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버타리아트 | 어슐러 휴즈 지음 | 신기섭 옮김 | 갈무리 | 2004.4.19

카이로스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18-03-10 16:58
조회
567


『싸이버타리아트 : 전 지구적 정보화 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

The Making of a Cybertariat

왜 오늘날 전 세계의 여성들은 자동세탁기와 전자레인지를 쓰면서도 이런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던 자신의 할머니보다 더 오랫동안 가사노동에 매달려야 하는가? 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여성들은 신비의 기계인 컴퓨터 칩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을 굶겨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가?

지은이 어슐러 휴즈 | 옮긴이 신기섭 | 정가 12,000원 | 쪽수 296쪽
출판일 2004년 04월 19일 | 판형 변형신국판(145*215) | 도서 상태 초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Potentia, 카이로스 총서 2
ISBN 89-86114-65-8 | 보도자료 싸이버타리아트보도자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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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자 어슐러 휴즈가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석한 책!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주장과는 달리, 상품의 세계화와 정보화가 노동의 확대와 강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책!

여성의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착취의 비밀임을 자세한 통계자료와 저자 자신의 직접 경험을 통해 밝히고 있는 책!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가 읽을 필요가 있는 신선하면서도 따뜻한 책!


『싸이버타리아트』 소개

‘노동의 종말’인가? ‘싸이버타리아트의 형성’인가?

정보화 시대에 정말로 노동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전 세계 노동력의 감소와 탈 시장의 도래’를 예견하였다. 정보통신 기술의 등장으로 인간의 노동이 생산과정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제거되고 있다면서 말이다. 상품생산에 참여하는 이들만을 ‘진짜 노동자’로 보는 남성 노동자의 시각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남성 노동자들은 대량 실업에 직면하고 있으며 고통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 하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여성들에게 새로운 저임금의 일자리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정보화를 통한 가사노동의 상품화가 바로 그 여성들로 하여금 광범위한 무보수 소비노동을 부담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오랜 비정규직 여성 노동 경험을 가진 저자 어슐러 휴즈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이면에는 시장에 포섭되지 않았던 가사노동을 상품화하는 과정이 놓여있음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가사노동의 상품화는 새로운 상품 제조나 새로운 서비스 제공을 위해 창출된 새 일자리를 여성들이 채우도록 한다. 자본은 항상 값싼 노동력을 찾고 더욱이 새롭게 창출된 상품이 바로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상품화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하면서도 그것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추진력이자 동시에 오늘날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 뿌리이다.

휴즈는 그의 독특한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의 분석방법으로 상품의 세계화와 정보화가 동시에 가져오는 노동의 비정규직화, 가정의 일터화를 추적한다. 그녀가 30여년에 걸친 끈기 있는 탐구를 통해 밝히고자 한 한 가지 문제는 가정과 일터의 구분이 사라져버리고, 상품생산노동과 서비스노동, 무보수 가사노동, 무보수 소비노동의 관계가 빠르게 변환되는 것은 정보기술과 같은 신기술의 도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휴즈는,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는 과거 가정에서 보수 없이 이뤄지던 재생산 서비스 활동들을 점진적으로 화폐경제 속에 흡수하여 상품화하는 과정에 다름이 아니라는 일반적 결론을 도출한다. 이제 노동은 가정과 공장이라는 분리된 특정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될 잠재성을 지니고 삶의 전 부면에 걸쳐 확장된다. 그 결과 전 지구적 싸이버 시대에 새로운 유형의 프롤레타리아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들은 여성 노동자, 사무 노동자, 정보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 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휴즈는 정보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의미하는 조어(造語)인 싸이버타리아트(Cybertariat)라는 이름을 붙인다.


