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1/29 세미나 후기 및 2/12 공지

작성자
voov11
작성일
2022-02-07 16:55
조회
457
[공지]
다음 세미나는 2월 12일입니다.
이 날은 <도둑이야!> 책 3부 중8,9,10 장을 읽어오기로 했습니다.

[후기]
1. ::이 장들 전체에 흐르는 라인보우의 과학 기술 기계에 대한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 과학기술에 대한 라인보우의 생각이 지금과는 다르고, 가속주의자들, 들뢰즈와도 다름.. 과학기술을 적대시하는 관점이 드러남. 이에 대해 살펴보면 좋을 것 같음.
- 기본적인 러다이트에 대한 내용이 6장이었음. 부정적인 서술들이 많이 있었음.
- 직접적인 이야기는 아니나, 라인보우의 기술 기계 관점과 더불어서 공통장 이야기를 하는데 공통장 이야기를 할 때 군데군데 직접적으로 할 때, 땅, 숲이런 것 만이 공통장은 아니라고 함. 공통장이라고 하면 대지, 공통장 물리적인 공통장도 있지만 힘든, 낮은 존재들을 지칭 할 때에도 공통장이라는 말을 쓴다고 함.
- 자원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라인보우 생각 궁금함. 자연을 자원으로 바라보는 것, 공통장 논의를 통해서 논의 할 때 나무, 땅, 자원으로 바라볼 때 이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음. 자원이라는 개념에서 살 수 있느냐는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긴 함. 공통자원으로 자연으로 바라보는 것과 피터 라인보우가 기술 기계를 바라볼 때 관점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 제주대학 공동자원과 지속가능 사회연구센터 / 자원으로서 공동자원 공유재로 공통장을 파악하는 접근 방식. 공통장을 자원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간 중심 관점임. 인간의 노동이나 행위 실천의 관점에서 봤을 때 대상들이 자원으로 나타남. 피지털 커먼즈를 보면 공통장 개념을 자원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함에 공감함.
- 기술·기계 관점에서 접근하더라도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 자기자신에게 적합하게 자원으로 나타는 점도 주목할 수 있는 지점임. 6장 제목이 러다이트 운동의 집단 주체를 레드너드라고 부르고 퀸 마브는 작품이름으로 나옴. 러다이트의 주된 활동이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라서, 기계파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낭만주의 시인에서 찾고 시인과 러다이트가 교차한 지점을 1810~1820년으로 잡고 그 당시의 공통장 서술하는데 6장을 할애함. 기계 파괴와 낭만주의에 대한 생각이 스스로를 러다이트로 규정할 만큼 기계 파괴를 옹호하는 입장이라서 이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음. 맑스 입장에서 보면 공감하기 어려운 주장임. 러다이트의 경우 맑스는 부정하지는 않지만 초기의 노동운동 전술로 이해하고 노동운동이 발전하면서는 기계파괴는 폐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맑스 관점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초기 노동운동의 러다이트 경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통장 개념과 연결시키는 논의를 하여서 문제적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음. 지성공통장은 이야기 하지만 기계 등을 공통장의 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적절한가? 그러면 공통장의 개념이 좁지 않은가 피지털 커먼트의 경우 피지컬+디지털 공통장 서술에 대한 노력임. 라인보우 입장에서 디지털 자체도 파괴되어야 하는 것일까?
- 라인보우가 상품과 자원을 구분하여 이야기 함. 공통장의 적으로 되고, 파괴되어야 하는 기술과 기계는 상품을 만드는 기술과 기계로 국한하여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피지털 커먼즈에서도 기술과 기계를 다른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고 함. 현재처럼 모든 것을 다 상품화 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통장을 북돋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라는 생각
- 수학교수였던 우편물 폭탄으로 유명함. 슈난바우머 메니페스토 선언에서 두 개의 기술로 구분함. 대규모 테크놀로지, 소규모 테크놀로지 구분하며 전자를 파괴의 대상으로, 소규모로 나아가자는 기본골자. 테크놀로지 대규모화 하고 체제화 하는 것을 공격임. 상품화 라고 하는 상품화하는 기술인가 아닌가 하는 구분임. 규모의 문제로서, 기술 체제 속에 구획선 도입함.
2. ::2011년의 기계에 대한 반란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 107쪽 라인보우의 글 쓰기 방식이 시적인 특징, 굉장히 방대하고 세세한 역사적 지식을 짧은 문장 속에서 응축하는 서술법임. 라인보우가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잘 모르면 문장이 해석이 어려워서 계속 찾아가며 읽어가는 것이 필요함. 라인보우 깊이에 상응하기 위해서는
- 2011년 후쿠시마와 연결. 144쪽 2011년에 이글이 쓰였고, 지하의 반란, 아랍의 봄이 2010~2011년 이라서 그런 것들이 힌트가 되지 않을지. 아랍의 봄을 기계파괴 반란으로 읽을 수 있을지.
- 2011년 월가 점검도 있음. 기계에 대한 반란으로 읽지 않고, 2011년의 일들을 찾아보면
- 2010년 겨울 이집트 아랍의 봄이 폭발함. 연쇄적으로 지중해를 건너서 스페인 프랑스 파리 광장, 이탈리아 남 유럽 쪽으로 옮겨 붙었음.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은 한국의 일본과 관계. 2011년 9월부터 미국에서 점거가 있었음. 2011년 3월이 후쿠시마이고. 유럽의 반란 시기와 유사한 시기에 후쿠시마에서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의 붕괴가 일어남. 지하적 힘은 원자력이라고 하는 원자발전소의 봉쇄되어 있던 거대한 에너지의 분출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음. 지구 위 우주적 장관은 라인보우가 거기에 아프리카 – 유럽을 거쳐서 북아메리카, 남 아메리카 퍼져갔던 혁명적 사건을 스펙타클로서 보려고 하는 시도가 아닐지 싶음. 기계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굳이 생각하자면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의 운동이 2011년 하반기에 일본에 오랜운동적 침묵을 깨트리고 거리 시위로 나옴. 연계되면서 원자력 발전, 기술로서의 원자력 발전을 테크놀로지의 현상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거부들이 일어났다고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확실하지는 않음
- 월가를 시위를 떠올리면 컴퓨터를 떠올림. 온갖 금융상품이 컴퓨터 없이는 탄생하기 어려운. 알고리즘 덕분에 상품들이 가능하여서 그것을 떠올림.
- 북아프리카의 시위의 경우 이집트나 튀니지라거나 모로코라거나 이런 것에서 일어난 시위들은 트위터 혁명이라고 하여서, 트위터를 통해서 이집트는 군사 체제화 되어 있는 정권이에도 불구하고 시민연대 발전함. 사실상 고도의 디지털 기술이 혁명으로 불리어서. 기계에 대한 반란으로 보기에는 어려움, 점거의 경우에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경고라거나 불평등을 시정하려고 하는 노력들은 잘 모르겠으나 광장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시도들, 어셈블리를 통해서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거리르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서 하는 것들은 기계를 단순히 소품화된 것으로 보지 않고 시스템으로 본다면 다른 시도였음. 도서관도 만들고 라디오 방송도 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그들끼리 모여서 다른 유형의 삶을 시작함. 직접 민주주의 점거하여서 다른 삶을 꾸리는 것.
- 라인보우가 자연을 공통장을 같이 두고 기술 자본을 같이 보는 것 같음. 공통장을 위한 기술과 아닌 기술을 구분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아서 염두하면서 이야기 해야할 것 같음

