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 이재명 정부의 진로 논쟁과 구성적 민주주의의 문제 (조정환)

시론
Author
자율평론
Date
2026-09-0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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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진로 논쟁과 구성적 민주주의의 문제



조정환

복잡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다루기 위해 명제 형식으로 정리한 아래 글은 자유주의와 민중민족주의 스펙트럼 속에서 전개되어 온 최근의 정치논쟁이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대립으로 전개되면서 그 안에 담긴 합리적 핵심이 묻혀 가고 있고 불행하게도 분열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 논쟁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정치적 대상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그 논쟁을 ‘빛의 혁명’의 발전 속에서 다중의 구성력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또 그것이 소모적으로 회전하게 되는 구조 혹은 그것의 한계를 살펴 논쟁이 나아갈 다른 출구를 열어 보고자 한다. 이 논쟁에서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태도 문제(비판인가 옹호인가)가 감정을 자극하는 정동적 촉발점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을 논리적 쟁점으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빛의 혁명으로 등장한 이재명 정권의 현재적 위상과 성격에 대한 규명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I. 민주당 당대표 경선 시기 논쟁에 관하여


1. 2026년 민주당 당대표 경선(주로 김민석 대 정청래의 대결)은 이재명 정권의 2년 차 정치노선을 둘러싼 최초의 대규모 당내 투쟁으로 발생했다. 그것이 지금은 당의 담을 넘은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 중이다. 2026년 8월 17일 김민석은 최종 54.08%를 얻어 45.92%를 얻은 정청래를 누르고 당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권리당원·대의원·국민여론조사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정청래가 근소하게 앞섰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에는 언론이 친정청래계로 분류한 인물이 3명 당선되었다. 따라서 경선 결과를 “친이재명 세력이 반이재명 세력을 압도했다”는 식으로 읽는 것은 실제 표심의 다층성을 지운다. 내가 보기에 경선에서 표출된 실제 대립은 최소한 세 층위였다. 첫째, 당청 관계 안정 및 대통령 중심의 국정수행 대 당의 상대적 자율성. 둘째, 중도·보수 확장 대 확장을 위한 민주진보 기반구축. 셋째, 개혁의 속도와 강도, 특히 검찰개혁의 완결성(보완수사권 폐지)을 둘러싼 갈등.


2. 김민석의 정치적 위치는 ‘친명’ 그 자체라기보다 이재명 정부의 통치역량을 중심으로 당을 재조직하려는 ‘정부중심형 대의정치’에 가깝다. 김민석 승리의 주요 배경은 윤석열의 내란 이후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관료제·검찰·수구정당·보수언론·기득권 세력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통치의 안정성과 집행력이 필요하며 이런 상황에서 당·정·청이 서로 소진적인 충돌을 벌이면 개혁정부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노선이 강화되면 정치적 판단과 결정의 흐름이 아래로부터 위로(시민→ 당 → 정부)의 방향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정부 → 당 → 시민)의 방향으로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권 2년 차 초기에 이미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위로부터 아래로의 결정 흐름이 더 확산되고 공고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민석 노선에는 개혁정부의 안정이라는 필요의 충족 외에 당과 시민을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정부의 지지기반으로 위계적으로 배치할 위험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정청래의 정치적 위치도 단순히 ‘반명’으로 규정될 수 없다. 당원주권과 1인1표, 강한 검찰개혁을 요구한 그의 정치는 다중의 주권활력을 정당 틀 내부로 끌어들여 대의정당인 민주당을 더 민주화하는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청래 정치를 단순히 개인적 당권욕이나 이재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탈정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해석이다. 물론 그의 정치가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구성적 민주주의의 실행은 아니다.


