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12/25 『도둑이야!』 1부 공통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12-21 09:38
조회
533
12월 25일 (토요일) 저녁 7시 30분에 『도둑이야!』 1부 '공통장' 을 공부합니다.

지난 시간까지 공부한 『한국사와 농민』과 『도둑이야!』는 분석 시기가 비슷합니다.
『한국사와 농민』에는 공통장의 관점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한반도 역사와 유럽 역사라는 공간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시기를 다룬 『도둑이야!』를 읽으며 인클로저와 공통장의 길항관계를 읽어 보고자 합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난 질문거리나 토론거리를 가져오시면 좋습니다.
질문, 토론거리를 세미나 시작 전에 게시판에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물론, 세미나 당일에 자유롭게 제기해 주셔도 좋습니다.
세미나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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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미나 (12/18) 후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불교사원의 위치변화에 대해 논의해 보자.
저자는 불교사원의 반동적 역할이 극심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을 불교의 진보적 역할을 강조한 주장들과 비교해 보자.

▶ 꼭 불교만 가지고 비판하는 것 같지는 않고 종교 일반을 맑스같은 경우는 종교의 아편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인민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아서, 예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비판적으로 서술을 했다. 그래서 불교사원뿐 아니라, 불자들, 원효, 의상대사... 원효와 의상이 같이 당나라로 유학 가다가 원효는 중간에 해골물 마시고 깨달아서 돌아왔고, 의상은 배 타고 건너가서 유학을 마쳤다. 그러고는 돌아와서 매우 나쁜 짓을 했다고 쓰고 있고. 이런 선사들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김석형 저자가 그렇게 보고 있는 불교가 고려, 조선시대에 어떤 위치변화를 겪었는지 보자는 질문.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불교에 진보적 역할은 없었겠느냐는 게 다음 질문이다.
▶ 고려시대는 불교가 거의 ... 지주 같은 역할. 조선시대에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 인상적이고, 지금까지 단순히 영상물에서는 저항하는 세력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보았는데, 여기서는 착취와 같은 계열로 쓰여있었던 것 같다.
▶ 여기서는 특정 승려 개인이 아니라 사원이라고 하는 구조를 비판의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일종의 역사를 누가 움직이는가의 관점에서, 이분에게는 위인이나 이런 특정인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관점이 종교 전반을 보는 관점에 스며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분은 고유명을 위주로 하는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종교 비판도 좀 분별 있게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려시대에는 국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가가 중앙집권적으로 촘촘히 들어차 있는 형태는 아니었으므로 국교라고 해봤자 그 영향력이 지대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조선시대는 유교였다면, 신라, 고려는 불교 사회라는 게 통설인데, 김석형 저자는 370년, 고구려는 370년, 백제도 그간, 신라는 조금 늦게 불교가 들어와서 들어오자마자부터 일종의 국가권력과 결탁을 하고 비호를 받으면서 지주로 행세를 했고, 그다음에 거기에 일하는 사람들, 노비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부린 점을 고발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불교가 진보적 역할을 하다 타락한 게 아니고 처음부터 불교의 역할이 그런 것이라 보고, 뒤로 가면 산적과 같은 일종의 도망 농민들을 억압하는 그런 주도 세력이 되었다고 보고 있고, 지금 이 얘기는, ‘뒤로 가면’이라는 말은, 조선시대로 가서 특히 그랬다는 이야기인데, 조선시대는 억불정책을 썼으므로 사실 불교라는 게 피억압자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풍기고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보는 점도 특징적. 불교사원의 사회경제적 위치는 여전히 지배계급에 속해 있다고 보았고, 대농장이라 볼 수 있는 것 중에 불교사원이 제 몫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는 걸 강조한 게 인상적이었다.
▶ 5번과 관련해서는 한양대 원효와 마르크스와의 대화라는 자음과 모음에서 출판한 책, 원효를 민중불교와 연결 지어서 원효의 화엄 사상이라고 하는 게 혁명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서술을 하는데 그런 관점이랑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 같다. 의상 같은 경우를 비판할 때는 구체적 절간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범어사도 의상이 지었다고 되어있는데, 뒤에 보면 페이지로는 430페이지. 불영사도 의상의 영향 하에서 지어진 절인데, 득룡을 구축하고 득룡이 웅거하고 있었던 자리를 빼앗아서. ... 득룡은 산으로 도망친 농민, 산적이었기 때문에, 의상은 결국 산적으로 된 농민들을 무력으로 산에서 추방을 하고 그곳에 절을 지었다라고 말을 하는 셈이다. 범어사같은 경우도 봉건적 대농장주이면서 노예소유자라고 규정을 하고 있고, 여러 절들이 말해지고 있다. 부정적 내력과 더불어서.
▶ 지금으로 보면 조계종에서 민주노총 보호하는 역할을 지금도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렇게 착취를 같이하던 불교가 어느 순간 어떻게 달라져서, 지금 이렇게 바뀌게 된 건가도 궁금.
▶ 절하고 교회하고 기독교. 원시종교라고 부르는 예수의 가르침 이걸 각각 다 구분해야 하는 것처럼 불교도 사원이랑 승려랑 부처의 가르침은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덩어리로 도매급으로 넘기는 거는 무례한 규정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농장의 두 유형과 경리방법애 대하여 논의해 보자

