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_발제] 제4고원(167-178)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8-11-17 13:31
조회
36
제 4고원. 1923년 11월 20일 – 언어학의 기본 전제들


p. 168
Ⅱ. 어떤 “외부적” 요소에도 호소하지 않는 랑그라는 추상적인 기계가 있으리라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은 서로 대응하지도 부합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본성도 다르고 상호 독립적이고 이질적이다.

스토아학파는 이런 독립성을 이론화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스토아 학파는 몸체의 능동작용-수동작용(이들은 “몸체”라는 말에 가장 큰 외연을 부여했다. 즉 형식을 부여받은 내용이라면 모두가 <몸체>이다)과 비물체적 행위(이것은 언표의 “표현된 것”이다)를 구분한다. 표현의 형식은 표현된 것이라는 날실을 통해 구성되며 내용의 형식은 물체들이라는 씨실을 통해 구성된다. 칼이 살에 박힐 때, 양분이나 독이 몸에 퍼져갈 때, 포도주 방울이 물에 떨어질 때에는 몸체들의 혼합이 있다. 하지만 “칼이 살을 벤다” “나는 먹는다” “물이 붉어진다”라는 언표는 이와는 본성상 아주 다른 비물체적 변형(사건)을 표현한다.

p. 168-169, 몸체 그리고 비물체적 변형
스토아 학파와 함께 다음과 같은 점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앞의 역설은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된다. 즉 비물체적 변형, 비물체적 속성은 바로 몸체 자체에 대해, 몸체 자체에 대해서만 말해지는 것이라고. 비물체적 변형, 비물체적 속성은 언표의 표현된 것이면서도 몸체에 귀속된다. 하지만 그 목적은 몸체를 기술하거나 표상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몸체는 이미 자신의 고유한 질, 능동작용과 수동작용, 영혼, 요컨대 자신의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 자체가 몸체이며 표상 또한 몸체이다.

따라서 비물체적인 속성이 몸체에 대해 말해진다는 것, 비물체적인 표현된 것인 “붉어진다”와 몸체적 질인 “붉다” 등을 구분할 좋은 근거가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표상 말고 전혀 다른 근거를 찾아야 한다. <몸체 또는 사물의 상태는 기호의 “지시체”이다>라고 할 수도 없다. 비물체적 속성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몸체에 귀속시킬 때 우리는 표상하거나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개입을 하는 것이다. 이 개입은 바로 하나의 언어 행위이다. 이 개입은 표현의 형식과 내용의 형식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반박하기는커녕 확인해준다. 모든 표현 또는 표현된 것은 내용에 끼워 넣어지고 개입한다. 내용을 표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용을 예견하고, 퇴보시키고, 지연시키거나 가속시키고, 분리하거나 결합하고, 또는 다르게 재단하기 위해서, 순간적 변형이라는 날실은 늘 연속적 변양이라는 씨실 속으로 끼워 넣어진다.

inq. 언어를 ‘말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바꾸거나 바뀌는 것이다. 근본으로부터 철저히. 근본은 꿈이다. - 어슐러 르귄,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中

p. 169-170
비물체적 변형이 비물체적이면서도 몸체에 귀속되고 몸체에 삽입되는 것이라면, 이 날짜들이 표현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비물체적 변형인가? (표현의 형식과 내용의 형식은 서로 독립적) 이 둘의 분할이 성립되며, 또 표현이 내용에 삽입되고 우리가 끊임없이 한 장부에서 다른 장부로 도약하고 사물들이 기호들을 가로질러 펼쳐지거나 전개되는 동시에 기호들이 사물들 자체에 작용하는 방식이 정초된다. 언표행위라는 배치물은 사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의 상태나 내용의 상태에게 직접 말한다. (...) 푸코 말대로, 명령어에서 사물의 “침묵하는 질서”로, 또 그 반대 방향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p. 170-171
“개입한다.”
우리는 기원이 아니라 끼어드는 지점, 끼워 넣어지는 지점을 결정해야만 한다. (...) 내용에 대한 표현의 우위나 표현에 대한 내용의 우위를 설정할 수는 없다. 기호적 성분이 물질적 성분보다 더 탈영토화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요컨대 각각의 형식을 양화하는 탈영토화의 정도들이 있어, 그에 따라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연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영토화하며 안정화되기도 한다. 우리가 상황이나 변수라고 부르는 것들도 사실은 탈영화토의 정도들 자체이다. 한편으로 내용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몸체의 혼합체 또는 몸체의 결집체 안에 있는 비율들이다. 다른 한편으로 표현의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언표행위 내부에 있는 요소들이다. (...) 요컨대 표현은 내용을 발견하거나 표상함으로써 내용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이 서로 소통하며 끼어들고 작용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의 상대적 탈영토화의 양자들의 결합 때문이다.

