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 교수대에 오른 범죄자들, 그들은 왜 저항했나ㅣ박서현
교수대에 오른 범죄자들, 그들은 왜 저항했나
박서현 (제주대 학술연구교수)
『목매달린 자들의 런던』은 역사서이다. 이 역사서의 소재는 18세기 런던의 타이번 교수대에서 목매달린 자들의 죽음과 삶이다. 이들의 죽음과 삶, 이 역사를 저자인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는 왜 다룬 것일까. 이 역사에서 무엇이 문제라고 본 것일까. 혹은 이 역사에서 무엇을 읽어내려 한 것일까.
책에서 다뤄진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서 목매달린 이들, 범죄자들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범죄자들이 역사를 변화시키는 세력이었다고 말한다(22). 어째서 그러한지를 확인하기 전에 분명한 것은 저자가 이들을 이런 세력으로, 어떤 힘 있는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자의 것을 취하는 사회적 범죄자이자 빈자의 것도 취하는 악질 범죄자였다. 그러나 이런 유형들로 이들을 성급히 분류한다면,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읽어내야 하는 주의력이 흐려진다(24). 나아가,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읽어내려 했던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우리의 주의력도 흐려질 것이다.
타이번에서 목매달린 이들은 분명 아주 가난한 이들이었다. 당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의 아내가 이야기하듯이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그가 땜장이이고 가난한 사람이며, 그래서 멸시받고 정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113).’” 이들은 피억압 계급, 무산 계급에 속했다(115). 노동 빈민이었다(156).
도둑질은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이들은 예컨대 더 이상 길드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산업 조직의 변화 속에서 노동 분업의 파괴적 충격에 노출된 직인들, 소규모 마스터들, 도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변화 속에서 생존의 문제를 겪게 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의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그저 생존의 곤란을 겪은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들이 동시에 이러한 변화 속에서 착취의 새로운 조건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43).
『목매달린 자들의 런던』은 이들이 얼마나 착취받았는지를, 억압받았는지를 서술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이들이 단순히 억압 속에 살았던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하고 반항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그리는 것은 억압받는, 비참한 삶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책은 착취의 새로운 조건에 맞서 싸우다 교수형에 처해진 이들의 반항과 싸움을 그린다.
약자·빈자 대 권력자와 유산자의 갈등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 말하듯이 책의 배경이 런던이고 시대는 18세기이며 주제는 사형인데 책의 논제가 ‘계급투쟁’인 것은 이 때문이다(8). 타이번에서 목매달린 이들이 계급투쟁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저자에 따르면, 이 교수형은 도시의 계급 간 분쟁에서 중심적 사건이었다(17). 교수형은 분명 범죄자를 목매달 수 있는 주권 권력의 존재를 과시했다. 아울러 사유재산을 존중하라는 교훈 또한 과시했다. 타이번이 드러내는 것은 약자와 빈자 대 권력자와 유산자의 갈등이었다(21). 생산수단을 빼앗긴 빈자가 생활수단을 전유하는 도둑질, 이러한 도시범죄는 18세기 갈등으로서의 계급투쟁의 역사를 보여주었다(22).
저자는 도둑질, 범죄가 자본주의의 변화를 유발했다고 말한다(22). 이는 소위 계급 관점의 역전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오빼라이스모(Operaismo, 노동자주의)의 투쟁의 우선성을 생각나게 한다. 충분히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발전은 계급투쟁으로부터 비롯한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자본의 위기를 가져온다. 자본은 기술의 발전 등을 통해 이러한 위기에 대응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분열을 가져오고 이로부터 결국 자본은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이는 충분히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의 주도성이 노동계급의 투쟁에 있다는 것이었다. 책에서 다뤄지는 사회는 이런 사회가 아니다.
아울러 책에서 다뤄지는 범죄자 역시 조직된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본을 위기로 몰아넣으며 그 변화를 추동한 노동계급의 투쟁과 유사하게, 목매달린 이들의 행위는 통치자들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선제적 조치를 행사하도록 자극했고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이들의 역사를 18세기 노동계급 역사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22). 이들의 행위, 즉 범죄에 대한 처벌이었던 사형이 런던의 노동시장의 새로운 재생산을 조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198). 그러니 무슨 상처받은 삶이 아닌, 이들의 행위, 범죄가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된 것이다.
죽음을 불사하며 반항하는 이들의 역사
여기서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명확하다. 지배받고 억압받음에도, 범죄를 저지를지언정, 밟았을 때 죽은 척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니라 꿈틀하며 뛰어오르는, 비순종적인 이들의 반항, 살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저항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이러한 역사를 그리니 말이다. 미셸 푸코가 말하는, 책에서도 언급되는, ‘대감금’ 시대에 사람들은 훈육되어 길들여진 존재로 생산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불사하며 반항하는 이들이 있다.
