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 『예술과 공통장』을 읽고ㅣ박서현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4-07-02 10:48
조회
22
 

『예술과 공통장』을 읽고


박서현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서울 목동 오아시스 프로젝트와 문래예술공단 랩 39의 공통장

책 『예술과 공통장』은 예술가들의 공통장을 다룬다. 공유지, 공유재, 공동자원, 공통재 등으로 번역되는 commons를 책에서는 ‘공통장’으로 번역한다. 책에서 말하는 공통장은 집합체 주체가 재화로서의 공통재(common goods)를 생산하는 활동(공통화, commoning)으로 이루어진 체계이다(11, 46쪽). 책에서 검토하는 예술가들의 공통장은 오아시스 프로젝트(이하 오아시스)와 문래예술공단의 프로젝트 스페이스 LAB39(이하 랩39), 서울시창작공간 중 특히 문래예술공단이다.

오아시스는 2004년 중순 목동 예술인회관을 점거한 예술가 집단의 이름이자 이들이 수행한 프로젝트의 이름이었다(24쪽). 랩39는 오아시스를 함께 한 몇몇 구성원들이 2007년 문래동 3가에 만든 공간의 이름이었다(25쪽). 2008년 서울시의 창의문화도시 마스터플랜에 따라 서울시 곳곳에 만들어진 공간으로서, 문래예술공장은 문래예술공단에 만들어진 서울시창작공간이었다(28쪽).

오아시스와 랩39의 예술가들의 활동은 임금이 주어지는 노동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삶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 이들의 활동은 비참함이 아닌 어떤 대안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었다(7쪽). 이 가능성이 다름 아닌 이들의 활동이 만들어낸 공통장, 예술가들의 공통장이었다. 공통장이 비시장적인 동시에 집합적인 방식으로 삶을 재생산하는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구현했기 때문이었다(13쪽).

생각해볼 것은 공통장이 어떤 기묘한 공존의 산물이자 교전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도시 정부의 경쟁력, 발전을 위해서 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생산되는 공통장을 도시 정부가 전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10, 15쪽). 도시 정부는 공통장을 도시의 발전 전략에 종속시키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이러한 전략에 그저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들은 도시 정부의 전략을 이용하면서 예의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천했다.

책은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공통장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활동과 도시 정부에 의한 공통장의 전유라는 문제틀로 공통장을 독해한다. 이러한 점에서 책은 ‘계급 관점’을 도입하여 공통장을 독해한다. 공통장을 갈등과 투쟁의 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31쪽), 공통장은 그것을 전유하려는 힘과 대안을 모색하는 힘들이 충돌하는 장이다.

책이 공통장을 분석하면서 ‘전략 공통장’과 ‘전술 공통장’을 구분한 것은 공통장에서 각축하는 저 힘들의 동학을 읽어내기 위함이었다. 구체적으로 책은 공통장이 지배 전략의 도구일 수도 있고 기존 질서의 대안일 수도 있다고 본다. 전자가 전략 공통장이라면, 후자는 전술 공통장이다. 예술가들의 공통장을 전유하려는 전략 공통장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맞서서, 이러한 전유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실천을 통해 삶의 재생산을 추구하는 것이 전술 공통장이다(89쪽). 오아시스와 랩39가 전술 공통장이었다면, 문래예술공장이 전략 공통장이었다.

우리 모두의 문제로서의 공통장의 생산과 그 전유

그런데 일부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오아시스와 랩39만이 공통장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은 공통장의 생산과 그 전유의 문제를 일부 예술가들만의 그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제기한다. 오늘날 도시가 공장으로서 공통재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115쪽). 도시에서 우리 모두는 사회적 협력을 통해 공통재를 생산한다. “공통장의 생산자는 예술가만이 아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마주침 속에서 우리는 모두 삶-노동자다(374쪽).” 도시에서 우리는 어떤 대안적 삶, “다른 삶의 기초를 놓는 실천을 위해서 (...) 어떤 공통장을 생산할” 가능성을 갖는다(374쪽). 물론 이러한 생산은 우리의 일종의 자기 변화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다름 아닌 “어떤 우리가 될 수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374쪽).”

이처럼 공통장의 생산과 전유의 문제는 문래동이라는 서울시의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오늘날 공장이 된 도시,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공통재를 생산하는 사회적 노동자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이 공통장을 전유하려는 힘에 맞서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현했듯이, 우리 역시 우리가 함께 만든 공통장, 공통의 부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354쪽).

