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9_발제] 제5고원(220-227)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8-12-08 09:14
조회
471
제 5고원. 기원전 587년 및 서기 70년 – 몇 가지 기호 체제에 대하여


p. 217

기호 체제라 불리는 것은 특수한 표현의 전(全) 형식화를 가리킨다.

사실 언제나 내용의 형식이 있다. 이 내용의 형식은 언제나 표현의 형식과 분리될 수 없으면서도 그것과 독립될 수 있다. 또한 이 두 형식은 일차적으로 비언어적인 배치물들과 결부되어 있다. (...) 따라서 우리는 “기표”의 형식이나 체제에 그 어떤 특별한 특권도 부여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기표작용적 기호계를 기호론이라고 부른다면, 기호론은 여러 기호 체제 중의 하나일 뿐이지 가장 중요한 체제는 아니다. 여기서 화행론으로 돌아가야 할 필연성이 나온다. (...) 특히 기표작용적 체제를 연구해보면 언어학적 전제의 불충분함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불충분함은 바로 기호 체제를 고려할 때 드러난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기호가 지칭하는 사태, 또는 기호가 의미하는 실재가 기호와 맺는 관계를 알지 모하며 단지 기호와 기호의 형식적 관계만을, 그것도 그 형식적 관계가 이른바 기표작용적 사슬을 규정하는 한에서만 알 수 있다.

지표 → 지시 가능한 것을 구성하는 영토적 사태
도상 → 기표화 가능한 것을 구성하는 재영토화의 조작

기호는 이미 높은 정도의 상대적 탈영토화에 도달했다. 그래서 기호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 기표는 기호와 잉여 관계를 맺는 기호이다. 어떤 기호이건 다른 기호의 기호가 된다. (...) 중요한 것은 무정형의 대기(大氣) 연속체에 자신의 그림자를 투영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그물망을 형성하기 위해서 기호가 어떤 다른 기호들을 참조하는지, 어떤 다른 기호들이 그 기호에 덧붙여지는지를 아는 일이다. 바로 이 무정형의 연속체가 일단은 “기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무정형의 연속체는 기표 아래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기표의 매체 또는 벽 노릇을 할 뿐이다. 모든 내용은 자신의 고유한 형식을 기의 속에 용해시키게 된다. 내용의 대기(大氣)화 또는 세속화. 그리하여 사람들은 내용을 추상화한다. (레비-스트로스) 세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세계는 기표작용하기 시작했고, 기의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주어졌다.

편집증 환자는 탈영토화된 기호의 이런 무력함을 나눠가지며, 탈영토화된 기호는 미끄러지는 대기 속 사방에서 그를 공습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대기 안으로 퍼져나가는 그물망의 주인처럼, 성난 왕 같은 기분으로 기표의 초권력에 더욱더 다가간다. 이는 편집증적 독재 체제이다. 그들은 나를 공격하고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들을 앞서간다. 나는 항상 알고 있다. 나는 무력할 때조차 권력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갖게 될 거야.”

이 체제는 무한한 빚의 비극적 체제이며, 모든 사람은 채무자이자 채권자이다. (...) “순환해서 회귀해도 좋으니까...” 기호들은 단지 무한한 그물망만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호들의 그물망은 무한히 순환적이다. 언표는 언표의 대상보다 오래 살아남고, 이름은 이름의 소유자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 기호는 사슬 안에서 자기 자리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상태, 새로운 기의를 투여해 거기에서 추출되어 나오기 위해, 짐승이나 죽은 사람처럼 튀어 오른다. 영원회귀의 인상을 풍긴다.

거닐기를 좋아하는 떠다니는 언표들, 멈춰 서있는 이름들, 결국 회귀하겠지만 일단은 사실을 따라 앞으로 돌출되기를 기다리는 기호들의 체제가 있다. 탈영토화된 기호의 자기 잉여로서의 기표여, 장례식장 같은 공포 가득한 세계여.

p. 220-222, 원과 사슬들의 다양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호들의 순환성보다는 원들이나 사슬들의 다양체이다. 기호는 같은 원 위의 다른 기호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원, 다른 나선 위의 기호도 지시한다.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을 때 크로우 인디언 남자는 아내의 얼굴을 베어버린다. 반면 같은 불운의 희생물이 된 호피 족 남자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가뭄과 기근이 마을을 덮칠 것을 기원한다.” -Robert Lowie

우리는 여기서 편집증, 전제군주적 요소 또는 기표작용적 체제,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편협한 신앙”등이 어떤 지점에 존재하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사실상 호피 족이 보기에 모든 것은 연계되어 있다. 사회적 무질서와 가정의 불사아는 우주 체계를 문제로 삼는다. 우주 체계의 여러 층위는 다양한 대응 관계에 의해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판 위에서 대혼란이 벌어졌다면 그것은 다른 층위들을 변용시키는 다른 혼란들이 그 판에 투사된 것으로밖에는 이해할 수 없고, 또 그래야만 도덕적으로 참아낼 수 있다.” 호피 족 사람은 한 원에서 다른 원으로, 또는 한 나선 위에 있는 기호에서 다른 나선 위에 있는 기호로 도약한다.

