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9_발제] 제9고원 (p.427-440)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9-01-26 11:32
조회
679
제 9고원. 1933년 – 미시정치와 절편성

p. 427-,
권력의 각 중심은 또한 분자적이며, 미시논리적인 조직에 행사된다. 여기에서 권력의 각 중심은 확산되고 분산되고 확대되고 모형화되고 끊임없이 대체되고 유한한 절편화에 의해 작용하고 세부 및 세부적인 것들의 세부에서 작동함으로써만 존재한다.
“규율들” 또는 미시-권력들(학교, 군대, 공장, 병원 등)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이 “불안정한 초점들”을 증언해주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재편성이나 집적들, 그리고 도피들과 도주들이 서로 충돌하며, 역전들이 산출되기도 한다. 초점은 더 이상 “바로 그” 교장이 아니라 사감이나 우등생, 열등생, 수위 등이다. 초점은 장군이 아니라 하급 장교들, 하사관들, 내 안에 있는 병사, 심술궂은 자이며, 이들 각각은 나름대로 성향들, 극들, 갈등들, 힘의 관계들을 갖고 있다. (...) 왜냐하면 이들은 그램분자적인 측면과 함께 분자적인 측면을 가짐으로써, 장군이나 지주도 이미 이 두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유명이 식별 불가능한 지대에 들어가는 경우, 그것은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을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 식 말하기 - 우리가 맞이하게 될 사람은 공무원인 클람이기보다는 아마 그의 비서인 모무스 또는 다른 분자적인 클람들일 텐데, 이들 간의 차이 그리고 이들과 클람 간의 차이는 더 이상 확정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커지게 된다. -바르나바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확실성과 안정성의 증거로서, 아무리 견고하고 끔찍한 것이라 하더라도, 전적으로 그램분자적인 절편성을 꿈꾸곤 했다. 하지만 그램분자적인 절편들은 자신들에 양분을 제공해주고 자신들의 윤곽을 떨리게 만드는 이 분자적인 수프에 반드시 잠긴다는 것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시적 짜임을 갖고 있지 않은 권력의 중심은 없다.

inq. 내 안의 절편성들, 분열분석이라는 명명

p. 428-, 권력의 중심들의 세 번째 양상 또는 극한
이 미시적 짜임은 견고한 절편들로 이루어진 덧코드화의 선과 양자들로 이루어진 궁극적인 선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이 미시적 짜임은 항상 이 두 선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때로는 양자들로 이루어진 선을 절편들로 이루어진 선으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흐름들과 양자들이 절편들로 이루어진 선에서 도주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권력의 중심들은 자신의 역량의 원칙과 자신의 무력함의 토대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역량과 무력함은 대립하기는커녕 일종의 현혹적 만족 속에서 서로를 보충하고 보강해준다. (...) “위대한 정치인이란 산도자-기호, 입자-기호로서 흐름들에 자신을 연결접속하고 검은 구멍들을 뛰어넘는 양자들을 방출하는 자들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 흐름들 자체를 조절하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통화량”의 증가조차 지배하지 못한다. (...) 국가보다는 주식 시장이 흐름들과 흐름들의 양자들의 이미지를 제공해준다. 자본가들은 잉여 가치와 그것의 배분을 제어할 수는 있지만 이 잉여 가치를 생겨나게 하는 흐름들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역으로 권력의 중심들은 흐름들이 절편들로 변환되는 점들에 행사된다. 이 점들이 교환기, 변환기, 진동자이다. 그렇지만 절편들 자체가 결정권을 가진 하나의 권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절편들 자체는 추상적인 기계에 의존한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들에 의존하는 것은 바로 이 추상적인 기계를 실행시키는 배치물들, 다시 말해 지배하는 절편과 지배되는 절편들과 관련해 군중과 흐름의 여러 가지 변이를 견고한 선의 절편들에 부합시키는 배치물들인 것이다. 이러한 부합 과정에는 많은 도착적인 발명이 있을 수 있다.

p. 430-,
모든 권력의 중심에 대해서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의 중심은 다음의 세 가지 양상 또는 세 가지 지대를 지닌다.
1) 견고한 선의 절편들과 관련된 역량의 지대
2) 미시-물리학적인 조직으로의 확산과 관련된 식별 불가능성의 지대
3) 통제하지도 규정하지도 못하고 단지 변환할 수 밖에 없는 흐름들 및 양자들과 관련된 무력함의 지대
그런데 각각의 권력의 중심이 자신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무력함의 토대로부터이다. 권력의 철저한 냉혹함과 허망함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램분자적인 변환기, 진동기, 분배기보다는 차라리 흐름의 미세한 양자들이 되는 것이 낫다!

