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ic 102호] 『21세기 스파르타쿠스』 2부 열린세미나 갈무리

Author
진실연대자들
Date
2026-08-0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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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일 『21세기 스파르타쿠스』 2부 열린세미나 갈무리






12:46:45 · BOM: 안녕하세요.


오늘은 열린 세미나가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21세기 스파르타쿠스』 독서토론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범위는 2부와 3부의 225쪽 까지입니다.


저녁 7시 30분에 뵙겠습니다 ^^


18:29:47 · 조정환: 오늘(8월 1일) 7시 30분에 열린세미나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모인 김에 뉴스레터 TAPic과 daziwon.com의 타픽 뉴스레터 게시판 개편을 위한 논의시간을 잠깐 가질 것을 제안합니다.


19:33:03 · BOM: 안녕하세요, 뉴스레터 TAPic 논의 관계로, 열린세미나는 8시에 시작하겠습니다.


20:01:57 · 김정연: 안녕하세요


20:02:05 · 신은주alma: 안녕하세요!


20:02:33 · BOM: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20:02:38 · 조정환: 안녕하세요


20:02:49 · BOM: 『21세기 스파르타쿠스』 독서토론 세미나를 시작하겠습니다.


20:03:07 · 조정환: 네


20:03:29 · BOM: 오늘 토론할 범위는 2부와 3부의 중반까지 입니다.


20:04:58 · BOM: 먼저 2부 "1968 혁명"을 다루고, 휴식 후에 3부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05:11 · 조정환: 네


20:05:53 · BOM: 2부 『1968 혁명』을 읽으시면서 생각하신 토론거리, 혹은 인상 깊었던 내용, 질문 등을 자유롭게 올려주세요.


20:07:29 · 조정환: 지난 토론에서 우리는 20세기 사회주의 운동과 투쟁이 거둔 성과와 한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20:09:30 · BOM: 68혁명이 우파 (자유주의) 뿐만 아니라 좌파(전통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09:43 · 조정환: 러시아혁명(과 유럽혁명), 공황과 사회주의, 전후 복지국가와 유로코뮤니즘 외에 21세기의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핑크타이드 등이 이슈로 다뤄졌습니다.


20:10:48 · 조정환: 이 좌파운동의 긴 역사 속에서 오늘 다룰 1968혁명과 오늘 및 다음 번의 핵심주제가 될 사빠띠스따는 특이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20:11:11 · 김정연: 저도 그 대목에 밑줄 쳤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은 자본주의적인 노동과 사회주의적인 노동을 반소외의 관점에서 동시에 문제삼았던 인류 역사상 최초의 투쟁이다"(137)


20:13:51 · 조정환: 1968 혁명은 여성, 비보장 노동자, 동성애자, 반핵활동가, 생태운동가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주체성이 동원되는 주체성을 넘어 독자적 주체성으로 등장한 사건이었고 약 25년 뒤인 1994년 사빠띠스따 봉기는 노동자의 하위연합세력으로 간주되었던 (치아빠스의) 원주민들이 혁명세력으로 등장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0:14:59 · 조정환: 이 운동, 투쟁, 혁명을 대상의 측면에서 보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동시적 문제제기이자 저항이라는 성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6:21 · BOM: 그래서 68혁명은 우파와 좌파에 동시에 공격받았고, 이런 점은 3부에 등장하는 사빠띠스따와도 같았습니다.


20:17:58 · 조정환: 전후 복지국가에 맞서 일어난 68혁명이 명시적으로 소련 사회주의 관료체제에 대한 거부를 표현했음에 반해 사빠띠스따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를 우선적 투쟁 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고 인류를 옹호하는 대륙간회의[엔꾸엔뜨로]"라는 회의명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20:19:29 · 김정연: "마르꼬스는 신자유주의를 제4차 세계대전으로 규정한다."(176)


20:20:54 · 조정환: 프랑스 68혁명, 그리고 무엇보다도 "늦게 온 열차"로 불린 이탈리아의 자율운동이 "노동"을 핵심적으로 문제삼았음에 반해 사빠띠스따 투쟁은 "공통장"(에히도 공유지를 나프타와 멕시코 헌법 개정이 매각 대상으로 삼은 것)의 수호에 집중했습니다.


20:22:15 · BOM: 2부에서는 68혁명 운동이 부딪쳤던 한계에 관한 부분도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68혁명은 국제주의를 주장했지만 자율의 힘을 지구적 차원에서 결집할 실제적 수단과 조직적 대안을 충분히 창출하지 못했다. " (139)


20:24:04 · BOM: "운동의 네트워크들이 신자유주의적 시장 모델의 단순한 투영이기를 넘어 다양한 삶의 힘들을 결집시키는 지구적 조직화의 방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 필요한가?" (140) 가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25:24 · 조정환: 이 질문은 현재까지도 미해결의 인식과제이자 실천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0:28:05 · 조정환: 우리 시대의 '광장' 운동/투쟁의 한계를 논할 때에 꼭 필요한 인식 및 실천의 과제에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여되면 광장 비판은 광장에 대한 무책임한 비난이 되고 맙니다. 68혁명이나 사빠띠스따에 대한 소화 없이 전통적 유형의 운동이나 혁명을 표준표상으로 삼는 것 역시 실효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0:32:51 · 조정환: 68혁명에 비해 사빠띠스따는 그 나름의 고유한 방법론을 찾아 나갔습니다. 걸어가며 묻기의 방법론이지만 맑스의 미르 공동체론를 상기시키는 방법론이었습니다. 맑스는 러시아 미르 공동체는 러시아 사회가 자본주의를 경유하지(즉 자본주의적 양극분해를 거치지 않고) 않고 코뮤니즘으로 나아갈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을 제공한다고 보았는데 멕시코는 21세기에 잔존한 미르 공동체로서의 에히도 공통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멕시코 신자유주의는 헌법 개정을 통해 공유지 에히도를 판매가능한 것으로 개악했고 라깡도나 정글에 결집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이에 반대해서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선언(선전포고)했습니다.


20:33:56 · 조정환: 19세기의 맑스가 미르 공동체에서 이론적으로 발견했던 힘이 실력으로 분출한 21세기적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34:47 · BOM: 운동의 역사에서 68혁명과 사빠띠스따를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2부 내용 중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142쪽에 "1990년대의 반혁명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스펙트럼을 통해 68혁명을 접한 적지 않은 사람들" 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포스트모더니즘의 스펙트럼을 통한 68혁명"이 어떤 것일까요?


