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호] 『기린은 왜 목이 길까?』는 성장소설일까? / 손보미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01 02:32
조회
1230
『기린은 왜 목이 길까?』는 성장소설일까?

유디트 샬란스키의 『기린은 왜 목이 길까?』 (갈무리, 2017)


손보미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 이 서평은 인터넷신문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36435


저자는 서문에서, 『기린은 왜 목이 길까?』는 교양소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때의 교양소설이란 18세기 말 독일에서 탄생한 문학 장르인 성장소설의 일종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성장소설일까요?

또 저자는 『기린은 왜 목이 길까?』는 '교양소설'의 구성요소들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 요소들을 '전통적 교양소설'과는 정반대로 구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전통적 교양소설'이 보여주는 '성장'과는 반대인 '퇴행'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혹시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성장'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이러한 의문을 품었을 독자에게 저자는 한 가지 임무를 제안합니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잉에 로마르크(주인공)가 성장해 나가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들 스스로 찾아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학교의 종말

교양 소설답게 이 책의 중심 배경은 '학교'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학생이 아닌 교사입니다. 이 책 『기린은...』은 '교사'인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전통적 교양소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구성으로 학교를, 세계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인 잉에 로마르크는 구동독 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에 위치한 '찰스-다윈 김나지움'에서 30년간 생물과 체육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르크에게 있어서 '학교'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부수어야할 작은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최선을 다해 지켜내야 할 세계입니다. 그 이유는, 물론 그녀가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 학교가 현재, 4년 후면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고 종말을 맞을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찰스-다윈 김나지움'과 그 인근 지역은 독일의 통일 이후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변화를 겪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를 변화시켜 이 세계에 적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르크가 보기에 이는 모두 어리석고 게으른 행동들일 뿐입니다. 당장 불어닥친 세계의 변화는 더 큰 자연의 변화와 흐름과 비교해 보자면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일시적 변화에 발맞추려 애쓰는 것은 오히려 (더 큰)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비겁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모든 종이 왕성하게 번식해나갔다. 하지만 오직 인간들만이 그러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이곳에서 더는 아무것도 얻을 께 없다는 듯이, 미래는 다른 곳, 즉 엘베 강 너머, 국경 너머, 대륙 너머 어딘가 바깥에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인간들이 결코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이곳에 드리우진 현실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걸 지켜보았다."(62)

로마르크는 도망치지도, 환상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서식지를 옮겨 다니는 것이 결코 능사가 아닙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중에 이제 믿을 만 한 건 없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55개의 다양한 나이테 폭을 가진 고목에 비유하며, 자신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교육 방법, 즉 철저하게 현장에서 입증된 방법만을 사용해 진짜 현실에 최선을 다합니다.

번성하는 식물들

세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고목이 되기로 한 로마르크의 눈에 식물들이 들어옵니다. 그녀는 특히 생명력이 질긴 야생초 식물들에 깊이 감응합니다. 서식지를 옮겨 다니지 못하는 식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어있는 땅에 잠입하여 틈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보도블럭과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둔 벽 틈새마다 싹을 틔웠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의 오염된 땅에도 뿌리를 내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옛 건축물 잔해인 점토, 시멘트, 회반죽 사이사이로 파고 들어갔다."(104)

식물의 왕성한 생명력에 주목하던 로마르크는 그 식물들이 동물들과는 달리 엽록체를 가진 자가 영양 생물이라는 사실에 경탄하고 또 그것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식물들의 침묵과 진득함을 찬양하며 급기야는 식물들이 다시 이 지구의 지배권을 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동물들에게) 이 사실을 경고하며, 곧 닥칠 인간종의 운명을 한탄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정해놓은 좁은 기준을 넘어서서 더 넓게 더 깊게 생각해야 했는데 왜 그러질 못했을까? …… 우리 인간은 짧은 시간 내에 갑작스럽게 이 지구 행성을 덮치긴 했으나 결국 다른 몇몇 신비로운 생물들처럼 다시 사라질 운명의 동물이었다."(108)

생생한 식물들의 세계와 마주한 로마르크에게 이러한 한탄스러운 질문들이 떠오른 이유는,

식물처럼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녀는 인간이며, 인간인 그녀의 앞에는 고목처럼 살아온 한 세계의 종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의 종말

로마르크는 손주를 가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녀는 먼 곳으로 떠난 하나뿐인 딸과 메일로 겨우 안부 정도만 전하는 사이가 된 지 오래입니다.