편집부 서평
: 신선한 충격 -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이 폭로하는 정보화의 감춰진 상처

‘나’를 서술주체로 복원시키는 탈학술적-여성적 글쓰기의 힘

이 책은 시종일관 상품화 과정의 야만성을 드러내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신선한 자극을 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어슐러 휴즈가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을 자신의 체험을 담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즈는 제도학문이 지금까지 ‘학술’이라는 명목하에 ‘나’라는 일인칭 주어를 글쓰기에서 추방해 왔다고 비판한다. 한국에서 학위과정을 밟는 모든 사람들도 휴즈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추방을 경험해 본 바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 추방되었던 일인칭 주어 ‘나’를 정치경제학의 서술주체로 복권시킴으로써 독자를 저자와의 친밀한 대화 속으로 안내한다. 이 책이 신선하면서도 따뜻한 이유는 이 같은 체험적 글쓰기, 여성적 글쓰기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이 책에서는 개인적 경험과 사회운동 과정, 현장 조사 결과 등 경험적인 자료와 맑스주의 이론이 끊임없이 대립하고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화해를 시도하고 그러면서도 긴장을 유지한다. 이것은 어슐러 휴즈 자신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불안하기 그지없는 프리랜서 연구자이고, 현장에 머문 여성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이기 때문이며,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는 ‘강단 좌파’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성성이 휴즈로 하여금 현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새로운 상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왜 정보화와 자동화가 (여성을 고려하고 보면) 대량 실업 사태를 유발하지 않는지, 왜 ‘지식 기반 경제’ 또는 ‘무게 없는 경제’는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소비 증가와 관계가 있는지, 왜 수고를 덜어주는 기기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여가시간을 주지 못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며 기존의 정치경제학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숨겨져 온 비밀, 가사노동의 상품화

이 책이 「신기술과 가사노동」으로 시작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신기술과 가사노동」의 요지는 신기술들이 가사노동을 상품화하는 경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좀더 읽어보면 신기술이 생산의 자동화를 가져오고 생산의 자동화는 대량 실업을 유발하므로 자본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미처 살피지 못한 측면이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기술혁신이 상당수의 노동자를 극심한 실업과 빈곤으로 내몬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변화의 물결도 경제 전반에 영구적인 대량 실업 사태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기존의 상품을 더 적은 인원을 동원해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동시에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신규 산업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신규 산업의 핵심이 가사노동의 영역, 살림살이의 영역이라는 것이 휴즈가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다. 휴즈는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새로운 상품화의 원동력이며, 가사노동을 대체하는 상품을 대량 생산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무보수 서비스 노동의 상품화가 노동의 성격과 형태를 변형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250년 동안의 제조업 역사는 거칠게 말하면 가정에서 돈 받지 않고 하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앗아서 시장에 넘겨주는 역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시장으로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돈벌이를 위한 일거리가 되고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환을 위한 게 된다. 이 과정은 가사노동의 사회화로 표현된다.” (40쪽)

휴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전통적인 여성의 가사일이 자본에 의해 끊임없이 상품화하는 과정 속에 현대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일을 처음에 돈 받고 대신 해주는 서비스로 상품화하고 마지막에는 이를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산품 판매로 대체한다. 이 과정에는 셀프서비스형 은행 업무나 쇼핑노동, 그리고 가사기계의 관리노동 같이 주로 여성이 치러야 하는 무보수의 노동이 뒤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가사노동의 공산품화는 기계화와 정보화로 인한 나머지 일거리를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어느 단계에서건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여성들로 하여금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화에 저항하기, 그리고 재생산수단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

휴즈에 따르면 가사노동의 사회화, 상품화는 완료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휴즈는 상품화에 맞설 것을 주장한다.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새로운 노동양식과 소비양식을 창출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도록 가사노동의 사회화에 대한 통제권의 확보가 필요함을 제기한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자본주의의 대안을 구성했던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뿐 아니라 재생산 수단에 대한 통제권이 동시에 요구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휴즈의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이 보여주는 놀라움은 정보화의 감춰진 상처를 폭로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동 세탁기와 전자레인지를 쓰면서도 이런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던 자신의 할머니보다 더 오랫동안 가사에 매달리는 미국 밀워키나 영국 월버햄턴의 주부를,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컴퓨터 칩을 만들면서 극도의 착취를 당하는 말레이시아 여성의 상황과 연결시키며, 생산과 재생산 모든 영역에서 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 여성의 상황이라고 해서 이와 다른가?

