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0_발제] 제11고원(p.656-667)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9-03-30 13:07
조회
422
제 11고원. 1837년 – 리토르넬로에 대해

p. 656-,
대지는 지금 최고로 탈영토화되어 있다.
민중은 오늘날 최고로 분자화되어 있다.

민중의 인구 감소와 지구의 탈영토화를 아주 엄밀하게 분석하면서 비릴리오가 말하고 있듯, 이 문제는 “시인으로서 살 것인가 아니면 살인자로서 살 것인가”이다. 살인자는 분자적 집단을 조직해 현재의 민중들을 폭격하는 자로서, 이 집단은 끊임없이 모든 배치물을 패쇄해 계속 크기와 깊이를 늘려가는 검은 구멍으로 이 배치물을 밀어 넣는다. 시인은 이와 반대로 이러한 집단이 미래의 민중의 씨를 뿌리거나 낳을 수도 있으며 미래의 민중 속으로 이행해 코스모스를 열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분자적 집단을 해방시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민중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계는 크게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술가는 자기 자신 속에 틀어박힌 <혼자인 하나(l’Un-Seul)>이기를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민중에게 호소하는 것도, 민중이 마치 기성의 힘인 양 민중을 불러내는 일도 포기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예술가가 민중을 필요로 한 적도 없었는데, 정말 민중이 결여되어 있음을 이처럼 통감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즉, 민중이 가장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통속적인 예술가나 민중주의 예술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민중을 필요로 한다고 단언한 것은 말라르메이고, 문학이 민중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 것은 카프카였으며 또 민중이 가장 중요하지만 또한 가장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클레였다.

민중과 대지는 이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코스모스의 사방 팔방에서 폭격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끌고 나가는 코스모스의 벡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코스모스 자체가 예술이 될 것이다. 인구의 절멸을 코스모스 규모의 민중으로 바꾸고 탈영토화를 코스모스 규모의 대지로 바꾸는 것. 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어디까지나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예술가-장인들의 바람인 것이다.

p. 658-
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근대 : 진화 과정이나 의미상의 단절을 동반하는 구조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세 시대는 배치물로서, 각각 다른 <기계>를 또는 <기계>에 대한 서로 다른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특정한 시대에 속한다고 본 것은 모두 이미 이전 시대에 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힘들이 그렇다. (카오스의 힘들이건 대지의 힘들이건)

먼 옛날부터 회화는 언제나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가시적으로 만들려고 해왔으며, 음악도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음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해 왔다. 어느 시대에도 계속해서 퍼지 집합이 성립해 나름의 다짐 과정을 만들어 왔다. (...)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지나 카오스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한 힘들은 직접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 질료와 형상 관계에 반영된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특정한 배치물에 속하는 지각의 경계 또는 식별 가능성의 경계인 것이다. 질료는 충분히 탈영토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분자적인 양상을 띠며, 오직 <코스모스>이외에는 돌아갈 곳이 없는 순수한 힘들을 출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나타났지만 지각의 조건들은 서로 달랐다. 따라서 파묻히고, 숨겨지고, 추측되거나 유추될 뿐인 것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려면 새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의 배치물 속에서 조성되었던 것, 즉 조성되어 있던 것이 새로운 배치물을 조성하는 성분으로 변한다. 또 우리가 역사를 만드는 재료는 역사의 질료가 아니라 되기의 질료인 것이다. 되기는 기계와 비슷하다. 즉 배치물에 따라 나타나는 방법이 다르며, 하나의 배치물에서 다른 배치물로 이행하고 하나의 배치물을 다른 배치물을 향해 열지만 고정된 서열이나 한정된 계기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p. 659-,
리토르넬로의 새로운 분류 체계
1. 다양한 환경의 리토르넬로 : 이 리토르넬로는 최소 두 부분으로 나뉘며 한쪽 부분이 다른 부분과 반응한다(피아노와 바이올린)
2. 고향의, 영토적 리토르넬로 : 여기서는 부분이 매번 영토에 대한 대지의 엇갈림을 표현하는 가변적 관계에 따라 하나-전체와, 즉 광대한 대지의 리토르넬로와 연관을 맺는다(자장가, 권주가, 노동요, 군가 등). 민중적·민요적 리토르넬로들이 있다.
3. 또한 분자화된 리토르넬로들이 있는데 (바다나 바람), 이것은 코스모스의 힘들과, <코스모스>-리토르넬로와 연관을 맺고 있다. 코스모스 자체가 하나의 리토르넬로이며, 귀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p. 660-, 음악과 회화
하지만 리토르넬로가 유독 음과 관련되는 것은 왜일까? 동물이나 새들은 수많은 동작, 자세, 색채, 시각의 리토르넬로를 보여주는데도 왜 이처럼 특권이 부여되는 것일까? 회화가 음악보다 덜 리토르넬로적이어서일까?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형식적 서열과 절대적 기준에 따라 특정한 예술에 지배적 위치를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보다는 훨씬 더 조심스럽게 음의 성분과 시각적 성분을 갖춘 탈영토화 역량 또는 계수를 비교 검토하는데 있다.