유전 과정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던 중 로마르크는 자신의 가족의 계보도를 그림으로 그려봅니다. 그녀의 딸인 클라우디아와 (사진으로만 본) 클라우디아의 남편을 연결한 선의 중앙에서, 수직으로 내려 그은 선은 그 끝이 텅 비어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진화를 막고 있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유전법칙은 3세대에서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각양각색의 잡종들이 넘쳐나게 되고 거기에서부터 오래가는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는 생존 경쟁에서 매우 중요한 유전적 다양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르크 가족의 가계도는 바로 이 3세대에서 텅 비어버린 것입니다.

'찰스-다윈 김나지움'의 폐교도 어쩌면 로마르크에게만 유독 종말로 느껴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학교는 어린 학생들이 모두 사라진 4년 후, 지역 시민 학교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서독 지역에서 파견되어온 교사인 카트너는, 교장이 된 후에는 연설 때마다 미래와, 변화와, 꿈과, 자유와 그리고 가능성을 강조하며 민주주의를 설교했습니다. 하지만, 카트너의 열띤 설교가 로마르크에게는 그저 우습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녀가 방문했던 민주주의의 선봉지역인 미국의 땅에는 죽은 경치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의 땅 사방에는 금지 표지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스운 소리만 늘어놓는 카트너에게 4년 후의 거취에 대해 추궁당하고 로마르크는 굴욕을 느낍니다. 곤궁에 처한 로마르크는 또다시 인간의 슬픈 운명을 한탄합니다.

"거대한 뇌를 달고 다니는 인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슬픈 운명에 갇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 거대한 뇌에 우리 인간이 과거에 몰랐던 것과 현재에 모르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알게 될 모든 지식을 축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 대개 동물들은 배가 고픈지 부른지, 자고 싶은지, 자고 싶지 않은지, 불안한지, 짝짓기 준비가 됐는지등 자신들의 욕구를 잘 알고 있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단순하게 행동했다. …… 로마르크의 본능은 어디에 있지?"(273)

로마르크는 성장했을까?

'찰스-다윈 김나지움'은 구동독 지역의 통일 이후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학교의 모습은 우리의 학창 시절 모습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주인공 잉에 로마르크의 모습도, 학창 시절의 기억중 적어도 한두 명의 선생님은 떠올릴 수 있기에 충분할 만큼 익숙한 캐릭터 입니다. 비록, 함께 떠오르는 그 기억들이 그다지 유쾌한 것들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로마르크는 어찌 보면 비호감 캐릭터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적합한 것'과 '부적합한 것'으로 나누는 그녀의 편협한 습관은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러한 그녀를 실제로 학교나 직장 같은 곳에서 동등하지 못한 지위로 만나는건 아마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르크의 생각에 저도 모르게 동조하기 시작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로마르크는 좀 더 현실과 관련 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권고도 받았는데, 이 얼마나 멍청한가! 어차피 생물이란 과목은 현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 (생물이란)결론적으로 생물의 온갖 의미를 다루는 관찰 학문이었다. 그런데 해부 시간에 동물을 죽이는 걸 금지해놓고는 좀 더 현실과 관련 있는 수업을 하라는 항상 똑같은 요구만 해대고 있으니!"(71)

칠판 앞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이유만으로 현실적이지 못한 수업을 한다고 시비를 걸어오는 행정관에 대해, 로마르크는 강한 저항감을 드러냅니다. 이 부분에서 여과 없이 표출되는 그녀의 감정은 묘하게 강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생물'이란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직접 관련된 것 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강한 신념에 대한 공감 말입니다.

그녀에게서 생물학은, 때로는 과도하게 세상의 유일한 기준인양 작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에서 삶에 관한 본질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믿음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는 학문을 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구동독 지역의 쇠락해 가는 한 지역의 풍경은, 로마르크에게 가까이 공감하면 할수록 '생물학'이라는 안경을 쓴 그녀의 눈을 통해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이때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물학'을 넘어섭니다.