p. 431-,
이 세 가지 선의 위험에 대한 연구는 표상하거나 해석하거나 상징화하려 하지 않고, 단지 지도들을 만들고 선들을 그어 이들의 혼합이나 구별을 표시하려 하는 한 화행론 또는 분열분석의 대상이다.
inq. 관찰기록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카스타네다의 인디언 돈 후안에 따르면, 위험에는 세 가지 아니 네 가지가 있다.
1) <공포> : 우리는 항상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 그램분자적 조직, 나무성들, 이항적 기계들, 덧코드화의 체계, (...) 안정된 사물들 속에 서서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해 세계가 마련해놓은 체류지, 절편. 절편성이 견고할수록 우리는 더 안심한다. 바로 이것이 공포로서, 공포가 우리를 첫 번째 선으로 끌어내리는 방법은 그러하다.
2) <명확함> : 이주민의 미시-물리학이 정주민의 거시기하학을 대체했다. 그러나 이 유연성과 이 명확함은 그 나름의 위험들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 자체가 하나의 위험이기도 하다. 먼저 유연한 절편성은 견고한 절편성의 변용들과 직무들을 축소된 모형의 형태로 재생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더 나쁘게는, 미시-오이디푸스들이 세워지고, 미시-파시즘들이 법을 만들고 (...) 크나큰 슬픔을 발산하는 어두운 명확함. 이 움직이는 절편성은 가장 견고한 절편성에서 직접적으로 생겨난다. (...) 그러나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유연한 절편성이 자신의 고유한 위험들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 우리는 편집증적 공포가 아니라 천 개의 작은 고정관념들에 붙잡혀 있다. 검은 구멍 하나하나에서 분출해 나오지만 아직 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소문과 웅성거림을 만드는 명증성들과 명확성들이 그것으로, 이것들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판사, 심판자, 경찰, 나치의 말단 반장 등의 임무를 부여하는 휘황한, 그래서 눈을 멀게 하는 빛이다. 우리는 공포를 이겨냈고, 안전함의 기슭을 떠나왔지만 결코 그에 못지않게 집중되고 조직화된 시스템에 들어왔다. 이처럼 작은 비-안정성들의 시스템에 의해 각자가 자신의 검은 구멍을 발견하고, 이 구멍 안에서 위험하게 되며, 자기 입장이나 임무에 대해 첫 번째 선의 확실성보다 훨씬 더 우려할 만한 명확함을 갖게 된다.
3) <권력> : 세 번째 위험. 이는 그것이 두 선 위에 동시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권련은 견고한 절편들로부터, 그것들의 덧코드화와 공명으로부터 미세한 절편화 작용들로, 그것들의 확산과 상호 작용들로 나아가며, 그 역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 그러나 이 모든 권력의 사슬과 씨실은 이것들을 벗어난 세계, 즉 변이하는 흐름의 세계 속에 잠겨 버린다. 그리고 권력을 이렇게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권력의 무력함이다. 권력자는 끊임없이 도주선들을 정지시키려 하고, 그러기 위해 덧코드화의 기계 속에 변이의 기계를 붙잡아 고정시킨다. (...) 요컨대 배치물에 기계의 차원들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체주의나 “닫힌 꽃병 상태”의 인위적인 조건 속에서 생산되는 일이다.
4) <거대한 혐오>, 즉 중이고 죽고 싶다는 욕구, 소멸의 <열정> : 물론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이다. 이것은 도주선들 자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도주선들 자체가 죽음과 제물의 냄새처럼, 사람을 파괴해버리는 전쟁 상태처럼 이상한 절망을 발산한다. 도주선들은 앞에서 살펴본 위험들과 혼동할 수 없는 고유한 위험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황혼녘에 탄창이 빈 소총을 손에 들고 표적들이 쓰러져 있는 버려진 사격장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 자신의 숨소리 말고는 오로지 적막이었다. (...) 나의 자기 공야은 뭔가 습기와 어둠 같았다.”
도주선 자체가,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파괴한 후 우리 자신도 해체되고 파괴되어버릴 우험이 있는 전쟁인 것은 왜일까? 바로 이것이 네 번째 위험이다. 즉 도주선은 벽을 넘고 검은 구멍들로부터 빠져나와도 다른 선들과 연결접속되고 매번 원자가를 증가시키는 대신 파괴, 순수하고 단순한 소멸, 소멸의 열정으로 바뀐다. 클라이스트의 도주선, 그가 이끄는 불가사의한 전쟁, 그리고 자살, 도주선을 죽음의 선으로 바꾸는 출구로서의 이중의 자살이 그런 것처럼.
그렇다고 여기서 죽음의 충동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욕망 속에는 내적인 충동은 없으며 오직 배치물들만이 있다. (...) 도주선들을 그리는 배치물은 도주선들과 동일한 층위에 있으며, 전쟁 기계 유형을 하고 있다. 이 기계들로부터 변이들이 생겨나지만, 이 기계는 결코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영토화의 양자들을 방출하고 변이하는 흐름들을 통과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창조는 전쟁 기계를 통과한다.)
전쟁기계는 유목민적 기원을 가지며, 국가 장치에 맞선다.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들 중 하나는 국가에 이질적인 이 전쟁 기계를 자기 것으로 삼아 고착된 군사 기구의 형태로 국가 장치의 부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 그러나 전쟁 기계가 가장 파국적인 전하를 풀어놓는 것은 전쟁만을 목적으로 할 때, 그래서 변이를 파괴로 대체할 때뿐이다. 하지만 변이는 결코 전쟁의 변형이 아니다. 반대로 전쟁이야말로 변이의 추락이나 되떨어짐 같은 것이며, 바로 그것이 변이 역량을 잃었을 때 전쟁 기계에 남게 되는 유일한 목적이다.
inq. 전쟁기계와 반사회성

