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스팸 : 재현에서 후퇴하기

작성자
jini
작성일
2021-09-29 18:56
조회
637
지구의 스팸 : 재현에서 후퇴하기 (발제자 최혁진)

두터운 전파 층이 초 단위로 지구에서 송신된다. 우리의 편지, 스냅사진, 내밀하거나 공식적인 통신, 텔레비전 방송, 문자메시지가 지구를 떠나 원형 파장으로 떠돈다. 그것은 우리 시대 욕망과 공포를 실은 지질학적 건축이다.

이 세계에서든 다른 세계에서든 고고학자, 법의학자, 역사가는 모두 스팸을 보며 그것을 우리의 유산이나 모습, 우리 시대와 우리 자신의 진정한 초상이라 여길 것이다. 바로 이 디지털 잔해에서 어떻게든 재구성된 인간을 상상해 보라. 어쩌면 그는 이미지 스팸처럼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미지스팸의 모델은 포토숍 처리된 복제물로 사실적이라기엔 지나치게 개선되었다.)

이미지스팸은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에게 발송된다. 그들은 빼빼 마르지도 않고, 불경기에도 끄떡없는 학위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유기적 실체는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다. 스팸은 인류의 광대한 다수에게 발송되지만 그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미지스팸에 접합된 인간의 이미지란 사실 인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대로 인간이 아닌 것을 그린 세세한 초상이다. 그것은 음화(negative image)이다

모방과 마법화

이미지는 모방적 욕망을 촉발하고 사람들이 그 욕망에 재현된 상품처럼 되고 싶게 만든다. 헤게모니는 일상의 문화에 침투하고, 일상적인 재현의 형태로 그 가치들을 유포시킨다.

이미 한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렌즈와 슬그머니 거리를 두며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재현되기를 능동적으로 회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능동적이고 또 수동적으로 항상 감시, 기록, 식별, 촬영, 스캔, 녹화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완전히 애워싼 미디어 경관 안에서, 오랫동안 특혜이자 정치적 특권이라 여겨졌던 사진적 재현은 이제 위협으로 다가온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다. 무감각할 정도로 현전하는 폄하 발언이나 게임쇼는 텔레비전이 하위 계층을 전시하고 조소하기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는 매체가 된 상황으로 이끌었다. 게다가 주류 미디어에서 사람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극단적 위급이나 위험 상황에서든, 전쟁과 재난 지역에서든, 세계 곳곳 분쟁 지역의 꾸준한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에서든 종종 소실의 행위 중에 포착 된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와 휴대폰 카메라가 상호 집단 감시의 구역을 창출하여 편재적인 도시 네크워크에 폐쇄회로 TV, 휴대폰 위치 추적,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 등을 추가 한다. 더해서, 사람들은 무수한 사진을 찍고 거의 실시간으로 공개함으로써 서로를 일상적으로 감시한다. 고용주는 지원자의 평판을 구글 검색한다.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는 악의적인 험담과 불명예의 전당이 된다.

모두가 15분 동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던 앤디 워홀의 예언은 오래 전에 현실이 되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를, 15분 만이라도 비가시화되길 원한다... 휴대전화가 우리의 미세한 이동을 노출시키고, 스냅사진마다 위치 추적 좌표가 달리듯(tagged), 계산대, 현금인출기, 기타 접속 지점에 등록될 때마다 우리는 딱히 죽도록 즐겁다기보다는 산산조각이 난 채 재현되고 만다.

퇴장

앞서 다룬 이미지스팸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스팸이 자신의 구성 기반의 음화라면, 어떻게 그런한가? 이데올로기가 강제된 모방을 사람들에게 강요해서, 이에 따라 사람들이 능률, 매력, 건강의 불가능한 표준이 부합하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자체적인 억압과 교정에 스스로를 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만에, 그냥 거칠게 가정해보자.
이미지스팸은 자신의 구성 기반의 음화가 맞다. 왜냐하면 사람들 ‘또한’ 이러한 종류의 재현에서 적극적으로 퇴장하여, 향상된 충동 테스트용 인형만을 남기고 떠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지 스팸은 미묘한 파업의 비자발적 기록이자, 사진과 동영상 재현에서 떠나가는 사람들의 퇴장이 된다.

너무 극단적인 나머지 전폭적인 감량이나 축소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너무도 극단적인 권력관계의 장에서의 대탈출 이미지 스팸은 지배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이런 식으로는 재현 될 수 없다는 민중의 저항 기념비이다. 그들은 부여 받은 재현에 틀에서 떠나 가고 있다.

정치적 재현과 문화적 재현

시각적 재현이 과열 상태에 돌입하고 디지털 기술을 통해 대중화된 반면, 민중의 정치적 재현은 깊은 위기에 봉착하고 경제적 이익에 가려졌다. 가능한 모든 소수자가 잠재적 소비자로 인정되고 (어느 정도는) 시각적으로 재현되는 반면, 민중의 정치 및 경제 영역에 대한 참여는 더욱 불균등해졌다. 따라서 동시대 시각 재현의 사회계약은 21세기판 폰사기나 결과가 예측 불가능한 게임쇼 참가를 좀 더 닮았다.

진실을 생산하는 언론의 직업적 기준은 집단 미디어 제작, 위키피디아 토론 게시판에서 복사되고 증폭되는 소문에 압도되고 말았다. 시각 재현은 실제로 중요하지만 다른 형식의 재현과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양쪽 사이에는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한편에는 지시체가 없는 방대한 양의 이미지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재현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더 극적으로 표현해보면, 방목되어 부유하는 이미지의 증가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비가시적이며 심지어 소멸되고 실종된 사람들의 증가와 일치한다.

재현의 위기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도 이미지스팸은 끝없이 순환한다. 기계로 생성되고 봇(bot)자동 발송 되며 마치 반 이민 장벽, 장애물 울타리처럼 서서히 강 강력해져만 가는 스팸 필터에 걸러진다.

민중이 점차 이미지의 주체나 개체가 아닌 제작자가 되어감에 따라, 민중은 아마도 하나의 이미지 안에 함께 재현되어서가 아니라, 공동으로 이미지를 생산함을 통해서 발생할 수 있으리라는 자각도 증가한다.

이미지 스팸은 이중 간첩이다 그들은 과잉 가시성과 비가시성 양쪽에 기거 한다. 그들이 계속 미소짓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얼어붙은 자세는 사실 사람들에게 잠시 기록에서 벗어나는 보호막을 제공함을 그들은 안다. “우리가 대역을 설테니 그 사이에 저들이 우리에게 태그를 붙이고 스캔 하게 놔두라. 당신은 레이더를 피해서 할 일을 하라”고 이에, 그들은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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