로마르크는 성장합니다. 진보와 퇴보를 반복하고, 전진과 후퇴의 스텝을 밟으면서 성장해 갑니다. 불과 3일의 기간 동안 그토록 많은 종말과 죽음을 예감하고 경험하고, 또 그만큼 많은 의지를 발휘하고 노력하는 로마르크는 어찌 보면 오히려 성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처럼도 느껴집니다.

"우리 인간의 뼛속에 쓸모없는 이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이런 쓸모없는 특성들로 가득한, 졸작품이나 다름없는 우리는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특성을 합쳐 놓은 존재였을 뿐 아니라, 제 역할도 못 하는 임시적인 존재였다. 우리는 그러한 과거를 달고 다니고, 또 그런 과거는 우리를 예전의 우리 모습을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과거를 잘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한, 우리 인간에게 삶은 투쟁이자 버거은 짐이고, 우리는 그 짐을 짊어질 수 있는 만큼 짊어져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첫 숨을 시작하면서부터 떠안게 된 임무였으니까. 그래서 우리 인간은 늘 그 임무를 수행해왔다. 결국 우리는 병 때문이 아니라 현재를 준비 못하게 하는 과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314)

마지막 장 <진화론>에는 로마르크가 생물학의 용어를 동원해 이야기하는 삶에 대한 통찰들로 가득합니다. 로마르크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특성들을 합쳐 놓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아있는 과거의 특성은 이따금 발현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아 끌고, 퇴행과 역행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짐처럼 느껴지는 그 각각의 삶의 무게가 바로 적합한 리듬을 만들어 내면서 그 리듬을 자각하게 해주는, 우리의 보편적이고도 독특한 조건들이기도 합니다.

『기린은 왜 목이 길까?』는 환해지는 빛 안에서, 구름과 대지의 향기와 타조들의 춤으로 마지막 장면을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교양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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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피닉스문예 시리즈

『젊은 날의 시인에게』(김명환 지음, 갈무리, 2016)

김명환은 어린 시절부터 ‘시인’을 꿈꿨다. 하지만 정작 시인이 되자 ‘시인’이기보다 ‘문예선전활동가’로 살아 왔다. 철도노동자, 삐라작가, 활동가, 시인이다.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 시절, 철도노조민주화투쟁 시절, 철도민영화반대투쟁 시절의 이야기들이 제1부 ‘기차의 추억’과 제2부 ‘삐라의 추억’에 실려 있다. 제3부에는 짧은 소설과 동화가 묶여 있다. 제4부에는 선언, 칼럼, 에세이, 논설, 호소문 등이 묶여 있다. 제5부는 철도노조민주화투쟁 이야기를 무협지로 그렸다.

『산촌』(예쥔젠 지음, 장정렬 옮김, 갈무리, 2015)

1920년대 중국 중부 후베이성 작은 산골 마을의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상과, 혁명으로 인한 그들 삶의 극적 변화를 담은 역사 소설이다. 번역가이자 에스페란티스토, 잡지 편집자, 항일 투사였던 중국 작가 예쥔젠이 서방 세계에 중국 혁명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1947년에 영어로 쓴 책이다. <산촌>은 중국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었다. 출간 후 20개국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시로 읽는 니체』(오철수 지음, 2012)

제3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오철수 시인이 이시영, 기형도, 강수니, 조문경, 서은, 최영미, 월트 휘트먼 등 현대 시인들의 시 83편과 니체 철학의 접목을 시도했다. 저자가 시와 니체 철학의 만남 속에서 던지는 질문은,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 속에서 우리들의 삶이 좌절과 허무를 넘어 어떻게 자기긍정의 예술을 향해 갈 수 있는가이다.

『봄 속의 가을』(바진, 율리오 바기 지음, 장정렬 옮김, 갈무리, 2007)

장편소설 <가(家)>와 수상록 <매의 노래>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중국 작가 바진(巴金)의 소설 '봄 속의 가을'과, 바진에게 영감을 준 헝가리 작가 율리오 바기(Julio Baghy)가 세계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로 쓴 소설 '가을 속의 봄'을 묶었다. 이 두 편의 소설은 아프도록 아름다운 청춘의 자화상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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