20:37:08 · 조정환: 유럽의 68혁명이 강한 국제주의를 표방했음에도 그것의 실천적 성과는 미미했음에 반해 사빠띠스따는 실제로 국제주의를 넘는 대륙주의의 실험으로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인류를 옹호하는 대륙간회의를 라깡도나 정글에서 개최했습니다. 인터-내셔널을 넘는 대륙-간회의라는 발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38:34 · 김정연: 129쪽 맨 아래에서 시작하는 문장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에게 68혁명의 존재를 확인시켰지만 그 속에서 68혁명은 ‘더 이상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든 혁명’의 형상으로 그려졌다."


20:39:47 · 조정환: 1990년대 초 유럽 및 미국에서 발흥하고 한국에 수입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냥 기억대로 회고해 보면 거대서사의 종말, 역사의 종말, 노동계급의 종말, 혁명에서 내파로…. 등의 기치를 내건 것으로 19세기 이후 변혁운동의 주요 인지프레임과 운동 주체성, 목적에 대한 포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20:41:11 · 조정환: 현실 사회주의 해체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패배이자 불가능성으로 번역하면서 유통 확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0:42:57 · 조정환: 필요했던 것이 전유(Aneignung)였던 시간에 포기와 영합을 기저에 깔고 전개된 것이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에까지 확산된 포스트모더니즘이었습니다.


20:43:32 · 조정환: 68혁명의 알갱이가 빠지고 그 변죽만 긁어모은 것이랄까요?


20:44:40 · 조정환: 이 흐름에서 들뢰즈/가타리는 보드리야르/리요따르와 구분되지 않는 사상가들로 인식되었습니다.


20:46:00 · 조정환: 흑인투쟁인 로스앤젤레스 봉기(1992),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미대륙의 남서부로 흘러내려간 1994년의 로스앤젤레스 봉기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주목되지 않았습니다.


20:46:23 · 조정환: 로스앤젤레스 봉기는>사빠띠스따 봉기는


20:47:19 · BOM: 네, 설명 감사합니다. 이전에 들뢰즈/가타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프리즘으로 한국사회에 번역된 문제를 지적한 내용을 접했던 것도 떠오릅니다. 들뢰즈가 탈주체 철학으로 해석되는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라 볼 수 있을까요?


20:49:25 · 조정환: 전자는 흑인다중, 후자는 원주민 다중의 투쟁이었고 전통적 좌파 시각에서는 주변집단으로 인식되는 주체성들이었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는 낡은 집단이었기 때문에 주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전통이 강조하는 전통적 노동계급의 투쟁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흑인과 원주민의 '역사적' 투쟁은 오히려 강화되었는데 이것을 놓친 눈에 역사는 종말(후쿠야마)에 이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20:52:44 · 조정환: 들뢰즈 가타리는 탈주체관을 가졌다기보다 주체성에 대한 다른 개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체성을 인격 이전, 개체 이전의 수준에서, 전구체의 수준에서 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선에는 노동자는 물론이고 원주민, 흑인, 여성 등등의 명명도 너무 헐렁하고 커다란 범주로 파악될 것입니다. 『개념무기들』에서 저는 이러한 주체성을 탈주체적 주체성이라 명명했던 것으로 기억압니다.


20:54:44 · BOM: "탈주체적 주체성"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탈주체"에만 방점이 찍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문제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20:56:28 · 조정환: 네


20:57:14 · BOM: 이쯤에서 휴식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20:57:22 · 조정환: 좋습니다.


20:58:00 · 김정연: 네


20:59:24 · BOM: 네


21:00:07 · BOM: 휴식 후 9시 10분에 다시 세미나를 시작하겠습니다 (확성기)


21:04:29 · 신은주alma: 넵


21:12:44 · BOM: 토론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21:12:54 · 신은주alma: 네


21:13:10 · 김정연: 네


21:13:33 · 조정환: 네


21:13:41 · BOM: 3부 제목은 『사빠띠스따』 입니다. 오늘은 중반부 (225쪽)까지 다룰 예정입니다.


21:13:57 · BOM: 읽으시면서 생각하신 토론거리, 혹은 인상 깊었던 내용, 질문 등을 자유롭게 올려주세요.


21:14:39 · 조정환: 3부 첫 글의 제목에 간대륙주의가 들어가 있네요.


21:15:22 · 조정환: 국제주의에서 국제는 '국가들 사이'라는 말로 국가를 기본형태로 삼는 관념체계이지요.


21:15:43 · BOM: 3부 초반에는 사빠띠스따의 민족주의와 간대륙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내용이 주였던 것 같습니다.


21:16:51 · 조정환: 간대륙주의는 "대륙 사이"를 호칭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국가를 사유와 실천의 중심에서 뺍(마이너스)니다.


21:18:17 · 조정환: 우리는 지난 시간에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들이 국가사멸에서 국가기관 해체로 나아갔던 고전 맑스주의 관념과는 달리 국가 강화의 경향으로 발전해 갔다는 점에 대해 논했습니다.


21:20:04 · 조정환: 그래서 국가에 대한 태도 문제는 중요한데 저는 국가를 아래로부터의 다중 섭정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방향에서 사유해 가고 있습니다.


21:20:53 · 조정환: 그것의 규모, 힘, 벡터는 다중의 자기조직화의 수준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입니다.


