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 들뢰즈라는 바다, 그리고 나름의 부표일 수 있는 『대담』ㅣ이윤하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4-04-06 17:32
조회
48
 

들뢰즈라는 바다, 그리고 나름의 부표일 수 있는 『대담』


이윤하 (들뢰즈를 읽는, 심리상담사)


사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책들은 허들이 높은 편인 것 같다. 읽고 좋아서 주변 누군가에 추천하면, 책을 좋아하는 그들은 보통 책을 샀지만, 앞장 몇 장이 펼쳐지는 것도 잠시, 책장으로 직행하여 더는 꺼내지지 않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나의 지인들은 오이디푸스에 익숙했기 때문에 주로 『안티 오이디푸스』부터 사는데 보통 첫 장을 넘기는 데에도 실패하는 것 같다. 첫 문장부터 이렇다.


“그것은 도처에서 기능한다. 때론 멈춤 없이, 때론 단속적으로. 그것은 숨 쉬고 열 내고 먹는다. 그것은 똥 싸고 씹한다.”


아주 발칙하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데, 그것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고정된 무엇이 아님을, 부정 대명사적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글쓰기적 장치인 것 같다는 현재의 이해에 다다랐다. 그러나 글을 읽자고 들어온 독자가 처음 만나는 도입부의 첫 문장의 첫 단어부터 낯설고 놓아야 할 위치를 알 수 없다면, 토끼 구멍에 빠진 앨리스처럼 예상치 못한 혼돈의 미궁에 빠진 상황일 테니 누가 마냥 좋아라만 하겠는가.


사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책 제목들만 해도(『안티 오이디푸스-자본주의와 분열증』, 『천의 고원』, 『차이와 반복』, 『기계적 무의식』, 『분자혁명』) 영 친숙하지 않고 거리감이 느껴진다. 철학적인 개념에 정신분석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개념이 함께하는 것도 모자라 직관적인 형상적인 표현도 섞여 있으니, 대체 이런 식으로 어찌 동맹군을 모은다고 하는 건지 한숨이 날 지경이다.


『대담』에서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장 높은 소양을 가진 사람들, 특히 정신분석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이었어. (...) 반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 정신분석에 물들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를 덜 느끼고, 별다른 고민 없이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내버려 둔다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15에서 20세 사이의 친구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했던 거야. (p.24)”


하지만 정신분석에 물든 이들뿐 아니라 기존 언어의 문법에 익숙한 다수의 사람에게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기존의 책을 읽는 방식에 익숙한 이들의 당혹감은 실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는 이미 신물이 난 모양인지 줄곧 신랄한 표현을 쏟아부으며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들뢰즈에게 친절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1)


그는 책을 책이 아닌 방식으로 접하는 방법, 즉 책을 접한 뒤에 “이것이 작동하는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p.25)”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나의 들뢰즈 읽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길과 유사해 보이긴 한다. 어쩌다 마주한 그의 문장 하나가 가슴에 박혀 울린 김에 『차이와 반복』을 샀지만 바로 접힌 채로 읽히지 못한 채 꽂혀 있었다. 시선을 쉬이 뺏는 것들이 도처에 머무는 시대에 그러한 글이 길게 읽힐 리 만무했다. 그런데 어쩌다 시간이 남아돌 때 종종 페이지를 펼쳐 마주한 그의 문장들은 인상적이었다. 전부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만난 부분 부분이 일렁이고 반짝였다. 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쓰자면, ‘분열적 읽기’ 혹은 ‘게릴라전’이었다. 순서도 맥락도 없는, 그저 어떤 상황이나 우연히 마주친 사건과도 같은 문장들. 시를 대하는 방법과도 비슷해 보인다. 모든 게 한 번에 닿지 않더라도, 테크놀로지 역사가이자 문화비평가였던 해러웨이가 말했듯 ‘소화불량인 상태’로 내게 맴도는 문장들.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지은 다양체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미궁들은 그 모습을 한 번에 모두 드러내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없는 과정 도중이자 조각난 원환들의 집합 같은 것이기에 실은 어디로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고 아무거나 붙잡아 봐도 되겠지만, 그럼에도 주저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번에 나온 『대담』은 들뢰즈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데에 있어 나름의 부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에 대한 대담에서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목소리와 어조를 느낄 수 있고, 이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들뢰즈를 만날 수도 있다. 여기엔 들뢰즈가 잠시 머무른 시대와 자리, 그의 목소리의 톤이 주는 정보와 힌트가 있기에 그의 영화 이론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후에는 ‘철학’과 ‘푸코’ 그리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들뢰즈의 사유와 그때의 정황들도 접할 수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줄도 쳐가며 읽었지만 다시 펼쳐봐야 기억이 겨우 날까 말까 한 것으로 봐서 아직 이 부분에 대한 내부 작동은 미미한 수준인 듯하다.


내가 가진 이해력이 아직 이런 모양이기 때문에 뭔가 전체 맥락을 이해하여 제시하거나 무언가를 꿰뚫는 서평을 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들뢰즈가 흥미로워하고 관심을 가졌던 그 핑크빛의 ‘공명’이 느껴진 지점들, 잠시 멈추어 한동안 서성였던 문장들 몇 개를 놓아두고 이제 그만 뭍으로 나가보려 한다.


