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호] 커먼즈의 불법화, 커머닝의 범죄화: 인클로저와 그 저항의 역사ㅣ안새롬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12-12 11:55
조회
867
 

커먼즈의 불법화, 커머닝의 범죄화: 인클로저와 그 저항의 역사


안새롬 (서울대학교 환경교육 전공 박사과정)


주인 있는 산림에 허가 없이 들어간다면, 매일 나무 잔가지와 열매를 줍고 심지어 가축에게 열매를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 숲의 잔가지와 열매 줍기, 가축 기르기는 요즘 사람들의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겠지만 누구라도 그러한 시도를 했다가는 법적으로 제재당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행위들이 평범한 사람의 ‘권리’로 보호되던 때가 있었다. 역사학자이자 『도둑이야!』의 저자인 피터 라인보우(Peter Linebaugh)에 따르면 산림의 주인이 있더라도 잔가지와 열매를 줍고 가축을 먹이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였다. 왜 특수한 전유 형태가 어떤 시기에는 범죄가 되고 다른 시기에는 되지 않을까? 그 범죄 유무는 무엇에 좌우되는 걸까? 이것이 『도둑이야!』의 주요 질문이다.

라인보우는 “커머닝 없는 커먼즈는 없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커먼즈는 인간의 관리 혹은 활동을 기다리는 자원이 아니라 커머닝이라는 활동을 통해 구성되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름의 규범과 관습으로 커먼즈를 유지하거나 향유해 온 커머너(commoner)들과 커머닝의 역사, 그리고 커먼즈의 인클로저(enclosure, 울타리 치기)와 함께 커머너가 축출되어 온 역사를 조명해 왔다.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인 『마그나카르타 선언』(2008)에서 그는 대헌장과 산림헌장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장했던, 지금은 잊혀진 권리를 상기시켰다. 산림이 누구의 소유인지와 무관하게 홀로 된 여성은 바람에 쓰러진 나무, 죽은 나무 등 일명 에스토버스(estovers)를 취할 권리를, 보통 사람들은 삼림에 돼지를 방목할 권리를 보장받았다. 두 편을 제외하고 2007~2013년에 쓴 열다섯 개의 글 모음집인 『도둑이야!』에서도 커머너와 커머닝 관습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이 유지된다. 하지만 이 책은 커머닝 관습과 법 사이의 긴장 관계, 그리고 커먼즈의 해체와 범죄, 투옥의 관계에 보다 주목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이 책이 중요하게 상기시키는 역사 중 하나는 1830~1840년대 프로이센의 목재 절도법 개정과 목재 절도 사례이다. 당시 국가는 국유림 비율을 확대하고, 목재의 과학적 연구 및 관리 기구를 개설했으며, 삼림 경비 전문가를 배출하고, 목재 약탈을 막기 위한 통제를 강화했다. 삼림 전유에 대한 규칙과 처벌을 설정하는 수십, 수백 개의 세부 법조항이 개설되었다. 예를 들어, 베리류와 버섯 채취를 위해서는 서면 허가가 필요하고, 오월제 기둥, 성탄절 트리, 손잡이, 끌채 등을 위해 나무의 꼭대기를 자르는 행위는 벌금형 또는 감금형으로 처벌한다는 조항이 생겼다. 그런데 당시 삼림은 보통 사람들에게 연료, 주택, 농기구, 식량을 위한 재료들을 제공하는 기능을 했다. 보통의 사람들의 생계에 필수적인 삼림에 대한 접근이 점차 금지되고, 합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목재 절도 범죄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목재 절도 범죄는 여름보다 겨울에, 따뜻한 해보다 추운 해에, 사람들이 빈궁해 질수록 더 많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클로저와 근대 사적 소유 법체계의 수립 과정에서 커먼즈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던 커머닝 관습들이 ‘야만’과 ‘미개’의 것으로 취급되고 범죄화 되는 한편, 커머너들은 범죄화된 커머닝 관습을 유지하거나 요구하면서 처벌받거나 투옥되었다고 본다. 울타리를 넘어 소유권을 위반한 커머너는 도둑으로 처벌받지만, 저자는 그 울타리를 만든 사람들, 커머너를 도둑이라 부르는 법을 만든 사람들이 ‘진짜’ 도둑이라고 생각한다. 커머너로부터 커먼즈를 혹은 커먼즈에 의존해 온 그들의 생계를 탈취했다는 것이다. 책 제목의 ‘도둑’은 바로 커먼즈를 인클로저 하는 사람들, 인클로저 법을 만든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가 말하는 진짜 도둑은 삼림에 울타리 치는 사람들에서 토지, 강, 하늘에 울타리를 치고 농작물과 물고기, 새를 독점하는 사람들, 지구 곳곳에 울타리를 치고 화석연료를 채취하는 사람들까지 광범하다.

