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호] 생명의 섭정, 혼합정체의 전위 / 윤인로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01 19:29
조회
1286
생명의 섭정, 혼합정체의 전위

조정환의 『절대민주주의』 (갈무리, 2017)


윤인로(『신정-정치』 저자)


* 이 서평은 『정치비평』 10권 1호(2017년 6월, 복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dSLC2Y


1-1. 조정환의 『절대민주주의』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설정은 다음과 같은 질문의 의지적 구성력으로 되어 있다: “생명의 존재론으로부터 정치적 실천의 비전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한 문장 속에 들어있는 생명 또는 생명력의 벡터는 생명을 산업적 축적기계로 합성하는 기관들을 생명발양의 기관들이 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생명체들의 특이한 개체화가 (자본의 계획이나 자연의 계획의 실현으로서가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공감적 소통과 상호함축과 침투라는 내적 과정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재전유’하고 ‘전용’하며 ‘발명’하는 일로 구성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위의 질문은 저자의 경험 분석, 곧 이 책 4부의 주요 내용들―2009년 파업적 힘들과 제헌권력론, 2011년 후쿠시마의 죽음의 정치와 삶정치의 방향설정론, 2014년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의 ‘생명정부’로서의 실질적·실재적 정치론, 2016년 박근혜 게이트에서의 즉각퇴진 요구와 탄핵 요구의 제헌론 및 대의제 전용론으로 되어 있는 이 책 4부 「절대민주주의의 성좌: 민주주의들의 민주화」―속에서 “‘모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절대민주주의적 역량’이라는 문제설정”으로서 다뤄지는바, 그것은 “대의민주주주의적이거나 직접민주주의적인 제도활동들을 절대민주주의적 구성력과 제헌권력의 창조적 진화의 계기들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기초”(89쪽)해 있다.

저자에게 생명과 정치, 생명정치의 문제는 푸코 또는 아감벤의 통치론적 시점이 아니라 베르그송의 직관적 활력 또는 네그리의 삶·생명론의 관점, 들뢰즈의 ‘내재성=삶’의 벡터궤적을 따라 비평되고 있다. 그 비평은 저자의 실재주의적 ‘방법’, 다시 말해 표면에 드러난 현행태(the actual) 속에서 그 현행성을 한정·제약·비판해 그 현행태를 그것 너머로 이행·변이시키는 잠재태(the virtual)를 포착하는 일, 현행성과 잠재성의 긴장과 전장으로서의 실재태(the real)를 정치적인 것이 발현하는 근저로 파악하는 일로서 수행된다. 그 방법은 세계화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 속에서 강하게 ‘역전적’이다. “세계화를 이중적 과정으로 본다는 것은 현대의 세계화를 표면의 현실태와 심층의 잠재력 사이의 갈등과 충돌의 현장이자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세계화는 표면에서는 자본의 세계화이지만 잠재적으로는 노동과 삶의 세계화이며, 표면에서는 양극화와 위기의 세계화이지만 잠재적으로는 소득보장과 안전의 세계화이며 표면에서는 배제와 차단의 세계화이지만 잠재적으로는 접근과 공유의 세계화이며 표면에서는 주권의 세계화이지만 잠재적으로는 협력의 세계화이고 표면에서는 세계문화 구축과정이지만 잠재적으로는 소수적 인류인주의 문화의 구성과정이다.”(165쪽) 세계화의 전개에 동시적으로 들러붙어있는 대안세계화, 저자에게 그것은 이른바 ‘삶은 자본에 앞선다’는 의지적 논리 속에서 산개하고 있는바, 그렇다는 것은 세계화 내부에서 그것과 싸우며 그것 너머를 개시하는 이행의 실재적 힘을, 그런 내재적 이행력/초월력에 결속된 생산형식·정치형식·문화형식의 발굴력을 삶·생명의 중심에 놓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문맥에서 2011년 아랍혁명은 여기 남한의 활력적 정세의 전사(前史)로 재생·재활성화하는 힘으로 귀환한다. 그런 세계화의 이중성, 이율의 배반 속에서 통치의 성스런 정당성 근거의 부재상태, 그런 근거의 제로지대, 곧 ‘궐위(闕位)’의 상황 또한 세계화한다(이런 과정 속에 여기 2016년 탄핵의 정세가 들어있는바, 그것은 예외가 아니라 보편이며, 예외이되 보편을 열정적으로 사고하는 예외이다). “지금은 근대적 권력 배치가 조절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 현상들, 힘들이 출현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근대적 권력 배치에 대한 불만들, 도전들, 거부들이 출현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 시대야말로, 갈등하는 힘들 사이에서, 도래할 것을 둘러싼 내기가 전개되는 시기로서의 이른바 ‘정치적 공위기(interregnum)’가 아닌가?”(254쪽) 궐위, 그것은 도래중인 것을 위한, 삶·생명·정치의 존재론적 내기의 전장/로두스이다.

