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8/24 『네트워크의 군주』 1부

작성자
Seo
작성일
2019-08-24 07:26
조회
522
3장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 근대성은 세계를 전적으로 대립하는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눔으로써 세계를 정화하려고 한다. (124)

- '세계'와 '인간' 으로 불리면서 어떤 종류의 마법적 도약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서로 격리된 두 영역은 없다. 오히려 행위소들만 있을 뿐이다. (124)

- 사실상, 세계를 두 지역으로 정화하려고 시도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이른바 근대시대는 이전에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혼성물hybrid을 만들어내었다. (125)

A. 근대성
- 라투트가 탈 근대인도 아닌 이유는 탈근대인 집단이 행위소들의 실재와 단절되어 콜라주와 시뮬라크르 사이로 잘난 체하며 떠돌기 때문. (125)

- 라투르는 비근대인이다. 이전에 생겨난 것과 본원적으로 단절되었던 적은 결코 없다. (126)

-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인간을 철학의 중심에 놓고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불가지적 객체들의 집합으로 환원했다면, 라투르가 권하는 것은 반혁명이다. 자연과 문화가 '풀릴 수 없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두 개의 각기 다른 영역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128)

- "주변부를 옹호하려면 전체주의적 중심이 존재한다고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중심과 그것의 전체성이 환영이라면 주변부를 찬양하는 것은 다소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132)

- "담론은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라 사물과 사회가 뒤섞여 있는 행위소들의 집단으로 사물과 사회를 다 같이 지지하고 둘 다에 의지한다". (133)

B. 준객체
- 근대적 합의가 흔들리는 상황은 라투르가 혼성물로 부르는 것, 즉 준객체quasi-object들이 증식하는 현상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135)

- 세계를 두 개의 정화된 구역으로 깔끔하게 절단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이런 혼성물은 악몽이다. (136)

- 오로지 행위소들만이 있을 뿐인데, 행위소들은 모두 다른 행위소들과 벌이는 수많은 힘겨루기를 거쳐서 구성되며 자신을 해체하려는 어떤 노력에도 부분적으로 저항하는 밀접한 통합성을 갖추고 있다. (137)

- 근대의 정치 형태들은 자연과 사회의 멸균 처리된 분열을 근거로 하여 전적으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138)

- 중요한 것은 오직 행위소들과 그것들의 네트워크들이다. 준객체를 쫓는 것은 네트워크를 추적하는 것이다. (140)

- 한 사건이 단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고 전적으로 구체적인 이유는 그것이 본질적인 요소들과 비본질적인 요소들로 분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이것은, 매 순간에 항상 일어나듯이, 한 사물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일말의 변화조차도 한 사건을 전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로 전환하기에 충분함을 의미한다. (141)

- 라투르는 생명 없는 객체를 불굴의 기계 같은 정리자 아니면 인간 범주들을 위한 텅 빈 용기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인 매개자, 즉 "자신이 수송하는 것을 번역하고, 다시 규정하고, 다시 배치하며, 배반도 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받은 행위자로 바꾼다. (142)

- 실체로 알려진 순수한 자연적 단일체를 드러내려고 모든 우유적인 것과 조합물이 옆으로 밀려나는 우주의 어떤 불가사의한 자연적 기층은 없다. 어떤 블랙박스도 개봉될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더 많은 블랙박스만 발견될 것이다. (144)

- "탈근대인은 "이쪽에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세계를 두고 저쪽에 발화 주체들이 벌이는 언어 놀이를 두는 완전한 [근대적] 분리를 받아들인다". (146)

- 우리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결코 인간과 세계를 정화하는 이분화를 실행했던 적이 사실상 없디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시간은 비가역적인 혁명의 방식대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행위소들의 네트워크들이 변화함에 따라 선회하고 소용돌이 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행위소는 순간적인 사건이지만 어떤 주어진 순간도 앞지르는 궤적이기도 하다. (149)

4장 판도라의 희망

- 개봉될 수 없는 블랙박스, 여타의 것을 파생시키는 실체의 마지막 층위는 없다. (153)

- 라투르는 사물에 본질이 거주할 수 있는 내부 지성소가 있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라투르의 행위소는 항상 개방된 것으로 밀폐되어 있지 않다. (153)

- 실재는 장막 뒤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지 않는다. 사물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서로 번역하며, 결코 서로 단절되지 않는다.

- 판도라의 상자가 나타내는 형이상학은 민주주의적인 행위소들의 우주를 산출한다. 어떤 행위소가 물리적이든 순전히 환상적이든 간에, 그것은 여타의 행위소와 함께 힘겨루기에 관여한다. (153~154)

- 행위소에는 자신의 사소한 외피나 자신이 다른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거대한 간극을 두고 격리된 본질적인 내부 핵심이 없다. (154)

A. 순환 준거
- '순환 준거'라는 용어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비극적인 간극을 서로 대결하는 무수한 행위자의 단일 평면으로 대체하는 라투르의 형이상학적 입장 전체를 포착한다. (154)

