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고원(p527~p538)

작성자
floor
작성일
2019-02-23 13:15
조회
634
원시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이 되는 일, 곧 여장이나 가장의 의례>는 주어진 관계들의 대응도 아니요, 남성의 여성이기를 욕망하는 일도 아니다. 사회 구조나 심리적 동일화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요인들이 거기에는 많다. 여장 남자들의 생성의 묶기, 풀기, 소통, 그로부터 나오는 동물-되기의 역량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특정 <전쟁 기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성은 이항적인 것이 아니라 n개의 성과도 같고 이들은 아주 다양하게 결합된 생성들 안에서 노닐게 된다.
사랑은 양성간의 다툼이나 싸움으로 귀착되는 전쟁기계가 아니다. 사랑 자체는 기이하면서도 거의 가공할 만한 권력을 지닌 전쟁기계이다. 성은 천 개의 성을 생산하는데 이는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은 <남성의 여성-되기와, 인간의 동물-되기>를 지나간다. 즉 입자의 방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물-되기의 현실은 모방과 대응의 대상이 되는 동물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동물- 되기 자체 안에, 그리고 갑자기 우리를 덮치고 우리를 생성하게 하는 것 안에 있다. 즉 <근방과 식별 불가능성>은 동물로부터 공통된 어떤 것을, 그 모든 길들임, 그 모든 길들임, 그 모든 유용성, 그 모든 모방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추출해내는데 그것은 바로 <짐승>이다.

이에 반해 <여성-되기>는 첫 번째 양자 또는 분자적 절편이다. 동물-되기가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지각할 수 없는 것-되기>이다. 이것은 생성의 내재적 끝이며 생성의 우주적 정식이다. ① 메티슨의 <위축되는 남자>에서 결국 무한에 대해 무한히 명상하는 <찾아낼 수 없는 입자>가 되는 것도, ②폴 모랑의 <제로씨>에서 최후에는 손가락으로 0이라는 입자를 만들며 <지각할 수 없는 것>이 되어 죽어가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여성-되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지각할 수 없는 것, 식별 불가능한 것, 비인칭적인 것, 탈주체적인 것>들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우선 <세상 모든 사람처럼 있기>를 말할 수 있다. 참된 단절을 경험한 후에는 …참으로 세상 모든 사람처럼 있게 되는 것이다. 주목을 끌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는 것! 이것은 생성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금욕, 절제, 창조적 역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평과 불만, 충족되지 않은 욕망, 방어나 변호, 각자를 자기 자신 속에(그램 분자성 속에) 뿌리 박게 하는 이 모든 것을 없애 버리기이다. <없애버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추상적인 선, 그 자체로 추상적인 퍼즐의 한 조각이다. 그리고 다른 선들, 다른 조각들과 접합접속하고 연결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서, 투명함 속에서 먼저번 세계를 완전히 뒤덮을 수 있게 된다.

<세상 모든 사람 되기, 세계를 생성으로 만들기>란 곧 세계 만들기, 하나의 세계 또는 여러 세계를 만들기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근방역과 식별 불가능의 지대>를 찾기이다. 이 세계에서는 세계 그 자체가 생성되고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이 된다. 즉 순간을 뛰어넘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되 그 순간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놔두어야 한다 – 그리고 순간은 일순간이 아니라 <이것임Thisness>이다. (중략) 세계의 정각에 있기와 지각할 수 없는 것, 식별할 수 없는 것, 비인칭인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선들과 함께 자신의 식별가능성의 지대를 찾기 위해 하나의 추상적인 선, 일필로 환원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창조자의 비인칭 속으로 들어가듯이 <이것임> 속으로 들어간다. 그 때 우리는 풀과 같다. 즉 우리는 세계를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의 생성>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소통하는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며, 우리가 사람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사물들 한 가운데서 자라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서 제거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지각할 수 없는 것과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운동은 본성상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빠름과 느림의 순수한 관계, 순수한 변용태는 모든 지각의 문턱의 아래나 위에 있다. 이 지각의 문턱은 상대적이고, 하나의 문턱은 다른 문턱을 벗어나는 것을 포착할 능력이 있다. 독수리의 눈처럼 말이다. 하지만 적합한 문턱이라는 것은 지각할 수 있는 형태 및 지각되고 파악된 주체와 관련해서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은 그 자체로는 연속해서 다르게 일어난다. 운동은 최대의 문턱 너머와 최소의 문턱 이쪽에서,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틈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운동은 지각할 수 없는 것이지만 지각 되어야 한다. 지각할 수 없는 것 또한 지각대상이기 때문이다. 운동이 본성상 지각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항상 <지각의 어느 한 문턱>과 관련해서이다. 문턱들과 지각되는 것을 배분하고 지각하는 주체에게 지각하는 형식을 제공하는, 하나의 판 위에서 지각이 하나의 <상대적이고 매개 역할>까지도 한다. 그러나 이 조직과 전개의 판, 초월성의 판이야말로 스스로는 지각되지 않고, 또 지각될 수 없으면서 <지각하게 하는 자>이다. 다른 판, 즉 내재성의 판 또는 고른판 위에서는 조성의 원리 자체가, 이 원리가 구성하거나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지각되어야만 하며, 또 지각될 수 밖에 없다.
운동은 빠르기와는 관계없이 하나의 절대적인 문턱에 도달해 있다. 이 절대적 문턱은 연속된 판의 구성 일부이다. 운동은 늘 상대적이기만 한 탈영토화의 기법이기를 그치고 <절대적 탈영토화의 과정>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판에서는 지각될 수 없었지만 다른 판에서 지각되는 것이다. 이 두 판은 다르다. 두 판의 차이 때문에 한 판에서 다른 판으로 또는 상대적인 문턱들에서 이들과 공존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문턱으로 도약하면서, 지각할 수 없는 것이 필연적으로 <지각된 것>이 된다.