4. 유시민의 개입을 이재명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개입으로 보는 것 역시 부당하다. 개입의 정동적 분위기와 공격적 표현방식의 문제를 괄호치고 그 내용에 집중하면, 그것은 이재명 정부의 사회정치적 기반을 어떻게 더 강하게 구성할 것인가를 둘러싼 전략적 비판이었다. 유시민은 이재명의 외연확장 전략을 “증축”이 아닌 “재건축”에 비유하며 그것의 위험성을 격렬하게 비판했고, 검찰개혁이 지체되는 이유를 대통령의 태도에서 찾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논리를 단순히 “반이재명”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의 핵심 명제는 대략, 민주진보의 기존 사회적 기반을 해체하면서 중도·보수를 획득하려 하지 말고 이재명 정권을 탄생시킨 민주진보 연합을 강화한 뒤 그 힘을 바탕으로 외연을 확장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수사·기소의 완전 분리를 포함하는 검찰개혁은 민주진보연합의 필수과제로 제시된다. 즉 문제는 확장 자체가 아니라 확장의 기초와 실행순서였다. 이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 우선 행보에 대한 유시민의 비판은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더 단단하게 만들자는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5. 그런데 왜 그 취지가 정반대의 것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유시민의 개입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 틀 속에서 풀 수 없는 문제를 이재명 정권 대의민주주의의 노선이라는 제한된 틀 속에서 제기하고 또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유시민의 대안은 대체로 민주진보 정치세력의 재건 위에 중도보수로 확장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어떤 대표세력들을 어떻게 재결합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대의주의 관점에서 재결합할 세력은 정치지도자, 민주진보정당들, 시민사회 지도층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2024~25년 빛의 혁명은 “시민다중이 어떻게 스스로 정치적 판단과 결정의 주체로 작용할 것인가?” “어떻게 시민다중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12월 3일 밤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의 자기결정(내란진압)과 대의제적 요구(탄핵)가 제기한 것이 이 문제다. 유시민도 ABC론에서 A를 가치집단으로 불러 이익집단인 B와 구분한다. 하지만 그는 그 A를 촛불다중, 응원봉다중과 연결짓지는 않는다. 그는 그것을 이재명 정권에 대한 지지세력으로, 그 내부의 특수한 성격의 집단으로 제한함으로써 대의제 틀 속에서만 다룬다. 백낙청이 유시민의 담론에는 촛불혁명에 대한 관심이 전혀(’1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유시민은 빛의 혁명의 문제지평보다 훨씬 좁은 지평에서 (빛의 혁명이 세운 정권인) 이재명 정권이 직면한 문제들을 다룬다.


6. 검찰개혁 논쟁은 이번 갈등의 지평과 그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청와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서 흔들린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유시민은 완전분리 검찰개혁이 실질적으로 지체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존 논쟁은 검찰의 수사권을 어디(경찰·중수청 등)로 옮길 것인가, 검찰에게 보완수사권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즉 검찰개혁 논쟁은 국가형벌권 내부의 권력 배분 문제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빛의 혁명의 관점에서 보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묻히고 있다. 수사와 기소의 문제가 시민의 민주적 통제 없이 검찰·경찰·중수청·공소청 같은 국가기관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가? ‘보완’이라는 문제는 이 국가기관들 사이에서 국가형벌의 문제가 충분하게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 대의민주주의적 형벌체계의 한계를 벗어나는 잔여와 잉여의 이름이었다. 그 보완의 문제는 경찰이나 중수청에 수사를 맡긴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검찰에게 보완수사권을 부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가대위는 정부에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의 수사권을 요구한 바 있다. 수사기관이 수사(진실규명)를 방해하고 있음이 명백한 것으로 느껴지는 때에도 왜 시민다중은 관망할 수밖에 없는가? 이 질문을 회피함으로써, 즉 검찰과 경찰이 갖는 대의주의적 한계에 대한 성찰을 회피함으로써, 국가형벌 과정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통제의 경로를 회피함으로써 ‘보완’의 실제적 가능성은 봉쇄된다.


7. 검찰개혁은 ‘수사기관 대 기소기관’의 이원적 견제를 넘어 시민다중이라는 근본적 제3항을 도입할 기회였다. 이것은 시민에게 경찰의 강제수사권이나 검사의 기소권을 분배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수사발동, 기소심사, 권력형 사건 감독, 시민배심 등을 통해 국가형벌권 자체를 시민의 구성력에 개방하자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검찰개혁의 구조는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의 견제라는 이항구조에서 시민의 구성력이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의 견제를 통제하는 3항구조로 바뀐다. 이것은 단순한 권력분립을 넘어선 형사사법의 구성적 민주화의 경로다.


