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안토니오 네그리의 『예술과 다중』 요약X발췌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8-01 15:32
조회
402
공부를 마무리하며, 전체 내용을 '예술'이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책의 문장을 그대로 발췌한 것도 있고, 요약하면서 좀 더 잘 읽히도록 문장을 다듬기도 했습니다.
괄호 속 번호는 해당 내용이 등장하는 책-『예술과 다중』, 안또니오 네그리 지음, 심세광 옮김, 갈무리-의 페이지 수입니다.
네그리 예술론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술과 다중』

예술은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활동이다. (36)

아름다움이란, 행위로 이루어진 상상력이며, 특이성을 발명하는 것이다.
특이성singularity은 세계의 구축에 참여하는 각각의 주체로 이루어지는 다양체 내에서 순환하며 공통적인 것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다중이다. (40)

예술은 표현적인 행위다. (39)
예술적 생산은 대안적인 창조, “현실적인 것”의 재발명이다. (34)

예술은 여러 가지 특이한 형상이나 오브제를 발명하는 것이며 언어적 표현이고 여러 가지 기호들을 발명하는 것이다 (39)

신자유주의 이후 ‘예술’은 노동 바깥에 있지 않게 되었다. 예술품과 상품을 더는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36)
신자유주의 이후 인지적이고, 정동적이고, 비물질적이 된 노동은 다중의 한복판에서 특이성과 공통적인 것을 연결한다. (41)
예술이란 살아있는 노동이다. (39)

예술의 능력은 세계를 재발명하기에 이르기까지 인식을 깊이 있게 만드는 것이다. (39)
예술은 가치창출의 모든 결정들을 늘 예비해 왔다. (44)

오늘날 예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헐벗은 미지의 대륙을 모험하여 존재를 창조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56,7)

잠재력은 상상하고 창조하는 능력이다. (84)
숭고의 감정이란, 상상력처럼 이성과 감성의 교차점이다.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감성에 대한 일종의 코펙르니쿠스적 전회이다. (75,6)

예술이란 잠재력의 상형문자다. 상형문자적 존재는 예술의 존재론적 특이성을 최대한으로 고양시킨다. 예술은 상상력의 최상위의 행위다. (85)

예술은 잠재력인 동시에 윤리이기도 하다. 시장은 잠재력에 의해 지양되는 것이고 포스트모던은 윤리에 의해 초극되는 것이다. (85)

예술은 반시장이다. 예술이 가격으로 환원된 단일성에 여러 특이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을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한 혁명적 비판이 특이성들로 이루어진 다중이 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하나의 장을 구축한다. (87)

예술은 예측하고 또 뒤따른다. (104)

예술은 절대적으로 특이한 것의 창조인 동시에 재생산이기도 하다. 예술 작품의 특이성은 절대적인 것을 재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회화, 음악, 시 등은 다중이 향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형태로 그 보편성을 드러낸다. (86)

예술은 집단적인 노동의 산물 가운데 하나이다. (92)
재발견, 선별, 재구성이라는 노동을 집단적인 차원 안에서 수행해야 한다. (99)

집단 없이 생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하는 집단-존재에 관한 생각은 이미 정립된 집단을 초과한다. 대장장이는 돌과 함께 목수는 나무와 함께 생산한다) 언어 없이는 어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과 언어 없이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은 새로운 존재를 엿보게 해 주는 새로운 언어의 구축이다. (100)

잠재력의 의지는 삶의 즐거움의 연속인 욕망의 활동을 통해 존재를 구축하는 것이다. 예술은 이 운동의 가장 일차적이며, 아름답고 또 가장 충만한 형상이다. (100,101)

예술은 생산을 통해 살아가고, 생산은 집단적인 것을 통해 살아가고, 집단적인 것은 추상화(언어화, 보편화, 공통화) 속에서 자신을 구축해 간다. 오늘날 주체로서 추구되고 있는 이 집단적이고 생산적인 추상화는 바로 코뮤니즘(공-산주의)이다. (103)

아름다움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존재의 초과다. (106)
존재의 초과는 신비가 아니라 기적이다. 이 초과는 노동으로부터 도출되는 창조적인 사실이다. 축적된 인간노동의 총체가 가치-초과-를 결정한다. 예술은 이 가치들 가운데 가장 잘 구축되고 가장 보편적이며 또 동시에 가장 특이한 가치다. 예술은 천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천사라는 단언이며 또 천사란 매 순간 재발견되어야 하는 사실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109,110)

자본은 예술적 가치들에 대해 반응하고 투자한다. 예술의 가치 생산은 지배적인 질서를 벗어나기 때문에, 자본은 그 가치를 예속시키고자 한다. 자본은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강박 속에서 예술을 자신의 고유한 노동력으로 변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자본은 결코 완전한 지배에 도달할 수 없고, 따라서 늘 많은 양의성을 수반하게 된다. (111)

해방된 노동은 존재 초과의 집단적 본질인 언어활동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이란, 새로운 존재의 아름다움이고 집단적 노동을 통해서 구축되는 초과, 노동의 창조력에 의해 생산되는 초과이다. 아름다움의 생산은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노동이다. (112,113)

예술의 능력을 과신하면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적인 감동에 매달리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진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연대의 길을 택해 변화를 위해 싸우고 그래서 자유와 아름다운 것을 생산해 내는 집단적인 차원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113)

예술, 즉 미학적 구원은 해방된 집단적 노동의 재발견을 통해서 실재적인 것이 된다. 자기해방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다중을 통해서 뿐이다. (114)