1-2. 축적의 법의 서술자/입법자의 관점이 아니라 ‘절대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아랍혁명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었다. “2011년의 아랍혁명에서 우리는 다중적 계급구성, 다중적 정치구성, 메시아적 참여, 종교를 넘는 결집, 운동의 진화, 정보적 자기조직화, 누구나가 지도자인 운동, 소산하는 운동질서, 존엄과 순교의 윤리학, 탈정치적 정치, 코뮌의 구축 등 절대민주주의적 주체화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185쪽) ‘누구나가 지도자인 운동’, 곧 ‘지도력의 빅뱅’이라는 게발트발현의 상황-창출. 그것은 힘의 위계적 회집에 근거한 집권체 일반이 기소되거나 전위되는 상황, ‘절대민주주의적 섭정(攝政)’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비소외적 통치력/자치력이 저항의 경향적 주성분으로 되고 있는 시공간을 가리킨다. 예컨대 튀니지 노동총동맹이 “[누구나가 지도자인] 운동의 강렬도를 표시하는 눈금자로서 운동의 힘을 반영하면서 움직일 뿐”(189쪽)이었다는 것, “담당 주체를 바꾸면서 권력을 실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운동들과 투쟁들의 확산하는 연결망을 통해 새로운 권력의 윤곽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그림자로서 나타나게 하고, 실체로서의 권력 기구들을 그것에 종속시키는 것, 즉 절대민주주의적 섭정이 그것이다.”(193쪽) 그렇게 회집하는 권력은 자치적 운동과 투쟁의 절대민주주주의적 섭정의 강렬도를 반영하는 ‘눈금자’로, ‘그림자’로 인도되거나 형질전환된다. 그런 섭정의 자치·통치상태, 섭정이라는 대항인도적 게발트의 지속상태 속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이후의 삶·생명·정치가 있다. “늘 말로 진실과 책임을 자처해 온 정부로 하여금 실제로 진실을 규명하도록 책임을 지우고 정부의 뒤에서 정부로 하여금 진실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채찍질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의 리더십이 보여 주는 매우 독특한 측면의 하나이다.”(332쪽) 눈금자, 그림자, 또는 ‘채찍질’되는 눈금자, 그림자. 세월호의 진실을 숨기기 위해 입과 귀와 힘을 회집하려는 권력이 세월호 가대위에 의해, 그 리더십의 정당성 근거세움의 힘에 의해 그렇게 채찍질되는 눈금자이자 그림자로 전위되고 있다. 생명의 발현력에서 정치적 실천의 비전을 도출할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물음, 그 의지 구성은 그러한 세월호의 정치정세 속에서, 가대위의 섭정적 지고의 리더십 속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답해진다. “그런데 각자의 위치, 본연의 책임, 책임에 따르는 역할이 어떻게 주권 대의자의 임의가 아니라 생명체들의 필요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배분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의 이윤체제(즉 자본주의)에서 각자의 위치가 개체들의 뜻과 생명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심지어 강제적으로 배분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위치에 따르는 역할 역시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규정되며, 책임을 지는 방식도 생명의 논리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이윤체제의 필요를 반영하는 법에 입각해 사법적으로 규정된다. 이런 의미에서는, 주권 대의제의 그 임의성(통치독재)이, 오히려 그보다 더 심층적인 자리에 놓여 있는 자본주의적 이윤체제의 필연성(자본독재)에 따라 규정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할 것이다.”(375쪽) 생명적 필요는 통치독재에 대한 자본독재의 경향적 우세 속에서 ‘사법적으로’ 심판되고 구금된다. 생명적 필요로 인도되는 ‘생명정부’로서의 가대위 리더십의 정당성 근거세움은 생명적 필요를 경제적 필요라는 법연관의 바깥으로(서) 정초시킨다. 법을 갖지 않는 생명, 생명적 필요를 따르는 섭정체-정부의 정당성은 신성의 정치력에, 곧 “생명은 어떤 신성한 것[국가나 제사]을 위한 수단으로 바쳐진 것이 아니라 신성한 것 그 자체”(378쪽)라는 정세판단 위에 정초되며 다음과 같은 ‘탈자적’ 정치실천으로 발현한다. “각 생명 개체들이 생명 외적인 필요에 따라 외부로부터 강제적으로 주어진 현재의 위치와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명 본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할 때, 이 탈자(脫自, ecstasy)의 노력들을 일탈이나 불법으로 간주하여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특이화의 힘들을 연결하고 제도화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376쪽) 탈자, 곧 바깥의 존재(外-存)가 그 즉시 불법화되는 것, 즉각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될 때, 생명정부적 섭정의 게발트는 그런 위법성의 구성요건들을 기각하는 면죄적 조각(阻却)의 힘으로 스스로를 보존한다. 그것은 유혈적 법치주의를 기소하는 법치주의 바깥의 힘에서 스스로의 정당성의 근거를 구한다.