이 책에서 어슐러 휴즈는, 상품의 세계화와 노동의 정보화가 낳는 노동의 단순화와 비정규직화, 하청, 공장의 해외이전, 노동자 통제의 강화, 소비자에 대한 소비 노동의 전가, 젠더(성)적 노동 분업 관계, 무보수 가사노동, 고독과 고립, 공공 공간의 잠식, 노동계급의 해체와 재형성, 노동과 휴식의 경계 문제 등을 여성주의의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서 체험적 호소력을 담아 감동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싸이버타리아트』의 특징

1) 이 책은 여성의 정치경제학을, 가정의 정치경제학을 신선하게 제기한다.

해리 브레이버만이 탁월한 저서 『노동과 독점자본』에서 논했던 방식, 즉 기술의 발전이 공장에 끼친 영향은 노동자의 숙련기술과 지식을 빼앗아 기계로 대체하면서 단순반복 노동에 종사하게 만든다는 공장노동 분석을 어슐러 휴즈는 가사노동에까지 확장시킨다. 즉 살림살이용 기술의 발전이 가사노동의 숙련성을 빼앗아 상품으로 대체하면서 여성들은 단순반복 무보수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휴즈에 따르면 이것은 노동의 젠더(성)적 분업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일과 서비스업 활동의 상품화가 진행될수록,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기는커녕 가사노동이 스트레스 쌓이는 고된 일로 바뀌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공장노동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난다. 자동화의 물결이 몰아칠 때마다 숙련기술이 줄어들고 일의 만족도는 떨어진다. 정보기술의 발전도 넓은 영역의 서비스 업종을 상품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단순히 새로운 제조 업종을 창출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공장의 사회관계 일부를 사무실, 상점, 병원, 은행에까지 퍼뜨린다. 노동의 파편화와 기계가 작업 속도를 결정하는 환경은 이제 일부 서비스 업종의 고유한 특징이 된 지경이다.” (107쪽)

2) 여성운동이 취해온 ‘가사노동의 사회화’론에 대한 비판

또한 휴즈는, 여성주의자들이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근본적인 목표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러한 목표설정은 여성이 ‘힘든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남성들과 대등하게 되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이자 여성이 날로 확대되는 노동계급의 온전한 구성원이 되면 사유재산과 여성에 대한 억압이 사라지는 사회주의 사회가 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휴즈는 이러한 목표설정이 역사의 시험을 견디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오늘날의 여성들이 ‘가사노동의 사회화’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간을 무보수 가사노동에 들여야 함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휴즈는 ‘가사노동의 사회화’ 즉 상품화 자체가 여성을 결코 해방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정용 기기와 가사용 화학물질, 빠른 교통수단과 기타 ‘노동 절약형’ 상품들이 전례 없이 많이 넘쳐나는 20세기에 가정 일에 들이는 시간은 실제로 늘어났다... 서비스를 상품이 대체하는 건, 새로운 방식의 무보수 ‘소비’ 노동을 만드는 결과를 빚었다. 이는 과거에는 임금을 받고 고용되어서 하던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을 탈사회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상점에서 나타나는 걸 보면 그전에는 임금을 받는 점원이 하던 물건 고르기, 옮기기, 무게달기, 포장하기,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기 같은 일들을 이제는 소비자가 떠맡는다. 셀프서비스는 주유소, 현금 인출, 카페테리아 같은 서비스업에서 이제 전형이 됐다.”(102쪽)

따라서 이 책은 전기밥솥과 같은 살림살이용 기술이 발전함에도 비정규직 노동과 가사노동으로 더욱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편리한 기계들을 부리고 살면서 여성들은 아직도 웬 불만이 저렇게 많을까?’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도 분명히 삶의 중요한 영감과 지혜를 제공할 것이다.