키에르 케고르는 “나는 운동만 주시한다”고 했다 무한의 판은 유한을 끊임없이 즉각 주고 되찾는 순수한 내재성의 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무한한 체념의 인간과는 반대의, <유한한 세계의 직계 상속인>으로서 <생성의 인간>은 소녀를 가지게 될 것이고, 모든 유한을 가지게 될 것이고, 지각할 수 없는 것을 지각하게 될 것이다. <지각>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이 관계의 한계 구실을 하는 ①운동 속에, 그리고 주체와 대상에 연합되는 ②주기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지각은 사물들 사이에, 자신의 고유한 근방의 집합 안에, 어떤 <이것임>에 의한 다른 어떤 <이것임>의 포착으로서, 어떤 <이것임>에서 다른 어떤 <이것임>으로의 이행으로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운동들만 주시할 것.

마약에 관해서이다. 내재성을 향해 있는 판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신앙>이라는 단어가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는 아편이다? 신앙은 마약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신중함과 실험>이라는 필요조건 속에서 마약은 하나의 판을 펼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 판에서는 모든 <되기>가 지각할 수 없는 것조차 <필연적으로 지각된 것>으로 되 버린다. 하지만 문제는 환각성인지 아닌지 나 강한지 아닌지 와는 무관하게, 마약 그 자체를 포함한 하나의 집합을 제시한다. “특히 두려웠던 것은 내가 그저 하나의 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인간은 하나의 구체, 여러 광경이 펼쳐지는 가속된 것이 되었다.”p536

모든 마약은 일차적으로 속도 및 속도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마약은 사용 중에는 미친 듯한 빠름을 초래하고, 사용 후에는 엄청난 느림을 초래한다. ① 마약은 지각에 미세한 현상들과 미세한 조작들을 파악할 수 있는 분자적인 역량을 주며, ② 지각된 것에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닌 떠다니는 시간에 따라 가속되거나 감속되는 입자들을 방출하는 힘을 주고, ③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이것임>들을 방출하는 힘을 준다. “성난 기수가 휘두르는 채찍”처럼 하나의 선이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얼굴과 풍경을 찢을 뿐이다. 마약처럼 욕망과 지각이 뒤섞일 때 지각은 온통 리좀작용을 한다.

마약 같은 특수한 인과성의 문제는 중요하다. 어떤 배치물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적, 사회학적 인과성 같은 일반적이거나 외재적인 인과성을 거론함은 의미가 없다. 확실히 어떤 배치물이 인과적 하부 구조(이를 테면 쾌와 불행, 소통의 어려움, 다른데서 유래하는 원인들) 를 포함하는 일은 결코 없다. 배치물은 창조적 인과성 또는 특수한 인과성의 추상적인 선을, 곧 자신의 도주선 또는 탈영토화의 선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이 선의 현실의 인과성과 관련되어 현실화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인과성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마약은 <되기>의 인자처럼 보인다. 여기서 정신 분석은 참조 모델로 여겨질 수 있다. 본질적으로 변용과 관련된 현상에 관해 정신분석은 보통의 사회학적 또는 심리학적 일반성과는 구별되는 고유한 인과성의 도식을 구성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과성의 도식은 <조직의 판>에 종속된 채로 남아 있다. 이 조직의 판이 무의식이다. 이 <무의식의 판>이 초월성의 판으로 남아 정신분석의 존재와 정신분석적 해석의 필연성을 보즈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욕망은 이 판위에서 번역되고 이 판은 거대 그램분자성에 묶여 있다. 그래서 지각할 수 없는 것은 지각된 것과 대립될수록 그만큼 더 지각할 수 없는 것으로 이원적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고른판 또는 내재성의 판에서는 모든 것이 바뀐다. 이 판은 구성되자마자 그 자체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해석되신 실험이 거기엔 자리하고 욕망은 지각 장에 직접 투자된다. 자각 장에서는 지각할 수 없는 것이 욕망 그 자체의 지각개상으로서 “욕망의 비구상성”으로서 나타난다. 이제 무의식은 구성되면서 자신 스스로 나타나는 내재적인 고른판의 과정을 가리킨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이처럼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산되는 것이다. 마약은 내재성과 고른판을 무의식에게 준다.(정신분석은 이런 것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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