8. 이러한 경로에 대한 고려가 부재했기 때문에 ‘중도확장 대 진보연합’의 갈등은 출구를 찾지 못하는 폐쇄적 자기연소와 소진의 갈등으로 발전했다.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정치성과에서 중도확장으로 나아가는 경로를 중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진보 기반강화를 통해 중도확장하는 경로를 강조했다. 이 두 노선은 대립하지만 공통점이 더 크다. 둘 다 대표세력들의 배열만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 누락된 것은 시민 자신을 새로운 정치적 능력의 주체로 확대하는 전략이다. 중도확장과는 다른 시민확장, 다중적 확장이다. 시민이 정권의 ‘지지층’에 머물지 않고 정권과 함께 개혁을 구성하는 실질적 주권자로 배치되었다면 진보연합과 중도확장의 논쟁은 새로운 출구, 새로운 기반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II. 경선 이후 경선논쟁에 대한 평가에 관하여


9. 김민석의 승리는 ‘정청래 노선의 파멸’을 의미할 수 없다. 김민석이 승리한 것만은 분명하지만 정청래도 45.92%를 얻었고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앞섰으며 친정청래계 최고위원들도 상당수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선 결과는 한 노선의 파멸이 아니라 당청안정을 더 선호했지만 개혁 지속과 당원주권에 대한 요구 또한 상당하게 잔존한 복합적 선택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10. 김민석 선출 이후 이재명이 낙선자까지 청와대에 초청한 것, 그리고 8월 30일 개각 인선에서 기본소득당, 조국혁신당 인사를 기용하고 보완수사권 폐지를 추진한 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백낙청의 ‘반란 진압’ 서사보다 오히려 연합정치의 논리에 더 가깝다. 이 행보 자체는 패배자를 반란세력으로 규정하는 정치가 아니라 경쟁 → 승복 → 통합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정상적 문법을 실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1. 백낙청의 ‘반란 진압’론은 이번 전당대회를 가장 강력하게 정치화했지만 동시에 가장 강하게 단순화했다. 백낙청은 전당대회를 2기 촛불정부에 대한 반대세력들의 총궐기로 규정하고, 이재명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이를 “진압”했다고 평가했다. 호남 표심을 반란세력을 누르는 “집단지성”의 발현으로 보면서 경선 결과를 사실상 정권교체의 ‘완수’라고까지 평가했다. 이 해석의 강점은 경선을 피상적 언론보도와는 달리 단순한 인물경쟁이 아니라 2024년 촛불혁명 이후 이재명 정부의 향후 노선을 둘러싼 정치적 헤게모니 투쟁으로 본 것이다.


12. 그러나 백낙청의 해석은 ‘촛불혁명의 성격과 방향’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 기초한다. 그 논리는 암묵적으로 ‘이재명 정부는 2기 촛불정부다’, ‘정부의 국정주도권 강화는 촛불의 전진이다’, ‘정부의 주도권에 대한 도전은 반촛불적 반란이다’라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촛불이 이재명 정부를 만들었다는 명제와 이재명 정부가 촛불의 현재적 구성력을 온전히 대표한다는 명제는 논리적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 첫째가 역사적 사실판단이라면 둘째는 정치적 대표관계에 대한 주관적 주장이다. 시간 속에서 정권과 다중의 괴리는 언제나 가능하며 내가 보기에는 그 괴리가 지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3. 이 지점에서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그것의 정치원리와 긴장한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변혁’을 추구하는 방법론은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해 있고 다른 지향을 가진 광범한 세력의 연합으로서의 ‘중도’였다. 변혁적 중도의 관점에서는 입장을 달리하는 합리적 보수, 자유주의자, 진보세력, 시민사회 등의 연합단위들이 반드시 동일한 이론, 동일한 세계관에 동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백낙청의 유시민 비판은 갑자기, 분단체제론에 동의하는가, 촛불혁명론에 동의하는가, 이재명 정부를 2기 촛불정부로 인정하는가를 묻고 그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변혁적 중도’ 연합에의 참가자격을 판단하겠다는 태도가 나타난다. 변혁적 중도가 역설적으로 정통주의적 패권주의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14. ‘반란’ ‘진압’ ‘역모’ 등의 언어는 변혁적 중도의 연합정치보다 주권권력의 언어에 더 가깝다. 그것들은 비유일지라도 유시민이 말한 ‘왕정’ 요소의 정신적 실재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언어다. 대의민주주의에서도 민주주의의 최소 문법은 이견과 경쟁, 투표와 승패 결정 이후의 공존이다. ‘반란’이라는 말은 합법적 정통적 중심권력을 설정하고 그에 대항하는 도전자를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말이다. 이 어법에서는 민주당 내부의 노선경쟁이 정통주권 대 반역의 문제로 번역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촛불다중의 영구적 구성력(constituent power)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촛불에 의해 구성된 권력(constituted power)의 정당성과 정통성에 대한 변호론에 더 가깝다.


