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20.03.06] ‘증언자’ 윤지오는 어쩌다 ‘적색 수배자’가 되었나 / 이재성 기자

보도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20-03-08 13:27
조회
122


[한겨레신문 2020.03.06] ‘증언자’ 윤지오는 어쩌다 ‘적색 수배자’가 되었나 / 이재성 기자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31380.html


“권력자들은 문학이 정치나 참여를 주장하지 말고 자연을 노래하는 순수성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전두환 군부는 계엄군의 학살 행위에 맞서 방어 무기를 든 광주 시민들을 순수하지 못한 폭도라고 불렀다. 순수주의는 권력과 돈은 다 내가 갖겠으니 너희는 무(기)력과 가난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며 압제와 착취에 이용되는 정신적 장치다.”


더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대목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 또는 의도적 무시다. 당시 경찰과 검찰 모두 이 진술을 완벽히 무시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들어 이 사건의 재조사를 시작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과거사진상조사단도 이 부분을 더 파고들지 않았고, 결국 수사 의뢰 포기로 이어졌다고 지은이는 개탄한다. 성상납 강요라는 말은 성폭행과 동의어이며, 그렇다면 저 리스트는 성폭행 리스트라는 말이 되는데, 문재인 정부의 검찰 과거사위조차 “윤지오의 증언을 편집하고 조작하는 방식”으로 리스트가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면서도 특검이 아닌 기존 검찰 조직에 사건 해결을 맡겼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결국 증언자(피해자)는 사기로 후원금(고펀드미)을 모금한 혐의로 인터폴에 쫓기는 신세가 됐고,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익명의 특권을 누리며 별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일개 시민, 그것도 증언자를 향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증언자를 난도질하고 있는 사태는 실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엄청난 광기가 폭발하고 있다고밖에는 달리 묘사할 언어를 찾기가 어렵다.” (<까판>) “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 양두구육의 위선자-국민, 사기꾼-국민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윤지오에게 진실로 부끄럽고 죄스러우며 대한민국을 위선자의 나라, 사기꾼의 나라로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증언혐오>)


두 책의 핵심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기꾼이라는 누명 벗기기(윤지오에게 사기꾼이라는 누명을 씌운 세력에 대한 비판), 그리고 가해자중심주의 시각으로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유지·온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권력-언론 연합체) 비판, 마지막으로 특검을 통한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 촉구다. 자못 도발적으로 읽히는 지은이의 문자 투쟁이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처럼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책을 읽는 독자의 몫에 달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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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혐오』 | 조정환 지음 | 갈무리 (2020)
『까판의 문법』 | 조정환 지음 | 갈무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