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그람시와 한국 지배계급 분석> 발제

작성자
overthe
작성일
2018-05-09 19:35
조회
255
<그람시와 한국 지배계급 분석>(김종법, 2015) 중 한국 관련 내용만 정리했습니다.
미리 올리기는 하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서 프린트는 그냥 제가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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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2 정치철학 고전 세미나, 『그람시와 한국 지배계급 분석』, 발제자: 홍원기

1. 왜 다시 그람시인가

들어가면서
1. 그람시 이론과 개념에 대한 21세기의 유용성과 그러한 유용성이 가능한 그람시의 핵심 개념을 소개하고, 한국사회, 특히 박정희 시대 분석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고자 함.(19)
(-> 발제에서는 후자만 정리)
1.1 그람시가 분석하고 주시해왔던 파시즘 체제와 박정희 체제를 비교.(31)

2. 그람시의 삶과 이론의 출발과 주요 개념

그람시의 헤게모니론
1. 중세에서 근대로 갑자기 들어선 이탈리아 근대의 시작과 조선에서 근대로 갑자기 떠밀려온 한국의 현대적인 국가 형성 과정을 지배계급의 발전과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비교하고자 함.(78)

3. 그람시의 역사적 블록과 그 선결 이론과 문제들

그람시 역사적 블록 개념의 역사적 사례와 조건
1. 그람시가 보기에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는 미완성의 혁명으로 지배계급 헤게모니 장악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것. 통일된 국민적 차원에서의 동질성을 통한 국가적 통일이라기보다는 구체제의 연속이라는 측면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에 불과.(124)

2. 어째서 하위 계급들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할까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들이 지배계급의 통치 원리와 이념을 수용하고 유지시켜나가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규명하고자 함.(128)
2.1 그람시는 하위 계급이 발전시키지 못한 국가성의 결여를 분석.

3. 이는 한국의 근대 국가 발전기에 조선말의 지배계급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유와 국면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
3.1 열강들의 간섭이 가장 심했고, 하위 계급들의 자발성이 가장 미약했던 구한말에 적용.
3.1.1 지배계급이었던 세도 정치의 주역들과 시진 세력 모두 자체적인 변혁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국가를 개조하거나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갖지 않았음. 왕실 역시 독자적인 국가 발전이나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었음.(129)
3.1.2 그 결과 조선은 수많은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 됨. 조선의 지배계급은 스스로의 영향력 확대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헤게모니 전개 방식을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국과의 협력을 통해 유지하려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
3.1.3 하위 계급 역시 자체적인 발전 동력이나 대항 헤게모니를 마련하는 데 실패.

내부적 요인으로서 남부 문제
4. [그람시는] 이탈리아 국가 내부의 민족주의적인 지역주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차원으로 확대함으로써, 남부 문제의 본질을 자본주의적 착취와 사회주의적 계급 동맹으로 결함함.

5. 한국의 영호남 문제 역시 한국의 경제개발 시기 지역 차별과 산업 불평등 구조에서 초래되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탈리아 남부 문제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음. 특히 호남의 농업이 영남의 공업을 위해 희생한 측면에 있고, 호남의 노동력이 영남의 제조업 발전의 중요한 토대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영호남 문제의 본질을 이탈리아 남부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음.
5.1 [그람시는] 농업과 제조업 간의 불균형과 지역 문제 고착화는 결국 경제적 이해관계와 국가 발전에 대한 지배계급의 이해가 관철된다고 주장.
5.2 한국에서 영호남 지역 문제가 경제적 이해관계(135)를 고착화하고 안정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정치권력이 작동한 것이라면, 이러한 정치권력이 국가 정책 기조로 변하여 적용될 경우 지역 문제는 이미 하나의 사회 현상이 아니라 해결 불가능한 사회 구조가 될 수밖에 없음.(136)

