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예술인간의 탄생』 조정환 저자와의 인터뷰

인터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12-27 10:12
조회
260
 

『예술인간의 탄생』 조정환 저자와의 인터뷰



Q. 선생님께서는 정치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저작에서 왜 예술이라는 테마를 다루셨나요? 예술에서 출발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주로 정치철학적 주제에 많은 시간을 바쳐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술진화의 문제를 다룬 이 책이 약간 뜬금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미학의 문제는 제 연구활동의 출발점이었고 이후에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다루고 있지 않을 때조차 관심을 벗어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후기에서 과(科) 혹은 분과를 넘어서 일종의 총체학을 지향해온 나의 여정 속에서 이 책이 갖는 위치를 가늠해 보고자 했습니다.

1980년대 초 국문학과 대학원에서부터, 제도 밖 지하모임의 공부, <민중미학연구소> 활동, 1986년의 투옥과 구치소 내 인권투쟁, 1987년 말 출소 후 민족문학의 민주주의민족문학으로의 전환, 노동해방문학론으로의 수정, 『노동해방문학』의 창간, 1990년 지명수배 이후 10여 년의 잠행기간 동안의 독서, <다중지성의 정원> 세미나 등 25년에 걸친 연구가 어떻게 나를 미학이라는 주제로 다시 안내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후기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삶정치 개념을 통해, 정치를 당이나 국가를 넘는 삶의 지평에서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정치를 삶의 자기배려의 노력으로, 즉 생명의 자치와 자율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예술미학이라는 주제는 결코 한 켠에 방치해둘 수 없는 문제로 되어 갔습니다. 정치는 더 이상 이념, 세계관, 행동에 종속되거나 한정될 수 없으며 감각, 지각, 정념, 욕망, 희망, 판단, 결정 등 삶의 전 부면에서 작용하는 자율적인 노력으로 사유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삶과 생명에 대한 더 깊은 주의야말로 혁명과 정치의 개념을 혁신할 수 있는 대안적 평면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치미학에서 정치시학으로의 전환의 경험입니다. 미학이 재현론에 어떤 형태로든 문을 열어 두고 있다면, ‘poiesis’, 즉 표현, 제작, 창조로서의 시학은 재현론적 사고를 뒤집어 그 무게중심을 역전시키는 것으로서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접근하거나 심지어 일치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정리하기 위해 2010년 1월부터 약 2년여 동안 진행한 <다중지성의 정원> ‘미학-시학 세미나’는 미학과 정치학의 저 분리불가능성을 확인하고 정치미학을 삶에 대한 주의라는 지평에서 재고찰할 수 있는 기회로 되었습니다.


Q. “예술인간”이라니 예술가들만을 위한 책은 아닌가요? “누구나 예술가이기를 요구받는 시대”라는 표현이 뒤표지에 있습니다. 오늘날 모두가 예술가로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데요, 이 문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누구나가 예술가다”라는 말은 20세기 후반에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좀더 부연하면 우리 시대에 이 말은, 이제 잠재성의 수준에서, 즉 잠재적으로 그렇다는 수준에서 정의되는 것을 넘어섭니다. 다중의 역사적 도래가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중은 분명히 잠재적으로 예술가이지만 단지 잠재적으로만 예술가인 것은 아닙니다. 다중은 매일매일 예술가이기를 강요받고 있고 그것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로 단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과정의 미적·예술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예술가화를 강제하고 재촉하고 촉진합니다.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임금도 없다는 것이 신경제의 논리입니다. 포스트포드주의가 구상, 상상의 기능을 노동자에게 떠넘김으로써 더 큰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 결과, 노동하는 사람들은 실행하는 주체일 뿐만 아니라 구상하는 주체, 상상하는 주체, 기획하는 주체, 창조하는 주체로 됩니다. 매 순간 노동자가 예술적일 것을 요구받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이제는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인 것입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누구나가 예술가”라는 말을 사실주의적 재현의 술어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저변에서 보통사람들의 예술가다움을 자주 목격하고 그것에 놀라지만 그렇다고 이미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부른다면 강변을 넘기 어려울 것입니다.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라는 말은 잠재성과 현실성 사이, 그러니까 잠재성의 현실화를 향한 강력한 경향의 정의로서 사용되는 것이 가장 적실할 것입니다.