“투쟁이 아니라 교대였습니다. 빛이 그 자체로 운동일 뿐 아니라, 태양의 빛과 달빛이라는 교대하는 두 빛이 있었죠. 화가 들로네(Delaunay)와 매우 가까운 것입니다.” (p.97, 영화에 대한 대담 중)

“왜 합성된 형태가 여전히 인간이어야 할까요? 인간의 권리는? 그러나 에발드가 보여준 것처럼, 형태의 이러한 변화를 증언하는 것은 권리의 변화들 자체입니다.” (p.170, 푸코에 대한 대담 중)


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정신분석 운동의 역사> 속 “그러나 나 혼자 정신분석학을 대표했던 시절 동안, 내가 세상의 견해에 대해 특별한 존경이나 지적인 양보에 대한 어떤 성향을 전개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던 프로이트가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며 말한 고백과 겹쳐 보이며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담> 속에서 “철학사는 철학에 분명히 억압적인 기능을 행사하네. 그건 철학에 고유한 오이디푸스지. ‘네가 이것과 저것, 이것에 대한 저것, 그리고 저것에 대한 이것을 읽지 않은 한, 이것에 대한 저것을 감히 네 이름으로 말하려 하지 말아라.’ (p.21)”는 시대의 난관으로부터 빠져나오려 했던 그의 분투를 마주하게 되면 또 웃음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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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4년 3월 29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https://bit.ly/4cZL7rp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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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들뢰즈 다양체』(질 들뢰즈 지음, 다비드 라푸자드 엮음, 서창현 옮김)


질 들뢰즈 서거 20주년을 기리며 프랑스에서 출판된 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유고집이다. 이 책에는 동시대를 살아갔던 미셸 푸코,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프랑수아 샤틀레, 클레망 로세 등에게 보낸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펠릭스 과타리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공동 작업에 대한 대체 불가능한 설명을 제공해 준다.


들뢰즈 개념어 사전』(아르노 빌라니·로베르 싸소 책임편집, 신지영 옮김, 갈무리, 2020)


들뢰즈가 하나의 생소한 개념을 주조해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하나의 비평문을 제시해줌으로써 우리에게 개념에 대한 특이한(singulier)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21명의 철학자들이 이 책에서 제시한 87개의 개념어(키워드)는 ‘들뢰즈 월드’로 독자들을 깊이 있으면서도 친절하게 안내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안내지도 삼아 들뢰즈 사상을 쉽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개념무기들』(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1)


들뢰즈 사후 25주년을 맞아 우리 시대의 삶에서 들뢰즈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되새기고 성찰하도록 하는 책. 이 책에서 저자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의 윤리학(ethic)을 행동학(ethology)으로 읽었듯이 들뢰즈의 철학을 행동학으로 독해한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실체가 슬픔으로 정동되는 수동상태를 넘어서 기쁨으로 정동하는 능동상태로 이행함으로써 구원과 지복에 이르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진화과정을 서술한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이 행동학적 이행과정을 운동과 역량이라는 두 차원의 교차 속에서 규명하는 철학적 인물로 그려진다.


들뢰즈 사상의 진화』(질 들뢰즈 지음, 김상운, 양창렬 옮김, 갈무리, 2004)


들뢰즈의 사상을 초기 저작부터 후기 저작까지 일관되게 분석하여, '제국' 이론과 '다중' 이론의 철학적 뼈대를 찾아간다. 저자는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사회사상의 발전을, 그의 철학적 핵심을 지배하는 비판적 문제의식들의 발전으로 시기별로 치밀하게 추적한다. 베르그송, 니체, 스피노자라는 현대 철학의 계보학에서 초기의 들뢰즈가 받은 영향들을 뿌리부터 살펴보며, 이를 후기 들뢰즈의 저작과 연결시키면서 살펴본다.


들뢰즈 맑스주의』(니콜래스 쏘번 지음, 갈무리, 2005)


들뢰즈의 소수정치(학)과 맑스의 자본주의 동학 비판 사이의 정치적, 개념적, 문화적 공명점들에 대한 비판적이고 도발적인 탐구인 이 책은 들뢰즈를 부재하는 책, <맑스의 위대함>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첫 번째 책이다.이 책은 첫째로 소수정치학, 소수적 관점에서 들뢰즈, 맑스, 네그리를 독해한다. 둘째로 들뢰즈가 맑스를 다루는 특유한 방식을 고찰한다. 셋째로 들뢰즈의 텍스트들 속의 잠재적 맑스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들뢰즈의 텍스트들 외부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질 들뢰즈의 사변적 실재론』(아연 클라인헤이런브링크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2)


들뢰즈를 사변적 실재론의 선구적 철학자로 다시 자리매김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들뢰즈주의의 정설로 여겨진 이론은, 들뢰즈의 형이상학이 이산적인 존재자들을 흐름과 사건의 연속적 세계로 용해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책은 이러한 관념과 근본적으로 단절할 것을 요구한다. 클라인헤이런브링크는 들뢰즈를 과정철학자로 간주하는 일반적인 해석이 정밀한 조사를 견뎌내지 못하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들뢰즈의 실제적인, 하지만 지금까지 간과된 존재론을, 들뢰즈의 출판된 저작과 미출판된 세미나에서 나타나는 주요 개념들과 주장들에 대한 꼼꼼한 검토를 통해 신중하게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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