2-1. 세월호의 정세, 또는 생명 폐기의 ‘진실’을 향한 가대위의 정치실천은 그렇게 즉각적인 위법으로, 사복경찰의 미행 대상으로, 잠재적 범행자로, 체제의 불순분자로 되는바, 그 이유는 가대위의 리더십이 “국가 진실체제와 대립하는 독자적 진실체제를 요구한다는 것”(387쪽)에 있다. 국가가 국가일 수 있는 조건으로서의 통치기밀, 드러냄과 감춤의 변증적 조절을 통해 축적의 안전을 보장하는 힘, 통치기밀의 정체(正體/政體). 그것에 의해 관리되고 합성되는 진실에 대립하는 가대위의 진실관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것은 통치기밀에 의한 합법적 폭력실천으로서의 ‘법치주의’와 충돌한다. “진실은 결코 단순한 정오의 문제, 과학적 진위의 문제가 아니며 사람들의 참여와 공동행동의 변수라는 것, 진실은 실천의 함수라는 것, 이것이 <가대위>가 제시하는 진실관이다.”(335쪽) 통치기밀의 유혈적 힘을 보증하는 이른바 전문가들, 곧 접근이 쉽지 않은 과학적/전문적 지식의 소유자들과 그들의 권위, 예컨대 축적과 생산의 인지화에 대해 투쟁과 저항이 동시적으로 인지화하는 정세 속에서 천안함, 4대강, 세월호 등을 둘러싼 정치의 문제는 과학적 진위 판단 자체가 통치실천에 결부된 것임을, 그것이 진실의 존재론을 통치의 수단으로 전치시키고 있는 것임을 확인하게 한다. 가대위의 생명정부적 정치는 진실을 통치기밀적 독재로 합성되지 않는 누구나의 실천의 함수로 인지한다. 그것이 즉각적으로 법치주의에 의한 위법으로 판결되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그런 까닭으로, “여기서 우리는 법적 상식과 충돌하는 세월호 <가대위>의 사유 속에서 법치주의를 넘는 새로운 윤리정치학적 헌법원리가 제안되고 있음을 발견한다.”(341쪽) 진실을 통치의 기제로 삼는 회집정부의 법치주의에서 “법은 삶을 초월해 있고 삶을 파괴하는 통치를 정당화한다. 이런 의미의 법치주의의 본연의 역할은 다중의 삶에 대한 군주와 귀족들의 지배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법치는 안보의 수단이다.”(456쪽)