21:24:38 · 조정환: 사빠띠스따는 멕시코 정부에 맞서 싸우면서 원주민 자치를 요구했습니다. 원주민 자치의 방향 위에서 가능한 정부를 구성할 투쟁의 연합력으로 민족 개념이 제시된다고 봅니다. 민족은 혈동이나 언어, 땅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유럽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운 투쟁의 공동체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21:27:09 · BOM: 사빠띠스따의 "민족"은 분리가 아니라 "총체"(whole) 개념과 연결된다는 점이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21:28:00 · 김정연: "사빠띠스따들의 지속적인 “민족”에 대한 조회는 무엇보다도 원주민 공동체들이 속할 “이상(ideal)” 혹은 “총체(whole)”에 대한 조회이다. 실제로, 원주민 공동체들은 “총체”가 어떤 외적인 것(화폐, 경찰력 등)에 의해 지켜지는 조건 하에서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망각된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결정의 조건 속에 있을 때에는 그 전체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사빠띠스따들의 생각 속에서 원주민 공동체들의 비가시성(혹은 다수자를 구성하는 어떤 단일한 소수자의 비가시성)은 그들의 전체로부터의 분리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가시성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전체 속에서의 유기적 연결고리의 확립에 대한 요구이다. 그는 이 유기적 통일체로서의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을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화국(Res Publica), 진정한 민주주의(True Democracy) 혹은 코뮤니즘(Communism)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과 마르크스의 이 개념들은 모두 민중이 서로를 인간으로 인정하며 그들 스스로를 통치하는 하나의 이상적 총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데 안젤리스의 해석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21:29:33 · 조정환: 투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은 국경에 의해서 제한될 수 없겠지만 공동의 투쟁이 그 나름의 역사적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추진되는 한에서 무작위적으로 열린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대륙으로 열린 연대성이지만 투쟁의 공동체성을 갖기 때문에 사빠띠스따는 "멕시코 민족"이라는 용어를 써서 이 열린 닫힘, 닫힌 열림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21:33:42 · 조정환: 사빠띠스따에게서 최상위 결정체는 원주민회의이고 그 아래에 EZLN 즉 사빠띠스타민족해방군이 있습니다. 군대가 당 아래에 놓인 중국이나 종교지도자 아래에 놓인 이란 같은 경우, 군대가 국가 아래에 있고 대통령이 최고 지도자인 한국 등과 비교해 볼 만한 조직체계인 것 같습니다.


21:36:23 · BOM: 『제3차 선언문』에 등장하는 "과도 정부" 이야기도 흥미롭고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179쪽) 사빠띠스따의 "과도 정부'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국가 섭정과 비슷한 구도 같기도 한데요, 어떨까요?


21:36:34 · 조정환: EZLN의 창설자인 마르코스는 프랑스에서 마오주의와 알튀세르를 연구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라깡도나 정글에서 군사훈련을 한 후 조직한 군대인 EZLN을 원주민 아래에 두고 자신에게 "부"(sub)사령관이라고 불렀습니다.


21:38:48 · 조정환: 다중 섭정 하에서 국가와 정부는 영구적인 과도성을 띠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21:42:26 · 조정환: 종래에 혁명세력들은 흔히 과도정부수립을 요구해 왔는데 혁명기야말로 섭정력이 고조되는 결정적 시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섭정전략과 종래의 혁명전략에 차이가 있다면 종래의 혁명전략은 과도정부를 자신이 집권한 정부에 이르는 과도 정부로 파악함에 반해 섭정전략은 다중의 집권을 거부하면서 영구적으로 국가에 대해 섭정력을 행사하면서 국가형태의 소멸과 다중의 자기조직 속으로의 그 기능의 흡수를 추구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1:45:40 · 조정환: 사빠띠스따는 이 점에서 선례이자 모범인데 1994년 1월 1일 멕시코 정부에 혁명적 선전포고를 하면서 "우리는 멕시코 국가권력의 장악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힌 점에서입니다. 68혁명도 국가권력 장악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였는데 그것이 '정치에서 문화로'라는 경향을 만들어 내면서 현존하는 국가에 대한 태도가 다소 불명확한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21:50:42 · 김정연: 과도 정부의 특징 다섯 가지입니다


1. 당-국가 체제의 해체와 PRI로부터의 정부의 실질적 분리


2. 깨끗한 선거, 합법성, 공정성, 비당파적-비정부적 시민 참여, 모든 민족적, 지방적, 지역적 정치 세력의 승인 등을 보장하는 선거법 개혁, 그리고 새로운 연방 총선거의 실시


3. 새로운 헌법의 창출을 위한 헌법적 기구의 소집


4. 원주민 집단들의 포괄적 자율과 시민권에의 권리를 인정하는, 그들의 특수성에 대한 승인


5. 거짓말과 속임수를 제거하고 나라에서 가장 가진 것이 없는 부문들, 타인들에게 착취당하는 부의 주된 생산자들인 노동자와 농민에 호의적인 민족 경제 프로그램의 방향 조정 (179쪽)


21:52:18 · BOM: 마르꼬스의 "투표" 강조도 인상적이었는데요, 투표가 "하나의 집단적 축제이면서 학습과 훈련을 쌓는 조직화의 과정"이 된다는 점이 특히 그랬습니다. 해당 내용 (183~4쪽)을 읽으며 단순히 대표자(의사결정의 대리자)를 뽑는 투표가 아닌 사회 집단의 중요한 결정들을 투표로 정하는 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53:28 · 김정연: 이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의 규모가 커서 놀랐습니다


"정부가 이 전 민족적 갈등을 진지하게 생각할 의향이 없음을 간파한 사빠띠스따들은 새로운 평화를 모색하는 민족적․국제적 대화를 시민 사회에 대한 직접적 호소를 통해 추진해 나가는 방법을 취했다. 그들은 EZLN의 요구 사항과 그 조직 자체의 앞날에 대한 민족적․국제적 여론을 듣기 위해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일반 투표’를 제안했고 그것은 8월 27일에 1,200만의 멕시코인과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주적으로 실시되었다. 투표자의 97.5%가 EZLN의 요구 사항들에 대해 동의를 표했고 이러한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멕시코의 모든 민주 세력들이 폭넓은 사회정치적 반대 전선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안건에는 97.5%가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투표자의 52.6%는 EZLN이 새롭고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180)


21:54:52 · 조정환: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참여한 가운데"라는 표현은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이 국적에 의해 닫히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21:55:40 · 조정환: 국가와 그 국가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도하는 선거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22:00:57 · 조정환: "투표자의 52.6%는 EZLN이 새롭고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에서의 "제안"에 따라 실제로 EZLN은 독립적 정치세력으로도 발전했는데 이것은 투표가 그냥 해본 투표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22:01:20 · BOM: 네. 세미나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22:02:28 · BOM: 다음 시간에는 3부의 남은 후반부를 범위로 이어서 독서토론을 진행해도 좋을까요? 혹은 시사토론 주제가 있으시다면 제안해 주셔도 좋습니다.