도약은 제멋대로 규칙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도약은 규제된다. 또 도약에는 금지가 있다. 가장 바깥에 있는 원을 넘어가지 말라. 가장 중앙에 있는 원에 접근하지 말라. 원들 사이의 차이는 다음의 사실에서 온다.

원들 사이의 차이는 다음의 사실에서 온다. 비록 모든 기호들이 탈영토화되고, 동일한 의미생성의 중심을 향하고, 무정형적인 연속체 안으로 분배되는 한에서만 서로를 지시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기호들은 기원의 자리(신전, 궁전, 집, 길, 마을, 관목숲)를 증언하는 상이한 탈영토화 속도들도 가지며 원들의 차이를 유지시키고 연속체의 대기(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가족적 사건과 사회적 무질서) 속에서 문턱들을 구성하는 미분적 관계들도 가진다. 게다가 이 문턱들과 이 원들의 배분은 경우에 따라 변한다. 체계 안에는 근본적인 기만이 있다. 한 원에서 다른 원으로 도약하고, 항상 장면을 바꿔보리고, 다른 곳에서 그 장면을 상연하기. 이것은 주체라는 사기꾼의 히스테리적 조작이며, 주체는 의미생성의 중심에 있는 전제군주의 편집증적 조작에 응답한다.
inq. Gestalt, 미완의 게슈탈트

p. 222-223
게다가 또 다른 양상이 있다. 기표작용적 체제는 모든 부분으로부터 방출되는 기호들을 원 안에 조직화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체제는 원들 또는 나선이 끊임없이 확장하도록 해주어야 하며, 체계에 고유한 엔트로피를 이겨낼 수 있도록, 그리고 새로운 원들이 생겨나거나 옛 원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중심에 기표를 다시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의미생성에 기여하기 위한 이차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것이 해석망상 또는 해석이다. 이제 기의는 새로운 모습을 하게 된다. 기의는 기호들의 그물망이 자신의 실을 던져오는, 인식되지 않고 주어지는 무정형의 연속체이기를 그친다. 우리는 하나의 기호나 기호군에 기의의 일부를 대응시킨다. 그 기의가 적합하며 따라서 인식 가능하다고 결정하고서 말이다.

이리하여 통합축에 계열축이 덧붙여진다. 통합축에서는 기호들이 서로를 참조하고, 계열축에서는 이렇게 형식화된 기호가 적합한 기의를 재단해낸다. (여기서도 여전히 내용의 추상이 일언지만, 그 방식은 새롭다.) 해석하는 사제, 점쟁이는 전제군주-신의 관료이다. 기만의 새로운 양상인 사제의 기만이 등장한다. 해석은 무한히 진행되며, 그 자체로 이미 해석이 아닌 그 어떤 해석 대상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기의는 끊임없이 기표를 다시 부여하거나 다시 장전하거나 생산한다. 형식은 항상 기표로부터 온다. 따라서 궁극적 기의는 잉여나 “초과” 상태에 있는 기표 자신이다. 기표의 생산에 의해 해석과 심지어 소통을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해봐야 쓸데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기표를 재생산(=복제)하고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바로 해석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사제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했다. (다른 모든 사제들과 점쟁이들이 자기 시대에 했던 일이긴 하지만.) 즉 해석은 의미생성에 예속되어야만 했다는 것 말이다. 기표가 어떤 기의를 제시하면, 되받아 기의가 기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종국에는 더 이상 해석할 것조차 없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해석, 가장 무거운 해석, 가장 급진적인 해석은 탁월하게 의미 있는 침묵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많이, 더 잘할 것 같지 않으면 해석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체에게 해석할 뭔가를 주어 지옥의 한 원에서 다른 원으로 건너뛰게 하는 것이다. 실로 의미생성과 해석망상은 땅의 병이든 피부병이든 인간의 질병이며 근본적인 신경증이다.
inq. 탁월하게 의미 있는 침묵, 공감

p. 223-225, 얼굴성
의미생성의 중심, <몸소 나선 기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것은 순수 원리인 데다가 순수 추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무(無)인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기표의 이런 순수 형식적 잉여는 특별한 표현의 실체 없이는 생각될 수조차 없다. 우리는 이 표현의 실체에 얼굴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언어는 항상 얼굴성의 특질들을 동반한다. 또 얼굴은 잉여들의 집합을 결정화하며, 기표작용적 기호들을 방출하고 수신하고, 풀어주고 재포획한다.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 몸체이다. 얼굴은 모든 탈영토화된 기호들이 달라붙는 의미생성의 중심 몸체로서, 그 기호들이 탈영토화의 한계를 표시해준다. 목소리는 바로 얼굴로부터 나온다.

얼굴은 기표작용적 체제에 고유한 <도상>이며 체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재영토화이다. 기표는 얼굴 위에서 재영토화된다. 기표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얼굴이다. 해석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얼굴이다. 해석이 해석의 실체에 또 다른 기표를 부여할 때 바뀌는 것, 특징들(=표정들)을 바꾸는 것은 바로 얼굴이다. 봐라, 그의 얼굴(=안색)이 바뀌었다. 기표는 항상 얼굴화된다. 얼굴성은 의미생성들과 해석들의 집합 위에 물질적으로 군림한다.