"가사노동의 사회화 자체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곧 억압적이고 소외를 유발하는 노동 상황에서 해방됨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노동자들이 해방을 위해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한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억압적이고 소외를 유발하는 가사노동 상황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소비수단과 서비스에 대한 어떤 방식이든 통제권한을 요구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자본이 우리의 생활 영역을 점점 더 자신의 통제 범위 안으로 포섭하는 도구이다. 단지 생산 지점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지점에서 통제권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억압이 계속 강화되기만 할 것이다."(52~3쪽)

3) 이 책은 사무 노동자, 화이트칼라 프롤레타리아, 서비스 계급, 정보 노동자로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형성되고 있는 노동계급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시도한다.

어슐러 휴즈는, 노동의 비물질화 경향과, 경제성장을 동반하지 않는 생산성의 역설, 세계화로 지지되는 ‘거리의 사멸’ ‘무게 없는 경제’ ‘접속된 경제’ ‘디지털 경제’ ‘지식 기반 경제’ 등등 신경제의 신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전자혁명과 정보혁명이 가져오는 싸이버 공간을 재구조화하고 이 가상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세계를 드러나 보이게 하면서 고용의 성격과 노동자로서의 삶의 모습이 바뀌고 있음을 추적한다. 그것의 결론은 상품의 세계화와 정보화가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치며 초래하는 대량 실업과 그 맞은편에서 창출되고 있는 노동의 새로운 형태, 즉 가상 노동과 진짜 세상을 연결하는 세계화한 싸이버타리아트의 형성이다.

최근에 작업을 하면서 텔리매틱스(telematics, 통신+정보과학)와 관련된 일들을 어떻게 이름 지을지 하는 아주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전통적인 이름들은 만족스럽지 않다. ‘화이트칼라’는 이미 1950년대에 전형적인 모습을 상실한 남성 사무직 노동자를 특별히 지칭하는 것이다. ‘비육체노동’이라는 말은 하루 종일 자판을 두드리는 물리적 현실을 무시한다. ‘사무(실) 노동’은 특정한 위치와 연결되어 있지만, 최근의 발전 양상은 이런 일들을 (굳이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신조어 대부분은 상황이 이보다 더 못하다. ‘원격 통근자’(Telecommuter)라는 말은 단지 어떤 장소(도심의 사무실)를 다른 장소(가정)로 대체한 사람을 지칭할 뿐이다. ‘원격 노동자’(Teleworker)는 일자리를 이미 옮긴이들에만 한정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일이 특정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될 잠재성을 지닌 노동계급 전체에 적용될 수 없는 말이다.(231~2쪽)

4) 아이를 죽여 가며 일해야 하는 여성 철도노동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소금>을 방불케 하는 책

이 땅의 노동자들, 특히 노동자 중에서도 더 소외된 여성 노동자들은 꼭 필요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금’과 같다.

어슐러 휴즈는, 1970년대 이후 작업장 내 건강, 특히 여성의 건강과 안정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 6장 「작업장 내 여성 건강」에서 여성 노동자의 삶을 세밀하게 다룬다. 휴즈는 일터에서의 경험은 결국 몸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논한다.

“신규 산업의 저임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무보수 가사 노동자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초과 착취를 당하는 임금 노동자로서, 신기술이 끼치는 최악의 영향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모든 여성,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임금 노동자의 조건도 따라서 악화될 것이다.” (54쪽)

“임금노동이 여성의 행복한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또는 의학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질병 이외에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불편함, 긴장, 불행감을 포함한 나쁜 상태를 유발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현재의 안전 기준이 노동자를 젊고 튼튼한 백인 남성으로 전제하고 마련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화학물질 노출치 검사는 보통 해병대에서 ‘자원자’를 받아 실시한다.) 이런 기준치는 몸집이 더 작은이들과 늙거나 장애 때문에 영향을 더 심하게 받을 수 있는 이들을 위험에 빠뜨린다.”(116~7쪽)
영어판 추천사

어떤 독창적 정신에 의해 사회과학에 하나의 신선한 자극이 주어지는 순간은 찬양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슐러 휴즈의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을 폭넓은 대중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러한 순간이다.
- 콜린 레이스, 퀸스 대학 명예 교수