『도둑이야!』는 커먼즈에 대한 잊혀진 권리들을 조명하며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들을 제공한다. 커먼즈에서 부스러기, 자투리, 부수입을 취득하는 것은 커머너들의 삶의 방식이자 관습이고 권리였으며,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자원을 요령있게 허용하는 것이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커먼즈가 인클로저되고, 인클로저 법이 시행되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커머너들의 어려움과 곤란함 또한 세심하게 조명한다. 커머너들의 생계를 지탱하고 부수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며 한 사회의 완충 지대로 기능해 온 커먼즈와 커머닝 관습들이 그 기능을 상실하자 커머너들은 축출되어 주변화되거나, 아니면 저항하다 범죄자가 되었다. 이 책은 관습에 의한 커머닝과 법에 의한 인클로저 사이에 위치했던 커머너들의 삶을 밀도 있게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복구한 작업으로서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현 시점에서 커먼즈를 적절하게 논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저자는 인클로저-법-자본 대(對) 커머닝-관습-커먼즈라는 이분 구도를 설정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클로저하는 사람들과 커머닝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분리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사회적 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와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 사람들은 늘 인클로저에 의해 수탈당하거나 저항하는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특정한 인클로저 혹은 이에 관련한 법에 저항할 수도, 지지할 수도 있다. 법과 관습, 인클로저와 커머닝의 관계 또한 복합적으로 설정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지배-자본 계급과 그 반대항인 피지배-노동 계급을 상정하는 이분법적 논의에 기반하면서 커먼즈를 단순한 구도 속에 위치시키고, 이를 피지배-노동 계급의 생존과 반자본 계급투쟁의 장으로 바라본다. 복잡하고 분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고려하며 커먼즈를 사유하기에 이분법적 도식은 한계가 있다.

커머닝과 인클로저에 좋음/나쁨, 선/악의 이분법적 가치 부여는 또 다른 큰 한계다. 라인보우는 인클로저하는 사람들, 인클로저 법을 만든 사람들을 ‘나쁜’, ‘악인’, ‘더 대단한 악인’, ‘대적(大敵)’이라고 부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커머닝/인클로저 이분법에 따라, 커머너들은 좋고 선한 사람이거나 최소한 덜 나쁘고 덜 악한 사람이 된다. 인클로저 하는 사람을 도둑질 하는 악인으로 규정한다면, 커머너는 도둑질 당하는 선량한 사람이 된다. 저자는 커머너에게서 미개하고 빈곤한 이미지와 연민과 온정을 뒤섞는 제국주의적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인클로저하는 사람을 악마화하고 그 악인들을 잡아 배상하게 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한다. 인간 행동의 선악을 이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제국주의적 시선은 폐기된 것일까 혹은 대상만 바뀌어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커먼즈에 관한 역사서이지만 운동서이기도 하다. 커먼즈와 커머닝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발견되는 억압, 수탈, 착취, 저항의 장소와 시간을 곱씹어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현대 사회는 무수히 분화되어 있다. 때로는 인클로저에 동참하고 때로는 커머닝을 요구하는 현대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과 방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한 누군가를 색출하여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혹은 외침을 요구하는 운동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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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노예선 : 인간의 역사』(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갈무리, 2018)


노예선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싣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들을 신세계로 데려갔다. 노예무역과 미국 농장체제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졌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노예선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뛰어난 수상 경력의 역사학자인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에서 해양기록에 관한 3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여 이 전례 없는 함선에 관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함선의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격동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냈다. 그는 상어를 꼬리처럼 끌고 다니는 떠다니는 지하 감옥에 타고 있는 선장, 선원, 노예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를 냉혹하게 재구성했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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