3. ::라인보우가 말하는 낭만적 시인들은 누구를 가리킬까?
- 낭만적 시인은 국지적 -> 혁명적으로 전환했다고 하는데 이때 실제 기술이 필요한데 기술에 대한 견해는 모순되지 않은지
- 번역 상으로 반응 했다고 2011년의 사건으로 해석하면 이해가 잘 안됨. 2011년에 찾아내기 어려움. 이절 이하에서 셸리를 중점으로 하는 당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이 러다이트에 대해서 반응한 것. 그것이 1,2 항목으로 나타난 것 같음. 2011년의 것을 기계에 대한 반란으로 보면 러다이트에 대한 낭만적 시인.. 라인보우도 일종의 시인인 것 같음.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 자기자신에 대한 방법을 정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함.
- 국지적인 것에서 혁명으로 확장했다고 할 때에 낭만의 로만의 일본식의 표기방식임. 로만티시즘을 낭만주의라고 번역하여 우리도 사용함. 로만주의라고 하는 것이 나을 수 있음. 로만은 로마적인 것도 연결됨. 그리스 로마적인 것. 독일어에서는 로만이라고 하면 로벨레는 길지 않은 장편 소설, 로만이라는 것은 대하서사 소설을 지칭함. 로만이라는 것이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사건의 연결고리가 복잡, 거대함. 로만이라고 하면 대하 소설이라고 번역함. 로만주의라고 하며 아주 디테일에 얽매이지 않고 짤막한 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평화가 같은 거시적인, 우주적인 시야를 갖고 세계와 삶을 대하는 태도로 볼 수 있음. 그들이 러다이트 기계 파괴를 통해한 공통장 관점을 열어내는..
- 낭만주의 시인들이 바이런과 시인 후예들
- 한국에도 낭만주의 시들이 있는가?
- 시나 소설을 장르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대서사시 현재 나오는 것 시, 형식적으로 시와 구분하지 않고 보면 오늘날에도 낭만적 대서사시를 쓰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 하나가 한국에서 SF나 장르문학 쪽으로 창작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그들도 사실상 셸리, 바이런의 후예로 보면 낭만적 대서사시를 꿈꾸면서 창작하는 것 같음
- 오늘날에도 낭만주의를 표방하는 작품들이 창작되는가 질문 주셨는데,
- 낭만적 시인들을 낭만, 봉기, 혁명 공통장 식으로 인접적인 장이 서술하는 것으로 읽었음. 이때 낭만은 그때 당시 문학사에서 이야기되는 낭만과는 다르게 보이고, 낭만에 대한 함의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생각함.
- 낭만주의적인 글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음. 셸리와 블레이크는 프랑스 혁명을 받은, 서정시 낭만주의에 대한 선언을 하는데 현실에 대해 반항적으로 기존 저항으로 낭만을 인정함. 고전주의와 구분한다면 고전주의는 규범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해나가는 역동적인 것을 추구하는. 혁명과 낭만주의과 연결된다면. 보들레르 같은 경우도 깃발 들고 싸우면서 현장에서 신문을 만들다고 나폴레옹 3세 이후로 좌절됨 혁명 속에서 싸웠던 시들이 낭만주의적이라고 한다면 프랑스 혁명이 실패하면서 자기들의 시에 대한 회의를 했다거나 시는 시다워야 한다며 고다파가 나오는데 기계파괴라거나 거기에 대해 새로운 민중들의 요구들, 옹호하면서 기계들의 문학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의 문학이 아닌가.
- 셸리는 10년동안 글을 쓰면서 산문이 저항적인 부분이 큼. 한국은 낭만주의라고 표방하지 않지만 80년대 현실변화를 추구한 것을 보면 낭만주의가 아닐까