4. 체제 연구를 통한 그람시 이론의 한국적 적용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와 한국 개발독재 체제의 비교 가능성
1. 분석 시기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 전후에서 파시즘 체제까지. 즉 파시즘 전후 시기.
한국: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서 제3공화국 시기까지. 즉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지배계급이 고착화되고 새로운 헤게모니의 생성이 독재와 개발이라는 두 측면에서 이뤄진 시기.
1.1 이탈리아: 1920년대 시작된 파시즘 체제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몰락했지만 여전히 사회의 한 축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특징을 차지, 청산되지 않은 파시즘 세력의 잔재들이 현재까지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
한국: 1970년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구시대의 행태와 후진적인(150) 민주주의, 후퇴하는 모든 정치적 징후들.
-> 이 상관성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에서 발생했다는 유사성. 심각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지배계급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있는 요인도 주목할 만함.(151)

역사적‧사회적 배경으로서의 파시즘과 개발독재 체제
2. 역사적 블록 개념: 하나의 국가나 체제를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
2.1 상부구조와 토대 간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이를 매개하는 일정한 계층, 즉 전체로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
2.2 역사적 블록 개념의 유지 원리로서 제시되고 있는 헤게모니 개념 차원에서 분석. 하나의 사회체계 내에서 제시하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들을 공고히 하기(161) 위한 틀로써 헤게모니 제시.
2.3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공고하게 구축되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블록이 탄생한다는 것.

3. 이탈리아: 1차 세계대전과 사회주의 혁명의 파고 -> 자유주의 세력과 산업자본가들이 파시즘의 등장을 반기고, 실제 물적 토대를 제공 -> 파시즘의 자체 정비를 통한 조합주의 국가 건설 -> 지배계층과 지식인 협력을 구하여 ‘강력한 민족국가’와 ‘식민지 전쟁’을 통한 외적 팽창을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헤게모니 구축.(162)
3.1 무솔리니 시대: 지배 계층과 중산층의 사회적 불만을 내적 통합 정책과 외적 팽창 정책을 병행하여 해소, 산업 자본가들과 제휴 통해 경제적 토대 제공받음, 공산당‧사회당 같은 반파시즘 세력에 대해 테러와 폭력 사용하여 체제 유지.
식민지 전쟁과 안정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 이를 토대로 강력한 이탈리아 국가의 완성에 대한 국민적인 희생과 동원을 이끌어냄.
-> 박정희 시대의 ‘동원-반공 체제’와 유사한 구조.

4.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패, 친일파 계급이 지배계급, 부정선거 등장 -> 4‧19 민주혁명 -> 새로운 군부 엘리트 세력의 5‧16 군사 쿠데타.
박정희 정권은 새로운 계층 구조 변화를 초래. 친일 세력의 일부를 이루던 군부와 군인 세력이 국가 통치의 전면에 나서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전환과 지배계급의 성격 전환 발생.(163)

5. 두 국가의 유사성
5.1 이탈리아: 식민지 확장과 강력한 국가 건설 매진 / 한국: 박정희 체제의 국가 발전론.
5.2 이탈리아: 반사회주의와 반공산주의를 기치로 파시즘 체제 발족 / 한국: 박정희 체제 유지의 가장 큰 이데올로기로서 반공이라는 국시.

6. 역사적 블록 개념으로 박정희 체제를 상부구조와 물적 토대의 양자결합을 통한 다양한 지배 엘리트 블록 간의 접합이라는 측면에서 논의 가능.
6.1 이에 따르면 박정희 체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는 반공이라는 이념.
6.2 경제 성장이라는 물적 토대에 기반을 둔 광범위한 동의와 강제력을 집행
6.3 박정희 체제는 ‘동원-반공 체제’ (정해구의 ‘반공-개발 역사적 블록’, 최장집의 ‘발전주의 연합’과 비교)

