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다니엘 부어스틴, 『이미지와 환상』 6장 325-354쪽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8-12-22 10:53
조회
706
<6장 미국의 꿈이 미국의 환상으로>

발제자 - etranger


이상을 압도하는 이미지

미국은 유럽 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에게 꿈의 땅이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무장한 청교도부터 노예예찬론자 같은 사람들까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산업의 발전과 그래픽 혁명으로 전례 없는 풍족함이 주어지면서, 미국 사람들은 환상을 현실과 혼동하기 시작했다. 부어스틴은 전 세계가 이데올로기, 빈곤, 질병, 문맹, 독재에 시달리지만, 미국은 꿈을 환상으로 바꾸는 비현실성(unreality)에 시달리며, 그로인해 미국인들의 ‘야망’이 규격화된 이미지나 환상으로 대체되는 것을 우려한다. 또한 이제까지 공산주의의 위협을 ‘미국의 꿈’을 펼쳐 보이며 극복했다는 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매카시즘의 영향과 부어스틴의 반공주의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부어스틴은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 포장이 오히려 해를 불러온다고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미국의 진정한 ‘이상’을 알기 전, 부와 기술, 영화를 통해 단순하고 애매모호한 이미지들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적이라 할 수 있는 공산국가들은 ‘완벽한 세상’을 향한 이상을 매력적으로 전달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상’으로 시작한 미국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물질주의자’로 판단되고, 유물론적 사관을 가진 소련이 ‘이념주의자’로 불리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물질주의’에 대한 부어스틴의 다음과 같은 인식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다소간 물질에 무덤덤한 편이다.”, “우리가 헌신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이미지이지 물질이 아니다. 이런 점을 혼동하는 세계 사람들은 미국을 물질주의자라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옛날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우리를 악마라도 부른다.”

방향이 없는 시대

부어스틴은 자신의 시대를 ‘간접적 방향의 시대’라고 지칭한다. 생활과 경험의 간접성이란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고, 찾고, 즐기는 허구와 환상의 세계이다. 우리는 인생을 경험이 아니라 ‘경험의 이미지’로 채우기 때문이다. 앞선 장에서 부어스틴은 고안된 광고의 모호성, 이미지와 이미지화된 대상과의 불확실성이 우리의 언어사용 습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일상 대화 중 그 무엇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그 무엇의 입장에서’, ‘이것 또는 저것’과 같은 모호함이 그렇다. 부어스틴은 직접적인 표현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달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우회적인 어법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편 애매모호한 인식은 태도에까지 나아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 대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접촉한다.’ 그리고 문제를 지루하게 토론하는 대신 그 문제를 아예 ‘정책적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나르키소스 벗어나기

신들은 나르키소스에게 자기 자신의 이미지와 평생 사랑에 빠지는 운명을 벌로 내렸다. 만약 그때 TV가 있었다면, 나르키소스는 TV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부어스틴은 개인으로서의 우리와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나르키소스처럼 이미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비유한다. 그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우리를 속였다고 비난대상으로 삼고 있는 ‘가짜 악인’과 우리를 해방시켜줄 거라 기대했던 ‘가짜 영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대상들은 외부에 있지 않고 우리 내면에 있다. 우리를 억압한 사람도 우리이고 우리를 해방시킬 사람도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병을 진정으로 고치기 위해선 우리가 병을 ‘고칠’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철저히 인식한 채, 우리 병이 무엇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길을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 희망은 날마다 함께 살고 있는 이미지 정글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꿈이 끝나는 곳과 환상이 시작하는 곳을 발견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고,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

나가며

이 장은 다른 장들에 비해 부어스틴의 주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과도한 미국 중심주의와 이상화는 불편함을 안겨줬다. 그는 초창기 미국의 ‘자유’, ‘이상’, ‘평등’을 말하지만, 인디언, 버펄로 학살과 침략으로 인한 영토 강탈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다소간 물질에 무덤덤한 편이다.”와 같은 대목은 기만으로 여겨졌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이데올로기, 빈곤, 질병, 문맹, 독재에 시달리게 된 것은 강대국들의 대립과 수탈 때문이 아닌가? 그래픽혁명으로 인한 이미지의 발달이 이상적이고 선한 미국을 변질시켰다는 인식 앞에서, 이면에 숨겨진 구조의 부조리를 은폐시키는 방어 기제가 느껴졌다. 소련과 이분법적으로 대비해 미국을 단순한 ‘선’의 위치에 놓고, 이미지를 비판하는 그의 ‘이상’도 실은 전형적인 국가관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이미지 사회’를 분석한 그 수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쉽게 삼킬 수만 없었던 한 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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