- 레디커는 항해할 수 있는 기술들을 해방적 세계에 대한 요인으로 보는데 기술자가 혁명가가 될 수 있다라는 관점은 라인보우에게서는 안보인 것 같음. 조금 더 자연적인 공통장에서 찾아야 겠다는 것으로 보임.
- 기계와 기술에 대한 생각할 시 스스로의 모순은, 기계와 기술의 문제가 효율성과 성장의 가치들과 분리해내는 것 없이, 6장에서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면서 읽혔음. 기술 기계를 가치로서 따라붙는 생산성, 효율성의 가치들과 연동이 되면서 한편으론느 6장이 설득력이 있음. 이런 가치들을 어떻게 분리시키고 탈성장을 이야기 할 때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유할까 고민이 되었음.
- 라인보우가 인정하는 기술자는 장인들임. 공통장의 담지자로 장인을 이야기 함. 시인의 경우에 장인과 유사하게 언어의 기술자로 다룸. 상업이 장인을 메뉴팩쳐로 가면서 근대적 기술체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느낌임. 그럴 때 우리시대 기술은 대규모 체제화된 체계임. 피지컬이거나 기술은 굉장히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고 발전해나감. 시몽동은 기계 체계의 발전이 진화적인 발전을 갖고 용어를 씀. 기계들의 작은 조립체들이 큰 결합체를 만든다는 것. 기계체제가 발전함에 있어서 인간의 개입이라고 하는 것을 배제하더라도 자기 논리, 기계들의 자기논리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고 하는 생각을 펼침. 상충한다고 하는.
- 효율의 이야기를 했을 때 – 기계와 효율이 연결됨. 효율이라는 것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데 상품을 찍어내는 공장의 경우 특정한 상품을 만든다면 효율성이 좋다고 함. 또 다른 측면에서 필요하지 않은데 그렇게 만든다라고 할 때 그게 정말 효율일지 고민. 재고만 쌓이고 그건 또 비효율적임. 기계와 효율이라고 하는 것으로 지금은 떠올림. 효율이라고 하는 말을 중요한 문제일 것 같음