7. 상부구조와 물적 토대의 결합을 통하여 공고한 통치체제 확립.
7.1 이탈리아: 파시즘 시대 당시 무솔리니를 정점으로 식민지 개발과 군국주의적 민족주의의 고양, 22개의 다양한 조합을 통하여 공고한 통치체제 확립.(164)
7.2 한국: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을 이용한 반공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 박정희의 등장으로 이를 고착화하고 완전한 물적 토대를 제공받는 방향으로 발전.
7.2. 박정희 체제의 헤게모니 유지 도구로서 반공주의, 강제력은 체제 반대층에 집중, 경제 발전과 근대화라는 물적 기반을 위한 국민적 동의와 특정 계층에 대한 특혜를 통해 다자적으로 수행되면서 발전한 체제.(165)

정치사상적 관점에서 본 파시즘 체제와 개발독재 체제
8. 이탈리아: ‘힘의 철학’은 갓 태어난 통일 이탈리아의 사회적 혼란을 정비하고 강력한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염원을 표방. 이러한 힘의 철학은 ‘행동주의’라는 개념으로 이론화되어 파시즘 체제의 사상적 기반이 됨.(175) 젠틸레의 국민교육론,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고양을 통한 강한 국가 건설 및 군국주의와 국가발전론 등.

9. 한국: 전인권에 따르면 박정희라는 정치가의 철학적 원칙에 대해 ‘힘의 정치가’라는 표현을 사용.(176) [1968년] [박종홍, 안호상 등이 기초한]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박정희가 표명하고자 했던 개념과 이념은 ‘산업화’ ‘민족부흥’ ‘국민 정신 개조’ ‘반공주의’ 등.
새로운 정치권력과 체제의 이념으로서, 경제개발을 중심으로 주창했던 ‘발전국가론’과 새로운 국가 창조를 위한 ‘정신개조운동’을 제시.
9.1 이는 충분한 국민적(177) 공감대를 형성. 빈곤 상황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 및 다른 사회적 가치를 급하지 않게 보았고, 이에 정부는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수출 지향 정책과 중화학공업육성 등을 통해 부국강병의 민족국가를 표방.(178)

10. 이탈리아의 경우 젠틸레가 ‘행동’의 철학과 국가 중심적 사상, 그리고 그에 따른 교육체제의 개편을 통해 사상적으로 파시즘을 뒷받침했음.(184~192)
반면 박정희는 새로운 국민국가의 발전을 떠받쳐줄 이념이 아닌 구체적 행동 강령이 필요했음. 민족주의, 발전국가론, <국민교육헌장>을 통한 체제 순응적 국민 육성 및 개조 등.(192)
10.1 특히 <국민교육헌장>은 새로운 대한민국과 박정희 체제가 지향하는 모든 이념과 방향을 담고 있었음: 발전주의, 민족주의, 반공민주주의, 국가주의.(194)

무솔리니와 박정희 개인의 리더십에 대한 비교
11. 수많은 독재자들과의 대표적 유사성: 국가 통치에 있어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통한 강권정치, 혹은 폭력을 수반한 전체주의적 통치.(196)

12. 두 사람의 공통점:
① 모두 교사 생활을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사회운동가와 군인의 길을 걸음.
②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이내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뒤 평생 사회주의를 적으로 삼음.
③ 정치권력 역시 비정상적 방법으로 획득했으며, 독재 정권을 유지한 기간(무솔리니 약 21년, 박정희 약 19년)도 비슷.
④ 무솔리니는 자신의 반대자들인 유격대의 검문에 걸려 총살,(197) 박정희는 자신의 최측근에게 총을 맞아 사망하는 다소 비극적 결말을 공유.
⑤ 상반된 평가 역시 유사
무솔리니: 1. 혼란스러운 이탈리아 사회를 안정시키고, 민족주의와 대외적 팽창 정책을 통해 일체감을 조성하려 노력. / 2. 자유민주주의를 제거하고 전체주의와 국가조합주의로 왜곡시켰으며 과거청산의 문제를 남김.
박정희: 1. 근대화의 영웅, 경제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 / 2. 한국 자유민주주의를 왜곡시킨 장본인이자 친일, 반공, 군사문화의 잔재 등을 통해 한국 사회를 비틀리게 함.(198)
⑥ 둘 다 서민을 표방.(199)