저자는 감금을 강조하는 푸코의 논의가 흡사 정부와 사회의 지배자들을 전능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고 말한다(30). 물론―푸코의 문제의식이 권력과 예속의 문제만이 아닌 자유의 실천을 향해 있을지언정―푸코의 저술 이면에 있는 문제의식을 읽기보다 표면을 읽어낸 저자의 독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명백히 푸코를 생각나게 하는 진술로 저자는 감금이 노역소·공장·학교·병원·배에서 펼쳐졌을 때, 그 대항점으로 탈출·도주·탈영·이주·거부 역시 있었다고 말한다(53).
여기서 저자가 말하려는 것 혹은 오히려 저자가 그러하듯이 우리가 역사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속박과 훈육을 거부하고, 범죄로 나타났을지언정, 탈출·도주·탈영·이주·거부로 드러나는 자유를 구가하려 했던 빈자들의 삶과 그 활력이다. 대감금의 시대에 앞서서 존재했던 이들의 삶과 죽음이, 죽음을 불사하고 속박을 거부하는 이들의 자유로운 삶이, 이러한 삶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역사를 쓰는 것은 이들이 어떤 유형의 범죄자이기 이전에 속박을 거부하고 반항했던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것이 책이 ‘자유에 대한 이야기’(75)인 이유이다. 물론 낭만화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분명 범죄자였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있는 어떤 길들여지지 않는 품성, 이들의 삶이 보여주는 어떤 ‘다른’ 살아 있음, 활력이 있다. 노동을 당연시하는 것과는 무관한 어떤 다른 삶, “나는 아직 돈이 남아 있었고 돈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일하거나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182)라고 말하는 어떤 다른 삶이 말이다.
범죄자로 굴러떨어지는 불결한 환경에서 살았고, 폐기물을 주워다 파는 폐기물 경제로 살았으며, 주변부 혹은 쓰고 버리는 인구의 일부였음에도 이들은―다시금 명백히 푸코를 생각나게 하는―가부장적 가족이나 학교와 병원의 훈육 없이, 이러한 훈육에 길들여지지 않은 채 생활했다(198). 이들은 법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198), 법을 조롱하면서 흥겨워했다(199). 이 삶은 책에서 제시되는 ‘양말하기’(작업 중에 담배를 관습적으로 전유하는 행위), ‘토막’(작업 중에 목재를 관습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 권리) 같이, 살기 위해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관습적으로 전유하는, 관습적 전유의 삶이자 노상강도 같은 범죄자의 삶이었다.
합법적 상업 이면에 존재했던 밀수, 절도, 거래, 장물 수취, 노상강도를 통해 이들은 하인의 속박된 삶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동시에 지배계급으로서의 압제자의 그것이 아닌 어떤 독립성, 힘을 되찾으려 했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처럼 자본이나 국가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법 바깥에 자신을 두는 이들의 대담한 행동은 런던 노동계급의 적대적 문화의 필수적 부분이 되었다. 다루기 쉽고 순종적인 노동력 형성에 큰 장애물이 된 것이다. 이 시기 이들은 계속해서 교수형을 당했지만 이들을 교수형에 처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죽음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이들이 지지하거나 대변하는 가치에 도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272).
새롭게 조직된 생산 방식과 임금 할당
물론 책은 결국 이들의 삶, 즉 런던에서 증가하던 폭민 같은 인구의 삶이 결국 일련의 법에 의해 통제되었음을 보여준다(280). 이들, 즉 빈둥거리면서 일하던 노동계급과 이들이 슬쩍하는 관습적 전유를 새로운 절차와 양식으로 훈육하는 형사적 제재가 이루어졌고, 이들의 빈둥거림과 전유를 방지하는 기술적 방식이 도입되었다(281). 물론 이러한 도입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법을 집행하려는 이들에 대해서 예컨대 1769년의 돌팔매질과 같은 대항테러가 있었듯이 말이다. 책이 말해주듯이 대항테러는 제조업자·치안판사·성직자에 대한 것이었고, 매우 저항적이었다(352). 결국 타이번 교수형이 폐지되고 교수대에서 이루어진 주기적인 대학살 역시 중지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산 방식이 새로이 조직되고 임금 할당도 새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409-410). 더 이상 관습적 전유가 가능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면서 책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고 법을 조롱하며 도망 다녔던, 길들여지지 않고서 저항했던, 훈육에 앞서 자유를 구가하다가 결국 목매달려 죽은 자들의 삶이다. 책은 이렇게 훈육되지 않은 삶과 죽음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듯이 역사가 일련의 집단적 투쟁, 현재의 패배, 현재의 승리에 의해 만들어진다면(201), 저 삶은 물론 패배한 삶, 결국 목매달려 죽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저항적이었던 삶, 그렇게 이후의 역사를 만든 삶이었다.
이는 이후의 역사에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삶일 수 있지만 그러나 분명 역사의 어떤 시점에 존재했던 삶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삶에 존재했던 활력을, 아마도 우리에게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혹은 오히려 오늘날에는 아마도 다른 형태로 가능할지도 모를 이 활력을 책에 담아내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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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6년 9월 5일 『교수신문』(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09873)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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