물론 이러한 싸움은 결코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책에서는 그 이유와 관련하여 불안의 문제를 지적한다(304쪽). 불안정성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불안이 삶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공통장을 만들고 지키며 가꾸기보다는, 예컨대 안정적 재생산을 위한 임금 노동을 추구하게 만든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어떤 역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공통장의 생산이 그에 대한 전유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전략 공통장, 문래예술공장이 전술 공통장, 오아시스에 의존하듯이(35쪽), 공통장의 생산이 그에 대한 전유에 앞선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 없다면 자본 증식이 불가능한 것처럼, 공통장의 생산이 그에 대한 전유에 앞선다. 이러한 점에서 공통장을 생산하는 우리가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불안정한 삶 속에서 우리가 노상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이 보여주었듯이 우리 불안정 노동자들의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안전망으로서 공통장을 만들고 지키며 키워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281쪽). 분명 이러한 활동은 불안과 대면할 용기를 필요로 한다(281쪽). 이는 공통장이 안정적 재생산을 위한 임금 노동의 장소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공통장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장소가 아님에도 그것이 저 용기의 원천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듯이 용기가 타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창발하는 기운이라면(281쪽), 공통장을 서로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 속에서 용기가 창발될 수 있을 것이다. 문래예술공단이 어느 정도 용기가 창발하는 장소였듯이 말이다(281쪽).

공통장의 생산이 그에 대한 전유에 언제나 우선한다는 것

이러한 점에서 필요한 것은 “혁명 이후에 도래할 어떤 세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실천(212쪽)”, 지금 여기에서 공통장을 만들고 지키며 가꾸는 실천이다. 물론 구체 현실에서 이러한 실천들 중 하나는, 전략 공통장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맞서서 전술 공통장이 존재했듯이, “공공영역에서 공통화의 지평을 넓히고 공공성을 공통성으로 재전유하는(228쪽)” 활동이다. 공공성에 내재한 공통성을 확장하는 시도였던 오아시스처럼(229쪽), 공공기금을 투쟁의 자원으로 재전유하면서 문래예술공장을 공통의 공간으로 바꾸는 활동이 바로 이러한 실천의 하나였다(368쪽).

이러한 활동 속에서 오아시스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 형태를 띰으로써 예술 활동을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는 누구라도 행할 수 있는 공통의 것으로 바꾸는 식으로(226쪽), 또 작업실이라는 사적 공간을 벗어나 예술 활동을 지역에서 공통화하는 식으로(252쪽), 예술 개념의 변형과 확장을 가져왔다(226쪽). 이처럼 이들 예술가들은 어떤 작품만이 아닌 사회적 관계와 삶의 형태를(263쪽), 새로운 삶의 형태를 생산했다.

다시 말해 이들 예술가들은 전술 공통장에서 어떤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예술 활동을 구현했다. 물론 이는 어떤 한 사례, 전략 공통장 안에서 그리고 그에 맞서서 존재했던 전술 공통장의 한 사례, 서울시에 존재한 공통장의 한 사례이다. 그럼에도 이 사례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이 사례를 다루는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이러한 재전유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협력적으로 생산한 공통장을 우리는 재전유할 수 있는 것이다. 공통장의 생산이 그것의 전유에 앞서며 공통장의 전유가 그 생산에 의존하는 한에서 우리에게는 공통장을 재전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가 결코 왜소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산한 공통장에 의존하는 한에서 공통장을 전유하려는 “저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결코 강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공통장을 만들고 지키며 키워갈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저들”은 우리의 이 힘에 의존하고 있다. 아마도 이 점이 공통장을 계급 관점에서 각축하는 힘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의 장으로 독해하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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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공통장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4년 6월 28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https://shorturl.at/XxtsF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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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예술종말론의 하위흐름으로 나타나거나 예술종말론에 대한 거부를 통해 나타나는 예술진화론들은 경제와 예술, 예술과 삶, 삶과 정치 사이의 전통적 경계소멸을 가져오는 다중의 출현을 직시하면서 그것으로 인해 도래할 예술의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예상을 표현한다.


피지털 커먼즈』(이광석 지음, 갈무리, 2021)


이 책은 동시대 디지털 기술세계의 확대에 의해 파생되는 ‘피지털’(phygital)계의 등장을 주목한다. ‘피지털’은 ‘피지컬’(physical, 물질)과 ‘디지털’(digital, 비물질)을 합친 조어로, 두 공간 지각이 뒤섞인 혼합 현실을 지칭한다. 『피지털 커먼즈』는 거의 모든 유무형 자원을 포획하고 뭇 생명을 예속화하려는 플랫폼자본주의의 인클로저 질서에 맞서서 지속가능한 공통의 미래 대안을 찾기 위한 시도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피지털’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호혜의 공통장을 기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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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투쟁 :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부터 삶의 보호까지』(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이영주, 김현지 옮김, 갈무리, 2020)


전 세계 어디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출판된 적이 없는 이 선집은 영향력 있는 이탈리아의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활동가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30여 년에 이르는 이론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달라 코스따가 작성한 글들 가운데 그의 정치사상적 궤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28편의 핵심 텍스트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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