탈은 얼굴을 감추지 않는다. 탈은 얼굴이다. 사제는 신의 얼굴을 관리한다. 전제군주에게 모든 것은 공적(公的)이며, 공적인 모든 것이 공적인 것은 얼굴 때문이다. 거짓말, 기만은 근본적으로 기표작용적 체제의 일부지만 비밀은 그렇지 않다.

역으로, 얼굴이 지워질 때, 얼굴성의 특질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어떤 다른 체제에 들어와 버렸다고 확신한다. 무한히 조용하고 지각 불가능한 어떤 지대, 동물-되기, 지하에서 분자-되기, 기표작용적 체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밤의 탈영토화 등이 일어나는 지대에. 전제군주나 신이 휘두르는 얼굴은 태양이고, 그의 완전한 몸체이며, 기표라는 몸체이다. (...) 스트린드베리가 말했듯이 얼굴의 감시, 기표의 덧코드화, 모든 방향으로의 발광, 국지화되지 않은 편재.

p. 225-227, 희생양
끝으로 얼굴, 즉 전제군주의 몸체나 신의 몸체는 일종의 대응-몸체(contre-corps), 즉 수형자의 몸체 또는 더 잘 표현하자면 축출된 자의 몸체를 가진다. 이 두 몸체가 소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제군주의 몸체가 굴욕이나 심지어 처형이라는 시련, 또는 유배와 추방이라는 시련에 내맡겨지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inq. 해와 달, 왕자와 거지

“[왕의 몸체와는] 정반대의 극단에 죄수의 몸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자신의 법적 자격도 갖고 있다. 죄수는 제 나름의 제의를 만들어낸다. (...) 이는 최고 주권자의 모습을 한 최대 권력을 정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벌받는 자들을 나타내는 최소 권력을 코드화하기 위햇이다. 정치적 장의 가장 어두운 영역 안에서 죄수는 왕과 대칭적이면서 역전된 인물상을 그려 보여준다.” 수형자는 우선 제 얼굴을 잃어버리는 자다.

하지만 수형자라는 처지는 결코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축출을 앞둔 첫걸음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적어도 오이디푸스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는 스스로를 처형하고 자기 눈을 도려내고 그 다음에는 가버린다. 제식, 즉 희생양의 동물-되기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첫 번째 속죄양은 희생되지만, 두 번째 속죄양은 쫓겨나 불모의 사막으로 보내진다. 기표작용적 체제에서 희생양이 표상하는 것은 기호들의 체계에서 엔트로피가 다시 증가하는 새로운 형식이다. 희생양은 어떤 주어진 기간 동안 “나쁜” 것 전체를 떠맡는다. 말하자면 기표작용적 기호들에 저항하는 모든 것, 상이한 원들을 거쳐 가며 기호가 기호를 참조하는 현상과 상관없는 모든 것을 떠맡는다. 또한 희생양은 자신의 중심에 기표를 재장전할 줄 모르는 모든 것을 떠맡으며, 가장 바깥의 원을 넘어가는 모든 것을 데려간다. 결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생양이 하는 일은 기표 작용적 체제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도주선을 만드는 일, 다시 말해 그 체제가 분쇄해야만 하거나 부정적인 방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 탈영토화를 구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체제가 이미 아무리 탈영토화된 체제라 하더라도 도주선은 기표작용적 기호의 탈영토화의 정도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도주선은 의미생성이라는 원들과 기표라는 중심의 접선과도 같다. 그것은 저주받을 것이다. 양의 항문은 전제군주나 신의 얼굴에 대립된다. 사람들은 체계를 도주시킬 위험이 있는 것을 살해하거나 쫓아버릴 것이다.

따라서 완벽한 체계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신전의 기표 작용적 중심에 있는 전제군주-신의 편집증적 얼굴이나 몸체, 신전 안에서, 기표에 기의를 항상 재장전하는, 해석하는 사제들. 밀집한 원들 안에서, 원들 사이를 건너뛰는, 바깥에 있는 히스테릭한 군중. 얼굴이 없고, 중심에서 발산되었으며, 사제들에 의해 선택되고 다뤄지고 장식되며, 사막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주하며 원들을 가로질러 가는 의기소침한 희생양 등. 너무나 개략적인 이 목록은 제국적 독재 체제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정당, 문학 운동, 정신분석협회, 가족, 부부 등 종속적이고 나무 형태이고 위계적이고 중심화된 모든 집단에도 해당된다. 사진, 얼굴성, 잉여, 의미생성, 해석이 도처에서 개입한다. 기표의 슬픈 세계, 항상 현재에 기능하고 있는 기표의 시원성, 자신의 모든 양상들을 암시하는 기표의 본질적인 기만성, 기표의 심오한 익살스러움. 기표는 모든 부부 싸움에서, 그리고 모든 국가 장치들 안에서 군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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