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4/6 6장 줄기세포와 생명문화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7-12 13:48
조회
602
제인 베넷은 ‘기계론의 반동으로 등장한 생기론’이라는 관점에서, 부시-복음주의와 나치-낭만주의가 모두 ‘생명력’ 혹은 ‘생기’라는 개념을 중시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킨 폭력적인 배치라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베넷의 분석은 미국의 정치체는 좋은 것이고, 1900년대에 독일에 등장했던 정치체는 나쁜 것이라는 통념을 넘어서 그것들의 폭력성을 함께 지적했기에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베넷의 분석은 나치 혹은 파시즘에 관한 통념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다만, 미국의 특정 배치와 그에 따른 정치체, 즉 부시-복음주의도 똑같이(?) 폭력적이었음을 지적하는 것에서 끝났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배치를 상상하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거기에만 그치면 안 되고, 두 배치에 내려졌던 기존의 가치를 오히려 역전시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부시-복음주의보다 나치-낭만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잠재성 혹은 생성의 힘, 혹은 베넷이 강조하는 사물들의 생기성이 더 활발하게 작동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려면, 우선 베넷이 의도적으로 배제했고, 그래서 책 전체를 걸쳐 터부시되고 있는 행위소인 ‘자본’을 다시 끌어와야 합니다.
책의 6장에서 언급된 사안들과 관련해, 베넷의 관심사에서는 제외되거나 혹은 아주 살짝만 언급된,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부시-복음주의의 경우>
부시-복음주의가 줄기세포의 연구와 활용을 반대한 것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여성 통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란 마리아 미즈가 제안한 용어로, 이것은 과거에 여러 지역, 여러 시간대에 각기 특수하게 등장했던 가부장제들과 달리, 근대 이후에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전 지구적 착취의 메커니즘 속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등장한 가부장제입니다.
멜린다 쿠퍼는 『잉여로서의 생명』에서 줄기세포의 연구와 활용을 옹호하는 바이오산업 집단과 그것을 반대하는 극우 집단(부시-복음주의)이 실제로는 공모관계임을 보여줍니다. 두 집단은 ‘줄기세포 찬반논쟁’을 벌이며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그들의 목적은 같습니다. 목적은 자본축적을 위한 잉여생명(여성 생명) 착취입니다. 두 집단은 시끄럽게 싸우며 매스컴을 장식하지만, 이윤 창출을 위해 협력합니다.

<나치-낭만주의의 경우>
나치-낭만주의라는 배치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 못지않게 그러한 배치가 형성된 조건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1900년대 초 유럽 전역을 휩쓴 인플레이션과 대공황이었습니다. 자본이 초래한 끔찍한 상황 속에서 고통받던 다중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고, 나치-낭만주의라는 배치물도 이러한 ‘도주’의 힘과 더불어 탄생했습니다.
『천개의 고원』에서 들뢰즈-가타리는 파시즘을 분석합니다. 책의 9장, ‘1993년-미시 정치와 절편성’에 흥미로운 구절이 등장합니다.
“전체주의 국가라는 개념은 거시정치의 단계에서만 유효하며, 견고한 절편성 그리고 총체화와 중앙 집중화의 특수한 양태에만 한정된다. 그러나 파시즘은 점에서 점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우글거리며 도약하는 분자적 초점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데, 이것은 <국가사회주의(Nazi) 국가>에서 분자적인 초점들이 다함께 공명하기 이전에 일어난다. (...) 이들 파시즘은 모두 미시적인 검은 구멍, 즉 일반화된 중앙 집중적인 검은 구멍 속에서 공명하기 전에 자체로서 효력을 가지며 다른 것들과 소통하는 미시적인 검은 구멍에 의해 규정된다. 각각의 구멍에, 각각의 거처에 전쟁 기계가 장착되면 파시즘이 존재하게 된다. 심지어 국가사회주의Nazi 국가가 설립된 때에도 이러한 국가에 ‘군중들’을 조직할 수 있는 비길 데 없는 수단을 마련해주는 이러한 미시 파시즘들이 존속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확실히 군중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권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군중들은 일종의 마조히스트적인 히스테리에 빠져 억압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군중들은 이데올로기적 속임수에 기만당하는 것도 아니다.”_『천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p.408,9
들뢰즈, 가타리는 파시즘을 흔히 생각하는 독제 체제, 즉 우두머리에 의해 전적으로 통솔되는 위계적인 정치체와는 다른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분자적 힘이고, 미시정치적 역량이고, 군중의 운동이라 말합니다. 이를 베넷식으로 표현하면, 파시즘은 중심에 사로잡힌 힘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들의 활기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파시즘은 사실 생성의 힘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것이 중앙의 검은 구멍 속에서 공명하며 폭력적인 배치물로 되어가는 과정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그 출발점을 제대로 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나치-낭만주의는 부시-복음주의처럼 처음부터 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위계적 배치물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치-낭만주의는 부시-복음주의처럼 오직 자본의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작동한 배치물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치 국가 초창기에 여러 생태적 관점의 법과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실험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시-복음주의와 나치-낭만주의를 ‘반동적 생기론’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집어넣는 베넷의 분석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다음 장인 <7장 정치생태학>을 읽으며 더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1) 『천개의 고원』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새물결
2) 『가부장재와 자본주의』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갈무리
3) 『잉여로서의 생명』 멜린다 쿠퍼 지음, 안성우 옮김, 갈무리
4) 「문제는 파시즘인가 민주주의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Ob00mwtvVfY
→ 『인지자본주의』 와 『절대민주주의』의 저자인 조정환 선생님의 유튜브 강연입니다. 파시즘을 민주주의의 역사적 형태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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