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반복 85쪽~94쪽 발제

작성자
youn
작성일
2019-09-29 00:56
조회
601
다지원 들뢰즈와의 마주침 발제/ 2019년 9월 29일/ 발제자: YOUN
텍스트: 질 들뢰즈,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민음사 85쪽~94쪽

1. 차이 그 자체

1절 차이와 어두운 바탕

무차별성은 두 측면을 지닌다. 한 쪽에서 보면 그것은 분화되지 않은 심연, 검은 무,규정되지 않는 동물이다. 다른 한쪽에서 보면 그것은 또한 흰 무,다시 고요해진 표면이다.(85쪽)

차이는 이 두 극단의 중간자에 해당하는 것일까? 혹은 차이는 유일한 극단, 현전과 정확성의 유일한 계기가 아닐까? 차이는 본래적 규정에 대해 말할수 있는 그런 상태이다.(85쪽~86쪽)

그러나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사물 대신 이런 사물을 상상해보자. 이 사물은 자신을 어떤 사물과 구별하려고 하는데, 그 어떤 사물은 자신을 이 사물과 구별하지 않는다.(86쪽)

그러므로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차이를 만든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차이는 만드는 어떤 것, 만들어지고 있는 어떤 것이다.(86쪽)

플라톤주의자들에 따르면, 일자가 아닌 것은 자신을 일자와 구별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자는 자신에서 벗어나려는 것에서 결코 벗어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다른 측면에서 형상은 자신을 질료나 바탕과 구별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왜냐하면 구별 자체가 하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86쪽~87쪽)

재상승하는 바탕은 더 이상 밑바닥에 남아 있지 않고 자율적인 실존을 얻는다. 이 바탕에 반영되는 형상은 더 이상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에 직접 작용하는 어떤 추상적인 선이다.(87쪽)

괴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이상야릇한 규정들을 집적하거나 동물을 중층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바탕을 상승하도록 만들고 형상을 와해시키는 편이 휠씬 낫다.(87쪽)

모델을 포기할 때, 다시 말해서 형상에 대한 조형적인 상징을 포기할 때 추상적인 선은 최상의 힘을 획득하고 또한 난폭하게 바탕에 참여한다. 추상적인 선은 자신과 결코 떨어지는 일이 없는 바탕에 대해 구별짓기를 행할수록 그만큼 점점 더 폭력적으로 바탕에 참여한다.(87쪽)

규정은 미규정자에 대해 어떤 일방향적이고 정확한 관계를 유지함에 따라 단일한 규정이 된다. 사유는 차이를 ‘만든다.’하지만 차이는 괴물이다.(88쪽)

잔혹성, 그것은 단지 본래적 규정일 뿐이다.그것은 규정되는 것이 미규정자와 본질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이 정확한 지점을 가리킨다. 그것은 규정되는 것이 명석-애매를 자영분으로 삼는 이 엄밀한 추상적인 선과 관계하는 지점에서 성립한다.(88쪽)

재현의 네 측면(4중의 뿌리, 행복한 국면, 큰 차이와 작은 차이)

차이의 철학은 차이를 저주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기획인 것처럼 보인다.
재현의 요소는 네가지 주요한 측면들을 지닌다.-규정되지 않은 개념의 형식안에서 등장하는 동일성, 규정가능한 궁극적 개념들 간의 관계 안에서 성립하는 유비, 개념 내부적 규정들의 관계안에서 성립하는 대립, 개념자체의 규정된 대상 안에서 나타나는 유사성,(88쪽~89쪽)

동일성,대립,유비,유사성이라는 사중의 뿌리에 종속되는 한에서 차이는 ‘매개’된다.(89쪽)

차이를 재현함으로써 그런 구원이 가능하고, 차이를 개념 일반의 요구들에 종속시킬 때 그런 재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이가 개념과 화해하는 듯한 행복한 국면-그리스적인 행복한 국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89쪽)

따라서 여기서“차이를 만든다”는 표현은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 표현은 이제 어떠한 차이들이 개념 일반 안에 기입될 수 있는지,어떻게 기입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어떤 선별적 시험을 가리킨다. 그런 시험, 그런 선별이 실제적으로 시행되는 것은 큼과 작음에 의해서인 것 같다. 큼과 작음은 본성상 일자에 대해 언명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차이에 대해 언명되기 때문이다.(89쪽)

2절 개념적 차이: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차이

차이 일반은 상이성 혹은 이타성과 구별된다. 왜냐하면 두 항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이는 그것들이 다르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에 의해 다른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사태에 의해 다르기 때문이다.(90쪽)

가장 큰 차이, 그것은 항상 대립이다.
상대적인 것들은 서로를 통해 언명된다.모순은 이미 어떤 주어에 대해 언면된다.하지만 그것은 주어의 존속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단지 주어가 존재하기 시작하거나 존재하기를 그치도록 만드는 변화만을 인정한다. 결핍도 여전히 실존하는 주어의 일정한 무능력을 표현한다. 오로지 상반성만이 대립적인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주어의 역량을 대변한다.(90쪽~91쪽)