p. 437-, 파시즘과 전체주의
전체주의는 특별히 보수적이다. 반면 파시즘에는 분명 전쟁 기계가 문제가 된다. (...) 파시즘 국가는 전체주의적이라기보다는 자살적이다. 피시즘에는 실현된 허무주의가 있다. 모든 가능한 도주선들을 봉쇄하려 하는 전체주의 국가와는 달리 파시즘은 강렬한 도주선 위에서 구성되며, 이러한 도주선들을 순수한 파괴와 소멸의 선으로 변형시킨다. 기묘하게도 나치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무엇을 초래할지를 독일에 알렸다.
클라우스 만, 『메피스토』 “우리의 실존에서 영웅적인 파토스는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 (...) 실제로 우리는 지금 행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다. 친애하는 총통은 우리를 암흑과 무 속으로 끌고 간다. 그러니 우리 시인들이, 암흑과 심연에 대해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 시인들이 어찌 총통을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지평선에 타오르는 불빛들, 모든 길 위에 있는 피의 냇물들, 그리고 생존자들의 홀린 듯한 춤, 시체 주위를 맴도는 아직 손상되지 않은 자들의 춤!” 자살은 징벌이 아니라 타인들의 죽음에 대한 화관으로 나타난다.
나치적 언표 속에서 우리는 항상 <죽음 만세!>라는 “어리석고 혐오스런” 외침을 재발견한다. 심지어 군비 확장이 소비 증가를 대체하고, 생산 수단으로부터 순수한 파괴 수단으로 투자의 방향이 바뀌는 경제의 수준에서도 그러하다. 전체주의 국가라는 개념이 아니라 자살적 국가라는 개념으로 파시즘을 규정하는 폴 비릴리오의 분석은 우리가 보기에 아주 정당하다. 즉 거기에서 이른바 전면전은 국가의 사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국가를 전유(점유?)하는 전쟁 기계의 사업으로 나타나며, 국가 자체의 자살 이외에는 다른 어떤 출구도 없는 절대 전쟁의 흐름이 국가를 가로질러가게 한다.
“실제로 한계도 목적도 없는, 현실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물질적 과정의 시동. (...) 히틀러가 마침내 자신의 가장 확실한 통치 수단과 자신의 정치와 군사 전략의 정당화를 발견한 것은 결국 일상성의 공포와 일상성의 환경의 공포 속에서이다. (...) 전문 제 71호. 전쟁에 지면 나라도 망함. 이 속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노력과 적군의 노력을 연합해 자국민에 대한 파괴를 달성하려고 했는데, 이를 위해 자국에 남겨져 있던 최후의 자원, 민간용의 모든 비축물(음료수, 연료, 식량 등)을 없애버렸다.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파시즘의(은?) 모든 분자적 초점들을 살아나게 하고, 그것들을 국가 장치 속에서 공명하게 하기보다는 전쟁 기계 속에서 상호 작용하게 한 것은 도주선이 이미 파괴의 선으로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 전쟁기계. 그리고 파괴를 정지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에게 봉사하는 것들을 소멸시키기를 수락한 전쟁 기계. 다른 선들의 모든 위험은 바로 이 위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inq. 반복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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