inq. On Kawara의 작품, I’m still alive, JULY 10, 2014

p. 172-173
이로부터 <배치물들>의 본성에 대해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1. 첫 번째 축인 수평축에 따르면 배치물은 두 개의 절면을 포함하는데, 그 하나는 내용의 절편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의 절편이다.

2. 배치물은 능동작용이자 수동작용은 몸체들이라는 기계적 배치물이며, 서로 반응하는 몸체들의 혼합물이다. 다른 한편으로 배치물은 행위들이자 언표들인 언표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이며, 몸체들에 귀속되는 비물체적 변형이다. (※봉건제라는 배치물 : 봉건제를 정의하는 몸체의 혼합체들. 땅이라는 몸체와 사회라는 몸체, 영주와 가신과 농노라는 몸체, 기사라는 몸체와 말이라는 몸체 및 이것들이 등자와 맺는 새로운 관계, 몸체들의 공생을 확보해주는 무기와 도구 등은 모두 기계적 배치물, 하지만 또한 언표들 표현들, 문장이라는 사법 체제, 비물체적 변형들의 집합, 특히 맹세의 유형들로서 복종의 맹세와 사랑의 맹세 등도 있는데, 이것은 언표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

3. 하지만 수직 방향의 축에 따르면, 배치물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안정화시키는 영토화의 측면들 또는 재영토화된 측면들을 갖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실어 나르는 탈영토화의 첨점들을 갖고 있다. → 그래서 두 번째 축에 따르면 한 측면과 다른 측면 사이에서 비교되고 결합되는 것, 한 측면을 다른 측면 속에 끊임없이 집어넣는 것, 그것은 결합되거나 교체되는 탈영토화의 정도들이며 바로 그 순간 전체를 안정화시키는 재영토화의 조작들이다. (※봉건제라는 배치물 : 다른 축을 따라 기사와 그가 타는 짐승, 언표와 행위를 실어 나르는 탈영토화의 선이 있으며, 동시에 봉건제의 영토성과 재영토화가 있다.)

4. 다른 한편에는 기호 체제 또는 언표행위 체제가 있다. 각각의 체제는 나름의 비물체적 변형, 나름의 행위, 나름의 사형 선고 및 나름의 판결, 나름의 소송, 나름의 “법”을 가지고 있다.

inq. K, K-기능

p. 174-6 두 가지 오류
<첫 번째 오류> 내용이 인과 작용에 의해 표현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 일단 부득이하게 내용에서 표현으로 가는 인과 작용을 생각해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각각의 형식, 즉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은 동일하지가 않다. 우리는 표현의 형식이 이렇게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재인식해야만 한다. 바로 이 독립성 덕분에 표현은 내용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독립성은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설사 내용이 경제학적이라고 하더라도 내용의 형식은 경제학적일 수 없으며, 나아가 이 형식은 순수한 추상으로, 즉 재화의 생산 및 그 자체로 고려된 재화 생산 수단으로 환원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표현이 이데올로기적이라고 하더라도 표현의 형식은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으며, 나아가 이 형식은 추상으로서의 언어로, 공공재산의 운용인 언어로 환원되어 있다.

물질적 또는 기계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의 배치물은 하나의 재화 생산에 관련된다기보다는 한 사회 속에 있는 몸체들의 정밀한 혼합 상태에 관련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인력과 척력, 공감과 반감, 변질과 합체, 침투와 팽창이 있어 모든 종류의 몸체들을 서로 변용시킨다. 무엇보다 음식물 체제와 성의 체제는 몸체들의 혼합, 강제적이거나 필연적이거나 허용되어 있는 혼합을 조정한다. 기술도 도구를 그것 자체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한다. 하지만 도구는 자신이 가능케 하거나 자신을 가능케 하는 혼합체와 관련해서만 존재한다.