- 기계파괴는 노동조합을 만들어지기도 함. 정기적인 투쟁과 차티스트, 의회개혁이라고 이어지는 기계 파괴만 봐서는 부정적이라고 하지만 문제제기의 시발점으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서는 어떤가. 기계파괴는 단순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쭉 가서. 이후 운동과의 관계
- 노동조합으로 조직되면 노동자들이, 장인들은 소규모 기계들을 솜씨로 잘 다루는 능력. 손이라는 기계를 잘 다루면 장인, 매뉴팩쳐로 가면 근대적인 공장체계로 가게 되면 노동자들이 집단 노동자로 손을 넘어서 개개의 노동자들의 결합체가 과거의 장인을 배치하는 집합 노동자로 되는. 집합 노동자들은 20세기에 보다시피 테일러 주의,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된 거대한 기계 체제의 부속품으로 되고 노동조합의 발전하고는 같이 궤를 함. 노동조합의 경우 개개인은 아니나 집합적 노동자가 기계체계를 장악한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 같음. 표현주의 채플린 영화를 보면 거대한 기계들을 노동자들이 다루어나가는 소외된 모습도 그리지만 그 공장 체제를 다루어나가는 노동자들도 그림. 노동조합원들의 세계인식과 장인들의 인식은 달랐을 것 같음. 노동조합원들은 기계 체제를 떠나서는 존립하기 어려운 존재임. 농민하고도 구분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하고 약간의 특권의식 하고도 기계과 노동자의 관계가 노동조합의 구축과정에서 과거의 파괴적 태도에서 일정정도의 친화적은 아니지만 연합적 관계로 변해가는 경향을 보이지 않을까 싶음. 지금 현대, 한국의 대규모 기계 공장들이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해도 주로 점거 방식으로 함. 기계 자체를 파괴하지 않음. 애지중지하고 기계하고는 스스로 멈추긴 하나 기계를 부순다기 보다는 노동시간을 착취해가는 자본에 항의하면서 가혹한 근로조건을 향상시켜달라는 방향을 잡혀갔다는 생각이 듦
- 80년대 문학에서 노동자와 기계 관계는 궁금함.
- 노동문학 발전단계가 수기, 에세이, 공식장르라고 할 수 있는 시나 소설로 서서히 나아감. 70년대 말. 수기 같은 데서 자기를 표현할 때는 수기를 쓰는 당사자들의 위치가 대공장 노동자들은 아니었던 것 같음. 소규모 공장 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글쓰기 작업에 투신함. 대공장 노동자들도 참여하였지만 소규모 공장임. 6070년대 여성노동자에서 소규모 공장 노동자들이 글쓰기 표현함. 글을 쓴다라는 것이 라인보우가 쓰는 것처럼 인간다움, 인간적인 목소리, 이런 것들에 대한 갈구하고 결합되어 있고 소외의 형태가 규모는 작으나 가혹한 노동을 해야하는 평화시장 같은 곳에서 긴 시간 저임금 노동하고, 단순반복적인 노동을 하게 되는 소외가 항의의 장소였음. 그래서 비인간화되어가는 노동자들이 인간화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노동문학이 나옴. 90년대 들어가서도 그러한 경향. 상당한 사람들은 막노동을 하거나 아니면 작은 공장같은 곳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글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 대규모 기계체제에 대한 서술형태는 드물다.

4. ::코뮤니즘을 공통장에 근거하여 재구성하려는 라인보우의 접근법은 전통적인 공산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 맑스는 국유화 후에 사회화 한, 미르 공동체의 경우 코뮤니즘의 경우에 대해 말함. 생산수단의 발전, 프롤레타리아가 장악을 하여 사회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관점. 생산수단의 대규모 발전은 기계류 발전이 바탕이 될 것 같아서 논리적으로 라인보우는 거부할 것 같음

