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 노예선의 끔찍한 재앙이 세월호 사건으로 이어진다 / 박준성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5-21 15:30
조회
263
노예선의 끔찍한 재앙이 세월호 사건으로 이어진다

마커스 레디커의 『노예선』 (갈무리, 박지순 옮김, 2018)

박준성 [(주)우에마츠전기]

* 이 서평은 2018년 5월 15일 웹진 <문화 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e_text&ps_boid=221

범선이 새하얀 돛으로 바람을 가르고, 거대한 타(rudder)로 파도를 가르며 지그재그로 항해하는 모습은 강한 향취의 로망스를 일으킨다. 본인 역시 그런 요트의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에 반해 항해사가 되었으며 조선공학 박사가 되었다. 그러나 500년 전, 아프리카 해안에서 거대한 노예선을 마주했던 흑인 노예의 심정은 어땠을까? 날개 달린 웅장한 집이 섬처럼 이동하며 그 위에 탑승한 창백한 종족들이 거대한 삼지창을 물 속으로 풍덩 빠뜨려서 순식간에 집을 멈추게 하는 해괴하고 공포스러운 기계였음이 틀림없다. 드디어 그들이 배에 인간화물(human cargo)로 실려진 후, 많게는 60% 가까이 사망하게 되는, 자살보다 끔찍한 죽음의 배(dead ship)라고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건 현대인들의 느낌으로 비교하자면 ET가 탄 UFO를 깜깜한 산 속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과 다름없을 것이다.

현재 인간의 뇌를 모델화하여 인간대신 막대한 정보를 판단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알파고의 쇼크로 4차산업혁명이 전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리고 4차산업혁명 이전, 컴퓨터를 통한 디지털화라는 3차산업혁명이 있었고 이는 4차산업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3차산업혁명 이전에는 전기의 발명이 가져온 2차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1차산업혁명은 우리가 잘 아는 '증기기관(steam system)에 의한 기계화'다. 즉 사람의 노동력이 기계로 전환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1차산업혁명 이전, 역사상 가장 큰 강제이주를 통해 대량의 노동력을 공급했던 0차 산업혁명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때 혁신을 창조한 발명품이 바로 돛이라는 '에코시스템에 의한 기계', 즉 범선(여기서는 노예선)이었다. 이 기계는 전쟁기계와 이동식 감옥 그리고 공장이 이상하리만치 강력하게 앙상블을 이룬 시스템이었다.

이 기계(아니 기계들의 집합체인 떠다니는 공장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는 2가지를 생산했다. 먼저 주 생산품은 노동력이었다. 그동안 950만명의 노예를 공급해 유럽의 산업혁명, 농장건설, 세계 제국의 건설, 자본주의의 발전 그리고 산업화를 이루게 하여 유럽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 두 번째로 인종의 범주(categories of race)를 생산했다. 선원들은 프랑스, 영국, 미국 등 각종 국적을 가졌음에도 배를 조종한다는 의미로 뭉뚱그려 '백인'으로 범주화되었고, 노예들은 아칸족, 이그보족 등 다양한 종족이 있었음에도 '흑인'으로 분류됐다. 이는 인종차별이나 인종청소와 같은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배는 철저히 공학적 산물이다. 모든 수치에는 정확한 물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배의 길이(단위 :m), 배의 무게(단위 : t), 배의 안정성을 나타내는 GM(횡메타센터높이/ 단위 : m) 등 엄격한 기준에 의해 지켜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수 백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노예선의 경우, '흑인'이라는 범주로 뭉뚱그려 아프리카인들을 화물 같이 취급했다. 그들의 자유, 복지를 실현하면서 적재되지 못했다. 그 유명했던 종호사건에서는 1톤당 노예의 비율(slaves-per-ton ratio)이 놀랍게도 4에 달했다.1) 노예선의 끔찍한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 시각적 상징(Visual Identity)으로 유명한 '브룩스호 그림'을 보면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고개도 들 수 없을 정도의 높이로 빼곡히 누워, 적재되어 있다. 사실 노예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최선의 '1톤당 노예의 비율'은 추후 돌벤법에 의해 1로 수렴되었으나, 그 정량적 값이 아무리 작다 할 지라도 노예무역은 애당초 그것이 성립될 수 없는 정성적인 문제인 것이다. 사람을 납치해 판다라는 행위가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2014년 이맘 때, 필자는 해군사관학교 원일관 1층 조선공학실험실에서 세월호가 기울어진 모습을 뉴스 실황으로 보고 있었다. 다들 전원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뉴스가 흘러 나왔다. 그 때 나는 “ 출항 때부터 이미 전원 죽음이 정해져 있는 배다.” "전원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일말의 희망을 짓누르는 듯한 냉정한 분석을 했고 그 말은 마치 예언과 같이 그대로 적중했다. 사건 후, 그들의 죽음이 골든타임이며 해경의 부실한 대처, 그리고 대통령의 처신등 엉뚱한 곳에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촛불시위 등 '대중이 믿고자 하는 진실'이 너무나 강해, 한 명의 학자로서 모두 앞에 나와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는 너무나 두려웠다. 진실은 골든타임과 해경 등과 같은 사후 문제가 아니라, 그 배가 출항전부터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수인 GM값이 지켜지고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잔잔한 바다 상황이든 배태랑 선장이 몰았든 선장이 탈출하지 않았던들, 안타깝지만 그 결과는 여실히 지금과 같은 결과로 정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대통령이 제대로 처신했었다면, 그때 해경이 제대로 구조했었다면 하는 '누구의 탓'으로 세월호의 책임을 몰아가는 것은 참 가슴아픈 일이다. 미운 것은 미운 거고, 진실은 진실이기에.....

