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9/8 『스크린의 추방자들』 미술이라는 직업: 삶의 자율성을 위한 주장들

작성자
Jaad
작성일
2021-09-08 17:01
조회
352
『스크린의 추방자들』 미술이라는 직업: 삶의 자율성을 위한 주장들
박 현



작업(work)이었던 것은 점차 직업(occupation)으로 전환되었다. 작업에서 직업으로 변하면서 경제적 틀과 함께, 공간과 시간성의 함축도 변모한다. 직업은 유급 노동을 시키는 대신 사람들을 분주하게 만든다. 직업은 아무 결과와도 연관이 없으며 꼭 임금을 전제로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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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점령
작업에서 직업으로의 전환은 동시대의 다양한 일상적 활동 대부분에 적용된다. 직업은 많은 경우 그 자체로 목적이다. 직업은 정복, 침공, 장악과도 연결이 된다. 점령(occupation)에는 내장된 결과나 해결이 없다. 직업/점령은 단어의 모든 의미에서 서로 같지 않으나 동음인 경우, 유사성의 힘은 단어의 내부에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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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서의 직업/점령
미술의 맥락에서 작업에서 직업으로의 이행은 부가적인 함의를 갖는다. 오늘날 전통적인 미술 작품은 과정으로서 미술, 직업으로서 미술로 광범위하게 보충되었다. 미술은 관객 등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끔 유지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직업이다. 미술이 만족을 주며 보수가 필요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문화 업무 현장 전반에 퍼져 있다. 미술 직업은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인물에서 공간 통제의 군사적 의미와 교차한다. 또한 인턴은 노동의 안에, 지급의 바깥에 존재한다. 두 사례 모두 다양한 정도의 직업적 강도를 띠는 균열된 시공간을 생산한다. 미술 직업의 도식은 긴밀한 관리로 완성되는 검문소 체계를 드러낸다. 세계의 가난한 저개발 지역에서 직업/점령으로서의 미술은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에서 이득을 취한다. 이곳은 비참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미술가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착취될 수 있다. 미술은 그곳의 장기 거주자들을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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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자율성
미술은 삶 또한 점령한다. 예술의 자율성은 예술과 삶의 분리에 근거를 둔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다양한 전위주의가 예술의 장벽을 깨고 삶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출범한다. 전위주의의 희망은 예술이 삶에 녹아들어 혁명의 요동에 주입되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삶은 예술에 점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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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봐야 할 항목들
한쪽에선 예술적 점령이 삶을 온전히 침략하며, 다른 한쪽에선 많은 예술이 순환에서 차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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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분업
전위주의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물론 홀로 무너뜨릴 수 없었다. 자율성을 둘러싼 투쟁과 이에 대한 자본의 응답은 작업에서 직업으로의 전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앨런 카프로를 인용하자면 화랑 안의 삶은 묘지 안의 성교와도 같다. 여기에 우리는 화랑이 역으로 삶 안에 넘쳐 들어가면서 사정이 악화된다고도 덧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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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점령
점령된 공간은 단순히 우리 신체를 담는 용기가 아니라 상품 논리가 동결시킨 잠재력의 평면이다. 점령 중에 우리는 전략가가 되어 공간에 지형학적으로 관여하고 물어야 한다. 하루를 마치고 사람들은 직업 현장을 떠나 집에 가서, 이전에는 노동이라 불렸던 일들을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은 광대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직업의 영토에서 일어나고, 그곳에서 삶 또한 점령되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이 공간을 점령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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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의 영토
점령의 영토는 리핑된 현실로써 물질적으로 지지된다. 이 공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현실화될 수 있다. 그곳은 가능한 어떤 경험으로 존재한다. 그곳은 표본화된 검문소, 공항 보안 검색대, 계산대, 항공 시점, 신체 스캐너, 분산된 노동, 유리회전문, 면세점을 관통하는 운동의 합성과 몽타주 시퀀스로 구성되었을지도 모른다. 글의 도입부에서 당신의 휴대전화로 매일 몇 초씩 녹화를 해달라고 했던 것은 내(히토 슈타이얼의) 휴대전화에 몇 달 동안, 점령의 영토를 오가면서 축적된 시퀀스다. 휴대전화는 무수하고 불가해한 사진들 속으로 당신의 삶을 복사 붙여넣기 한다. 그것이 당신의 위치를 유출시켰다면, 이는 역으로 당신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직업/점령의 영토는 그린스크린 처리를 거친 영토로서, 배경색을 뺀 자리에 부자연스럽게 합성되고, 리핑되고, 갈가리 찢어지며, 삶과 마음을 절망에 빠뜨린다.

휴대폰에서 보내진 어떤 것의 유포를 보라. 우리의 점령 시나리오를 합쳐서 조각조각 복제해 돌리자. 이것이야말로 강압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각자의 기업형 봉쇄 구역 안에 놓인 우리의 직업적 영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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