- 전통적인 공산주의에서 장인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함.
- 사실 공산주의는 실현된바가 없어서 전통적인 것을 붙이기는 어렵고, 이론 상으로 이야기.사회주의 관점을 먼저 살펴보면 사회주의야 말로 생산수단의 대규모 발전을 전제로 하여서 그것을 국가의 수중으로 전유하는 사회체제를 이미지 메이킹이 되어버림. 사회주의를 일원적으로 정의할 수 없고 다양한 의미의 사회주의가 있으나 현재의 실천들은 발전된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준으로 가져오는 것이 정치적 실천이고, 혁명운동도 되어옴. 그렇게 되면 장인이라는 것은 수공업자를 지칭하는 것이라서 근대적 공업 체제, 산업 체제에 의해서 양극분해 될 수 밖에 없는. 잔존하여도 근대적 프롤레타리아트 지도를 받아서 움직일 때에만 긍정적 기능을 할수 있는 존재로, 긍정적 존재로 평가됨

5. ::아노는 예술가이자 혁명가인 모리스를 두 가지 요점으로 요약한다 첫째 예술은 인민의 예술이 아닌 한 사라져야 한다 둘째 노동자는 예술가가 되어야 하고 예술가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모리스에서 예술과 노동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 시대에 노동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 노동과 예술과의 관계와 모리스의 이야기를 할때에는 장인이 떠오름
- 모리스는 인민예술만이 존립가치가 있다라는 입장임. 우리가 경험하는 예술들은 민중 예술이 아닌 경우가 많음. 전문가 예술이라고 할까 국가의 결탁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음. 기업의 후원, 기업의 후원을 받으면서 지배적인 형식으로 자리잡음. 그러한 경향에 대한 급진적인 거부로 읽힘. 근대이전의 경우 예술은 오늘날과는 달리 인민의 예술이라고 부를만한 영역들이 자리잡고 있었음. 민요, 판소리, 판소리의 경우도. 근대화 과정에서 직업집단이 생기면서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봤다가 인터넷 부상과 더불어서 상황이 조금 달라짐. 표현이라고 표현매체의 비용도 많이 들고 출판물이든, 뭐든 간에 고비용이라서 민중이 접근하기에 턱이 높앗는데, 가지고 옴으로써 다중, 인민의 예술이라고 창작될 수 있는 것들이 좋아진 것이 아닌가.
- 예술가의 생존권, 이런 요구들도 많아지는 것 같음. 예술인간의 탄생에서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도록 강요받는 시대라고 하는 것임.


- 근대화 과정은 예술가와 노동자 집단을 만들어내어서 집단과 연계되어 있는 예컨대 화랑, 수집가라거나 미술가라거나 평론가 집단을 연계되어서 특수한 바운더리의 영역을 구축해왔고 노동자와는 영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 예술가의 노동세계로부터의 분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일어나면서 예술을 노동속으로 재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예술가에 대한 후원체제의 약화와 더불어서 예술가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편입되어 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예술가 스스로 노동자 재정체화하는 움직임이 있음.
미술가도 전시와 부업노동을 하는 경우. 그런 식으로 노동자화되어가는 예술가들이 예술가와 노동자를 재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음.
- 통합되는 움직임은 궁금함. 1-2년 전하고 다르게 움직임이 보인다고 할 때 의미도 궁금함.
- 미술계나 음악계는, 문학계의 경우에는 인터넷 이용해서 인데 창작하는 과정, 글자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닌데 과정 자체를 노동의 산물이라는 과정 스스로 상품으로 만들어서 상품화하고.. 아무것도 그것 자체가 표방하는 작품이고 스스로 판매하는 상품으로
- 유튜브를 활용해서 작년에서부터는 예술위에서 지원사업을 신설을 해서, 창작을 표방하고 그것이 나의 노동과정이고 나의 재작물이라서 닿아야 한다고 예술이고.

-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과정. 노동자가 예술가로 정체화하기 보다는 예술가가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음. 사회경제적 조건하고 연결됨. 예술활동의 장르들이 예전에는 엘리트 집단으로서 돈을 많건 적건 높이 고평가 받는 활동으로서 인문학, 예술 이런게 사회의 특권적 영역이 되고 정치적으로 보면은 지배적인 세력과 구축됨. 지금은 기업체들하고 연관이 된 자기의 장소가 달라짐. 기업과의 관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인데 노동으로서의 정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마치 특수고용노동조합처럼 구천의 노동자처럼 저평가되는 자리에 있어서 아예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보장받는 권리들을 예술가들도 확보하려고 하는 그러한 사회경제적 전술 연결되어서 노동자적 정체적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생각