▶ 대농장이라는 게 서구 봉건제 같은 경우는 굉장히 중요한데 대농장에 부역을 제공해 줌으로써 봉건영주들의 생활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부가) 축적되어 가는 걸 볼 수 있는데, 김석형 저자는 우리 사회라고 부르는 ... 역사적으로 삼국, 고려, 조선, 교체되어온 그 역사학적 정치담이 ... 대농장의 특징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 대농장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짚고 넘어가 보자는 취지로 토론거리를 제안해 보았다.
▶ 409쪽에 나오는 두 유형...
▶ 지역적으로 보면 정복자 집단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생겨난 대농장하고 그 정복자 집단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곳. 이곳저곳에 산재 될 수 있겠는데 거기서 생겨난 대농장 이렇게 두 유형으로 분류를 했는데, 이렇게 오게 되면 대농장이니까, 생산력이 발전되어서 소농장, 소농경리를 하는 부분이랑 차이가 크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김석형의 주장. 그 경리 방법에서 보면 두 유형 모두에서 후자의 경우는 장, 처, 부곡 이런 곳의 경리 방법이 대체로 소농유형이라는 게 쉽게 이해되는데 전자도 소농경리가 지배적이었다고 말. 그래서 크던 작던 소농경리로 이뤄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 상전이든 지주든, 국가든 간에 무언가를 갖다 바쳐야 하는 권력집단이 있는데, 권력집단에 갖다 바쳐야 할 산술적 몫이 소농경리에서는 한정되고 동률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 엥겔스의 말에서 노예가 가족 내부에 융해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
▶ 정복당해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을 때, 솔거노비가 되었을 때, 그 경리 자체가 지금 ... 좀전에 대농장 이야기를 했지만, 솔거노비를 가지고 대농장을 경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외거노비들이 대농장에서 자기가 경작한 만큼 경작해서 소출 중에 반절 정도를 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솔거노비의 경우는 외거노비와 달리 경작 노동을 하기보다 대부분 가사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음. 머슴살이. 머슴이 논 밭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집안의 대소사 잡일을 하는 사람 가족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식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융해라고... 일종의 식솔이 되어가는 거니까 이 사람들을 영화에서 보듯이 회초리로 후려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점점 없어져가는 것. 그렇다고 해서 솔거노비의 계급적 특성, 주인에게 예속되는 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삐끗하면 주인이 죽일 수 있는 생사 여탈권을 가진 건 분명. 아까 유튜브에서 김처선이라는 내시에 관한 다큐를 봤다. 연산군 내시. 이 김처선이라는 사람은 왕을 연산군 포함해서 단종때 부터 4,5명의 왕을 모신 인물. 연산군이 흥청이라는, 왕이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 전국에서 불러모은 기생집단을 흥청이라 불렀다. 흥청망청 도 거기서 생겨난 말. 그 흥청을 데리고서 놀고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백성들의 삶에 대해서 완전히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가차 없이 처단하는 악행을 저지르니까 원래 임금앞에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신하들도 침묵하고 말 안 해서 이 김처선이라는 사람이 출근하면서 자기 아들하고 부인한테 오늘 내가 연산군한테 직언을 하면 분명히 나를 죽일 것이다. 내가 오늘 못 들어오니까 그리 알라하고 나가서 (왕에게) 제발 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이전의 왕들은 그러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연산군이 바로 활을 꺼내서 쏘고 칼로 몇 차례를 배어서 죽였는데, 지금 같으면 제판을 거치고 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즉석에서 죽이는 것은 연산군이 내시의 생사 여탈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내시는 왕의 주인 노예 소유주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말을 할 수 있겠다. 솔거노비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주인이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솔거노비는 가정일을 돌보는 사람이었으므로 가족관계로 융해되어갔고 그런 면에서 내시도 솔거노비와 굉장히 비슷. 왕실 가정을 돌보는 가사노동자. 내시. 주로 하는 일이 수문, 문지기를 한다거나 청소를 한다거나, 임금이 명을 내리면 전달하는 역할을 하거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어서 왕의 잡역부 역할, 거의 왕궁의 솔거노비 비슷했다고 볼 수 있겠다.