예술가란 실현된 전복 행위와 해방된 자유의 상징이다. 예술가는 지고의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집단적 존재, 즉 코뮤니즘을 위한 존재가 아닌 지고의 존재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예술가 안에서 집단적인 것은 존재의 초과를 비로소 해방시키고 존재의 초과를 특이한 것으로 만든다. 예술가는 그 자신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115, 116)

아름다운 것은 존재의 초과로서 현시되는 집단적인 해방 행위의 산물이다. (119)
아름다운 것을 생산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혁명적이라는 것이다. (129, 130)

위대한 리얼리즘은 항시 존재의 초과를 생산해 내는 집단적인 행위였다. (122)

예술은 구성하는 권력, 존재론적으로 구성하는 잠재력이다. 인간해방의 집단적인 잠재력은 예술을 통해 그 운명을 예시한다. 이러한 대중 전위-아름다움의 생산자들인 다중-의 예시적 행위 안에서만 우리는 코뮤니즘을 상상할 수 있다. (129)

예술은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 대중의 노동을 가치화하고자 하는 활동으로서, 집단적 노동력의 해방을 통해 (자본의 잉여가 아닌) 존재의 잉여를 구축하는 것이다. (136)
따라서 예술은 자본주의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137)

사랑이란 집단적인 포이에시스, 즉 다중과 예술을 특징짓는 생산 행위다. 그리고 예술이란 운동 상태에 있는 여러 가지 특이성으로부터 이루어지는 하나의 다중이고 하나의 신체를 다른 한 신체의 품 안에 두는 운동의 무한성이다. (163,164)

(오늘날) 예술은 삶이기도 하고 합체이기도 하고 노동이기도 하다. 예술은 더 이상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전제이다. (164)

다중은 특이한 생산성의 초과적 총체다. (193)

예술은 다중에게 속하는 것이다. 이 소속관계는 삶정치적인 것에 완전이 종속되어 있다. 다중으로서의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각각의 주체성은 다중 자체의 변형 절차에 나름대로 기여하게 된다. 다중은 자기 자신 안에 산출된 생산물들을 모두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포괄적 아름다움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중을 성숙시켜야만 한다. 이는 주체성의 가장 근본적인 혼성화, 그리고 다중의 공통되기다. 지금으로서 유일한 예술적 가치는 다중이 이 생성을 선취하는 것뿐이다. (197)

예술 활동은 생산양식을 생산하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파괴한다. (209)

예술과 노동 모두는 추상적이 되었다. 그래서 노동과 예술의 주체와 객체는 “밖”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산 작용 속에서 서로를 참조한다. (214)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창조한다는 것은 무절제, 초과, 생산성의 과잉을 발견하는 어떤 것이다. 노동력이 인지적일 경우, 예술적인 표현욕망은 도처에서 나타나게 된다. 대중노동자가 독특한 노동자 다중으로 변화할 경우, 예술적 실천은 생활 형식들에 투자되고 이 생활 형식들은 세계의 살이 된다. (215)

인지적인 노동은 주체들을 변형시키는 대상들을 생산한다. 이는 생산이란 주체들의 지속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진리의 비밀”을 예술이 명확히 현시하는 것이다. 예술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 비밀을 폭로한다. (217)
▶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읽을 때 참조할 부분.

예술적인 생산은 산업을 관통하고 또 공통의 언어들을 구축한다. 인지적 노동의 시대에는 인식과 행동의 장치들을 혁신할 수 있는 역능이 이 공통의 언어들을 통해 결정된다. (219)

변형 중에 있는 마그마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때때로 우리의 세계는 괴물들로 가득찬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사실이 된다. 괴물은 우리들 각자 속에 살고 있다. (219,220)

지금의 생산양식은 괴물과 직면하여 위험의 징후 아래 전개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공통된 것에 대해 성찰하게 하고, 존재의 의미를 결정하게 한다. 즉 공통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건과 다중이 모두 택해야 하는 방향에 관한 결정을 내리게 한다. (220)

변형 절차의 내부에서 신체는 긴장되어 있다. 늘 위기들이 발생하지만 어떤 “외적인” 해결책은 없다.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다른 곳으로 벗어날 수 없다. (221)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창조적인 역량은 우리에게 있다. 예술의 복잡한 결절점들에 이제는 윤리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타자, 공통된 존재인 타자를 위한 존재가 승리하게 되는 다양한 범례를 우리가 구축해야 하고, 예술이 여기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221)

예술적 도정 3단계 (222~224)
[단계1]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신체들과 사건들의 무한한 운동에 침잠하여, 빈곤과 풍요의 도표를 그리며 현실을 해체하는 단계. 이때 우리는, 공통적인 것으로 모여들면서 동시에 각자의 자유와 차이를 유지하는 특이성들의 합성에 참여할 수 있다.
[단계2] 공통적인 것의 인정으로 나타나는 성찰적 단계.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특이성들의 형태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된 꿀벌떼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재구성된 꿀벌떼의 행동은 밑으로부터 솟아나는 특이성들의 유물론적인 목적론이다.
[단계3] 예술적 형식 내에서 전개된 이 공통적인 것이 집단적인 결정과 공통적인 협치를 통해 현재에 구체화되는 단계.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구축된 생명 형식들의 협치, 생명 형식들에 의한 협치, 생명 형식들 내에서의 협치를 통해 조직되어야 한다.

예술은 토대에 있어서는 가난으로 규정되며 절정에 있어서는 무리-되기로 규정되는 생명의 한 형식이라 정의될 수 있다. (223)

숭고의 모델은 스피노자적인 사랑이 세속적인 것에 대한 열망의 운동을 완결할 때 구축하는 극한의 가장자리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윤리적 숭고로서의 공통적인 것, 미학적 숭고로서의 공통적인 것이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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