전체를 자신의 모든 분리 속에 기입할 때, 이 몸을 가로지르는 에너지는 성스럽다. (...)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물론 믿습니다만, 단지 분리 삼단논법의 대가로서, 이 삼단논법의 선험적 원리로서 믿을 뿐입니다.(신은 현실의 총체로 정의되며, 파생된 현실들은 모두 이것의 나눔에서 비롯된다.)

5) 분열증의 계보학

욕망적 생산은 이항-선형 체계를 형성한다. 그 계열은 자신을 오이디푸스 같은 전형적인 3항 삼각형 형태에 집어넣고 주조하려는 베끼기에 전적으로 저항한다. 기관 없는 충만한 몸은 반생산으로서 생산된다. 말하자면, 그것은 부모가 있는 생산을 함축하는 모든 삼각형화의 시도를 거부하기 위해서만 반생산으로서 개입한다. 기관없는 충만한 몸은 그것의 자기-생산, 자신에 의한 그것의 발생을 증언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부모에 의해 생산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분열자는 늘 두뚱거리지만 금방 바로 선다. 그에게는 그 어떤 분리들에서건 모든 측면에서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이다. 기관 없는 몸은 어디까지나 기관들이 없는 채로 있으며 보통 의미의 유기체로는 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동적이고 미끄러운 성격을 유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산자들이 슈레버의 몸 위에 자리 잡고 거기에 매달린다. 그가 끌어당기는, 수천의 작은 정자를 담은 태양 광선 같은 것들 말이다. 광선들, 새들, 목소리들, 신경들이 신 및 신의 나뉜 형태들과 복합적이고 교체 가능한 계보학적 관계들을 맺는다. 하지만 모든 일이 벌어지고 등록되는 것은 기관 없는 몸 위에서이다. 생산자들의 짝짓기들, 신의 나눔들, 바둑판 모양의 계보들 및 이것들의 교체마저도. 사자의 갈기 속에 이들이 있듯이, 모든 것은 창조되지 않은 이 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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