그러나 이런 상반성의 장점이 완전한 차이로 이어질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질료와 더불어 있는 구체적인 존재자를 고려하는 한에서, 그 존재자에 영향을 주는 상반성들은 어떤 물체적 양태변화들이다.또 이 변화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수 있는 것은 여전히 어떤 외생적 차이에 대한 우연하고 경험적인 개념일 뿐이다.(91쪽)

경우에 따라 차이는 공통적이거나 고유할 것이다.하지만 질료에서 비롯되는 한 차이는 언제나 우연한 것일 것이다. 따라서 오로지 본질이나 형상 안에 있는 상반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어떤 본질적인 차이 그 자체의 개념을 얻을수 있다.(91쪽)

사실 유의 고유한 본성은 차이들을 통해 나뉜다는 데 있다.(91쪽)

요컨대 완전하고 최대치에 이른 차이는 유 안에서 성립하는 상반성이고, 유안에 성립하는 상반성은 종차이다.(91쪽)

유적 차이는 너무 크고, 상반 관계들로 정리되지 않는 어떤 조합 불가능한 것들 가운데 자리한다. 개체적 차이는 너무 작고, 더 이상 상반성을 갖지 않는 어떤 분할 불가능한 것들 가운데 자리한다.(91쪽)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른 차이의 논리학: 차이의 개념과 개념적 차이의 혼동

종적 차이는 조화로운 개념이나 유기적 재현의 모든 요구들에 그야말로 잘 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92쪽)

종차는 매개되지만, 그 자신이 매개이자 또 매개항이다. 종차는 산출적이다.왜냐하면 유가 나뉜다면,그것은 그냥 아무러한 차이들로 나뉜다기보다는 종들-유안에서 자신과 상응하는 종들-을 생산하는 차이들에 의해 나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종차는 언제나 원인,형상인이다.(92쪽)

종차는 또한 매우 특수한 유형의 술어이다. 왜냐하면 종차는 종에 술어로서 귀속되면서도 동시에 유를 종에 귀속시키며, 자신이 술어로서 귀속되는 종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종합적이고 구성적인 술어, 귀속되는 것이기보다는 귀속시키는 술어, 생산의 진정한 규칙인 이런 술어는 마침내 최종적인 어떤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자신이 귀속시키는 것을 자신과 더불어 실어 나른다는 데 있다. 사실 본질은 매우 특별한 질을 지니고 있어서 유를 단순히 질만 다른 사물이 아니라 아예 다른 어떤 사물로까지 만들 수 있다.(92쪽)

차이는 유와 모든 중간의 차이들을 자신과 함께 운반한다. 차이의 운반, 차이의 차이인 종별화는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나눔의 수준들을 가로질러 차이와 차이를 연결한다.그리고 이런 과정은 마침내 어떤 최종적 차이, 최하위 종의 차이에 이른다.이 최종적 차이는 본질과 그것의 연속적인 질 전체를 선택된 방향안에서 응축하고, 그 전체를 어떤 직관적 개념안에 결집하며,정의해야 할 항을 가지고 그 전체를 근거짓는다. 하지만 그 자체는 분할 불가능한 단일한 것이 된다. 종별화는 이와같이 개념의 내포 안에서 드러나는 일관성과 연속성을 보증한다.(93쪽)

이제 종차가 단지 상대적으로만 가장 큰 차이임이 분명해졌다.(93쪽)

우리는 오로지 하나의 개념이 지녔다고 가정된 동일성에 의존해서만 종차가 가장 크다고 말할수 있다. 게다가 바로 유적 개념안에 있는 동일성의 형식에 의존해서만 차이는 대립에까지 이르고 상반성으로까지 끌려갈 수 있다. 따라서 종차는 결코 차이의 모든 독특성과 전환점들에 대한 어떤 보편적 개념(다시 말해서 이념)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93쪽)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차이의 차이는 거짓된 운반에 지나지 않는다.(93쪽)

종차는 단지 전적으로 상대적인 의미의 최대치를 지칭할 뿐이다.(94쪽)

즉 차이의 고유한 개념을 설정한다는 것이 차이를 개념 일반 안에 기입하는 것으로 뒤바뀐다.
차이의 개념을 규정한다는 것이 차이를 규정하지 않은 개념의 동일성 안에 기입하는 것으로 뒤바뀐다.(94쪽)

차이는 이제 개념의 내포 안에 있는 하나의 술어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끊임없이 종차의 이런 술어적 성격을 환기시킨다.하지만 그는 종차의 술어적 성격이 지닌 어떤 이상한 능력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령 술어로서 귀속되는 것 못지않게 귀속시키는 능력, 유의 질을 양태적으로 변화시키는 만큼 유 자체를 달라지게 만드는 능력 등이 그것이다.(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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