15. 그럼에도 백낙청은 이러한 진단과 해석이 변혁적 중도주의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변혁적 중도주의가 국가주의와 쉽게 결합될 수 있는 정치철학이며 지금 그것의 국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앞서 언급했듯 변혁적 중도론의 본래 정치기획은 광범한 촛불연합이 자본주의 세계체제 및 분단체제의 극복과 같은 변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그것을 수행할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시민에 대한 비판에서는, 그렇게 구성된 ‘2기 촛불정부의 성공’을 위해 시민들이 정부 중심으로 연합하는 것이 변혁과제를 달성하는 수단이라는 식으로, 요컨대 역의 에너지 흐름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정부는 변혁의 도구에서 변혁의 중심적 판정자로 부각되고 촛불시민은 구성자에서 지지자로 격하된다. 나는 이것이 변혁적 중도주의가 국가화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본다.


16. 유시민의 강한 언사가 이 국가화 경향을 오히려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는 점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유시민은 “왕정” “필연적 실패”, “참혹한 결과” 같은 강한 표현으로 이재명 정치를 공격했다. 이 표현은 이론적 비판을 정동적 충돌로 변환시켰다. 이것은 이슈 부각 차원에서는 센세이셔널한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르나 그 결과 어떤 개혁이 주장되는가보다 대통령을 왜 그런 식으로 공격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토론의 초점 상실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이 점에서 유시민의 개입은 자신이 주장한 진보연합론을 설득하기보다 오히려 정권방어적 정동(비판세력에 대한 위기감과 배제의 태도 확대)을 활성화하는 역설적 효과를 낳았다.


III. 논쟁의 성격, 가능성과 한계에 관하여


17. 이번 논쟁은 민주주의 에너지의 쇠퇴가 아니라 민주주의 에너지의 과잉을 보여준다. 시민들이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원투표, 유튜브, 커뮤니티, SNS, 언론논쟁 등에서 큰 정치적 에너지가 분출했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어디로 흐르는가다.


18. 이 논쟁은 ‘어떻게 시민을 더 잘 대표할 것인가’를 둘러싼 대의 경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시민은 왜 계속 대표되어야 하며 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가?’라는 문제가 은폐된다.


19. 이 때문에 논쟁은 정치적으로 활성적이지만 구성적으로는 폐쇄적이다. 시민들은 계속 이재명이 맞는가 유시민이 맞는가, 김민석인가 정청래인가, 친명인가 친청인가, 실용인가 개혁인가라는 닫힌 회로 속에서 선택하도록 요구받았다. 이것은 시민이 수사의 발동, 절차, 결과를 통제하는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시민이 어떻게 입법발안권을 행사할 것인가, 시민의회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AI·데이터에 대한 시민통제권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미루도록 만드는 토론 구조였다. 논쟁의 강도가 높은 만큼 선택지는 좁은 정치논쟁이었다.


20. 이러한 논쟁 구도는 빛의 혁명의 정동을 대의적으로 포획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빛의 혁명에서 정동은 분노·불안에서 광장에서의 직접행동과 협력으로 나아갔고 그것이 윤석열의 탄핵과 파면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번 경선과 전당대회에서 정치적 정동은 분노·불안이 유튜브·커뮤니티에서의 진영화를 거쳐 특정 후보와의 동일시 및 투표로 이동했다. 다중의 정동은 유튜브와 커뮤니티에서의 진영화 회로를 따라 흘렀다.


21. 이 회로는 정동을 활성화하지만 넘쳐흐름을 봉쇄하는 ‘봉쇄적 활성화’라고 부를 수 있다.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활성화된다. 그러나 그 활력이 빛의 혁명의 광장에서와는 달리 대통령, 후보, 빅스피커, 선거라는 대의 회로 바깥으로 충분히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은 탈정치화의 과정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잉정치화를 통한 다중 구성력의 대의민주주의적 봉쇄다. 유시민은 이재명 정권이 오만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이며 왕정으로 가려한다고 말했지만 조금 거시적으로 보면 다중 주권을 대표자에게 위임하는 것을 전제로 움직이는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왕정의 근대적 변용태이다. 그러므로 그의 민주주의론 자체도 왕정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22. 오늘날 정치적 정동은 단순한 의견에 그치지 않는다. 분노, 지지, 클릭, 조회, 댓글, 구독, 공유는 모두 데이터가 된다. 시민의 정치적 정동은 플랫폼 데이터, 알고리즘, 정치미디어 영향력, 광고 등을 거쳐 다시 정치적 정동으로 순환된다. 시민은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노동과 인지 노동을 플랫폼에 제공한다.