::품,위,직 관계와 품의 잔존형태로서 인품, 문벌, 본관에 대하여 논해 보자.

▶ 품위를 지켜야지. 품위가 있다. 여기서 품과 위를 쓰는 것으로 이해가 되고, 직은 직책 ... 근대인들도 위와 직의 관계는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품이라는 것은 우리로써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이고 근대에는 상당 정도 소멸 된 것 같은데, 이 품이라는 게 굉장히 오랫동안 우리사회, 역사적 우리사회에 지배적 특질로써 작용해 왔다라는 거고, 지난번에 얘기한 적 있는데, 파평 윤씨. 이야기 본관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지금까지도 영향을 어떤 형태로든 미치고 있는 형태인 것같다. 최근 뉴스를 보면 대선 후보들이 자기 고향에 가서, 재래의식복같은 걸 입고, 모자에 갓 같은 걸 쓰고 절을 하고 그런 걸 보여주더라. 참 통탄할 노릇... 여하튼. 이런 것들이 우리의 디엔에이 속에 남아있게 된 그 배경이 뭐냐는 거를 살펴보자는 것. 요 부분에 김석형 저자가 포인트를 두어서 서술하고 있다. 품이라는 것에 아주 뿌리깊은 존속. 그거를 근대 이전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로 제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품자의 기원은, 골품제, 신라의 골품제. 성골진골 그 골하고 연관된. 품. 품은 골에서 나오는 것. 뼈. 뼈대가 이렇게 다른 존재들로 사람들을 위계화 시키는 그런 전통들.
▶ 인품, 문벌 이런 것도 함께 다루는 듯. 품하고 위의 차이는 품은 하늘이 준 거고 위는 국가가 준 것.
▶ 문벌이나 본관은 다 품에서 유래한 것 아닌가, 직은 위가 더 세분된 것이 직이다. 위 속에서 위도 여러 단계, 직도 여러 단계. 직이 위에 기초한 것.
▶ 직이 수백 수천 개 있다는 걸 보고 놀라웠다. 이때부터 수백 수천 사다리로 나누었다 ... 지금은 부모의 직업 등을 따지면서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에 관한 이야기. 소위 품위를 거기서 끌고 오는 그런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늘이라는 말로 무엇을 생각했을까가 궁금함. 국가라는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정복자가 있어야 하고, 피정복자라고 하는 차별집단을 만들어내고 위계가 섰을 때에 국가라고 하는 게 위계를 갖추는 것. 국가라고 하는 것은 국가 이전의 문제로써 정복할 수 있는 능력. 정복자적 조건. 정복자적 자격. 정복행위의 잠재력 그런 것들을 국가 이전에 하늘이 내려 준 것으로 보고. 욕망이라거나 이런 표현, 필요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합리성을 그다지 가지고 있지 않고, 출발점이 되는 욕망을 설명하는 것이 하늘이 아니었겠느냐. 설명하기 어려운 것. 그걸 하늘의 선물로써, 천, 품으로써.
▶ 과거시험을 쳐서 급제하는 경험이 없이도 권세를 행사하는 거다. 어떤 위나 어떤 직도 같지 않은 양반들이 수두룩했다는 것. 우리 사회에 있어서, 예컨대 조선시대같은 경우는 서자같은 경우는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안 준 때가 많았는데, ... 품으로 보면 누구누구 무슨씨의 아들이니까 귀족인건데, ... 성씨에 품의 권위를 다 향휴를 하는 거다. 서자 얼자가 아닌 경우는 더더군다나 ...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700명정도 모집을 해서 나중에 왕 앞에서 문책을 치르는데 대책이 뭐냐. 문책에 대한 응답인데, 그 대책을 통과한 사람은 극소수. 서른 세 명을 놓고 시험을 치루니까, 최종 선발자는 정말 적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높은 직책으로 가면 양반 집안으로 간다고 할지라도 급제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가 되는데 무업의 양반들은 여기서 말하는 직위나 관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품이라는 존재 때문에 엄청난 권력을 가진다는 것. 그런 식의 관계가 형성이 되고, 재생산 되는 것. 품이 가장 일차적인 판단 기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그런데 가장 감각되지 않는 것이 품이다.
