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이 세계가 ‘호의적인 장소’(oikeios topos)가 될 수 있을까?”ㅣ김대식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05-17 09:56
조회
938
 

“이 세계가 ‘호의적인 장소’(oikeios topos)가 될 수 있을까?”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 강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자본주의는 새로운 세계 생태입니다. 자본주의는 자본-권력-자연을 결합하여 하나의 통일체를 구성합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저렴한 자연을 구축하려 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시대에 저렴한 자연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사회(인간 자연, 비자연 인간)와 자연(비인간 자연)에 대하여 자본은 자연을 전유(착취)하고 시간에 의한 공간의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후가 급변함에 따라서 권력구조와 생산구조 덩달아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본은 저렴한 자연을 끊임없이 탐색하여 상품생산의 축적·혁신하기 위해 비인간적 자연을 도구화하였습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자연파괴는 급증하면서 대참사를 초래하고 비자연인 인간을 닦달하여 급기야 슈퍼잡초 같은 복수를 낳았습니다.

모름지기 자본주의는 자연 전체를 관통합니다. 위가 아닌 중심부의 관통(돌파)이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단 한번도 유한한 자연에 대해 경비를 지불한 적이 없는 데도 말입니다. 자본주의의 축적 체계는 무상 자연 일과 유산 자본의 일로 이루어져 결국 ‘고갈의 지리학’이라는 기이한 지형을 만들어냅니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중엽부터 위기를 맞이하면서 성장의 한계와 동시에 자연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16세기 석탄 사용량의 증가, 19세기의 저렴한 자연의 확보를 통해서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철도화는 시간에 의한 공간 전유를 가능하게 했고 국가 부양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인류가 생명 그물의 종이라 한들 산업화에 따른 기계-자원의 메커니즘의 표준화에 종속되었데, 이는 지식(과학)-권력-자연-지배라는 등식의 자연스런 결과였습니다.

시계를 통한 시간의 통제는 자연의 시간을 자본의 시간에 근접하도록 유도하였고, 저렴한 식량은 더 적은 평균노동시간으로 더 많은 칼로리가 생산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녹색혁명은 실상 잡종 옥수수의 출현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상 일, 에너지 전유, 벌집군집붕괴현상은 생물권의 특성화 문제를 양산함에 따라 사회주의적 세계 생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존재론적 정치, 곧 식량주권, 기후정의, 탈성장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는 기후변화로 저렴한 자연은 끝났다는 비관적 선언에 의한 반성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필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금융화로의 전횡과 심화가 불가피한 후폭풍을 지연시키는 강력한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 자본주의의 생존 가능성을 바라는 의지는 아닙니다. 현재의 자본주의가 자연 생태까지 전유한 횡포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암시입니다.

이 책은 자연에 대한 안팎의 논의를 생태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독자의 인내심 있는 해독 능력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노동과 자연 등의 관계를 충심어린 마음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했다는 데 이 책의 높은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번역자의 성실하고도 정확한 번역이 눈에 띤다는 것도 필자의 논지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맑스의 《자본》이 “노동자의 성서”(Bibel)인 것처럼, 이 책은 이미 자본화된 자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소롯한 자연과 민중의 반성적 삶을 위한 훌륭한 연구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리스어의 오이케이오스(oikeios)는 ‘가까운’, ‘친척’, ‘자신에게 속하는’, ‘고유한’, ‘적절한’ 등의 긍정적 개념들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세계가 인간이 살만한 곳, 모든 생명적 존재자에게 살가운 곳이 될 수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더군다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자본주의가 이미 새로운 경제적 지평을 확장/장악했다는 통계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저렴한 자연이 더 가난해지기 전에 민중이 생명과 생명,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식_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하면서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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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1년 5월 10일 <함석헌평화연구소 블로그>( https://bit.ly/2SVXzDV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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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정치경제학적 읽기, 철학적 읽기를 넘어 정치적 읽기로』(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18)


제2인터내셔널 이후의 맑스레닌주의와 알튀세르주의 전통은 『자본』을 다시 ‘정치경제학’이나 ‘철학’의 하나로, 즉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거꾸로 읽어 왔다. 그 결과 『자본』은 현실 사회주의 체제나 그에 종속된 사회주의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사용되었고 운동과 혁명이 자본주의 사회의 범주들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귀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책은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역사의 시작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맛시모 데 안젤리스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9)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사고를 수용한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공통장과 존엄을 위한 다양한 투쟁들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다른 실재를 드러낸다. 이 책은 이 투쟁의 전선을 분석한다. 한편에서는 자본으로 불리는 하나의 사회적 세력이 끝없는 성장과 화폐 가치를 추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사회적 세력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삶의 망을 재배열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대안지구화 운동이 최근 제기한 대안적인 공동생산 양식들을 다루면서 이 운동들이 무엇과 맞서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피와 불의 문자들 : 노동, 기계, 화폐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조지 카펜치스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8)


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관심사를 설명하기 위해 맑스의 사유를 주의 깊게 다시 읽고 해석한다. 원래 지난 30년 동안 반자본주의 운동을 둘러싼 논쟁들에 기여하기 위해 쓰인 이 책은 카펜치스의 저작들을 공통의 미래로 이행하는 이 시기의 투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갈무리, 2014)


『에코페미니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의 저자로 알려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고전적 저작.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 5백년 동안 여성, 자연, 식민지는 문명사회 외부로 축출되고, 가려져 왔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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