23. 오늘의 대의민주주의는 ‘정치적 대의제 + 인지적 대의제 + 알고리즘적 대의제’의 복합체로 변화하고 있다. 정치적 대의제는 시민에서 국회의원·대통령 등의 대표자에게로 집중되는 흐름이다. 인지적 대의제는 시민에서 평론가·빅스피커로 집중되는 흐름이다. 알고리즘적 대의제는 시민의 행동이 알고리즘을 거치면서 선별되고 구조화된 선택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결합하면서 시민은 형식적으로 주권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표되고 해석되고 계산되는 종속변수가 된다.


24. 이 과정은 ‘인지파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중 주권의 형해화를 수반한다. 극우 정치는 인지파시즘을 깊게 체화하고 있지만, 인지파시즘은 단순히 극우 정치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다중의 인지, 정동, 욕망, 경험, 데이터, 정치적 활력 등을 계산하고 가치화하여 다중을 통치하는 힘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구조의 이름이다. 그것은 대의적 갈등의 플랫폼화를 통해 시민의 구성력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시민의 욕망을 조정하는 구조다. 인지파시즘은 비극우 대의민주주의 체제 속에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정치적 요소다.


IV. 이재명 정권의 성격에 관하여


25. 이재명 정권은 빛의 혁명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빛의 혁명을 국가화하는 정권이다. 이 두 성격은 배타적이지 않고 공존적이다. 이재명 정부는 시민다중의 제헌적 구성력에 의해 정당화되고 또 뒷받침된다. 이재명 정권은, 윤석열의 내란을 저지하고 탄핵과 파면함으로써 다중이 열어낸 조기대선에서 선출된 정권으로서의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다. (박진영은 백낙청과의 대담 과정에서 2016 촛불혁명은 아래로부터 시민이 주도한 혁명이었으나 2024 혁명은 시민 주도 없이 민주당이 주도한 혁명이라고 주장했으나 그것은 오판이거나 거짓말이다. 나는 『빛의 혁명 183』에서 시민다중의 주권을 위로부터 찬탈하기 위한 이런 인지적 시도의 부당성과 위험성에 대해 서술했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하는 순간 혁명적 구성력은 정부정책, 행정, 법률 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혁명적 구성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정부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근본 질문은, 빛의 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구성된 권력’과 그 기관들이 빛의 혁명의 ‘구성력’의 발현과 실현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


26. 오늘날 이재명 정부를 정치적으로 개혁정부로, 지정학적으로는 평화공존 정부로 부르는 것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새로운 발전주의 정부라는 경제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경제정책에서 AI·첨단산업·자본시장·대규모 국가투자·대기업 협력을 통한 성장을 중요한 축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재명 정부는 정치적 민주개혁, 평화공존, 국가주도 기술발전주의를 결합하려는 복합 정부의 성격을 갖는다.


27.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모순은 ‘국민주권정부’ ‘평화공존’이라는 개혁적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료 하는 ‘구성적 국민’과 AI 발전주의를 위해 필요로 하는 ‘투자자 국민’ 사이의 상충이다. AI, 주식시장, 국민성장펀드, 첨단산업 육성 등이 성장동력으로 설정되면서 국민은 점차 시민이라기보다 투자자, 소비자, 데이터 생산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빛의 혁명에서 주권자로 등장했던 국민다중은 점차 자산가격 상승과 성장률에 결박된 투자자 대중으로 전화한다. 이 과정에서 다중의 구성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28.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기술발전주의는 단지 국내의 경제정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작금의 행성제국의 중요한 고리로 배치되어 있다. 행성제국은 AI·반도체·데이터센터·전력망·금융·안보 등의 행성적 스택구조를 갖고 있고 이 구조에서 한국은 반도체 생산, AI 인프라, 전력, 데이터, 금융자본, 안보동맹을 통해 그것의 생산회로에 편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다중은 그 제국의 신민이자 행성적 인지자본주의의 그림자 노동자가 된다. 이것은 빛의 혁명의 표현과 확장을 제약하는 거대 환경으로 작용한다.