▶ 천황이니까 굉장히 높은 존재인데, 황제라는 말을 썼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황제를 칭하는 왕이 있기는 있다. 고조선 같은 경우는 중국같은 경우는 황제를 칭한 사람이 진시황제이고, ... 황제를 칭한 사람이 대부분은 왕이라고 하는 이름을 썼고, 친명정책을 썼었기 때문에 항상 명나라의 제후국으로써 왕이라는 말을 쓰는 데에 신중을 기했다. 이렇게 나온 것만 치더라도 황제하고 왕이 다르고 천황은 또 훨씬 격을 높여서 쓰는 말일 텐데. 왕족, 황족, 천황족이라고 하는 거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출생을 하늘과 연결지으려고 이데올로기적인 분식을 가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씨 왕조가 오벡년을 가는데, 혁명을 통해서였는데, 무장혁명을 통해가지고, 이씨가 왕이라고 들어섰기 때문에 이성계의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는 폭력 그 자체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고 허균같은 경우에도 반란을 시도를 하는 데에 허씨왕조 이거를 내다보고 있더라. 실패했지만, 자기가 봉기에 성공해서 역성혁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고, 왕족을 뒷받침하는 성씨라는 게 무력을 통해, 획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래쪽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신비화 시켜서, 자기네들의 계급지배를 유지하는 상당한 지력을 동원해서, 기본적으로는 폭력이 지력이 앞서서 폭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 특정한 사람들에게 탤런트가 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탤런트의 종류가 다양하고, 한 종류의 탤런트가 있지는 않다. 다양한 탤런트이 있는데, 그 탤런트들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 탤런트는 물려받은 게 인류의 탤런트들이 개개인들에게 분유되어서 특이한 탤런트들로 잠재적으로는 분유가 되는 것인데, 그 잠재력이 발현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현실적인 여러 조건과 계기들에 의해서 규정이 되기 때문에 우연적인 요소들도 많고, 아까, 말한 자본이라거나 경제력 같은 게 뒷받침 되어야되고, 여러 우연적 계기들 속에서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 내어서 발현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순간에 터져 나올 수 있다고 보므로, 탤런트는 일단 평등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모든 탤런트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동일하지 않은 평등함 위에서 말할 수 있으니까, 하늘이 내리는 게 탤런트다라고 한다면, 여기서 ’하늘‘이란 인간과 분리된 하늘이라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여러 류들의 집단들의 삶 경험을 통해서 그게 유전이 되어 온다는 의미에서의 주어짐이고 그것들이 서로 한 개체 내에서 모든 게 다 이뤄지는 게 아니라, 발현의 기회를 얻기 때문에 개체에게는 다른 물질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이 하늘이라 칭한다면, 하늘이 준 잠재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정 집안에서 그 능력이 잘 발현되는 것은 그 사회의 경직된 사회경제적 정치적인 조건들과 상관이 있다고 본다. 관직이라거나. 이런 것이 계속 회전문처럼 또 반복되어 가는 경향이 있고, 그런 것들은 우리 사회의 권력의 불평등 시스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조선시대 때는 나름 그런 걸 극복하기 위해 정도전 같은 사람이, 능력주의. 혈통주의에서 능력주의로 넘어오니까 ... 조선시대의 능력주의가 보편적 능력주의는 아니고, 양인 이상. 굉장히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베이스가 조선시대로 오면 엄청나게 넓어졌었고,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면 관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이 열려있던 게 조선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의 가문의 역할은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기능을 했다고 본다. 한 사람이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 가문 전체가 긴밀한 협동 관계를 맺는다. 그것의 효과가 가문 전체에 미친다. 몰락해가지 않는가. 한 사람이라도 벼슬을 해야 하는 게 당데 가문의 필연성이므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벼슬자리를 옮겨 놓는 게 지상 과제였다는 식이고 그런 협동을 잘하는 가문이 승리를 하는 케이스니까 그 탤런트가 발현될 수 있는 기회를 여는 거니까, 하늘이 준다기보다는 그 가문의 조직화 능력이나 현실적인 집단적 능력이 발현되는 거고, 한 번 벼슬에 오르면 그걸로 어떻게든 주변 사람을 끌어올리려 하기때문에, 하늘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양반과 양인 그리고 노비에게 국가는 각각 어떤 의미를 갔는가?

