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9/1 『스크린의 추방자들』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어떤 것)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9-01 19:07
조회
717
삶과 예술 세미나 ∥ 2021년 9월 1일 수요일 ∥ 손보미
텍스트: 『스크린의 추방자들』히토 슈타이얼 지음, 김실비 옮김, WorkroomPress, 2016 pp.53~70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어떤 것)


1.
「영웅들이 다 어디로 갔지?
이제 더 이상 영웅은 없지」
Stranglers - No More Heroes
https://www.youtube.com/watch?v=Pg2np37JNEg

1977년, 짤막한 신좌파의 시대가 유혈극으로 막을 내린다.
영웅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
펑크 밴드 스트랭글러스는 영웅주의의 종결을 선언하고 영웅들(레온 트로츠키, 엘미라)의 사망을 선고한다.

2.
「난, 난 왕이 될 거야 그리고 너는, 너는 여왕이 될 거고
비록 어떤 것들도 그들을 물리칠 순 없지만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단 하루뿐 일지라도」
- David Bowie "Heroes" -
https://www.youtube.com/watch?v=PpEZwhcaf5k

1977년, 데이비드 보위는 새로운 브랜드로 탄생한 영웅을 노래한다.
보위의 영웅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다. 그는 하나의 이미지이며 상품이다.
보위라는 영웅-스타-은 복제되었을 뿐 아니라 재생산되고, 증식하고, 아무 상품 광고에나 어울릴 무난한 모습으로 출시된다. 이 영웅-상품-스타-은 시련을 극복할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복사, 재활용, 재생의 가능성에서 온다. 그것의 불멸성은 영원성이 아니라 그 자체적인 유한성-희소성?-에 있다.



3.
동일시는 매번 어떤 이미지에 대응하여 일어난다. 그런데 애초에 누가 어떤 사물-영웅의 이미지-이 되려고 할 것인가?
전통적으로 해방 운동은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이 주체성이란 문제적이다. 주체라는 위치는 일정 수준의 통제력을 함의하지만, 권력관계에 종속되고 마는 것이 그 현실이다. -주체subject, 예속sbjection-
주체가 되기 위한 –영웅의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라면, 오히려 객체와 나란히 선다면 어떨까? 대상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사물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주체 되기가 아닌 객체-object-되기. “감각하는 사물”
재현을 둘러싼 투쟁의 결과로서 하나의 이미지가 되려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재현을 둘러싼 투쟁은 층위의 명확한 분리에 기반하고 있다. 사물/이미지, 나/그것, 주체/객체.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미지 되기를 실행하며 고유한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이다. -재현의 엄격함. 예컨대 탈코르셋 운동-
이미지에 단순히 스스로를 동일시하기보다는 참여하기를 통해 이미지가 물신화되는 것을 폐기할 수 있다. 참여하기는 이미지가 집적하는 욕망 및 힘들에 개입하기를 뜻한다. 이미지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파편이다. 당신과 나처럼, 그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다. -당신과 나는 각자의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 이 세계의 파편이다. 동시에 중요한 점은 파편은 합을 이뤄 전체를 구성해야 할 부분들이 아니다.-
사물의 부정성negativity은 역사적 충격의 현장을 표시하는 멍으로 식별될 수 있다. 인권 침해 관련 재판에서 사물은 점차 증인 자격을 획득하기 시작한다. 사물의 멍은 해석되고 해독되고, 이후 해석의 대상이 된다. -상처입은 몸, 몸의 흔적- 사물은 생산적인 힘과 욕망을 집적하는 것만큼, 파괴와 부식을 축적한다.
그렇다면 특정 사물은 어떻게 하나의 ‘이미지’가 되는가. 디지털 이미지 그 자체가 빛나는, 불멸의 복제품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이미지는 역사 속에서 정치, 폭력과 충돌하여 멍이 들었다. 이미지는 침해되고, 절개되고, 심문과 조사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이미지-상품-구매되고, 판매되고, 대여된다. 조작되고 변질된다. 매도되고 숭배된다. 이미지에 관여하기란 곧 이 모든 일에 동참하기를 뜻한다.

4.
사물 되기, 이미지 되기의 요점은 무엇인가. 소외, 멍, 대상화를 감당할 근거는 무엇인가.
1) 벤야민: 사물에 깃든 해방의 힘을 강조한다. 그는 상품 페티시에 응축된 역량을 점화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잠으로부터 일깨우기를 상상한다. 또한 이로써 ‘사물’이 서로 말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벤야민의 참여 개념은 사물의 교향악에 동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사물은 힘의 조합이 굳어 저장된 화석이라 말한다. 사물은 비활성화된 물체, 수동적 품목이 아니라 항시 교환 중인 모든 긴장, 역량, 숨은 권능으로 이루어진다. 상품이란 단순한 사물이 아닌 사회적 힘의 응축이다. - 삼품은 (죽은) 노동의 축적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의 변주
2)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 보리스 아르바토프: 사물이 자본주의적 상품 지위의 노예화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은 매일의 현실을 변신시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상품 페티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기찬 사물을 상상하기.
- 알렉산드로 로드첸코: 사물을 동지이자 대등한 관계에 두기를 요청한다. 저장된 에너지를 분출시킴으로써 사물은 동료, 친구, 연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물로서의 이미지에 참여하기란 반드시 유익하지만은 않은 동인에 참여하기를 뜻한다. 역사 속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미지는 멍들고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 더미의 잔해이고 우리는 그 잔해를 바라보는 신경증에 걸린 천사-subject-가 아니라 바로 잔해-object- 그 자체이다.

5.
사물을 활성화시키기는 하나의 과업이다. 이 과업은 역사의 폐기물 속 응고되어 있던 역량들을 해동하기이다. 따라서 객체성이란 우리를 서로 연동하는 사물로 재탄생시킨다.
‘객관적인-objective-’시점에서 –잔해의 시점- 해방이란 관념은 다르게 개방된다.
브루스 라브루스의 퀴어 포르노 영화 「산딸기 제국」(2004)에서 배우들은 영웅과 동일시되기는커녕 그들의 이미지를 절개한다. 그들은 멍든 이미지의 복제품이 된다. 이 다발은 보위보다도 별로지만, 더 바람직하다.
영웅은 죽었다. 사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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