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정치 1-2장 발제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03-19 12:16
조회
463
속도와 정치 1-2장 47p-135p - etranger



거리의 권리에서 국가의 권리로

비릴리오는 혁명을 일종의 과속이라고 보았다. 그가 언급한 사례를 살펴보자. 1793년 프랑스 혁명 대중봉기가 본격화되기 전, ‘질주광’이라 할 수 있는 샹퀼로트들은 파리의 도로로 퍼져나가 고발, 감시, 체포, 상품 통제를 맡았다. 이때 이들의 혁명적 에너지는 새롭게 교통의 흐름을 조직했고, 이를 기반 삼아 대중들의 본격적인 봉기가 진행되었다. 부르주아들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역동적인 에너지 덕분에 권력을 장악했지만, 그것은 언제 자신들에게 향할지 모르는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부르주아들은 움직이는 대중을 멀리 떼어놓고 단념시키기 위한 정책을 폈으며, 모든 교통로를 국가가 통제했다. 그리고 분노가 내부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닌 외세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이 시기 프랑스 공화국은 단두대로 국왕을 처형했기에, 유럽의 다른 왕정국가 연합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본격적인 ‘국민개병제’가 실시됐고 총 들 수 있는 젊은 남성들이 무작위로 징집되었다. 농촌과 교외를 벗어나 파리 중심가를 누비던 샹퀼로트들은 제일 먼저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혁명의 동력은 전쟁터에서도 발휘되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 ‘라 마르세예즈(애국가?)’는 대중들을 흥분시키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했고, 그 다음으로 대포와 같은 무기의 등장이 전쟁터에서 질주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이제는 도망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없으며, 자살하듯 돌진해 빠르게 적을 제압하는 것만이 생존 방법이 되었다.

거리의 열기를 잠재움과 동시에 외적을 막아낸 부르주아들은 곧바로 새로운 소유와 물권을 확보하고, 사적 소유권에 이의제기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위협했다. 이때 국가의 정치적 권력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한 권력”(68p)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가축’은 ‘고정된 처소’ 즉 교외, 판자촌, 빈민가에 머물며 부르주아들의 잉여가치 생산을 위해 부려졌다. 구빈원, 병영, 감옥은 그들의 유목민적 침투 능력 제어를 위해 이용됐으며, 도시는 요새화되어 유동성보다는 ‘공위 상태’를 영속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후 나치의 전격전이 진행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요새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교통로의 권리에서 국가의 권리로

나치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스포츠와 자동차를 제공했다. 거리의 에너지를 비워놓는 대신 이들에게 교통로를 준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나치의 자동차 군단은 엄격한 제한 아래 통제 가능했으며, 전격전의 동력으로도 곧바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미국 역시 1914년 이래 포드가 대량 생산한 자동차의 운송능력이 시민들의 생활방식을 바꿔 놓았다. 한편 노동자들은 ‘세 개의 8시간 혁명’(8시간의 노동, 8시간의 수면, 8시간의 여가)을 국가에 요구하게 된다. 이것은 온건파에서 극단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단, 혁명운동 사이에서 통일성을 창출하는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소비에트 공화국은 1917년 가을, 독일 공화국은 1918년에 이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공화국 역시 1차 대전 직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전쟁의 시기에 존재해왔던 신성한 동맹을 평화의 시기에도 유지하는”길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은 고대의 봉건적 농노제로 상징되던 부동성의 억압에 맞서는 반란, 한 곳에 거주해야 한다는 의무에 맞서는 반란이었다. 비릴리오는 혁명 초기 대중 봉기에서 생겨난 ‘운동의 자유’가 곧 최초로 ‘운동의 독재’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최초로 등장한 이 근대 국가의 권력은 사실상 운동의 축적으로서 폭력의 축적을 뛰어넘은 듯하다.”(92p)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했을 때 ‘해방’ 시켜줄 사람들이 이미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비릴리오는 텅 빈 요새점령이 파리 시민들 입장에서 ‘푸코주의자식 오류(?)’라고 보았다.