- 라투르는 실재적인 것을 그것의 모든 일그러진 연합 관계와 분리하는 전통적인 태도에 반대하면서 사물은 연합 관계를 더 많이 맺으면 맺을수록 점점 더 실재적인 것이 된다고 주장한다. 라투르가 본격적인 반실재론자가 확실히 아닌 이유는 객체가 현상학자나 언어철학자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159)

- 관계주의, 즉 사물은 본질이라는 외로운 내적 핵심보다 오히려 자신의 효과와 동맹으로만 정의된다는 관점이 라투르가 견지하는 입장의 역설적인 핵심. (159)

- 전통적 실재론자는 인간/세계 분할을 따라 실재와 관계를 할당하려고 함으로써 인간에게 세계를 왜곡하는 독특한 마법사의 능력을 허용하게 되고, 따라서 인간에게 너무 많은 능력을 부여한다. 라투르는 모든 행위자에게 동등한 종류의 능력, 즉 관계를 맺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이런 오류를 단박에 폐기한다. (160)

- 변형을 일으키지 않는 수송 같은 것은 없다. 진리는 아무 유사성도 없이 한 행위자에서 다음 행위자로 이어지는 번역의 연쇄일 뿐이다. (162)

- 우리는 세계에 덧붙여진 왜곡하는 지각의 층위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필터가 더 많이 있을수록 시야가 더 맑아지는 것처럼" 오로지 매개자의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실재에 접근할 수 있다. (163)

- 두 행위자는 항상 제3의 행위자가 매개하는데, 이 사실이 순환 준거의 궁극적인 교훈이다. (164)

- 세 입장(현상학/자연주의/관념론)은 다만 이런 이분화를 다른 식으로 용인하여 실재의 한 조각을 각각의 존재 유형에 건네준다는 점, 즉 인간을 자연적 원인으로 완전히 환원하거나 자연적 원인을 인간 의식 속의 현상으로 완전히 환원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167)

- 이 입장들 가운데 어느 것도 충분히 실재론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이 모두 개별 객체에 어떤 실재성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167)

B. 관계의 실재론
- 라투르의 관계주의는 매우 명료하다. 전통적 실재론과 달리, 사물은 다른 사물들과 더 적게 연결되어서 실재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동맹자들과 더 많이 연결되면 될수록 더욱더 실재적인 것이 된다. (170)

- 사물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과 분리되지 않고, 사실상 "각각의 요소는 자신이 맺고 있는 연합들로 정의될 것이기에 그런 연합들이 각각 성사되는 순간에 생겨나는 사건이다". (170)

- 라투르는 단순히 행위자들의 형이상학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이 성사될 때에만 생겨나는 행위자들의 형이상학을 제시한다. (171)

- '실체'라는 낱말은 역사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아래에 남아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행위자를 안정되고 일관된 전체로 모으는 것을 가리킨다. (173)

- 사물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로 완전히 정의된다. (174)

- "명제는 진술도 아니고, 사물도 아니며, 어떤 식으로든 그 둘 사이의 중간자도 아니다. 무엇보다 명제는 행위소다. 파스퇴르, 젖산 발효군, 실험실은 모두 명제다". (175)

- 라투르에게 행위자는 인간 행위자뿐만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도 있고, 자신의 동맹이 지속하는 한에서만 계속 존재하고, 동맹 관계를 더 많이 맺을수록 더욱더 실재적인 것이 되며, 이 행위자를 저 행위자의 용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다른 한 행위자를 통해서만 연결된다. (178)

- 라투르의 시간론은 행위자란 아무것도 유보되지 않은 채로 철저히 부각된 사건이라는 자신의 관점에서 완전히 엄밀하게 도출된다. (183)

- 우주는 셀 수 없이 많은 행위자일 뿐인데, 여기서 그들은 군중에 맞서는 행위자로서가 아니라 동맹자들의 군중이라는 모습을 갖춘 행위자로서 서로 성사시키는 복잡한 협상과 연합을 통해서 실재성을 획득한다. (191)

- 라투르에게 모든 실재가 정치적인 이유는 인간 권력이 진리를 엄연히 구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리와 실재가 일련의 행위자를 거쳐 조립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실재는 각각의 조립 단계에서 조금씩 변형되고 번역되며 성공하는 만큼이나 자주 실패한다. (193)

- 라투르의 형이상학은 행위자에 대한 실용주의적 정의를 통해 무지에서 벗어나는데, 여기서 행위자의 실재성은 그것이 다른 행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정의된다. (198)

- 라투르는 철학의 궁극적인 민주주의자인데, 이를테면 널리 경멸받는 소비 대상도 사물의 의회에 들어올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신이 다른 사물들에 미치는 효과 덕분에 들어올 수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라투르가 그것에는 이런 효과 이상의 것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199)

※ The Object Turn: A Conversation (Log 33, Winter 2015)

- Bruno Latour's flat democratic acceptance of al entities on the same plane initially led him to say that everything is an entity in the same way: through each entity's force, through its effects on other entities. This means that Latour turns everything into relations, but has no robust conception of the relata behind relations. Mystery and surprise are, in effect, evacuated from Latour's world, since his phrase "follow the actors" means "follow the effects." But much of what is real is what does not have an effect but just threatens to have an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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