22:05:21 · 조정환: 2026년 5월 21에 전 부사령관 마르꼬스가 대위라는 직함으로 쓴 AI 관련글 링크와 AI번역글을 참고자료로 올립니다. 이 글도 다음 번 토론내용에서 다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22:07:22 · BOM: 네 감사합니다. (글은 본 세미나 방에 올려주시면 확인해 보겠습니다.)


22:07:46 · BOM: 그럼 이것으로 오늘 세미나를 닫겠습니다.


22:07:51 · 장귀: 감사합니다.


22:08:15 · 신은주alma: 이모티콘


22:08:26 · 김정연: 어떻게 조직했는지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요 1999년 투표에 대한 기사입니다.


대단한 조직력 같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1999/mar/23/mexico


투표소는 지하철역과 학교, 공원 밖에 설치되었고, 원주민 공동체는 공공 집회에서 투표했는데, 이는 정부가 최근 주 선거에서 인정한 전통적인 권리입니다.


22:08:28 · 김정연: 감사합니다


22:08:43 · BOM: 참고자료 감사합니다. 무더위 건강히 보내시고 다음 시간(8월 15일)에 뵙겠습니다.


22:09:10 · 신은주alma: 이모티콘


22:12:54 · 조정환: https://enlacezapatista.ezln.org.mx/2026/05/21/un-tractor-en-comun-y-el-caso-del-perico-loco-iii-el-amor-y-el-desamor-segun-la-inteligencia-artificial/


아래는 본문에 링크된 Enlace Zapatista 글 「Un Tractor en Común y el Caso del Perico Loco. III.- El Amor y el Desamor según la Inteligencia Artificial」의 한국어 AI 번역본입니다.






공동의 트랙터와 미친 앵무새 사건


III. 인공지능에 따른 사랑과 실연


놀라움 없이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여러 세미예로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구두 발언 “전사본”들이 실제로 말한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거나, 원래의 의미를 악의적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그것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해심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것이 여러 워드프로세서의 “자동 교정기”들이 벌인 나쁜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스마트” 휴대전화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 집요함 말이다. 곧 당신이 쓰는 말을 알고리즘이 제멋대로 바꾸려는 고집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속에서 당신이 그립다”고 쓰면, 교정기는 자기 “일”을 해서 도착한 문장은 “내 방에 낯선 사람들이 있다”가 된다. 적지 않은 연인 간의 다툼이 그런 “스마트” 전화들 때문에 생겨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한 달에 단돈 20달러만 내면 오디오를 보내고 전사본을 돌려받을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AI는 귀가 좋지 않다. 왜냐하면 “무정부주의 경찰은 자기 아들이 자신처럼 되기를 원한다”라는 식의 진술이 있었던 곳에서, 그것은 “예술가 경찰의 가속은 자기 은닉물이 자신처럼 되기를 원한다”라고 전사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유튜브 자막을 사용했다. 또 다른 경우에는 “듣고” 쓰는 워드프로세서 앱을 사용했다. 모두 비슷한 결과였다.


호르디 솔레르는 『밀레니오 디아리오』의 칼럼 「저항의 우울」, 2026년 5월 5일자 글에서, 바보들을 만들고 형성하는 과정, 곧 바보화가 인공지능, 이하 “AI”의 과업이라고 지적했다.


동의한다. 나는 거기에 정신적 게으름과 나태를 덧붙이고 싶다. AI가 몇 줄로 요약을 해주는데, 왜 굳이 텍스트를 읽고 그 핵심을 추상하려 애써야 하는가?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영화 예술이 “그린 스크린” — 또는 블루 스크린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 의 등장을 환영하고 허용하면서 “특수효과”와 시각적 충격을 우선시했을 때, 그것이 각본, 연출, 연기, 촬영 장소, 제작을 해친다는 사실을 잊었다. 다시 말해 영화 자체를 해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슈퍼히어로, 괴물, 재난, 외계 침공을 다룬 영화들이 등장했다. 그 영화들에서 배우는 그저 겁에 질린 표정이나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라는 표정을 지으면 되었다. 그린 스크린은 여주인공이 — 성평등을 잊지 말자 — 머리 집게 하나로 외계인의 침공을 물리치게 해주었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린 스크린 뒤에는 AI가 왔다. 그리고 AI와 함께 등장한 것은 단지 인물의 창조만이 아니라 연기라는 직업의 창조, 더 나아가 각본가, 제작, 조명, 의상, 더빙, 후반작업, 그리고 아직까지 “제7예술”을 구성하고 있는 기타 모든 것의 창조였다.


의심할 수 없는 각각의 증거 뒤에는 요인적 패배, 다시 말해 N제곱의 패배가 온다. 하나의 추락이 또 다른 추락을 낳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AI는 당신의 노동과 시간을 절약해준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I는 정신적 게으름이라는 친절한 마약의 생산자이자 판매자이며 “딜러”가 되고 있다.


AI의 “요약” 뒤에는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의 패배가 온다. 생각하기의 패배다. 그리고 그 표현들, 곧 읽기, 쓰기, 그리기, 노래하기, 놀기, 작곡하기, 춤추기, 토론하기, 제안하기 등의 패배가 온다. 다시 말해 창조하기, 그리고 투쟁하기의 패배가 온다.


체제가 당신에게 노동, 노력, 헌신, 전념을 절약해주겠다고 제안할 때마다, 그 안에는 대체하려는 시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물론 경제적 절약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AI는 진짜 비용을 은폐한다. 문제는 AI가 독립해서 자기 창조자에게 맞서는 것 — 가까운 지평선 위의 스카이넷 — 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AI가 그 창조자인 인간을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게으른 존재로 만들고, “다수”라는 알고리즘을 새로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따라가게 하는 데 있다. 절벽은 이미 가까운 지평선 위에 있는데도 말이다.


상상해보라. 당신이 마음에 든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려는 순간, AI가 이렇게 알려준다.


> “경고: 당신의 ‘좋아요’는 다수가 말하는 것에 반하며, 당신의 팔로워 수를 줄이고 따라서 당신의 인기 지수를 낮출 것입니다.”


>


공포다.


예술에서 AI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며 — 또는 이미 쓸 수 있으며 — 성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알고리즘을 사용했고, 악당의 죽음이 영웅의 죽음보다 더 환영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또한 회화, 조각, 음악에서 어떤 색채 조합, 선, 구성 방식이 “성공”할지, 다시 말해 인기와 다수의 지지를 얻을지 판정할 수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AI는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음표, 진행, 리듬을 “복사하고 재현”해 하나의 악보를 “작곡”할 수 있다.


