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반복> 발제 (272:283)

작성자
pyu
작성일
2019-11-17 08:01
조회
462
문학체계

- 전조는 명목적 동일성이든 동음이의어의 동일성이든 결코 어떤 동일성을 지니지 않고 또 그런 동일성에 의해 움직이지도 않는다. (...) 마찬가지로 동음이의어도 여기서는 한 기표의 명목적 동일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서로 다른 기의들의 문화소로 나타난다. 기의들 사이에 성립하는 유사성의 효과는 이 분화소를 통해 이차적으로 산출된 것이고, 이 점에서 그것은 기표 안에서 생기는 어떤 동일성의 효과와 마찬가지다. (272)

- 단어들의 반복은 어떤 헐벗은 반복, 차이 없는 반복으로 해명될 수 없다. (...) 이 어두운 전조들은 결코 어떤 선행의 동일성에 의존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먼저 원리상 ‘정체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어두운 전조들은 체계 전반 안으로 어떤 최대한의 유사성과 동일성을 유인한다. 그것은 즉자적인 차이 그 자체의 분화에서 비롯되는 결과이다. “에피파니”, 곧 현현(顯現)이라는 것은 체계 안에서, 어두운 전조의 활동에 힘입어, 서로 공명하는 계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태이다. 우주의 확장은 단지 어떤 강요된 운동의 진폭과 더불어 서로 구별될 수 없을 정도로 일체를 이룰 뿐이다. (273)

- 심리적 경험은 언어처럼 구조화되는 것일까? 게다가 물리적 세계는 한 권의 책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을 결정하는 것은 어두운 전조들의 본성에 있다. (274)

- 전조는 자신이 언명하는 사태가 지닌 ‘의미’를 언명하는 것이고, 오로지 그렇게 주장하는 한에서만 타당성을 지닌다. 그런데 재현의 영역을 지배하는 언어 법칙은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 법칙에 따르면, 한 단어의 의미는 오로지 다른 한 단어를 통해서만 언명될 수 있고, 그래서 첫 번째 단어는 이 새로운 단어에 대해 대상의 위치에 놓인다. 따라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역설적 상황이 성립한다. 즉 언어학적 전조는 일종의 메타언어에 속하면서도 첫 번째 단계에 있는 구두적 재현의 계열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오로지 의미가 결여된 단어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 그런 전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후렴(refrain)’이다. (275)

- 각 계열은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가령 라이프니츠는 여러 관점들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다른 복수의 관점에서 하나의 똑같은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구별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기저에 놓인 계열들은 분기하고 발산한다. 하지만 그것은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충분히 어떤 수렴 지점을 찾을 수 있는 상대적 의미의 발산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 의미의 발산이다. 여기서 수렴 지점, 수렴 지평은 어떤 카오스 안에 놓여 있고, 이 카오스 안에서 언제나 자리를 바꾸고 있다. 발산은 긍정의 대상이고, 그와 동시에 이 카오스 자체는 지극히 실증적이다. 카오스는 온-주름운동에 놓인 모든 계열들을 끌어안고 있는 ‘현자의 돌’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 지보(至寶)는 동시적으로 성립하는 모든 계열들을 긍정하는 가운데 복잡하게 얽힌 온-주름으로 만든다. 온-주름운동, 밖-주름운동, 안-주름운동은 삼위일체를 이룬다. (설명, 함축, 복잡화) (276:277)

- 즉 계열들은 언제나 분화소를 통해 공존한다. (...) 현실적으로 매 순간 계속 이어지는 현재나 계열들은 또한 어떤 공존 관계에 있다. 순수과거나 잠재적 대상에 비추어 보면 상징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278)