정치‧경제‧사회‧문화 영역에 대한 두 체제의 비교
13. 정치적 측면에서의 유사성과 이질성 연구
13.1 정치적 대중 동원 운동의 조직과 유형. (정치적 대중 동원 운동: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전국적 차원에서 전개된 일종의 관변 주도 의식운동,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감시하는 성격을 가진 운동.)
13.1.1 박정희 체제: 반공궐기대회, 방위성금모금, 국군 장병 위문편지 및 위문품 보내기. 이는 일반 국민과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아래로부터 정치적 지지 끌어내기, 지지층 내부적 결속, 반공이나 분단 위기 이미지 재생산하는 목적. 안보-반공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위한 노력.
13.1.2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원 가입 운동, 대국민 시위 조직, 청년‧청소년 하부 조직 창설,(202) 제1차 세계대전 기념을 국경일화, 전국에 파시스트 친위 조직(밀리치아) 결성.
13.1.3 대중 동원이 필요한 이유: 박정희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과 국민들로부터 당위성을 확인받기 위함.(203)
13.1.3.1 당시 대중 동원의 이데올로기: ‘실체적 공동체 윤리’(전인권) ① 국가와 같은 공동체에 실체적 윤리성을 부여. ② 개인은 윤리적 행동을 통해 실체적 윤리성을 갖는 단체에 기여해야 함. -> 개인은 집단에 종속되는 존재.(204)
13.2 국가 제도를 통한 정치적 동원과 내용. (국가 제도: 국가의 입법 활동으로 법제화된 다양하고 공식적인 제도.)
13.2.1 주요 수단은 정당과 선거 제도 및 그를 뒷받침하는 법률의 제정‧폐지‧수정
13.2.1.1 박정희 체제: 시민사회 활동을 위축하는 포고령, 반공법, 정당법, 노동관계법, 유신헌법.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등의 정보기관을 통한 대국민 사찰 및 요인 감시 활동. ->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체제 순응적 시민을 양성하는 데 공권력 동원.(205) (예: 선거 제도 왜곡)
또한 전 국민의 군사화와 시민사회의 병영화를 통해 쉽게 동원체제 구축(예비군, 학생군사훈련, 학도호국단 등).
13.2.1.2 파시즘 체제: 헌법 개정 개획(법제화되진 않음), 1924년 11월 법률(정부 수반의 정책 실행 및 법안 상정에서 장관이나 국회 동의 필요 없고(207), 의회는 정부 수반의 허가 없이 어떤 법률안도 제출할 수 없게 규정), 1926년 12월 31일 법률(행정부에 사법적 판단과 사법 규정에 대해 수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 지방 행정자치법 개정(주행정지사가 지방자체단체 단체장 및 도시 자문위원 독단적 임명).
13.2.2 노동 부문을 통해 일반 국민 동원 제도적 정비.
13.2.2.1 파시즘 체제: 국가가 전체주의적 수준에서 노동과 노조에 직접 개입. 국가 권력과 산업자본가가 기본 방향과 정책 내용 주도‧결정, 노동자와 노조는 동원의 대상. 1926년 4월 3알 노동관계에 대한 법률을 통해 노조 활동 자유 폐지, 국가 조직으로서 파시스트 노조(208)만 합법화.
13.2.2.2 박정희 체제: 5‧16 구데타 이후 파업 금지 및 노동조합 전면 해산령. 1962년 헌법 개정에 따라 노동삼권 금지 명문화. 노동자는 이간의 기본적 권리를 행사하는 대상이 아닌, ‘조국의 근대화’를 책임질 역군인 동시에 동원의 대상으로 봄. (새마을운동은 이것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걸 보여줌.)
13.2.3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나 박정희의 개발독재 체제 모두 국가를 통해 국민을 동원할 수 있도록 상당히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209)

