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호] 소리 소문들의 비밀스런 공명장치 / 장수희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8 21:12
조회
3196
소리 소문들의 비밀스런 공명장치


장수희


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는 2013년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해외배송도 몇 번 하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pdf를 보내기도 했던 것 같은데, 경제적인 문제와 ‘온라인으로 배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맞추어 현재 한국에서만 배포중이다. 신지영 선생님께는 <바람의 연구자> ‘창간준비호’와 ‘창간호’를 메일로 보내드렸었다. 일본에 계시는지, 미국에 계시는지 궁금해하면서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바람의 연구자>를 받자 마자 다 읽어버렸고, 다음엔 우리의 ‘전전긍긍’과 ‘끙끙거림’도 부탁한다는 리뷰를 답장으로 받았었다. 그 답장을 받고, 너무 좋아서 읽고 읽고 또 읽었었던 것 같다.

신지영 선생님을 만난 것은 2011년 아프꼼(당시에는 아프꼼의 전신인 Net-A였음)의 첫 국제 워크숍에서였다. 사람의 물결이 넘실대는 신주쿠 역이었다. 아프꼼 멤버들과 만난 신지영 선생님이 제일 먼저 함께 가보자고 한 곳이, 나이키 공원이 되기 직전의 야마시타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육교 위였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JR을 타고 밖을 내다보면서 야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워크숍은 처음으로 몸을 움직여 부산 밖의 연구자들을 만나고, 연구자들의 ‘움직이는 몸’이라는 것을 ‘몸’으로 만났던 기억인 것 같다. 그 때 우리가 얼마나 환대받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일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 서너 명을 위해 인문평론 연구회의 와타나베 나오키 선생님과 신지영 선생님이 교대로 우리가 참가했던 서평회에서 동시통역을 해주셨다. 두고 두고 선생님들의 수고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환대를 어떻게 연구자로서 잘 돌려드릴 수 있을까, 혹은 받았던 환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을까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신지영 선생님도 일본과 미국의 마이너리티 코뮌들, 마을들에서 받았던 환대를 섬세하게 기록함으로서 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자가 자료찾기와 이론공부, 생계유지 사이의 갈등을 떨치고 집회에 참가했을 때 느끼는 ‘안전감’ 혹은 ‘해방감’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주는 환대의 에너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신지영 선생님이 느꼈던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안심’이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지, 복잡한 상황에 대면했을 때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섬세하게 고려하며 말하고 있는지가 이 책 『마이너리티 코뮌』에 있다. 반빈곤 활동,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활동, 반 올림픽 활동, 반혐오 활동, 전쟁법 반대 활동, 반인종주의 활동 등 거리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마이너리티 코뮌들과 신지영 선생님이 접속했을 때의 현장이 아카이빙된다.

이 책은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스러지는 마을의 목격자가 되고, 증언자가 되면서, 연구자로서의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기검열하며 쓰여져 있다. 신지영 선생님은 “들려(오지 않는) ‘소리 소문’들을 가능한 한 상세히 귀 기울여 ‘듣고-쓰고’ 사유와 만남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 몸을 낮춘다. 그는 사유하고 연구하는 지식인 ‘나’의 말을 쓰고 누군가가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소문들의 비밀스러운 공명장치라도 되면 좋겠다”고 책을 마무리 한다. 단 서너 명을 위해 일본어 서평회의 모든 말들을 통역해주었던 신지영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이너리티 코뮌들의 소리 소문들을 들릴 수 있게 공명하는 선생님의 듣고-쓰기가 있다. 이것이 아마도 신지영 선생님의 ‘연구하는 몸’이자 ‘투쟁’의 방법일 것이다.

가제본된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사진을 전혀 못 봤다. 소중한 사진들이 많이 수록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꼼 멤버들이 함께 원고를 읽고 차가영 선생님의 디자인에 피드백 하면서 완성한 책 표지에도 마을의 현장들과 소리들이 다 실려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아프꼼의 이야기들도 목소리들도 이 표지에 함께 실려 있다. 아프꼼도, <바람의 연구자>도 『마이너리티 코뮌』이라는 공명장치를 통해서 저곳의 동료들의 안녕함을 전해 들었다. 신지영 선생님이 저곳들의 동료들에게 이곳 마이너리티 꼬뮨의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을 것 같아, 작고, 소중한 이곳의 이야기를, 소리 소문들을 계속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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