음은 탈영토화될수록 그만큼 더 정련되고, 특수성을 획득해 자율적인 것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반대로 색채는 사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점점 더 영토성에 밀착되어간다. 즉 색채는 탈영토화될수록 용해되고, 다른 성분들에 의해 인도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감각 현상을 보면 이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색채-음성의 조응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 음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실제로 눈으로 본 색채와 중첩되는 듯한 색채를 끌어내고, 그러한 색채에 음에 (색채에 음이?) 고유한 리듬과 운동을 전달하는 것이다.

음악의 잠재적 파시즘. 일반적으로 음악은 회화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기계적 문에 접속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기계적 문은 선별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음악가는 화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민중과 기계에 그리고 권력과 관련을 맺는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스스로 매번 문을 창조 또는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는 빛과 색의 몸체(corps)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음악가는 설사 잠재적이건 아니면 간접적이건 일종의 생식적 연속성을 손에 갖고 있기 때문에 이로부터 출발해 음의 몸체들을 만들어낸다. 이 두 가지는 동일한 창조 운동이 아니다. 화가는 체세포(soma)에서 생식질(germen)로 향하는 반면 음악가는 생식질에서 체세포로 향하는 것이다. 화가의 리토르넬로는 음악가의 리토르넬로의 역(逆), 다시 말해 음악의 역상이다.

그렇다면 결국 리토르넬로란 도대체 무엇인가? 글라스 하모니카이다. 리토르넬로는 프리즘이며, 시-공간의 결정체이다. 리토르넬로는 음과 빛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에 작용해 그로부터 다채로운 파동, 분광 그리고 변형을 끌어내려 한다. 리토르넬로는 촉매 기능도 한다. 자신을 둘러싼 것들간의 교환과 반응 속도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소위 자연적 친화력을 전혀 갖지 않은 요소들간의 간접적 상호작용을 보증하고, 이를 통해 조직된 질량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리토르넬로는 결정 내지 단백질 유형이 된다.

내부의 핵이나 구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즉, 증가와 감소, 추가와 삭제, 불균형한 수치에 따른 증폭과 소거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달리는 노면 전차의 측면 유리창 위”에서처럼 전후 양 방향을 향하는 역행 운동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조크』에서의 기묘한 역행 운동, 끝에서 중심으로 향하듯 소거법에 의해 극히 짧은 순간에 집중되는 것도 리토르넬로의 역할에 속하며, 또 이와 반대로 중심에서 끝을 향하며 추가해나가는 방법에 따라 전개하거나 또는 전후 양 방향으로 이 두 노선을 거쳐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리토르넬로는 시간을 만든다. 리토르넬로는 언어학자인 기욤이 논하고 있는 대로 “내포시간”이다. (우주의 힘들을 포획하는 순수한 결정체 VS 핵과 연합, 지시 또는 묘사 관계만을 갖는 상투적인 공식, 리토르넬로의 양가성, 리토르넬로의 양극)