부르주아지는 일종의 책략을 통해 시민들이 쟁취하려 했던 오고 갈 자유의 획득을 ‘이동의 의무’로 전도시켰다. 혁명의 전략적 도식은 두 종류의 지배 계급에 그들만의 프롤레타리아트 자원을 제공해주었다. 군사 계급이 이동 대중의 파괴행위를 자본화하고 군사 프롤레타리아트의 습격 능력이 파괴를 생산하고 있는 동안, 상업 부르주아지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한 생산 운동의 ‘성과’를 자본화함으로써 부를 늘려 나갔다. 비릴리오는 부르주아지의 타락이 필연적으로 생산 대중의 쇠퇴를 가져오고, 군사적 프롤레타리아트화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국가를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맑스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억압의 반작용으로 ‘발전 기능의 독재’, 어떤 형태의 대중 운동도 모조리 착취하는 전체주의적 형상을 띄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운동(행위)의 독재였을 뿐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생각이나 다른 의견을 중요하게 여길 가능성조차 완전히 제거됨으로써, 이제 유물론은 절대적인 형태에 도달한다.”(95p)

공간의 권리에서 국가의 권리로

새로운 범주의 정치적 권리가 대양에서 창출됐다. 장애물이 없는 바다는 일체의 사회적. 종교적. 도덕적 구속을 비롯해 지구의 중력이나 대지의 갑갑함에서 기인하는 물리적 법칙까지도 상쇄했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권리는 매우 급속히 구속에서 벗어난 범죄와 폭력에 대한 권리가 되어버렸다. ‘바다의 제국’이 장애물 없는 바다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상업 독점이라는 미명 아래 바다를 배타적으로 지배하려 했던 극악무도한 폭정이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졌고, 해양 운송업자들은 오직 경제적 이해에만 복무하며, 적들의 재화를 집어삼키고 파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바다에 대한 권리는 근대 국가의 도로에 대한 권리를 창출하며, 근대 국가는 그 도로를 통해서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전쟁의 양상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현존함대’는 보이지 않는 선단의 운용술을 철두철미하게 활용하는 병참학이다. 언제 어디서든 공격 개시가 가능한 보이지 않는 함대가 항상 바다에 존재함으로써, 항구적 견제를 통해 일부로 전투를 벌이지 않고서도 평생 동안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릴리오의 새로운 전쟁 개념은 핵무기 위협이 상존하는 현대전에까지 이어진다.

기술 독점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엔진이 등장할 때마다 더 빠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렇지만 속도의 문턱은 점점 더 넘기 힘들어지고, 심지어 사용하기도 전에 시대에 뒤떨어진 폐물이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작동하기도 전에 생산이 중단되는 것이다. 이렇게 ‘속도에 의해서’ 산업 폐기물의 이윤 체계가 추월당하는 셈이다. 질주학적 형태의 진보가 실현되자, 인류는 더 이상 다양하게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인류는 단지 희망적인 사람들(속도를 축적할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가능성, 계획 · 의사결정 · 무한함에 다갈 수 있는 사람들)과 열등한 기술적 운송장치 때문에 유한한 세계에서 근근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사람들로 이분화 되었다. 시간의 전쟁을 통해서, 최후의 혁명적 희망은 인민들의 사회적 초월에서 제로-시간의 초월로 뒤바뀌었다. 진보를 파괴한 것은 질주학적 진보의 본성인 속도이다.

현실적 전쟁

그동안 부르주아 사회는 절대적인 폭력을 군사 지역이라는 고립된 장소에 가둬둘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 점에서 소모전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 가둬둘 수 있는 최고 전술이었다. 물품과 병력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하는 것이야말로 지휘관의 명예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서 소모전의 규모 또한 달라졌다. 낙후된 프랑스군의 ‘자발적 소모전’은 기관총과 같은 최신 병참 무기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전장은 혁명적 운동을 기약할 수 없는 중성화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축들[병사들]은 겁에 질렸지만, 곧 이어 성채와 같은 탱크가 도입되자 “전례가 없을 정도로 프랑스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게 됐다.” 비릴리오는 이를 두고 속도는 서구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군대의 사기를 지탱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속도인 것이다. 압도적인 전격전이 등장하면서 육지의 지형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해양에서 운동 장치의 운동을 가로막는 영구적인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듯, 육지 또한 그렇게 됐으며 전쟁의 양상은 총력전을 띄게 되었다. 지형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은 육지를 완전히 붕괴시켜 사라져버리게 만드는 전쟁을 선보였다.

논의

프랑스에서 정부가 기름값을 인상하자 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정치세력이 이 운동을 전유하길 원치 않으며, 대표성을 거부하는 독립적 태도를 취했다. 또한 국민적.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내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일체성의 위기로서 사회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내세우고 있다. 사회적 정체성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다. 노란 조끼 운동은 대표성 없기에 예측불가능하며 실패가 예정된 운동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 조건은 기성의 논리와 세력에 포섭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 같기도 했다. 우리 또한 수년 전 박근혜 국정농단과 맞물려 대규모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각자가 갖고 있는 촛불 시위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공유하며, 비릴리오가 언급한 대중의 동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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