처음에는 복사로 시작하고, 그다음에는 대체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대신하고 제거하는 것으로 끝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당신이 “읽기와 이해” 과목 — 아직 그런 과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 에서 『돈키호테』로 알려진 문학 작품, 곧 히스파니아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의 『재치 있는 시골귀족 돈키호테 데 라 만차』를 읽어 오라는 과제를 받았다고 하자. 그는 이른바 “부왕령”의 시기, 1547년부터 1616년까지 살았으므로, 따라서 4T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4T가 원주민들의 영토를 계속 약탈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은 책을 찾아 읽는 대신 인터넷에 들어가 두 문구 중 아무 것이나 구글링한다. 그러면 이런 답을 만나게 된다.


> “『돈키호테 데 라 만차』는 고정된 쪽수가 없다. 출판사와 판형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스페인 왕립아카데미, RAE의 판본처럼 가장 인정받는 완역본의 경우, 이 책은 약 1,424쪽에 이른다.”


>


“으악!” 당신은 말한다. “그걸 읽는 데 얼마나 걸리지?” 다시 AI가 답한다.


> “『재치 있는 시골귀족 돈키호테 데 라 만차』를 읽는 데는 평균적으로 27시간의 연속 독서 시간이 걸립니다. 약 1,000쪽 분량으로, 대부분의 독자는 느리고 꾸준한 독서로 2~3개월을 들입니다. 다만 하루 30~45분씩 투자한다면 3~4주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


“너무 많다.” 당신은 생각한다. “그 시간에 나는 많은 댓글 — 물론 AI가 제안한 댓글 — 을 올릴 수 있고, 많은 ‘좋아요’와 ‘싫어요’ — 이것도 AI가 안내한 것 — 를 누를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차라리 요약을 찾아보기로 한다. AI는 이렇게 말한다.


> “『돈키호테』는 이상주의, 자유, 꿈을 위한 투쟁의 보편적 상징입니다. 그것은 현실과 환상 사이의 영원한 대립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돈키호테적’이라는 형용사는 자기 이익보다 고귀한 가치를 앞세우는 이상주의적 인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


나는 인터넷에서 이런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매번 질의를 입력할 때마다 AI는 “생각 중”이라는 말을 띄운다. 회전하는 원은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이면, 작은 글씨로 AI가 그 요약을 어디서 가져왔는지가 나타난다. 바로 유튜브다! 다시 말해 당신은 하나의 결정을 내렸다. 『돈키호테』는 쪽수가 많으므로 읽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요약을 참으로 받아들이며, 사실상 그것을 읽었다고 간주한다. 이 모든 것은 정보의


개요


1. 세미나 진행 구조


- 일시와 형식: 2026년 8월 1일 저녁, 카카오톡 열린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본래 19시 30분 시작 예정이었으나, 뉴스레터 TAPic과 daziwon.com의 TAPic 뉴스레터 게시판 개편 논의를 먼저 진행하기 위해 20시에 시작되었다.


- 읽기 범위: 『21세기 스파르타쿠스』 2부 「1968 혁명」 전체와 3부 「사빠띠스따」 중반부, 225쪽까지가 토론 범위로 제시되었다.


- 진행 순서: 2부 「1968 혁명」 토론 → 휴식 → 3부 「사빠띠스따」 토론 → 다음 세미나 범위 및 참고자료 안내 순으로 진행되었다.


- 참여자: BOM이 진행을 맡고, 조정환, 김정연, 신은주alma, 장귀 등이 참여하였다. 토론의 이론적 설명과 쟁점 확장은 주로 조정환이 담당했고, BOM과 김정연은 책의 주요 구절을 인용하며 질문과 해석을 제기했다.


2. 2부 「1968 혁명」 토론의 흐름


2.1 1968 혁명의 역사적 위치


- 토론은 지난 세미나에서 다룬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상기하는 데서 출발했다.


- 조정환은 1968 혁명과 사빠띠스따 봉기를 좌파운동의 긴 역사 속에서 “특이한 위치”를 갖는 사건으로 설명했다.


- 1968 혁명은 전통적 노동운동의 틀을 넘어 여성, 비보장 노동자, 동성애자, 반핵활동가, 생태운동가 등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이 독자적 주체성으로 등장한 사건으로 정리되었다.


- 사빠띠스따 봉기는 전통적으로 노동자의 하위연합세력으로 간주되던 원주민들이 혁명세력으로 등장한 사건으로 파악되었다.


2.2 자유주의와 전통 사회주의에 대한 동시적 문제제기


- BOM은 68혁명이 우파 자유주의뿐 아니라 좌파, 특히 전통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을 인상적 대목으로 제시했다.


- 김정연은 “자본주의적인 노동과 사회주의적인 노동을 반소외의 관점에서 동시에 문제삼았던 인류 역사상 최초의 투쟁”이라는 137쪽 구절을 인용했다.


- 조정환은 68혁명과 사빠띠스따 모두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동시적 문제제기이자 저항이라는 성격을 가진다고 보았다.


2.3 68혁명의 한계와 지구적 조직화 문제


- BOM은 68혁명이 국제주의를 주장했지만 자율의 힘을 지구적으로 결집할 실제 수단과 조직적 대안을 충분히 창출하지 못했다는 139쪽 구절을 중요하게 제시했다.


- 이어 “운동의 네트워크들이 신자유주의적 시장 모델의 단순한 투영이기를 넘어 다양한 삶의 힘들을 결집시키는 지구적 조직화의 방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140쪽의 질문을 책의 핵심 질문으로 읽었다.


- 조정환은 이 질문을 현재까지도 미해결의 인식과제이자 실천과제로 규정했다.


- 특히 ‘광장’ 운동/투쟁의 한계를 논할 때, 68혁명과 사빠띠스따를 소화하지 않은 채 전통적 혁명 표상을 기준으로 삼는 비판은 실효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2.4 사빠띠스따와 공통장


- 조정환은 프랑스 68혁명과 이탈리아 자율운동이 “노동”을 핵심 문제로 삼았다면, 사빠띠스따 투쟁은 에히도 공유지, 즉 공통장의 수호를 중심에 놓았다고 설명했다.