- 다르게 생각해보면 예술이 노동이 된다는 것은 예술에 대해서 상당히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함. 노동에 대해서 일반적인 이미지는 창조와는 상관이 없는 것임. 반복적 제작 활동으로서 느껴지는 것이라서 예술을 노동쪽으로 가져갈 때 (노동의 재개념화가 없는 한에서는) 예술의 특유성이 상처받을 가능성이 큼.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노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재개념화하고 노동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노동을 삶과 결부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노동 그 자체가 창조활동으로 되어서 노동과 예술의 경계라는 것이 창조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구획이 필요없는 것. 사례적으로 굉장히 많은 인지노동들의 경우에는 단순한 제작활동으로서 창조의 요소를. 프로그래밍만 하더라도 그렇고 창조활동이 노동활동에 핵심이 되면서 노동은 단순 제작, 예술은 창조라고 구분할 수 없는 하이브리드 현상이 노동에서 일어나서 노동에 대한 적극적인 재개념화가 필요함. 그 차원에서는 예술가 노동자 정체성이 아니라, 노동자의 예술가의 정체화가 요구될 수 있는 순간. 앤디워홀의 경우는 이런 사람들이 산업 제작활동이 예술가의 예술활동보다 더 예술적이라는 생각을 피력함. 노동자의 예술가의 정체, 예술가의 노동자의 정체화가 결합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듦. 이럴 때에는 노동의 재개념화, 예술의 재개념화가 필요함. 예술이라는 것을 캠버스 오선지가 아니라 그런 전통적 장르활동이 아니라 넘어서, 음악 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광범위하고 소리 움직임들, 들리건 드리지 않든 침묵 같은 경우도 소리의 일부이니까 미술의 경우 광범위한. 문학의 경우도 언어적 표현과 연결되면서 선언문, 몸으로써의 언어이든 간에 예술로 재평가될 수 있는 예술개념의 확장들이 하이브리드를 위해서 필요함. 예술, 노동 개념이 달라져야 함. 조건들이 긍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 모리스는 노동과 예술이 분리되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표현이 라고 보임.



6. ::라인보우는 공통장에 대한 애착을 통해 모리스와 톰슨이 원기를 회복하였다고 쓴다. 최근 회복되고 있는 실재론들(객체지향철학, 사변적실재론, 신유물론)은 공통장에 대해 어떤 관심, 관점, 태도를 취하는가?

- 모리스는 사회주의자이니까 그 당시에 전근대적인 것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해체되어 가고, 근대성의 악마적인 기운들이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잡는 것으로 자리자븐 것으로 시작하여서 전근대적인 공통장, 여기에 자신감을 갖고 되살리며 20세기 역사학 하면서 우리가 이야기 한 전통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통적 관념들하고 영국의 공산당의 일원이라서 처음은 아니지만, 당운영 방식들에 이의를 가지면서 공통장에.. 집중
- 2000년대 초반 리얼리즘이 주목받는. 객체지향철학, 사변적실재론, 신유물론. 2008년 서프라임 모기지 2011녀녀 반란에 근거를 두고 새로운 순수철학적 조류라고 말할 수 있음. 정치철학적 말하기는 어려움. 공통장 이야기는 발견하기 어려움
- 최근 회복되고 있는 실재론의 경우 과거 어느때에 번성하다가 기새가 줄어든 것인지? 왜 최근의 회복일지?
- 실재론이라는 것은 반실재론하고 상관관계 속에서 발전해옴. 맑스주의 리얼리즘 문제라거나. 그러다가 198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 유행하면서 실재론들이 서구에서 약화되기 시작함. 모든 것들이 텍스트화 존재하는 것은 텍스트와 해석뿐이라는 것. 실재에 대한 부정의 움직임이 20여년 정도 강했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발발이나 한국은 1997~98년 IMF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이 줄어듦. 포스트 모너지금의 쇠퇴국면으로 들어간 것이 97-98년임. 촛불집회나오고 2011년 전지구적인 반란운동이 나타나면서 실재로들이 다시 복귀하기 시작함.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있었음. 반실재론과 끝까지 있었음.