그리고 이 두 극은 내재적인 질뿐만 아니라 귀를 기울이는 자의 힘의 상태에도 좌우된다. 예를 들어 뱅퇴이유의 소악절은 오랫동안 스완의 사랑, 오데트라는 인물 그리고 불로뉴 숲이라는 풍경에 결부되어 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기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자신을 향해 자신을 열고, 그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잠재력을 드러내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연결 안으로 들어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배치물들로 사랑을 끌고 간다. 여기서는 <시간>이 선험적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토르넬로가 시간의 선험적 형상으로서, 그것이 매번 다른 시간을 만들어낸다.

inq.
그리고 그때 알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러한 주제 위에 몸을 깊숙이 숙였던 그녀만이
그러한 주제를 위해 그늘을 마련해주고 그것을 보호해주었으며,
덕분에 사고가 부조처럼
모든 주름과 구석에 이르기까지 생기를 띠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 혼자가 되니 그러한 사고는 우리의 인식의 빛 속에서 납작하게,
그늘 하나 없이 엎드려 있다.

- 벤야민, 일방통행로 中

p. 664-,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음악가는 왜 첫 번째 유형의 리토르넬로, 즉 영토적 리토르넬로 또는 배치의 리토르넬로를 필요로 할까, 그리고 왜 이러한 유형의 리토르넬로를 내부에서 변형시키고 탈영토화해 음악의 최종목적인 두 번째 유형의 리토르넬로, 즉 음 기계에 속하는 코스모스적 리토르넬로를 만들어 낼까를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실로 다양한 방향에서 리토르넬로에 새로운 종이 심어지기 때문이다. 이 종은 다양한 선법을 재발견해 소통시키고, 평균율을 해체시키며, 장조와 단조의 경계선을 애매하게 만들어 조성(고를-조調,성품-성性)을 잃게 한다. 조성과 단절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조성의 그물코를 빠져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 이리하여 선법이 흔들림 없이 반음계법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다고 조성을 소멸시킬 필요는 없다. 조성을 잃게 하면 그만일 뿐이다. 그렇게 하면 배치된 리토르넬로(영토적, 민중적, 연가적)에서 거대한 기계적 코스모스의 리토르넬로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 작업은 이미 첫 번째 유형의 배치된 리토르넬로 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곳에 남김없이 존재하고 있다. 작은 리토르넬로 형태에 혹은 론도에 이미 거대한 힘을 포획하는 변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장면, 아이들의 놀리, 처음엔 유치한 리토르넬로였더라도 아이에게는 이미 날개가 있고, 따라서 아이는 천상의 존재가 된다. 음악가의 “아이-되기”는 아이의 “공기-되기”와 짝을 이루고, 양자는 해체 불가능한 하나의 블록을 이룬다. 천사의 기억 또는 오히려 코스모스를 향한 되기를 이루는 것이다. 결정체.

슈만의 작품에서는 선율, 화음, 리듬을 교묘하게 가공하는 일관된 작업이 리토르넬로의 탈영토화라는 단순하고 간결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음악의 최종 목적으로서 탈영토화된 리토르넬로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코스모스>로 풀어놓는 것, 이것이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배치물을 코스모스의 힘을 향해 여는 것. 배치물에서 힘으로, 음의 배치물에서 음들을 만들어내는 <기계>로 이행할 때, 즉 음악가의 아이-되기에서 아이의 코스모스적인 것-되기로 이행할 때는 당연히 수많은 위험이 출몰한다. 즉 검은 구멍, 폐쇄 상태, 손가락의 마비, 환청, 슈만의 광기, 거칠게 변해버린 코스모스적 힘, 당신을 쫓아다니는 어떤 음악, 당신의 몸을 관통할 수도 있는 어떤 음 등의 위험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이미 다른쪽의 한가운데에 들어 있다. 즉 코스모스적 힘은 이미 재료 속에, 거대한 리토르넬로는 소박한 리토르넬로 속에, 대규모 조작은 소규모 조작 속에 들어 있다. 그저 우리 자신이 그만큼 강한 힘이 있는지 확신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체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선과 운동들을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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