- 멕시코 신자유주의가 헌법 개정을 통해 에히도 공유지를 판매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고, 이에 맞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 멕시코 정부를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했다는 맥락이 제시되었다.


- 조정환은 이를 마르크스가 러시아 미르 공동체에서 발견한 코뮤니즘적 가능성이 21세기 멕시코의 에히도 공통장에서 실력으로 분출한 사례로 해석했다.


2.5 포스트모더니즘의 프리즘과 68혁명의 왜곡


- BOM은 142쪽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스펙트럼을 통해 68혁명을 접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질문했다.


- 김정연은 129쪽의 “68혁명은 ‘더 이상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든 혁명’의 형상으로 그려졌다”는 문장을 연결했다.


- 조정환은 1990년대 초 유럽·미국에서 발흥하고 한국에 수입된 포스트모더니즘이 거대서사의 종말, 역사의 종말, 노동계급의 종말, 혁명에서 내파로의 전환 등을 내세우며 변혁운동의 주요 인지프레임, 운동 주체성, 목적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설명했다.


- 현실 사회주의 해체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패배이자 불가능성으로 번역·유통되었고, 필요한 것은 68혁명의 전유였는데 실제로는 혁명의 포기와 자본주의와의 영합이 확산되었다고 보았다.


- 이 흐름 속에서 들뢰즈·가타리는 보드리야르·리오타르와 구분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로 오인되었고, 1992년 로스앤젤레스 봉기와 1994년 사빠띠스따 봉기 같은 흑인다중·원주민다중의 투쟁은 충분히 주목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6 들뢰즈·가타리와 “탈주체적 주체성”


- BOM은 들뢰즈가 탈주체 철학으로 해석되는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지 질문했다.


- 조정환은 들뢰즈·가타리가 주체성을 부정했다기보다 주체성에 대한 다른 개념을 제시했다고 답했다.


- 이들은 주체성을 인격 이전, 개체 이전의 수준, 즉 전구체의 수준에서 보기 시작했으며, 노동자·원주민·흑인·여성 같은 명명조차도 너무 헐렁하고 커다란 범주로 보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조정환은 이를 『개념무기들』에서 “탈주체적 주체성”으로 명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 BOM은 “탈주체적 주체성”에서 “주체성”보다 “탈주체”에만 방점이 찍히는 해석이 문제적이라고 정리했다.


3. 3부 「사빠띠스따」 토론의 흐름


3.1 국제주의에서 간대륙주의로


- 휴식 후 3부 「사빠띠스따」 토론이 시작되었다.


- 조정환은 3부 첫 글의 제목에 “간대륙주의”가 들어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 그는 “국제주의”의 ‘국제’가 국가들 사이를 뜻하며 국가를 기본 형태로 삼는 관념체계라고 설명했다.


- 반면 “간대륙주의”는 대륙 사이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국가를 사유와 실천의 중심에서 빼는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 이는 사빠띠스따가 유럽 68혁명보다 더 실제적인 방식으로 국제주의를 넘어 대륙주의·간대륙주의의 실험을 수행했다는 앞선 설명과 연결된다.


3.2 국가, 정부, 다중 섭정


- 조정환은 전통적 사회주의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국가사멸 관념과 달리 실제 역사에서는 국가 강화의 경향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 그는 국가를 아래로부터의 “다중 섭정”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방향에서 사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 다중 섭정의 규모, 힘, 벡터는 다중의 자기조직화 수준에 따라 좌우된다는 전망이 제시되었다.


- 이 논의는 이후 사빠띠스따의 과도정부론과 국가권력 장악 거부를 해석하는 틀로 사용되었다.


3.3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


- BOM은 3부 초반의 핵심 주제가 사빠띠스따의 민족주의와 간대륙주의라고 정리했다.


- 조정환은 사빠띠스따가 멕시코 정부에 맞서 싸우면서 원주민 자치를 요구했고, 가능한 정부를 구성할 투쟁의 연합력으로 “민족” 개념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 여기서 민족은 혈통, 언어, 땅이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온 투쟁의 공동체 개념으로 사용된다.


- BOM은 사빠띠스따의 “민족”이 분리의 개념이 아니라 “총체”의 개념과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 김정연은 데 안젤리스의 해석을 인용하며,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이 원주민 공동체들이 속할 이상 또는 총체에 대한 조회이며, 마르크스의 공화국, 진정한 민주주의, 코뮤니즘과 동일한 지평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 조정환은 투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이 국경에 의해 제한될 수는 없지만, 공동의 투쟁이 역사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에서 무작위적으로 열린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 그는 사빠띠스따의 “멕시코 민족” 개념을 “열린 닫힘, 닫힌 열림”의 표현으로 이해했다.


3.4 원주민회의, EZLN, 부사령관 마르코스


- 조정환은 사빠띠스따의 조직체계를 설명하면서 최상위 결정체가 원주민회의이고, 그 아래에 EZLN, 즉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 있다고 말했다.


- 이는 군대가 당 아래에 놓이는 중국, 종교지도자 아래에 놓이는 이란, 군대가 국가 아래에 있고 대통령이 최고 지도자인 한국 등과 비교할 만한 체계로 제시되었다.


- 마르코스는 EZLN의 창설자이지만 스스로를 “부사령관”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군대와 지도자가 원주민 공동체 아래에 놓이는 구조를 상징한다.


3.5 과도정부와 영구적 과도성


- BOM은 『제3차 선언문』에 등장하는 “과도정부”가 조정환이 말한 국가 섭정과 비슷한 구도인지 질문했다.


- 조정환은 다중 섭정 하에서 국가와 정부는 영구적인 과도성을 띠게 된다고 답했다.


- 그는 종래 혁명세력의 과도정부론과 섭정전략의 차이를 구분했다.


- 종래 혁명전략은 과도정부를 자신들이 집권한 정부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로 파악한다.


- 섭정전략은 다중의 집권을 거부하면서 국가에 대해 영구적으로 섭정력을 행사하고, 국가형태의 소멸과 그 기능의 다중 자기조직 속으로의 흡수를 추구한다.


- 사빠띠스따는 1994년 1월 1일 멕시코 정부에 선전포고하면서 “우리는 멕시코 국가권력의 장악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밝힌 점에서 이 전략의 선례이자 모범으로 제시되었다.