▶ 국가에 대한 김석형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는 생각. 계급지배의 도구다. 화해할 수 없는 계급적 적대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거고, 국가의 기능은 바로 계급지배의 도구라고 보는데, 그 관점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반, 양인, 노비라고 하는 삼층. 양인은 중간쯤에 있는 거니까. 양극 분해 될 수 있는 것. 적대하는 두 계급에 있어서 국가라고 하는 것.
▶ 노비같은 경우는 세금을 자신의 상전에게 납부를 하는 방식이었고, 결국에는 연결되어서 착취의 관계이겠지만, 노비입장에서는 돈을 내는 상대가 상전이었을떼, 양인이지 않았을까.


:: 책의 마지막 대목 “청산하여야 할 우리나라의 각종 계통적인 봉건사상 중에서 이 당파싸움을 하던 양반들의 사상여독은 오늘날에도 퍽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과거시기에 의병운동, 부르조아 민족주의적 운동들에서도 심대한 손실을 주었으며, 심지어는 노동운동에까지 막대한 해독을 끼쳤다.” (442)

=> 책을 덮어야하는데 “심지어는”이라는 말이 계속 신경쓰였다. 이번 책 내내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심지어는’이라는 말은 (1)저자가 다른 운동들과 다르게 노동운동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의 흔적일까(그렇다면 그 의미(저자가 생각하는 다른 운동들과 노동운동의 차이)를 추측해보고 싶다) 혹은 (2)양반 계급 내의 일류/이류 당파싸움이 봉건제 쇠퇴 이후에도 모든 분야에 지대한 해악이 되었다는 정도의 뉘앙스로만 읽어도 되는 것일까.