29.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론이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백낙청의 이중과제론을 따르면 시민들은 근대에 적응하면서 그 근대를 극복해야 한다. 이 논리 속에서 AI·반도체·첨단산업 육성 자체는 반변혁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가 장기 메가프로젝트로 채택한 이 경로가 근대극복의 역량을 만들 수 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과잉적응인가이다. AI에 대한 소유와 통제 문제, 데이터권, 플랫폼의 공공화, AI가 심화시키는 기후위기의 극복문제, 노동자의 통제권, 인공지능으로 물화된 공통지성의 재구성 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면, ‘변혁적 중도’론은 ‘2기 촛불정부’라는 이름 하에서 기술발전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축소될 수 있다.


V. 시민사회 반응에 관하여


30. 이번 경선을 둘러싼 시민사회는 하나의 ‘촛불민심’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권리당원, 일반국민, 유튜브 시청자, 진보적 시민사회, 이재명 핵심 지지층 등등 사이에 감성, 판단 차이가 있었다. 당대표 선거에서 김민석이 승리했지만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정청래가 앞섰고 최고위원 선거도 혼합된 결과를 보였다. 따라서 “촛불시민이 김민석을 선택했다”거나 “촛불시민은 정청래를 지지했다”는 주장도 어느 것도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31. 이러한 분화는 다중의 약점이 아니라 본래적 성격이다. 다중은 하나의 국민의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노동자, 투자자, 청년, 여성, 지역주민, 평화운동가, 촛불시민, 당원, 비당원 등의 욕망과 이해는 서로 다르다. 문제는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들이 공통장을 생산하는 데 성공하는가 실패하는가이다.


32. 플랫폼 정치에서는 다중의 차이가 공통장을 만들기보다 팬덤적 진영으로 분절될 위험이 크다. 차이가, 토론을 통한 문제의 공통화를 거쳐 새로운 제도화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정동적 자극과 인물적 동일시, 적대감의 알고리즘적 증폭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후자가 강해지면 다중은 공통적 구성력을 생산하기보다 개별화된 정치정동의 군집으로 변한다.


VI. 논쟁의 발생 근거에 관하여


33. 이번 논쟁의 가장 깊은 원인은 빛의 혁명이 정권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구성력을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2024~25년 시민들은 국가비상권력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이 우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그 힘을 지속시킬 시민의회 시민발안 시민거부권 시민수사감독권 참여예산권 직접적 정책결정권 등의 제도는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 구성력은 다시 기존 대의장치의 동원력으로 빠르게 회수되어 갔다.


34. 이런 의미에서는 민주당 경선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부각된 것 자체가 구성적 민주주의의 미발달을 반영한다. 시민이 국가정책에 직접 개입할 다른 제도들이 충분하다면 당대표 선출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이 지금처럼 거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실천적 사건으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당대표 경선에 혁명의 계승, 개혁의 운명, 정권의 성공, 진보진영의 미래가 과잉집중되는 것은 다른 유효한 정치통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35. 그러므로 이번 갈등은 단순한 계파갈등이 아니라 ‘미제도화된 구성력의 대의제적 환류’ 현상이었다. 빛의 혁명의 구성력이 시민의 직접적 섭정정치로 지속되지 못하면서 당원주권, 대통령 지지, 진보연합, 정치유튜브 등 서로 다른 수준의 대의형태로 분산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민석-정청래의 경선갈등은 그 표면적 표현형태였다.


VII. 다중섭정과 구성적 민주주의에 관하여


36. 빛의 혁명이 보여준 핵심적 교훈은 국민이 국가주권의 단순한 원천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감독하고 중단시킬 수 있는 ‘섭정적 다중’이라는 사실이다. 계엄을 저지한 시민들은 새로운 왕이나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권력의 작동을 중단시키고 국회를 압박하고 헌정질서를 복원시킨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세습적 성격의 영구적 주권권력과는 다른 힘, 필요한 순간 개입하는 주권활력에 가깝다.


37. ‘다중섭정’은 국가를 직접 영구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된 권력을 끊임없이 잠정화하는 정치형식이다. 섭정적 다중은 국가를 폐지하지도 않고 국가에 완전히 주권을 양도하지도 않는다. 국가는 필요한 행정도구로 존재하지만, 시민이 필요할 때 발동하고 견제하고 중단하고 방향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구성적 민주주의, 섭정의 민주주의다.