이 책은 예리한 이론적 독창성을 가지고 노동과 기술의 변형에 대해 설명한다. 어슐러 휴즈는 매우 실천적인 이해에 기초한 명석함을 가지고 현존하는 추상적 모델들을 관통해 내는 드문 능력을 갖고 있다. 『싸이버타리아트』의 함축은 미래를 위한 급진적 전략을 사고함에 있어서 드넓은 영향을 미친다.
- 실러 로버샘, 영국 맨체스터 대학 교수

어슐러 휴즈는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삶에 대한 분석가로서는 비길 데가 없다. 그녀의 지식과 경험의 범위는 놀랄만하다. … 미시전자 기술 속에서 혁명을 이해하는 그녀의 능력과 그것을 노동의 변형에, 젠더와 계급의 재구조화에, 그리고 사회적 삶의 모든 부면의 상품화에 연결하는 그녀의 능력은 최상의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이것은 진실로 교육적인 경험일 뿐만 아니라 참으로 즐거운 경험이다.
- 리오 파니치, 요크 대학 연구 교수

휴즈는 신화를 해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면도날처럼 예리한 분석과 위트를 가지고 말이다.
- 죠언 그린봄, 라카르디아 공동체 대학 교수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어슐러 휴즈(Ursula Huws)는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노동 세상 연구소(Working Lives Research Institute)의 국제 노동 연구학 교수이다. 그는 또 연구 자문기관인 어낼리티카(www.analytica.org.uk) 의 소장이며 1970년대 이후 노동과 기술에 관한 평론을 해왔다.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캐나다의 연간 학술지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미국의 월간지 『제트 매거진』, 영국의 『뉴 스테이트먼』 등에 글을 썼다.

옮긴이
신기섭(Shin Ki Sup, 1964~)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그해 3월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하였다. 한겨레신문사에서는 편집부와 생활과학부, 경제부, 사회부를 거쳐 현재는 여론매체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로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당대, 2000), 『복권의 역사』(필맥, 2003)가 있다.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 서문 : 세계화와 싸이버타리아트

경제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결합은 폭발적인 것이었다. 20세기 말에 이 둘의 결합이 상업 서비스 영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전 세계적 노동 분업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디지털화한 정보를 처리해서 통신망을 통해 전송하는 업무는 이제 원론적으로 볼 때, 적정한 통신 기반시설과 관련 숙련기술을 지닌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라면 세계 그 어디로도 옮겨 갈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착취 대상 영역을 찾는 건 물론 새로울 게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그 무엇보다도) 개도국을 그전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새 노동력한테서 잉여가치를 착취할 지역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만든 상품을 팔아먹을 새 시장으로 만드는 과정의 역사다. 하지만 20세기의 마지막 4반세기까지는, 이런 과정에 물리적인 추출 작업 또는 물질적인 상품생산과 무관한 활동이 관여한 적은 거의 없었다. 유럽과 미국의 노동자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옮겨 가는 ‘일자리의 해외 도피’를 논하고 있을 때, 그들이 염두에 둔 일은 보통 생산직 일자리였다.

정보의 디지털화는 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그전에는 본사 관리 업무에 통합되어 있던 다양한 영역의 많은 작업들이 이제는 원격으로 감시, 통제할 수 있는 표준적인 과정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 때문에 이런 작업을 조직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됐다. 가치 사슬이 훨씬 길고 정교해졌다. 한편, 노동과정은 훨씬 더 규격화됐고 외부의 감시 밑에 놓이게 됐다.

똑같은 화면 앞에 앉아서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똑같은 세계 언어를 쓰며 직접적으로 또는 (하청 업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동일한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에 이른다. 효율 또는 품질 관리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작업을 빨리, 효과적으로 완수하라는 똑같은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 결과 그들은 똑같은 육체적 고통, 두통과 어깨통증, 손목통증과 피곤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꼭 필요한 일을 빼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에 지쳐서 텔레비전 앞에 주저앉게 된다. 그래서 가족들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 또한 전 세계적으로 똑같다.