- 프로이트에게서 제대로 제기되지 못한 문제는 바로 ‘공명의 문제’이다. 두 계열이 어떤 상호주관적인 무의식 안에서 공존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심급이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유년기의 사건은 현실적인 두 계열 중 하나를 형성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두운 전조를 형성하고, 기저의 두 계열은 이 전조를 통해 서로 소통하게 된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알고 있던 어른들의 계열, 그리고 현재 우리가 다른 어른들, 다른 어린아이들과 더불어 속해 있는 섞인 계열이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프루스트적 사건은 사후적 지연을 띠지만, 이 지연 자체는 이전과 이후를 공존하게 만드는 시간의 순수 형식이다. (...) 두 계열이 시간 안에서 계속 이어지기 위한 경험적 조건이 환상 속에서는 두 계열의 공존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279)

- 환상은 어린아이가 어두운 전조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그리고 환상 속에 어떤 근원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계열과 관계하고 있는 어떤 한 계열에 있지 않다. 근원적인 것은 계열들의 차이에 있다. 이는 바로 이 차이를 통해 한 차이들의 계열이 다른 차이들의 계열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고, 그 계열들이 시간 안에서 경험적으로 매 순간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여기서 전혀 고려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계열들은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그런 한에서 그것들은 시간 안에서 매 순간 계속 이어지기 위한 조건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또 계열들은 차이소들로 파악되고, 그런 한에서 한 계열은 원형의 동일성을 향유하는 반면 다른 계열은 모사의 유사성만을 누리게 되는 상황의 조건에서 벗어나 있다. 게다가 이 두 사태는 동시적으로 성립한다. 발산하는 두 이야기가 동시적으로 전개될 때, 그 둘 중의 하나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80)

- 오히려 유사성과 동일성은 어떤 효과들, 곧 체계 안에서 유일하게 근원적인 위치에 있는 바로 그 차이들의 작동방식에서 비롯되는 효과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체계 안에서는 당연히 일차적인 것과 이차적인 것은 물론 근원적인 것과 파생적인 것을 각각 지정할 가능성은 배제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차이야말로 유일한 기원이고, 또 이 차이를 통해 차이소들은 모든 유사성에서 벗어나 서로 관계를 맺는 동시에 공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측면에서 볼 때야 비로소 영원회귀는 이 체계의 바탕 없는 ‘법칙’으로 드러날 것이다.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과 유사한 것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자체가 어떤 순수한 차이의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을 뿐이다. 각각의 계열은 자신을 함축하는 다른 계열들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온다. (...) 영원회귀는 ‘지정 가능한 기원의 부재’ 이외에는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만일 영원회귀가 어떤 기원을 지정하고 있다면, 그 기원은 차이다. 차이나는 것들을 서로 관계 짓는 가운데 그 차이나는 것(들)을 차이나는 것으로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차이, 그것이 기원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원회귀는 어떤 근원적인 차이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종합적인 차이, 곧 (니체가 힘의 의지라고 불렀던) 차이의 즉자 존재에서 비롯되는 귀결이다. (280:281)

- 영원회귀의 주체는 같은 것이 아니라 차이나는 것이고, 유사한 것이 아니라 유사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주체는 일자가 아니라 다자이고,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이다. 게다가 영원회귀 안의 반복은 어떤 파괴를 함축한다. (디오니소스적 주신제의 의식과 몰아?) 영원회귀는 자신의 작동방식을 방해하는 모든 형상들을 파괴한다. (282)

- 동일한 것과 유사한 것은 영원회귀 자체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영원회귀에 앞서 미리존재하지 않는다. 즉 돌아오는 것은 동일한 것도 유사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영원회귀 자체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유일하게 같은 것이자 유일하게 유사한 것이다. (...) 동일한 것은, 차이 짓는 가운데 차이나는 것으로 남아 있는 어떤 것을 통해 언명된다. 영원회귀는 차이나는 것의 같음이고, 다자의 일자이며, 비유사화 요소의 유사성이다. 영원회귀는 위에서 언급한 가상의 원천이다. 하지만 영원회귀가 그 가상을 분망하고 보존한다면, 이는 오로지 그 가상을 즐겁게 향유하기 위함이고 또 자신의 고유한 시각의 효과인 양 그 안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기 위함이지만, 영원회귀는 결코 그 옆의 오류 속으로 빠져들지 않는다.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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