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호] 부채로 생존을 이어가는 사회 / 김덕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8 21:39
조회
2686
부채로 생존을 이어가는 사회


김덕영(희년함께 사무처장)


* 이 글은 2016년 6월 9일 희년함께 홈페이지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landnliberty.cafe24.com/xe/index.php?document_srl=32369&l=ko&mid=letter1


한국은행은 지난 3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223조 7,00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가계부채의 양적 증가뿐 아니라 제1금융권의 대출심사 강화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가계대출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채의 질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전 분기 대비 가계신용 증가액 중 예금은행 대출은 5조 6,000억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15조 원은 비 은행권에서 빌린 금액이다. 정부가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제1금융권 대출심사 강화 조치를 하였지만 국민들은 높은 이자를 무릅쓰고 제2금융권 대출을 받은 것이다. 이 말은 상당수 한국의 가계가 부채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생존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주거, 교육, 의료 등의 생존 필수재를 부채로 해결하는 양상은 ‘크레디토크라시’ 사회의 주요한 특징이다. 신조어인 '크레디토크라시'(creditocracy)는 빚이라는 의미의 '크레디트'(credit)와 체제를 뜻하는 '크라시'(-cracy)가 합쳐진 말이다. 신간 <크레디토크라시>의 저자 앤드루 로스는 끔찍한 ‘크레디토크라시’에 우리 사회가 잠식되어 있다고 고발한다. 거대 금융기관을 대표로 하는 채권자들은 부채에 의존하고 있는 대다수 채무자들의 삶을 지배하며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medium.jpg 저자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할 경우 2013년 미국 6대 은행(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그룹, 웰스파고, JP 모건 체이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의 결합 자산 총액은 14.7조 달러(2012년 미국 GDP의 93%)로, 미국의 전체 은행 자산 가액은 GDP의 170%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유럽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체 경제에서 금융부문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는 것은 금융이 더 이상 자금의 융통 기능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금융권은 막대한 수익활동을 하고 있으며 개별 경제주체에 미치는 영향 또한 지극히 확대되고 있다. 은행권이 부실화되면 모든 경제주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2008년 금융위기 시 미국의 공적자금이 월가에 투입되었다.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이다. 미국민 세금으로 되살아난 은행권은 다시 고수익 고공행진을 달렸고 일반 서민들의 위화감을 불러일으킨 금융권 보너스 잔치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이에 분노한 미국의 시민들은 2011년, 미국 시민단체 '월가를 점령하라(OWS)'를 중심으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기업 탐욕과 자본주의 병폐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어서 부실채권 매입을 활용한 서민의 빚 탕감 운동을 전개하였다. OWS는 "우리는 교육과 의료, 주거와 같은 삶의 기본적 요소 때문에 서민들이 빚으로 내몰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암흑 속의 투기시장에서 은행들은 단 몇 푼으로 채권을 팔아버린다. 그러나 ‘롤링주빌리’는 그 채권을 구입해 이 시장에 개입하고, 구입한 채권은 그대로 버린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이익을 보려고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서로 돕게 하고 약탈적 채무 시스템이 우리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고자 뛰어드는 것"이라며 "99%를 위한, 99%에 의한 구제"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의 ‘롤링주빌리’는 ‘부채거부운동’으로까지 “채무자 권리 찾기 운동”을 확대하고 있다. <크레디토크라시> 저자 앤드루 로스는 ‘부채거부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뉴욕대학교 사회학 교수로서 전 세계적인 채무자 연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성서에서는 희년(주빌리)의 전통이 있었다. 7년의 안식년마다 부채가 탕감되고 7년의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부채탕감, 노예해방, 토지반환의 조치가 취해졌다. 7년마다 부채가 탕감되어 가계는 가처분소득이 7년마다 급진적으로 늘어났다. 토지가 반환되는 50년마다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져 빈곤의 대물림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었다.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땀 흘린 대가가 정당하게 보장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근원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희년의 전통이 이루어진 고대 사회는 “백성들이 무화과나무 아래와 감람나무 아래에 안연히 거하며 서로를 초대하였다.” 고 전해지고 있다.

저자 앤드로 로스는 친절하게도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에서 2012년 말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까지 제시하고 있다. 수치는 163.8%에 이르러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34.8보다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120.1%를 훨씬 웃도는 수치라고 한다. 가처분소득은 개인이 소비와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가 넘는다는 것은 1년 동안 가용 가능한 모든 소득을 부채 갚는데 만 써도 1년 안에 부채를 갚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수치가 163.8%라는 말은 이미 한국 가계부채의 실질적 체감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으며 가계부채가 내수 소비시장과 전체 경제순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미국의 소장 경제학자인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의 수작인 <빚으로 지은 집>에서 대마불사의 논리에 입각한 대형 금융기관 공적자금 지원보다 일반 채무자 부채탕감 정책이 가처분소득을 확대해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전체 거시경제를 더 빠르게 회복시킨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는 언급도 없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이 강조되고 있으며 대부업체들은 담보자산도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27.9%의 고리대 장사를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부채에 의한 지배’로 잔뜩 위축된 채무자들은 거대한 채권자에게 이미 마음까지 굴복되었다. 채무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부채를 당연히 갚아야 한다는 전제 속에 도덕적 정당성마저 빼앗기고 저항의 반기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우리 삶의 필수적인 요소를 부채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가. 채권자의 권한은 채무자의 생존권보다 더 우선될 수 있는가. 저자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의 비도덕성을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지금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채무자가 아니라 고수익에 혈안이 된 금융기관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1950년 농지개혁 이후 꾸준히 지속되어온 극심한 부동산 투기와 토지와 주택의 자산 양극화로 인해 주거와 교육에 국민 대다수의 삶이 저당 잡혀 있다. 주택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부채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기득권 유지의 핵심적 수단이 되고 있다. 부채를 매개로 채무자에서 채권자에게로 부의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채무자들은 연대하고 저항하기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스스로 동굴로 들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채무자들의 연대는 가능한가. 저자는 사필귀정의 오랜 역사가 증명해왔듯 불의에 맞서 민중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희망을 내비친다. 노동자들과 농민이 억압된 현실에 분노를 표출했듯이 부채에 저항하는 채무자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전망에 같은 희망을 보태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책의 변화와 실질적은 개혁을 위해서는 아래서부터 자신의 권리를 인식한 다수의 민중이 깨어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채무자의 권리를 먼저 일깨우고 앞장서서 변호해 줄 학자와 정치가 그리고 깨어있는 민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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