2000년 여러 나라의 동료들과 함께 나는 통신망을 활용한 ‘사무 노동’의 이전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유럽 고용주들의 거의 절반이 적어도 한 가지 기능을 멀리 떨어진 지역에 하청을 주고 있었고 전체의 6%는 이미 해외 하청을 하고 있는 게 확인됐다. 이어 우리는 유럽,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미의 일자리 이전에 대한 자세한 사례 연구를 실시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04년 1월 현재, 21세기에 접어든 지 3년 만에 이 양상은 전혀 새로운 단계로 바뀐 상태다. 유럽과 미국의 언론들은,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아시아로 옮겨 가는 것에 대해 지독한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아시아를 세계의 후처리 업무 사무실(백오피스)로 묘사하고, 전 세계 모든 개도국을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이며 저임 노동의 착취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자리의 이동 현상은 실험적 단계에서 정리단계로 옮겨 가고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일부 중견기업조차, 원격 공급업자를 활용하는 건 일상 업무 활동의 한 부분이 됐다. 기업구조는 날로 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또 공급업자 및 원격지 지사와의 업무 관계는 일자리를 점점 더 안전하게 이전하는 걸 보장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 과정은 일정한 규모에 도달하기만 하면, 경쟁 압력에 의해 급속히 확산된다. 일거리의 이전은 한번의 일시적 ‘도약’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다. 일을 발주하는 ‘모 기업’과 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장소의 관계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중간에 몇몇 매개체들이 존재하는 일이 잦고, 이들 매개체는 다른 지역, 다른 나라, 심지어 다른 대륙에 위치할 수도 있다. 노동의 이전이 단순한 업무 인계 형태로 나타나는 건 드문 일이다. 이보다는, 상당한 기간 준비를 하거나 훈련을 시킨 뒤에 한 번에 하나씩 이전된다.

보통 외부 하청은 거대하고 힘있는 조직이 작고 힘없는 쪽에 일을 넘기며, 이 거래의 조건은 수요 쪽의 요구에 맞춰진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업무 대행 시장에서 주요한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더 이상 상황이 꼭 이렇지만은 않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업무 하청이나 업무 이전의 동기가 하청 업체 쪽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들이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보고 공세적으로 공략하는 분야가 공공 서비스 부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시민들에게 사용가치를 제공하던 공공 서비스는 이윤을 위해 대량 생산되는 상품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EDS, 어센츄어, 캡 제미니 같은) 거대 업무 대행 업체들이 하청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지라도, 이들이 꼭 모든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건 아니다. 이들 기업은 보통 전 세계 어디에 위치하든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하청 업체들의 사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아주 변덕스럽고 불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기업들은 계속 업무를 따내기 위해 입찰 경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날로 정교한 비용 절감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 고용이 지역별로 자리 잡는 현상은 아주 모순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한편으로, 각 지역이 특정한 업무를 유치하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날로 심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틈새 시장을 추구하는 방식이 장려된다. 특정 지역이나 도시는 (인도의 방갈로르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특화되었듯이)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성과나 저임금을 이용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 전 세계를 상대로 고객을 유치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들은 완전히 배제된다. 이런 현상은 지역간 양극화를 부추기며 어떤 때는 ‘승자가 모든 걸 얻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다른 한편, 경쟁 심화는 자본이 비용이 싼 지역을 지속적으로 찾아다니는 걸 의미한다. 불안함도 계약 관계를 따라서 하청 업체로 계속 전가돼 내려간다. 일자리가 단지 유럽과 북미, 기타 선진국에서 아시아로 옮겨 가는 것뿐 아니라 아시아 안에서도 계속 변덕스럽게 옮겨 다닌다. 이 과정은 부분적으로는 (거대 유럽 및 미국 기업들의 지역 개편과 하청 관계 개편 방식을 모델로 삼는) 아시아 기업들의 자발적인 조직개편 작업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업무 대행 하청 업체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가치 사슬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는 동시에 위치 상승을 꾀하는 것에서 이런 현상이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인도 기업들은 스리랑카 같이 비용이 싼 다른 지역에 재하청을 주고, 싱가포르나 홍콩의 기업들은 중국을 후처리 업무용 사무실로 쓰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경우 이 과정은 경쟁력 있는 몇몇 아시아 지역에 지사를 세우고 사업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주도한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업무의 하청 ‘대상 지역’인 동시에 비용이 싼 다른 지역에 하청을 주는 ‘업무 제공자’ 구실을 한다.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처럼, 한국도 세계적 규모의 복잡한 정보처리 업무 거래망의 한 접속점으로 자본이 자리 잡는 지역이 됐다.