15세기 1톤당 노예의 비율이라는 값에 대한 고려없이 무자비하게 흑인을 짐짝처럼 실었고, 각 부족들 간 말도 통하지 않는 개체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그들을 중국집 음식배달 하듯 물건취급하여 '배달'했다. 그 결과 1200만명의 노예가 중간항해를 거쳐 950만명만 살아돌아 온 끔찍한 재앙이 발생한 역사가 3만2천건의 노예항해 데이터 베이스로 밝혀졌다. 2014년, 사람도 아닌 화물들을 단단히 고박하지 않은 채 대충 싣었으며, GM값이 엄격히 법률로 정해진 값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값으로 그 배를 출항시켜 300여명의 학생들이 사망했다. 왠지 과거와 현재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저자 마커스 레디커의 의미심장한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 노예선은 유령선이 되어 현대의 바다를 아직도 항해하고 있다 (마커스 레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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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zong case : https://steemit.com/life/@lanceblue/the-zong-case
The Zong in the Context of the Eighteenth-Century Slave Trade, Jane Webster, The Journal of Legal History,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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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히드라 :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마커스 레디커, 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손지태 옮김, 갈무리, 2008)

제국주의 초기 식민지 건설과 노예제 상황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밝혀낸 역사서이다.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들’, 흑인 하녀들, 혁명적인 해적 선장, 아프리카 노예들, 진정한 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인 잡색 부대 등을 만날 수 있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 신봉자’들에게 맞서 싸운 선원들, 노예들, 평민들 즉 다중(multitude)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 초 영국 식민지 확장의 시작부터 19세기 초 도시중심의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점점 세계화·지구화되는 노동체계에 질서를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마그나카르타 선언 :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저명한 역사가 E. P. 톰슨의 제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대표작.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전제(專制)를 제한해 온 방책들 ― 인신보호영장, 배심재판, 법의 적정 절차, 고문 금지 그리고 커먼즈(the commons) ― 이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215년 이후 이러한 방책들의 원천인 마그나카르타의 역사적 궤적을 제시하면서, 사유화의 탐욕, 권력욕, 제국의 야망이 국가를 사로잡을 때마다 예의 오래된 권리들이 어떻게 무시되는가를 보여준다.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로지스틱스 - 전지구적 물류의 치명적 폭력과 죽음의 삶』(데보라 코웬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7)

로지스틱스(logistics)는 비즈니스의 물류와 전쟁의 병참을 가리키는 말이다. 로지스틱스는 상식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로지스틱스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서도 상품을 이동시키는 순수 기술적인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렇다면 이 책은 두 분야, 즉 전쟁과 비즈니스 중 무엇을 다룬 책일까? 이 책은 유통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며 전쟁술에 대한 책도 아니다. 저자는 로지스틱스가 순수 기술적인 방편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적인” 기획이라고 주장하며 로지스틱스를 현대 세계의 중심적인 문제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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