38.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을 주권권력의 강화가 아니라 주권활력의 제도화로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정책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핵심 질문은 ‘국민이 이 정부를 지지하는가?’가 아니라 ‘이 정부 아래에서 국민다중의 직접적인 정치능력이 실제로 커지는가?’이다. 검찰개혁은 이 전환의 첫 실험장이었다. 수사·기소를 철저히 분리하되, 그 형벌의 과정을 시민의 발동권, 심사권, 감독권, 거부권에 개방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검찰개혁을 권력기관 개혁을 넘어 국민주권의 구성적 전환의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39.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은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두 번째 실험장이다. 행성적 규모의 인지자본주의에서는 데이터, 알고리즘, 모델, 컴퓨팅 인프라가 새로운 생산수단이다. 행성규모의 인지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의 문제는 정부가 AI 강국을 만드는 것을 통해 달성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누가 데이터를 전유하는가, 누가 모델을 통제하는가, 다중의 공통지성이 누구의 자본으로 전화되는가를 살피고 시민이 알고리즘을 중단시킬 권리를 갖고 있는가를 부단히 확인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40. 시민의 인지노동을 공통화하지 못하면 빛의 혁명의 구성력은 인지자본으로 흡수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생산한 정보, 경험, 정동, 네트워크, 집단지성은 플랫폼과 AI의 원천 데이터로 전유된다. 그것이 사적으로 축적되어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시민을 통치하는 데 사용된다면 다중의 구성력은 변혁의 힘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통치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인지민주화 대신 인지파시즘화가 전개된다. 이것이 전 지구적 AI 제국의 구축과정에서 이재명 정부가 AI화의 ‘대체 불가능한’ 첨단기지=대한민국을 자임하면서 내놓는 메가프로젝트에 내재된 위험성이다.


41. 이 과정에 내재한 인지파시즘 경향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인간·비인간 집체지성의 제도적 공통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플랫폼의 민주적 통제, 알고리즘 감시, 데이터 공동권, 공공 AI, 시민의 알고리즘 중단권, AI 인프라에 대한 사회적 통제 등이 민주주의 개혁의 당면 과제로 제기되어야 한다. 이것은 대의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완수될 수 없는 문제로서 대의민주주의를 넘은 구성적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VIII. 정리


42. 2026년 민주당 당대표 경선의 표면적 대립은 ‘김민석 대 정청래’였지만 실제 대립은 ‘이재명 정부의 안정적 통치 대 계속 개혁에 대한 요구’였다. 이 양자는 필연적으로 대립적일 수밖에 없는 이슈는 아니다. 그럼에도 김민석은 전자를 더 강하게 대표했고 정청래는 후자를 부분적으로 대표했다. 빛의 혁명의 구성력을 다중의 섭정력에 기초한 구성적 민주주의로 제도화하는 방향의 노력은 양쪽 모두에 누락되어 있었다.


43. 유시민의 비판적 개입은 이재명 정부의 중도확장 실용주의가 갖는 위태로움과 검찰개혁의 불철저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었다. 하지만, 비판은 양측의 공통 기반을 불필요하게 깨뜨릴 만큼 언어적으로 과도했고 또 비판이 대의주의 지평 속에 머무른 나머지 실질적 대안으로 작용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이것이 논쟁의 공회전한 이유다. 그것은 주권 권력인 이재명 정권이 직면한 궁지를 다루면서 정부가 다중의 주권활력에 기초하여 실질적 출구를 찾도록 돕지 못했다. 그 결과가 정동적 대립의 격화다. 격렬한 언어는 오히려 정부방어적 정동을 증폭시켰다.


44. 김어준을 비롯한 정치미디어는 민주진보 시민의 정보권을 확장했지만 동시에 시민의 집단지성을 ‘인지적으로 대표하는’ 새로운 권력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대안언론의 성과인 동시에 인지자본주의 하에서 구성적 민주주의가 넘어야 할 새로운 문제이기도 하다.


45.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촛불혁명과의 관계 속에서 이번 경선의 역사적 실천적 중요성을 사유했다는 점에서 깊은 통찰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경선 갈등을 ‘2기 촛불정부 대 반란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촛불 구성력의 내적 복수성을 국가적 정통성으로 환원했다. 그 결과 변혁적 중도의 광범한 연합논리는 축소되고, 정부중심적인 위계적 연합논리가 강화되었다. 여기에서 변혁적 중도론의 국가화 경향이 드러났다.