이런 전 세계적인 가치 사슬에서 작은 기업들이 차지하는 불안한 지위와 거대기업에 밀리는 상황은 노동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데 핑곗거리로 작용한다.

때때로 외부하청 전략은 의도적으로 노동자들을 줄 세우는 데 이용된다. 예컨대, 한 기업이 특정한 업무를 한동안 외부에 맡긴 뒤에 업무가 완수되면 다시 일을 가져오되, 이때는 그 전에 있던 노조와의 협약을 배제하고 그 전에 일 하던 이들이 아닌 이들을 고용해 다른 조건으로 일을 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일을 외부로 옮겨 갈 가능성조차도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하와 노동 조건 악화를 인정하도록 압박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미국 보스턴의 한 기업이 정보기술 관련 부서 일부를 인도로 옮기겠다고 했다가 지역의 반발에 부닥치자 그 지역에서 구인 광고를 하기로 했다. 다만 임금은 (미국의 5분의 1인) 인도 수준으로 정했다. 들리는 말로는 필요한 인원을 모두 구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업을 한 뒤 통신망을 이용해 전송할 수 있는 능력은 안정된 조직에서도 고용을 비정규직화하는 데 이용될지 모른다. 예를 들어, 콜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수요가 많아지면 곧바로 연락해 일을 시킬 수 있는 ‘전화 대기자’들이다. 또 다른 이들은 사무실에는 결코 오지 않고 자기 집이나 외부의 하청 콜 센터에서 일한다. 본사의 처리 능력 이상으로 전화가 오면 통화가 이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대규모 서류 처리 및 데이터 입력 회사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많이 쓴다. 아니면 처리 규모 이상의 일을 작은 하청 업체에게 넘기기도 한다. 이렇게 일을 받는 하청 업체로서는 업무 처리 규모를 예상할 수 없고 그래서 하청 업체 직원들도 계약직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들이 ‘발주처’와 ‘위치’ 두 가지 측면의 불안정에 직면하는 상황, 또 전통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던 육체노동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노동에서도 불안정이 나타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여전히 이런 노동자 대부분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그들은 다국적 기업 직원이거나,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 또는 하청 업체 직원이다. 그들은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로서 새로운 통신기술을 접한다. 그들의 삶은 이 두 측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품화 과정 때문에 변화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왜 조직화를 시도하지 않는가? 답은 단순하지 않으며 모순적인 동시에 많은 측면을 담고 있다.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시도하는 걸 보여주는 징표들이 있다. 새로운 종류의 노조 조직이 미국의 정보기술 노동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또 유럽 국가들과 브라질 같은 개도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도 콜 센터 노동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단지 한 국가 차원에서만 진행되고 있으며, 때때로 국제 연대를 촉진하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보호무역주의적 요구를 제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국제적 조직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강력하다. 다국적 사업 부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나라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때때로 자신들을 중산층으로 여기면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창업 또는 관리자로 승진하는 발판으로 여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가 지구 반대편에서 우연히 자신과 같은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기 보다는 자국 내 부르주아와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들은 또한 이런 변화 과정이 자기 나라와 자기가 사는 지역에 유리하며 자신들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도 혜택을 본다고 강하게 확신할지도 모르겠다. 일이 힘들고 불만족스럽다고 할지라도, 현지 기업에 고용되는 것보다는 임금이 높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왜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또 하나, 더 배신적인 장벽은 유럽과 미국 문화 속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다. 인도의 콜 센터 노동자들은 종종 아주 심한 욕설의 전화를 받으며,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 아프리카 이주민들도 종종 무례와 차별을 겪는다. 인종주의가 노골적이지 않을 때조차, 북쪽 노동자들에게는 남쪽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데 활용되는 저임금노동의 희생자들이며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인 조직화를 시도할 능력이 없는 이들로 보는 경향이 여전하다.