Q. 이 책과 선생님의 전작 <인지자본주의>와의 관련성은 무엇인가요?

2011년에 출간한 『인지자본주의』에서 나는 현대자본주의의 구성과 성격을 분석한 후, “축적을 위한 인지의 전용이 아니라 삶의 혁신과 행복을 위한 인지혁명이 필요한 때”라는 말로 우리 시대의 대안적 경로와 실천적 과제에 대한 생각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혁신과 행복을 위한 인지혁명’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로부터 약 4년 만에 출간되는 이 책은, 이 문제에 대한 전통적 형식의 답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럽겠지만, 인지혁명의 강령을 확정한다거나 전략전술을 구체화하는 식의 작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이 책에서 예술인간이라는 주체성의 형성을 중심으로 인지혁명의 계보학적 가능성을 더듬어 나갑니다. 다시 말해 『인지자본주의』가 논리적 방법으로 권력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계보학적 방법으로 역량의 지도, 활력의 지도, 주체성의 지도를 그리는 책입니다.


Q. 가난한 예술가들의 생계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생계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스파이로서의 예술가”가 가능한 전략일까요?

스파이로서의 예술가는 예술가가 예술인간이 되는 방법으로 제안된 것입니다. 현존하는 체제 속에서 예술가의 생활은 시장에 맡겨져 있습니다. 시장공간을 통해서 예술인간이 되는 스파이 예술가의 생계문제를 상상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예술인간되기는 시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소득체제의 도입과 병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기본소득이라는 의제가 제시되어 왔고 또 널리 수용되고 있는 중입니다. 예술가의 소득 문제를 기본소득 문제와 연결시켜서 상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예술가의 소득과 생활을 시장에 제한하지 않고 누구나가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향유할 수 있는 기본소득 운동이 예술가의 예술인간되기와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Q. 지금까지 한국에서 벤야민, 푸코, 아감벤 사상이 수용되어온 방식과 <예술인간의 탄생>의 관점이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발터 벤야민은 예술이론에 있어서는 주로 미디어 이론가로 소개되어 왔습니다. 이 책에서 나는 대중이라는 새로운 예술주체성의 대두를 사유한 발터 벤야민을, 우리 시대의 다중예술가의 등장을 예고한 선구자로 위치 지었습니다.

푸코의 경우 한국에서의 주된 수용방식은 그의 삶권력 이론을 현대의 권력에 대한 설명으로 취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나는 푸코의 바이오파워 개념을 삶권력과 삶정치로 나누고 그의 삶정치 개념을 그가 평생 동안 연구해 온 삶의 미학의 개념으로 해석합니다. 푸코의 바이오파워는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일 뿐만 아니라 그 권력에 저항하고 새로운 삶을 구성해 내는 역량에 대한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의 삶의 미학(실존의 미학)은 누구나가 자기 자신의 삶을 미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능력에 대해 탐구합니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서술되는 자기배려의 테크놀로지가 바로 삶의 미학에 대한 그의 탐구와 부합됩니다.

아감벤은 한국에서 권력의 예외적 통치에 대한 이론가로 주로 수용돼 왔습니다. 그 방향 속에서 아감벤은 비관적이고 묵시록적인 정치철학자로 자리매김됩니다. 하지만 아감벤에게는 개체로 되기 이전의 창조력에 대한 적극적인 사유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한 게니우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아감벤은 현대의 미디어 정치와 스펙타클 사회에 대한 풍부한 사유를 전개하는데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정보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시한 이론가로서의 아감벤은 그다지 주목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서는 미학자로서의 아감벤을 조명함으로써 아감벤의 아직 잘 드러나지 않은 그러한 면모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


예술인간의 탄생


※ 편집자 주 : 이 인터뷰는 <예술인간의 탄생> 보도자료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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