축적이라는 목적의 안보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법치. 저자의 질문과 응답은 다음과 같이 진전한다: “이렇게 법치주의가 국민-다중에 대한 통치와 지배의 논리라면 법치주의 그 자체를 폐지해야 하는가? 신이나 폭력 혹은 사람의 직접적 지배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다. 대안으로 사고될 수 있는 법치주의가 있다. 그것은 삶 내재적 법, 다중의 제헌권력, 민주적 절대헌법의 지배로서의 법치주의이다. 다중이 삶의 필요에 따라 요구하고 노동과 활동으로 창조하고 구성하는 삶의 내재적 논리가 절대헌법의 논리이고 삶 내재적 법치주의의 원리이다.”(456쪽) 생명의 필요로 인도되는, 생명적 필요로서 입법되는 제헌권력, 민주적 절대헌법의 지배·행정력. 삶·생명·정치에 의한 입법과 행정의 이위일체. 곧 ‘활력 있게 일하는 입법부이자 행정부’로서의 코뮨의 비소외적인 절대적 자치-독재. 이는 대통령제 또는 현대의 군주제와 귀족제(의회) 간의 변증법적 부침으로서의 여기의 혼합정체를 섭정하는 힘이며, 그런 혼합정체의 합법성을 보장하는 사법력으로서의 법치주의에 대한 내재적 비판력이다. 그것은 ‘실정법적 근거’를 일소시키는 힘, 그런 근거를 전위시키는 힘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직면하여 ‘수사’를 외치기보다 ‘즉각퇴진’을 외쳤던 촛불다중의 행동에 실정법적 근거가 있느냐는 물음이 있었다. 이것은 법을 삶과 분리된 형식체계로 보는 초월적 법치주의의 시각이었고 법을 도구로 삶을 억압하려는 권력의 질문방식이었다. 왜냐하면 즉각퇴진 요구는 권력의 불의에 대한 생명의 체감과 삶의 내재적 정동에 기초한 직접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정법 이전의 절대헌법의 작용이었기 때문이다. 촛불다중의 즉각퇴진 요구는 실정법을 근거 짓는 제헌권력이자 절대헌법적 행동이고 내재적 법치주의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456~457쪽)

적대의 구도는 이렇게 된다.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생명의 정치력에 실정법적 근거가 있냐고 묻는 ‘초월적 법치주의’ 대(對) 실정법 그 자체를 근거 짓는 ‘내재적 법치주의’, 절대헌법적 행동. 적대가 그러할 때, 내게 문제는 법치주의를 둘러싼 비판력의 정당성 근거이며 그런 근거세움의 힘들 간의 상호 충돌·합성·이반·조달·오염·전이·모방·전유·내파와 같은 정세분석의 형질과 그 벡터이다. 광장에 모인 국민-다중의 즉각퇴진 요구가 법치를 정지시키는 절대민주주의적인·절대헌법적인·내재적인 다른 법치주의의 행동일 때, 그것이 그러한 절대적 내재성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속시킬 때, 그 힘은 슈미트적 ‘갈채’에 의한 인격적 총통-독재의 초월성과 스스로를 준별시킬 수 있다. 그러하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의 지속을 위한, 또는 봉기와 제도의 두 날개로 날기 위한 문제설정·과제상황으로서 ‘절대민주주의-갈채-독재’의 (탈)연루라는 시좌·성좌가 갖는 효과에 대해, 그리고 그 효과 속에서 그런 (탈)연루에 저항하는 저 내재성의 힘을 ‘내재성이라는 정당성-근거’로 다시 정의하고 다르게 강화해야할 필요를 비평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들뢰즈적 ‘내재성=삶·생명’, 또는 흄―‘기적’과 ‘자연종교’에 대해 쓴 흄―독자로서의 청년 들뢰즈의 신·법·정치론이 그런 비평의 입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이 책 『절대민주주의』에 이어 저자가 준비 중인 다음 책은 ‘들뢰즈’에 관한 것이다).