- 모리스와 톰슨 이야기 할 때 목가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아름다운 느낌. 풀 이름들도 나오고 작업하고 ... 그런데 최근의 실재론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가 위축, 긴장되어 있다는 느낌. 신유물론 하먼 러브크래프트 작가를 좋아하는데 러브크래프트도 우주적 공포, 당시에 위축되어 있는 알 수는 없지만 닥쳐오는 공포앞에서 기가 질려있는
- 생동하는 물질도 최근 부상하는 위치에 있는데 생동하는 물질에서도 서두에서 나오는게 물질에 대해서 생각하자고 할 때 공포의 이미지임. 우리는 이때까지 사물을 무시하고 살았는데 이 사물들이 다 생동하는 거라고 하면서 공포영화의 예를들고 쓰레기 쓰레기들이 버렸고 처분할 수 있는 아무런 생명성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무수한 쓰레기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해보라면서 겁을 주는 말들이 이어짐. 모리스와 이미지가 대비된다는 생각.
-현재 실재론은 물질과 함께 함을 상상하기 보다는 당황한 인간 공포심에 사로잡힌 인간이 더 그려짐. 그게 어쩌면 공통장의 관심이 빠진데서 기인하는 것이 안니가 싶음
-신유물론은 들뢰즈 철학을 계승함. 들뢰즈에게는 공통 개념이 아쌍블라쥬 리좀으로 나타나고 탈주선들의 연합이라는 말도 나타나고 그러니까 마치 이제 특이성만 강조하느 것 같지만 특이성들의 아쌍블라쥬를 강조하는 것이 들뢰즈이고 객체 지향 철학
야생성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있음
범고래는 대왕고래를 잡아먹는 장면 포착됨. 범고래가 조직적으로 사냥을 함. 야생화는 야생화지만 야생동물들의 경우에도 규모의 번식이라거나 이런 것들이 뭔가 아름답게 진행되지만 않음. 조용하고 아름답기만 한 그런 거는 아닌 방향으로 공통점을 우리가 사고할 필요가 있음.

7. :: 맑스는 “비판은 사슬에 붙어 있는 가상의 꽃들을 잡아 뜯어 버렸다 이것은 인간이 환상도 위안도 없는 사슬을 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 던져 버리고 살아 있는 꽃을 꺾어 가지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가상의 꽃, 사슬, 살아 있는 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8. ::라인보우는 초원 히스가 무성한 황야 회의장 철도 옆의 강둑 이곳들은 집회를 하거나 유희를 즐길 장소였으며 석탄 시대에 알맞은 공통의 장소였다고 쓰면이 7장을 마무리한다. 석탄시대를 벗어나려는 우리 시대에 알맞은 공통의 장소는 어디인가?

- 우리나라에 석탄 발전소가 50개, 충남 당진에 그중 27개가 있음. 석탄 발전소를 이제 빨리 문 닫아야 되고 빨리 에너지 전환을 이뤄야 되고 이런 거에 대해서계속 생각하고 공감하고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어디에 석탄발전소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 발전소 옆에 고압 송전탑들이 많아가지고 삶 자체 환경이 다 파괴되고, 현재 모든 생활 자체가 그때 또 발전소와 긴밀하게 다 엮여서 지금 만들어져 있음.
석탄 발전소를 문 닫게 한다라고 하면 제일 바로 고통받는 그래서 이제 석탄발전소 없어지면 당진은 회복될 수 있겠다. 이게 아니라 당진 사람들에겐 너무 큰 위험임. 이중고임.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실질적인 장소를 항상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곳 사람들과 그곳에 있는 인민들의 목소리 이런 거를 되게 귀 기울여 듣는게 매우 중요함.
- 그린뉴딜 같은 거 얘기할 때 그 석탄 관련 시설들이나 화성 연료 관련 시설들의 문을 닫아서 일자리가 없어지면은 그 자리를 새로운 그린 에너지 일자리가 대체한다 이런 대안을 이야기 함.
- 환상도 위험도 없는 임금 노동을 지속하자는 의미가 아니고 임금 노동 관계에 자본 관계를 떨쳐버리고 살아 있는 꽃을, 임금 노동이 폐지된 사회에 대한 어떤 갈망이라고 볼 수 있음.
그게 공산주의라고 공산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고 미래 사회에 대한 해방된 미래 사회에 대한 어떤 것을 사리는 꽃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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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공지] 클라우스 뮐한, 『현대 중국의 탄생 - 청제국에서 시진핑까지』 - 3월 9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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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의 탄생 2장 중화세계의 재구성(1800-1870) 토론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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