도구는 <사회-자연>이라는 기계적 배치물을 정의하는 공생 관계 또는 합체와 분리할 수 없다. 도구는 하나의 사회 기계를 전제하며 사회 기계는 자신의 “문(phylum)” 안에서 도구들을 취사 선별한다. 한 사회는 도구가 아니라 합체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집단적 또는 기호계적 측면에서 볼 때 배치물은 언어의 생산성에 관련된다기보다는 기호 체제, 표현 기계에 관련되며 이 기호 체제 또는 표현 기계의 변수들이 랑그의 요소들의 사용을 결정한다. 도구와 마찬가지로 랑그의 요소들도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도구와 재화보다 몸체들이라는 기계적 배치물이 우선하며 랑그와 단어보다 언표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이 우선한다.

또다른 배치물이 기계적 배치물과 집단적 배치물이라는 두 측면으로 분절되는 것은 이 두 측면의 형식을 양화하는 탈영토화 운동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회적 장은 갈등과 모순이 아니라 그 장을 가로지르는 도주선에 의해 정의된다. 배치물에는 하부 구조와 상부 구조, 심층 구조와 표층 구조가 없다. 배치물은 오히려 자신의 모든 차원을 평평하게 만든다. 상호 전제와 상호 삽입이 일어나는 바로 그 고른판 위에서 말이다.

inq. 체화된 인지(embeded cognition) VS 확장된 인지 (extended cognition)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evocative objects)-셰리 터클
사이보그 선언-다나 해러웨이
아트선재, 프론티어스 인 리트리트 : Edge Effect – 생태에서의 경계와 복합성

p. 175-178
<두 번째 오류>는 표현의 형식만 있으면 언어 체계로서 충분하다는 믿음이다. 이 체계는 기표작용하는 음운론적 구조 또는 심층의 통사론적 구조로 간주될 수 있다. (...) 그러나 여기서 내용은 한갓 “지시체”의 자의성에 불과한 것이 되고 화행론은 비언어적 요소들이라는 외부적인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모든 기획에 공통된 것은 랑그라는 추상적인 기계를 세우고, 이 기계를 상수들의 공시적 집합으로 건립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착상된 기계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점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계는 충분히 추상적이지 못하며 “선형적”인 채로 남아 있다. 그것은 매개적 추상의 층위에 머물러 있다. (...) 하지만 추상을 더 밀고 가보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층위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랑그의 사이비-상수가 언표행위 그 자체의 내부에 있는 표현의 변수들에 자리를 내주고야마는 층위에. 따라서 표현의 변수들은 끊임없이 상호 작용 중인 내용의 변수들과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다. 비언어적 요소들과 관련된 외적 화행론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면 그것은 언어학이 언어학 자체의 요소들과 관계하는 내적 화행론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참된 추상적인 기계는 한 배치물 전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즉 추상적인 기계는 이 배치물의 도표라고 정의된다. 그것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도표적이고 초선형적이다. 내용은 기의가 아니고 표현은 기표가 아니다. 내용과 표현은 모두 배치물의 변수이다.

촘스키의 추상적인 기계는 여전히 나무 모델에 기대고 있으며 문장들을 만들거나 조합할 때 언어적 요소들의 선형적 질서에 기댄다. 하지만 특히 간접 화법과 관련해서 화행론적 값들이나 내적 변수들을 떠올리자마자 우리는 “초문장”을 끼워 넣거나 “추상적 대상”(비물체적 변형)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 초문장이나 추상적 대상은 초선형성을 함축한다. 다시 말해 그 요소들이 더 이상 선형적 질서에 따라 고정되어 있지 않은 판, 즉 리좀 모델을 함축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언어와 사회적 장 그리고 정치적 문제가 서로 침투하는 것은 추상적인 기계의 표면이 아니라 심층에서이다. (...) 언어가 추상적인 기계에 의존하는 것이지 결코 그 역은 아니다.

우리는 도표의 상태들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내용과 표현의 변수들이 고른판 위에서 서로를 전제하며 이질적 형식에 따라 분배되는 상태이다. 다른 상태에서는 내용과 표현의 변수들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바로 고른판의 가변성이 형식의 이원성보다 우세하여 변수들을 “식별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상태는 상대적인 탈영토화 운동에 이르게 되지만 두 번째 상태는 탈영토화의 절대적 문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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