2-2. 즉각퇴진 요구에 실정법적 근거의 유무라는 폭력을 가하는 여기의 법치주의, 그리고 그 폭력에 의해 합법화되는 오늘의 혼합정체는 이 책의 마지막 장 「2016: 절대군주제의 ‘즉각퇴진’과 절대민주주의」에서 포착되고 있는 ‘대의제의 새로운 사용법’ 또는 ‘대의 귀족제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사용법’에 의해 정체성을 잃고 전위된다. 의회의 대의가 개헌을 말하며 ‘거국중립내각론’이나 ‘질서 있는 퇴진론’의 이름으로 체제 수습과 정비의 호헌적 궤적을 관철시키려할 때, “춧불다중들은 그러한 방책들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대통령에 대해서는 ‘즉각퇴진’을, 의회에 대해서는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인 탄핵소추발의를 요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민주적 다중이 군주제 헤게모니를 타파하기 위해 대의 귀족제의 내각 개편 노선을 비판하면서 귀족제를 압박하여 의회귀족의 야당파가 다중의 행동과 요구에 연합하도록 만드는 길을 선택”했음을 뜻하는바, 절대민주주의적 섭정의 그 길은 ‘대의민주주의를 민주화’시키는 힘으로 개시된다. “그것은 기존의 대의민주주의를 그대로 지속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의 새로운 사용법을 발견하자는 것이었다. 절대군주제 헤게모니하에서 대의제의 ‘위로부터의 사용’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주권자이자 권력 원천인 국민을 노예로 바꾸는 수단이다. 하지만 절대군주제 헤게모니를 깨뜨리기 위해 다중이 대의 귀족제를 ‘아래로부터 사용’할 때,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럴 때 대의는 권력의 원천인 주권자 다중이 아래로부터 자신의 주권을 권력장(場) 속에 실효화하는 장치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의민주주의의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을 관철시킨다.”(399쪽) 대의제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 아래로부터의 사용-법에 의해 관철되었던 것, 그것이 탄핵의 뜻이자 힘이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을 국민 자신이 직접 소환하고 해임할 길이 현행의 헌법질서 내에서는 막혀 있지만 국회라는 대의적 경로를 통해서는 열려 있는 현실에서, 국민-다중들은 실력으로 기존의 헌법질서를 해체하는 저항권의 길을 선택하기보다 헌법질서 내에서 대의적 헌법기관인 국회를 통해 역시 대의적 헌법기관인 대통령에 대한 소환과 해임을 달성하는 대의제의 경로를 선택했다. 이것이 탄핵이다.”(398쪽) 대의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힘, 그 힘이 여기의 직접민주주의 또한 민주화한다. 다시 말해 절대민주주의적인 그 힘이 여기의 직접민주주의적 제도개설의 힘―국민발안, 국민표결, 소환권, 해임권, 소득보장권 등―의 방향·속도·세기를 거듭 설정·재고하며 관철·진전시킨다. 모든 민주주의들의 민주화라는 절대민주주의의 태제는 그 곁에서 비정립적인 제도권한을 위한 정당성 근거의 구성요건에 대해 사고하도록 촉발한다. 향후 비평하게 될 그런 촉발의 내역을 간략히 스케치한다면, 절대민주주의적 게발트벡터 위에서 국민발안/표결권은 여기의 귀족제에 의한 입법권 독점의 재생산 상태를 끝내며, 소환권/해임권은 법과 법이 상호 우위의 권리근거를 갖고 충돌할 때 그 충돌과 대립의 법 연관을 절단하는 결정적 게발트로서 사법적 수다를 끝내며, 공개권은 개시/계시의 형태로서 통치기밀을 원리로 하여 행사되는 행정권의 비밀/은폐상태를 끝내고, 소득보장권은 정치경제적 절대지대화에 대한 원-취득이자 원-분할의 게발트로서 여기 혼합정체적 3권의 일체적 공모체를 축적을 위한 매끄러운 평면으로 인도하는 자본독재의 사목적 운용을 끝낸다. 이런 비정립적 제도권한의 정당성 정초작업을 이끄는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삶정치는 국가정치에서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정치적 과정이며 국가정치가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이자 국가정치의 원천이자 근거로서 기능하는 원(原)-정치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통장의 공통되기로서의 삶정치는 (맑스-데리다의 용어로) ‘유령’적이지만 주권의 궁극적 장소이기도 하다. 주권성(sovereignty)의 궁극성은 자율성(autonomy)이다. 자율성이야말로 주권성으로 현상하는 것의 근거이다.”(411쪽)