46. 이재명 정권은 ‘빛의 혁명에 의해 구성된 정부’이면서 동시에 ‘빛의 혁명의 구성력을 흡수·국가화할 위험을 가진 정부’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단순히 대통령 지지율 상승, 선거 승리, 경제성장, 코스피 지수 상승, AI 경쟁력 증가 등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기준은 현 정부가 자신을 만들어낸 빛의 다중의 구성력을 얼마나 확대했는가이다.


47. 이 기준에서 ‘중도확장’의 의미도 재정의되어야 한다. 합리적 보수까지 포괄하는 것은 통치상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확장은 기존 대표세력의 좌우 외연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대표됨으로써 주권을 잃거나 아예 대표조차 되지 못했던 다중에게 진정한 정치적 능력과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의 평면에서의 중도확장보다 근본적인 것이 다중의 주권 보장과 보강이다.


48. 검찰을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나누는 것은 개혁이다. 하지만 그 권력은 여전히 국가기관의 수중에 독점되어 있다. 대의적 개혁을 넘어서는 구성적 개혁이 필요하다. 그것은 누가 국가권력을 행사할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시민다중이 그 권력의 생성과 작동 및 그것에 대한 통제 및 중단에 직접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49. 2026년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 드러난 ‘실용 대 개혁’의 대립보다 더 깊은 대립이 있다. 그것은 ‘누가 국민/당원을 대표할 것인가’와 ‘국민다중이 어떻게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계속 재구성할 것인가?’ 사이의 대립이다. 앞의 질문은 대의민주주의의 질문이다. 뒤의 질문은 구성적 민주주의의 질문이다.


50. 대의민주주의 지평에서의 갈등이 격렬할수록 오히려 구성적 민주주의의 질문이 은폐될 수 있다. 대표자들의 경쟁이 격렬하면 시민들도 더욱 정치화되는데, 그 시민의 에너지가 후보 선택, 지지와 배신, 유튜브에서의 감정적 비난, 계파갈등에 계속 환류된다면 대의체제가 더욱 단단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탈구성적 과잉활성화의 담론장치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51. 현재의 정치적·정동적 갈등은 다중의 ‘구성력의 봉쇄적 활성화’의 성격을 갖는다. 시민은 침묵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말하고 판단하고 참여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에너지는 대통령, 정당, 미디어, 플랫폼 등 정치적 인지적 대의기관들의 힘으로 축적된다. 이것은 억압보다 더 복잡한 통치형식이다.


52. 인지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정치적 활성화를 필요로 한다. 시민이 침묵하면 데이터도 가치도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체제는 시민에게 말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하라, 말하라, 논쟁하라, 댓글을 달아라, ‘좋아요’와 ‘구독’을 클릭하라, 지지하라고 요구한다. 인지자본주의는 그 정치적 활력이 플랫폼과 대표제의 회로를 벗어나 독립적인 구성력으로 조직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53. 이 지점에서 대의민주주의와 인지자본주의는 서로 결합한다. 대의민주주의는 정치적 결정을 대표자에게 집중시키고, 인지자본주의는 집단지성을 플랫폼과 자본에 집중시켜 인공지능으로 발전시킨다. 두 체계가 결합하면 정치적 주권의 대의, 인지적 능력의 대의라는 이중적 수탈이 가능해진다.


54. 이 양자가 다중의 욕망·정동·인지·구성력을 유도하고 활성화하고 계산하여 다시 다중을 통치하는 기술적 힘으로 변환할 때 인지파시즘의 문제가 등장한다. 인지파시즘은 대의민주주의의 폐기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거와 정당, 여론조사와 시민참여가 활발히 존재하는 과정 내부에서 진행될 수 있다.


55. 구성적 섭정민주주의는 다중의 구성력이 다중에 대한 통치력으로 되돌아오는 이 악순환의 단절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의 핵심은 정당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을 없애는 것도 아니며 대의제를 폐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대의권력을 언제든지 중단 가능한 잠정적인 권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구성력의 대의적 제도화와 더불어 그 제도들에 대한 시민의 심사, 거부와 중단, 그리고 새로운 구성의 순환을 상설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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