- 조정환은 68혁명도 국가권력 장악으로부터 거리를 두었지만, 그것이 “정치에서 문화로”라는 경향을 만들며 현존 국가에 대한 태도를 다소 불명확하게 남긴 점에서 사빠띠스따와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3.6 과도정부의 다섯 가지 요구


- 김정연은 179쪽에 제시된 과도정부의 특징 다섯 가지를 정리해 공유했다.


1. 당-국가 체제의 해체와 PRI로부터 정부의 실질적 분리.


2. 깨끗한 선거, 합법성, 공정성, 비당파적·비정부적 시민 참여, 모든 정치 세력의 승인 등을 보장하는 선거법 개혁과 새로운 연방 총선거 실시.


3. 새로운 헌법 창출을 위한 헌법적 기구 소집.


4. 원주민 집단들의 포괄적 자율과 시민권에의 권리 인정.


5. 노동자와 농민에게 호의적인 민족 경제 프로그램으로의 방향 조정.


- 이 목록은 사빠띠스따의 과도정부 요구가 단순한 정권교체 요구가 아니라 당-국가 체제 해체, 선거제도 개혁, 헌법 재구성, 원주민 자율, 민중적 경제 재편을 포함하는 총체적 정치 재구성 요구였음을 보여준다.


3.7 투표, 집단적 축제, 조직화


- BOM은 마르코스가 “투표”를 강조한 점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 특히 투표가 단순히 대표자를 뽑는 절차가 아니라 “집단적 축제이면서 학습과 훈련을 쌓는 조직화의 과정”이 된다는 점이 중요하게 제시되었다.


- 김정연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일반투표에 1,200만 명의 멕시코인과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참여했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그 규모에 놀라움을 표했다.


- 조정환은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 참여가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이 국적에 의해 닫히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 국가와 국가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도하는 선거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이 투표는 사빠띠스따식 민족, 민주주의, 간대륙주의의 실천적 형태로 읽혔다.


- 또한 투표자의 52.6%가 EZLN이 새롭고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실제로 EZLN이 독립적 정치세력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이 투표는 “그냥 해본 투표”가 아니라 실제 조직적 효과를 가진 절차였다고 평가되었다.


4. 다음 세미나와 참고자료


- 다음 세미나는 2026년 8월 15일에 3부의 남은 후반부를 이어서 다루는 방향으로 제안되었다.


- 조정환은 2026년 5월 21일 전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대위”라는 직함으로 쓴 AI 관련 글을 다음 토론의 참고자료로 제시했다.


- 해당 글은 Enlace Zapatista의 「Un Tractor en Común y el Caso del Perico Loco. III.- El Amor y el Desamor según la Inteligencia Artificial」이며, 채팅 말미에 링크와 한국어 번역 일부가 공유되었다.


- 이 참고자료는 사빠띠스따 논의와 AI·자동화 비판을 연결할 수 있는 다음 토론의 잠재적 가교로 제시되었다.


핵심내용


1. 1968 혁명은 자유주의와 전통 사회주의를 동시에 문제삼은 반소외 투쟁이었다


- 세미나는 1968 혁명을 단순한 학생운동이나 문화혁명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과 사회주의적 노동을 모두 반소외의 관점에서 문제삼은 사건으로 파악했다.


- 이 점에서 68혁명은 우파 자유주의와 전통 좌파 사회주의 양쪽 모두에 대한 저항이었다.


- 68혁명의 주체는 전통적 산업노동자에 한정되지 않고 여성, 비보장 노동자, 동성애자, 반핵·생태 활동가 등으로 확장되었다.


2. 68혁명의 미완 과제는 자율의 지구적 조직화였다


- 68혁명은 국제주의를 표방했지만 자율적 힘들을 지구적 차원에서 결집할 실질적 조직형태를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 “운동의 네트워크가 신자유주의 시장 모델의 투영을 넘어 삶의 힘들을 결집시키는 조직화 방안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핵심 과제로 제시되었다.


- 이 질문은 오늘날 광장운동, 네트워크 운동, 전통 혁명전략 비판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로 정리되었다.


3. 사빠띠스따는 노동 중심 투쟁을 공통장 수호 투쟁으로 확장했다


- 프랑스 68혁명과 이탈리아 자율운동이 노동을 핵심 문제로 삼았다면, 사빠띠스따는 에히도 공유지라는 공통장의 수호를 중심에 놓았다.


- 이는 신자유주의가 공유지를 매각 가능한 사유재산으로 전환하려 한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 사빠띠스따 투쟁은 마르크스가 러시아 미르 공동체에서 보았던 비자본주의적 코뮤니즘 가능성이 멕시코 에히도에서 현대적으로 분출한 사례로 해석되었다.


4. 포스트모더니즘은 68혁명을 전유하기보다 탈혁명화하는 방식으로 수용했다


- 1990년대 한국에 수입된 포스트모더니즘은 68혁명을 거대서사, 노동계급, 혁명 목적의 종말이라는 프레임으로 번역했다.


- 이로 인해 68혁명의 핵심인 새로운 주체성, 자율, 변혁의 가능성은 약화되고, 혁명 불가능성의 증거처럼 해석되었다.


- 들뢰즈·가타리 역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프리즘 속에서 보드리야르·리오타르와 구분되지 않는 사상가로 오인되었다.


5. “탈주체적 주체성”은 주체성의 부정이 아니라 주체성 개념의 재구성이다


- 들뢰즈·가타리는 주체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인격 이전, 개체 이전의 전구체적 수준에서 새롭게 사유했다.


- “탈주체적 주체성”은 노동자, 원주민, 흑인, 여성 같은 명명된 범주보다 더 미시적이고 생성적인 주체화의 차원을 가리킨다.


- 따라서 “탈주체”만 강조하고 “주체성”을 지우는 해석은 문제적이다.


6. 사빠띠스따의 간대륙주의는 국가 중심 국제주의를 넘어선다


- 국제주의가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전제한다면, 간대륙주의는 국가를 사유와 실천의 중심에서 비켜 세운다.


- 사빠띠스따의 대륙간회의와 국제적 투표 실천은 국가 간 외교가 아니라 투쟁하는 공동체들 사이의 직접적 연결을 지향했다.


- 이는 68혁명이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지구적·초국가적 조직화의 한 실험으로 제시되었다.