▶ 근대의 개념과 굉장히 다른 에피스테메의 장면들... 그 느낌이 일관된 책이었는데, 이런 용어들은 여기서 분석하는 데 쓰는 게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집중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고.
▶ ‘심지어’라는 말의 의미느 (1)로 읽는 게 맞지 않을까?
▶ ‘노동 운동’이라고 했을 때, 해방공간 3년에 그 엄청난 정파적 투쟁을 경유했다는 거고. 일본 강점기에 노동운동은 농민운동 생각하면서 요 구절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요 책은 노동운동에 대한 서술은 없기 때문에 이 책이 놓여있는 ... 북한사회 내에서의 역사책이지만, 저자가 의식하고 있다는 예기. ... 어쨌든 ‘노동당’으로 표현된 것. 이 책이 쓰일때만 해도 사회주의 해체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1956년에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정치적 표현태였었고 ... 스푸트니크 모멘트라고 해서,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하던데 우주선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쏘아 올렸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과학 기술혁명이 소련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할 수 있고,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소련은 후진국이었는데 혁명이후 수십년만에 1950년대에는 소련이 미국을 앞질렀다고 하는 상황. 그런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고. 노동운동은 사회주의로 자신을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미래주의적 운동의 하나이고 보편운동으로써 그 내부에 민주주의라거나 이런 것들이 철저하게 관철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들이 암암리에 받아들여지던 때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때 진짜 그랬냐고 하면 진짜 그랬나는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지만, 당시 에피스테메에서는 그랬다는 것. 그러니까. 의병운동같은 귀족 운동이나 부르주아 운동보다는 노동운동이 미래적이고 보편적인 운동이었다고 보았다고 의심할 여지없이 봐야겠다. 여기에서 ‘심지어는’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 그럼에도 당파운동에 물들어있었다는 걸 적시하려는 건. 이때 노동운동은 북한에서만의 노동운동이라기 보다는 전세계와 남한의 노동운동도 염두에 둔 것일 것. 한국전쟁 이후에 노동당 속에서 숙청들이 대대적으로 전개가 되고, ... 그 분파가 굉장히 많았다는 것. 우리가 기억하는 80년대만 해도 엔엘이나 피디나 노선싸움이니까 이를 당파싸움으로 바로 연결짓는 것은 좀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왜냐면 당쟁보다는 엔엘 피디를 나누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 당쟁의 경우, 왕이 죽었는데 이 사람들이 장래를 삼년상으로 할 거냐 일년상으로 할 거냐 이런 걸로 동인서인 갈라지고 동인 중에서 대북서북 갈라지고 이런 식으로 지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대체로 의례를 둘러싼 싸움이 핵심적 이유로 등장하고 그 의례문제가 권력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엔엘 피디는 그것보다는 합리적 이유를 갖고 있지만 똑같은 엔엘피디 안에서도 엄청 많은 분파를 가지고 있고, 또 학생운동에서는 페밀리가 있어서, 누가 우리 선배인가... 거기에는 합리적 이유는 없고 감정적인 것이 훨씬 많기 때문에 붕당적인 성격에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붕당적인 흐름이라고 저자가 이야기했을 때는 특별한 합리적 이유. 비전 대안 전망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사소한 이유 정실, 혈통관계에 따라 세력이 나눠지고 피의 투쟁을 전개하는 그런걸 당파싸움이라 지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지금은 또 당파 싸움에 대한 연구가 전개되어서. 의례 싸움도 그 배후에는 이념... 적인 것까지 깔린 거라는 이유가 있어서. 그 사소한 것 배후에는 좀 더 큰게 있었다는 걸 지금 깨닳아가는 시점이라서. 그런 점에서 당파싸움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는 괄호를 치고 다시 평가해야 된다고 보고. 노동 운동도 그런 소소한 해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런 특징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다.
▶ 맺음말에서 갑자기 당파싸움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시대로부터 분석되어온 신분 질서가 당파싸움이랑 연결된다고 보는 것인지. 궁금
▶ 당파싸움은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당쟁이라는 이런 것보다는 이 책은 사회 구성체론이다. 조선시대를 사회 구성체론에 따라 판단하면 조선시대가 어떤 사회냐. 봉건사회였어. 라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명제라고 볼 수 있다. 그 말은 뭐냐면 삼국시대때 이후로 삼국, 고려, 조선까지 봉건시대는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는 게 둘째 명제, 그거는 삼국시대를 노예제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 그러니까 사회구성체론. 경제적 사회구성체를 밝히는 것인데, 당쟁은 상부구조로 이해하는 것.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소재가 아니고. ... 그냥 삽화라고 보아야 함.
▶ 당파싸움이 핵심이 아니고 양반의 사상여독이 핵심이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봉건사상의 여독이 여타의 불평등 타파운동,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 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도 봉건사회의 독이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고. 노동운동 내에서의 봉건성에 대한 문제의식 같은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봉건사상의 여독. 그러면 무엇이었을까, 개별적인 공부로 남겨두겠다.


::김석형은 “경제외적 강제는 봉건적 토지소유 관계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농노에 대한 봉건영주의 불완전소유는 기본적으로 농노들이 경작하는 토지에 대한 봉건영주의 소유에서 오는 것이고 그 농노들이 토지와노동조건에 대한 점유자이기 때문에 지배와 종속이라는 경제외적 강제가 없이는 봉건 영주들의 토지소유가유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445”라고 말한다. 그런데 역으로 봉건적 토지소유는 경제외적 제관계, 폭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445쪽의 주장과 대비되는 방식으로 김석형은 448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봉건사회의 토지소유관계의 해명에 있어도 신분관계의 검토가 그 기본 문제로 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전자가 후자로써 설명되어야 하며 후자의 계급적 기초가 또한 전자로 분석 되어야만 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경제외적 강제로부터 봉건적 토지소유로부터 도출된다고 말을 하는 게 오히려 더 합리성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메모를 했다. “역으로~” 신분이 전쟁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정복과 피정복. 신분이라는 건 하늘이 내려준 것처럼 말을 하지만, 정복 피정복의 산물이라 할 때 봉건적 토지소유라는 경제적 지점이 오히려 경제외적인 것에서 도출되었다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페이지에 가니까 또 그 생각을 그대로 적고 있었다. 그래서 양 관계를 상호관계로 파악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역사적으로는 경제외적 관계가 우선하는 걸로 보는 게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받는 현물 조세와 지주가 받는 현물 지대를 우리 봉건시대의 기록은 조 또는 세라고 규정하였는데왜 노비가 그 상전에게 지불 하는 것은 조라고 부르지 않고 소출이라고 불렀는가?465  이에 김석형은 “그러한 지대를 지불하는 자가 그 토지의 주인인 상전의 불완전 소유하의 노비였기 때문이었다”라고 답한다. 이답의 의미가 무엇인가?