이제 세계화한 싸이버타리아트가 존재한다. 여기에 속하는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치려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 이 책이 이런 상호이해의 과정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역자 서문

이 책은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교수이자 좌파 여성주의자인 어슐러 휴즈의 The Making of A Cybertariat:virtual work in a real world (Monthly Review Press, 2003)를 완역한 것이다.
역자는 평소 미국 좌파 월간지 『먼슬리 리뷰』의 인터넷 사이트(http://www.monthlyreview.org)를 즐겨 찾는데, 지난해 8월말께 이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이 책이 나온 사실을 알게 됐다. 제목이 흥미로워, 목차를 대강 훑어봤는데 목차는 생각보다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얼마 뒤 갈무리 출판사로부터 번역할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바로 이 책을 떠올렸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역자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 책을 추천한 것은 사실 출판사 때문이었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기 전까지 단 두 권을 번역한 바 있는데, 공교롭게 모두 먼슬리 리뷰 출판부에서 나온 책들이었다. 두 권을 번역하면서 이 출판사의 책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됐다. 그리고 이 책도 이런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가 아니라, 번역 과정 내내 이 책을 알게 된 것이 큰 행운이자 기쁨이라고 느꼈다. 이 책은 여느 사회과학 서적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먼저 저자는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는 ‘강단 좌파’가 아니다. 그 자신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불안하기 그지없는 프리랜서 연구자이고, 현장에 머문 여성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이다. 글의 내용 또한 개인적 경험과 사회운동 과정, 현장 조사 결과 등 경험적인 자료와 맑스주의 이론이 끊임없이 대립하고 마찰을 일으키고 화해를 시도하면서도 긴장을 유지한다. 이 와중에 저자는 단 한순간도 자만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불안해한다.

긴장과 대립, 불안은 그의 삶을 그대로 닮은 것 같다. 지난해 11월 말께 한국어판 서문을 부탁하기 위해 그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는데 단 하루 만에 답장이 왔다. 12월 중순까지 현장 조사를 위해 유럽과 캐나다 등 외국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12월 하순께나 글을 써서 보내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동료 연구자가 ‘사고’를 쳤다는 것이었다. 연말까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 연구 보고서가 전혀 진척이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애초 약속된 돈을 받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성탄절 휴가도 포기하고 꼬박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물론 역자도 똑같은 처지였지만. 그는 비록 약속한 마감시간을 넘겼으나 역자의 갖가지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해주었고, 그의 열의 덕분에 한국어판에는 실수로 영어판에 빠진 각 글의 원래 출처까지 넣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서두에 발문을 쓴 캐나다 연간 학술지 『소셜리스트 레지스터』의 편집인 콜린 레이스의 말처럼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의 손끝에서 노동, 특히 여성의 노동과 과학기술, 자본주의 사이의 감춰진 관계가 명쾌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폭로된다. 이 작품이 번역자의 무딘 솜씨 때문에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건 아닐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명쾌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번역자의 잘못일 것이다.

2004년 3월
신기섭


『싸이버타리아트』 목차

감사의 말 5
콜린 레이스의 발문 11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 서문 17
영어판 서문 25

1장 신기술과 가사노동 39
2장 살림용 기술 : 해방자인가 속박자인가 55
3장 말단의 고립 : 망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노동과 여가의 원자화 65
4장 전 세계로 확대된 사무실 : 정보기술과 사무직 노동의 재배치 85
5장 상품화에 맞서기 : 공장 밖에서의 유용성 창출 93
6장 작업장 내 여성 건강 115
7장 재택근무 : 전망들 129
8장 집단적 꿈의 쇠락 : 여성과 기술에 관한 연구 20년 반성 153
9장 물질세계 : 무게 없는 경제의 신화 189
10장 싸이버타리아트의 형성 : 진짜 세상의 가상 노동 229
11장 누가 기다리고 있는가? : 시간 논쟁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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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종말 | 토마스 F. 폴릭 지음 | 황성원 옮김 | 200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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