7. 사빠띠스따의 민족은 혈통적·국가적 민족이 아니라 투쟁의 공동체다


-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은 혈통, 언어, 영토가 아니라 원주민 자치와 반제국주의 투쟁 속에서 형성된 공동체성을 뜻한다.


- 이 민족은 닫힌 국적 공동체가 아니라 외국인의 참여까지 포함할 수 있는 “열린 닫힘, 닫힌 열림”의 구조를 가진다.


- 데 안젤리스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마르크스의 공화국, 진정한 민주주의, 코뮤니즘과 연결되는 이상적 총체의 개념이다.


8. 사빠띠스따의 정치전략은 국가권력 장악이 아니라 다중 섭정이다


- 사빠띠스따는 멕시코 국가권력 장악을 원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 이는 종래 혁명전략처럼 과도정부를 자기 집권으로 가는 단계로 보지 않고, 국가를 아래로부터 통제하고 변형하며 그 기능을 다중의 자기조직 속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이해되었다.


- 다중 섭정 하에서 국가와 정부는 영구적인 과도성을 갖는다.


9. 사빠띠스따의 투표는 대표 선출이 아니라 조직화의 과정이었다


-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일반투표는 1,200만 명의 멕시코인과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참여한 대규모 정치 실험이었다.


- 투표는 단순한 의견조사나 대표 선출이 아니라 집단적 축제, 학습, 훈련, 조직화의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 투표 결과가 실제로 EZLN의 정치적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이 투표는 실질적 구성력을 가진 민주주의 실험이었다.


10. 다음 논의는 사빠띠스따와 AI 비판의 접점을 열 가능성이 있다


- 세미나 말미에 제시된 마르코스의 AI 관련 글은 다음 토론에서 사빠띠스따의 정치철학과 현대 AI 비판을 연결할 수 있는 자료로 제안되었다.


- 글의 주제는 AI가 전사, 요약, 창작, 판단을 대체하면서 인간의 사고, 창조, 투쟁 능력을 약화시키는 문제다.


- 이는 공통장, 자율, 주체성, 다중의 자기조직이라는 이번 세미나의 핵심 논점과 연결될 수 있다.


특이점


1. 68혁명과 사빠띠스따를 하나의 계보로 연결했다


- 이 세미나는 68혁명과 사빠띠스따를 별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다루지 않고, 전통 좌파정치와 국가권력 중심 혁명전략을 넘어서는 자율적 주체성의 계보로 연결했다.


- 68혁명의 한계가 사빠띠스따의 간대륙주의, 공통장 수호, 투표 실험, 국가권력 장악 거부 속에서 부분적으로 응답된다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2. “노동”에서 “공통장”으로의 문제틀 이동이 선명하게 제시되었다


- 토론은 68혁명·이탈리아 자율운동의 노동 문제와 사빠띠스따의 에히도 공통장 문제를 대비했다.


- 이 대비는 『21세기 스파르타쿠스』를 노동해방론의 연장선에서만 읽지 않고, 공통장·공유지·자치·원주민 투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게 한다.


3.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이 단순한 사조 비판을 넘어 주체성 정치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여기서 단지 문화이론이나 철학사조로 비판된 것이 아니라, 68혁명의 전유를 가로막고 혁명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든 인지프레임으로 분석되었다.


- 특히 들뢰즈·가타리의 주체성 개념이 포스트모더니즘적 “탈주체”로 축소되는 문제를 짚으며, “탈주체적 주체성”이라는 보다 정교한 개념적 구분이 제시되었다.


4.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이 민족주의 비판을 넘어 재해석되었다


- 사빠띠스따의 민족은 배타적 국민국가의 민족이 아니라, 원주민 자치와 반제국주의 투쟁이 구성하는 이상적 총체로 해석되었다.


- “멕시코 민족”이라는 말은 닫힌 국경이 아니라 투쟁의 역사적 공동체성을 표현하는 용어로 읽혔다.


- 이 점은 민족주의를 단순히 폐기할 것인지, 아니면 투쟁 공동체의 이름으로 재전유할 것인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5. 국가에 대한 태도를 “장악”이 아니라 “섭정”으로 재정식화했다


- 조정환은 국가를 폐지하거나 장악하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다중 섭정 대상으로 설정했다.


- 이 관점은 과도정부를 집권의 중간단계가 아니라 영구적 과도성의 장치로 이해하게 한다.


- 따라서 사빠띠스따의 “국가권력 장악 거부”는 정치 회피가 아니라 국가와 정부를 다중의 자기조직화 아래 두려는 적극적 전략으로 해석되었다.


6. 투표를 대의제 절차가 아니라 구성적 민주주의의 훈련으로 보았다


- 투표는 대표를 선출하는 절차에 머물지 않고, 집단적 결정, 축제, 학습, 훈련, 조직화의 과정으로 재해석되었다.


- 특히 외국인 10만 명 이상의 참여는 사빠띠스따의 민족 개념과 민주주의 실험이 국적을 넘어선다는 점을 보여준다.


- 이는 현대 운동에서 온라인 투표, 총회, 숙의, 네트워크 의사결정이 어떻게 단순한 여론수렴을 넘어 조직화의 기술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7. 세미나 말미의 AI 자료가 다음 논의의 방향을 예고했다


- 마르코스의 AI 비판 글이 다음 세미나 참고자료로 제시되면서, 사빠띠스따 논의는 과거의 원주민 자치운동 연구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AI·자동화·인지적 대체 문제로 확장될 가능성을 열었다.


- 공유된 번역문은 AI가 요약, 전사, 창작을 대신하면서 인간의 사고와 창조, 투쟁 능력을 약화시키는 문제를 제기한다.


- 이는 이번 세미나에서 반복된 자율, 주체성, 공통장, 자기조직화의 문제를 인공지능 시대의 조건 속에서 다시 사유하게 하는 연결점이다.


8. 토론 방식 자체가 “읽기-인용-개념화-현재화”의 구조를 보였다


- 참여자들은 책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고, 그 구절을 둘러싼 개념적 질문을 제기한 뒤, 조정환의 설명을 통해 이론적 틀로 확장했다.


- 토론은 단순 독후감이나 내용 확인이 아니라, 책의 문장을 현재의 운동론, 국가론, AI 비판, 조직화 문제로 옮겨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이 점에서 세미나 자체가 “집단적 독해를 통한 개념 생산”의 성격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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