▶ 토지 소유를 기준으로 한 것. 소출을 내는 사람의 경우는 그 토지는 소출을 내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소출을 받는 사람의 것, 내 땅에서 내 노비를 사용해서 수확을 낸 거라는 것.
▶ 그래서 뒤에 나오지만, 박시형의 국유제론을 비판을 하면서 고려, 삼국시대 때의 ... 다 삼국시대 잘못이라고 하는, 조세를 내는 땅은 내는 사람이 땅의 소유자이므로 기본적으로 민간 소유라는 것. 이렇게 농민이 소유하거나 양반, 지주가 소유하는 게 매우 많고 국유전이 굉장히 적었다는게 김석형씨의 생각.

::473쪽 전후에 서술된 우리 사회 봉건 시기의 복합적 토지소유 관계에 대하여 논의 해 보자
▶ 복합적 토지소유는 토지소유를 단일 계층이 가지고 있지 않았고, 둘 이상의 계급의 소유권이 일정하게 분점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는 것. 그래서 조세를 내는 땅이라고 했을 때에 기본적인 소유권은 조세를 내는 사람들. 농민 소유. 그렇다고 해도 조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어디서 나오냐고 묻고 그것도 소유권의 일부라고 보는 것. 조나 세를 걷을 수 있는 권리는 소유권 주장이니까, 국가와 농민이 소유권을 분점하고 있어서 비율로 따지면 국가가 17퍼센트 농민이 83퍼센트.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소유권의 분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와 양반도 마찬가지. 양반이 일정정도 수조권을 갖고 국가도 일정한 조세권을 가지면서 맞은편의 경작하는 농민들과 대립하는 상태. 이런 식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유라는 게 딱 한 계급, 개인에게 독점적으로 전유된 순수한 의미에서의 소유권은 아니었다는 것. 독점과 배제를 가지고 있는 소유권이 우리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관찰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다.

::482쪽에 서술된 농민의 계급 구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지난 시간에 한 것. 복습차원. 땅을 갖고 있거나 없거나 등의 관계에 따라서 나뉘는 것.


::부록 <봉건적 토지소유 관계에 대하여> 끄트머리에는, 한반도에서의 봉건제도 붕괴 시작 시기를 18세기로 소급하는 인식이 강조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과거 봉건지주-소작농민 관계가 “순수한 경제적 관계”로 발전되지 못했다는 대목이 2번 등장하는데(488) 이 “순수한 경제적 관계”의 함의를 조금 선명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건제와 다른 방식의 상품-화폐 관계를 전제로 하는 명명일듯한데 저자가 상정한 “순수한” 경제적 관계란 어떤 것일까.

▶ ‘순수한’이라는 표현을 쓴 거는, 막스의 책에도 여러차례 나오지만, 제 발로 선 자본주의와 못 선 자본주의. 제 발로 섰다는 건 순수한 자본주의라는 얘기 그 사회의 법칙, 관계양식들이 딱 경제적 공식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예컨대 이윤율 저하의 법칙이나 이런 걸로 설명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복잡다단한 현실이 에워싸서 경제적 현실을 봉쇄 ... 현실을 볼 수 있다. 그랬을 때에 순수한 경제적 관계가 아니라 다른 것이 끼어 들어왔다는 것은 봉건적 반동이 있어서 문벌이라거나 족벌이라거나 이런 것들을 계속 제기, 부활시키고 계속 제국주의 식민세력을 보아와서 경제적 관계를 변화시키고 이런 식으로 함으로써 신분제적 요소까지 남아있었다. 지주,소작 관계 이런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런 것들이 이제 남한에서는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러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한다. 북한은 농민적 소유로 전환시켰으니 문제가 없는데 일제와 남한은 봉건적 관계가 남아있을 뿐 아니라 우세한 것으로 남아있다. 1980년대에도 사회구성체론 논쟁이 벌어졌을 때 엔엘은 한국사회를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 그러면 자본주의적 관계가 지배적이지 않다는 것. 봉건적 관계가 이 분의 일은 되는 그런 사회체로 파악. 그러니까 봉건적이라면 경제적 관계라기보다는 신분적 관계라는 것. 1980년대까지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인식이 팽배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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