원-정치, 정치의 원상(原象)이자 힘의 원형질로서의 자율성/주권성. 내게 그것은 2016년 광장의 촛불이 요구한 두 개의 게발트, 곧 ‘즉각퇴진’과 ‘탄핵’의 동시성, 그 둘의 관계적 배치와 그것의 효과·효력에 대한 비평을 하나의 과제로서, 가설로서 남기게 하는 것이었다. 즉각퇴진 요구가 구체적·제도적 통치의 힘을 갖지 않는 것이되 ‘군림’하는 힘이라면, 탄핵의 요구는 의회민주주의를 민주화함으로써 의회라는 제도적 경로를 관장하는 섭정의 ‘통할권’이되 군림하는 힘은 아니다. 2016년 여기 궐위의 정세가 ‘군림-즉각퇴진’과 ‘통치-탄핵’이라는 두 게발트의 상보적 일체화 과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할 때, 그 가설은 “권력의 원천과 권력의 귀속 및 행사 사이의 심연”(396쪽)과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이며 왜 메워야하는가라는 질문의 제헌적 성분과 결속되지 않을까 한다. 그 심연의 메움, 다시 말해 권력원천(즉각퇴진 요구의 절대성, 군림의 권위)과 권력행사(탄핵 요구에 의한 의회의 다른 사용, 행정의 머슴화) 간의 일체화 과정/소송이 비정립적이고 절대제헌적인 게발트의 정당성 정초력으로서 다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정초력을 위해 다시 읽게 될 이 책의 마지막 문장과 제사(題詞)를 이어 인용해 놓기로 한다: “절대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민주화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민주화하며, 집회민주주의와 일상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절대적 구성역량과 헌법의지에 의한 모든 민주주의의 민주화, 이것이 촛불다중혁명이 가리키는 이정표다”(458쪽); “어떤 정치체제는 그 구성원들 모두의 권리를 내적으로 구체화하여 이의(異議)의 토대를 최소화한 정도만큼 절대적이다. 귀족제는 대체로 군주제보다 더 절대적이지만, 민주주의는 완전히 절대적인 지배, 즉 모든 사람의 자치적 공통체이다.”(5쪽) 현재의 정세를 과제상황과 문제설정의 결정 속에서 독해하고 개입하려는 이에게 이 책 『절대민주주의』는 과제와 상황 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도록, 문제설정의 벡터를 이행시키거나 재강화하도록 촉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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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후 30년 역사를 신자유주의 30년 역사이자 그에 대한 대항운동 30년의 역사로 읽고자 한다. 또한 오늘날 80년 광주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미래사회를 상상하고 구축하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고 있는 전지구적 다중의 세계사적 과제라고 힘주어 말한다. 광주의 민중들은 군부독재와 싸운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세계사적 투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1987년, 해방도시의 잠재력이 전국화되어 더 이상 지역적 봉쇄가 불가능하게 되자 자본은 전국적 해방운동들을 신자유주의적 혁신도시 건설, 다시 말해 메트로폴리스의 지역클러스터 구축의 동력으로 전용하였다.

『신정-정치』(윤인로 지음, 갈무리, 2017)

“자본정치는 신정이다”라는 일관된 관점에 따라 박정희, 박근혜, 세월호, 촛불, 김진숙, 노동해방문학, 월스트리트점거, 사마라구의 소설, 바틀비, 조정환, 보르헤스 등 다양한 현상과 인물, 텍스트에 대한 분석 속에서 이 관점을 변주하며 표현한다. 화폐의 힘을 ‘현실적인 신’이라고 표현한 맑스, 자본주의를 기독교의 형질을 띤 것으로 포착한 벤야민, 현대 국가의 주요 개념들이 환속화된 신학의 개념이라고 했던 슈미트, 국법의 진정한 실험실이 교회법이었다고 한 아감벤. 이 책은 그런 성찰들을 따르면서, 신, 신성, 신적인 힘이 경제적 이윤과 정치적 권력 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중심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여러 각도에서 비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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