14. 경제적 측면에서의 유사성과 이질성 연구
14.1 박정희 체제: 1960~70년대 고도성장은 경공업과 특정 중화학공업 비대형 산업구조 속에 타인 자본 의존도가 높은 재벌 위주의 무역 지향 성장. 따라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농민이나 지방민의 희생과 불만이 존재.
14.1.1 새마을운동: 농촌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권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운동의 성격. 일종의 지역사회 개발운동. 정부가 주도하고 농민이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여 체제 유지의 동의와 지지를 지탱하는 메커니즘이자, 국민의 일상에까지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던 농촌 블록의 형성을 위한 운동.(211)
14.1.1.1 따라서 새마을운동은 전적으로 경제적 전략만이 아니라, 농촌과 도시의 불균형과 불균등을 조정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지지 기반 구축을 내부 변화를 통해 이루고자 함.(212)
14.1.2 그러나 여전히 이농 현상을 가속되고 이탈 농민은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희생양이 됨. -> 이러한 노동력 공급은 재벌의 발달과 확충에 상당한 기여.(214)
14.1.2.1 값싼 임금을 기반으로 생산을 통한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가 국가의 중추적 경제 전략. -> 한국형 대기업 모델인 ‘재벌’의 탄생.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의 공고화를 위해 보다 규모가 큰 기업들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집중적으로 시행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이룩. 이는 ‘국가 독점 자본’의 성장.(215)
14.2 파시즘 체제: 경제 부문을 국가가 완전히 주도하는 형태.
14.2.1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비교할 수 있는 농촌진흥정책이 진행. 많은 농촌이 국가 주도에 의해 근대화와 산업화 수준의 개발과 변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전환.
14.2.2 국가 주도 동원과 동의 체제의 제도적 완성은 조합주의로 귀결.(216)
조합주의는 국가를 최고의 선이자 목적으로 상정하고, 국가의 이익을 ‘최고의 이익’으로 삼으면서, 노사 갈등을 완화하고 계급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계급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국가 경제 시스템을 재조직화하려는 의도를 가짐. (국가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절충 노선으로 ‘제3의 길’과 유사.)
14.3 파시즘 체제는 계획경제의 기조 아래 동원된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노력. 박정희 체제도 동원과 근대화를 통해 국가가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소수 특정 기업이 국가 경쟁력을 독점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그 강제성과 동원성을 충분히 알 수 있음.

14. 사회적 측면에서의 유사성과 이질성 연구(218)
14.1 박정희 체제: 어용노조 ‘한국노총’ 설립법, 노동 정책의 국가 귀속이 이루어짐.(219) 노동 정책의 국가적 통제를 통해 사회적 계급으로서 노동자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했으며, 그 결과 ‘수출역군’이자 ‘산업역군’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힘을 쏟는 ‘근로자’만이 존재하게 됨. 노동자들이 사회 계층에서 차지하는 계급적 중요성이나 계층적 안정성은 많이 희석. 진보정당 혹은 계급정당의 탄생을 불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환경 제공.(220)
14.1.1 민족주의라는 이상을 대한민국 사회의 소중한 좌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권위주의적 문화와 순응하고 복종하는 미학의 가부장적 사회를 지향. 대규모 군중집회와 학교나 직장 혹은 국가 기관에서는 애국심을 고양하고 체제 선전의 장으로 적극 활용. 일상화된 제도였던 조례 등은 이러한 권위주의 체제를 지탱시키는 중요한 작동 기제. 사회적으로 조직된 동원을 가능케 함.
14.2 파시즘 체제: 역시 사회적으로 동원 가능한 다양한 조직과 기구들을 만들어냄.(222)
14.2.1 교육 분야: 교육부 장관 젠틸레 임명 후 ‘참교육’ ‘능동적 교육’을 모토로 파시즘 체제에 적합한 국민을 양성하는 제도 개혁 단행. 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엘리트들의 리더십이 당대의 경제와 사회적 위기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국민들을 조직화.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직업 교육 강조.
14.2.2 노동 조직의 전투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일상적인 틀 속에 통제하고 여가 시간까지 전체와 사회의 구조 속에 묶어놓고자 함.
국가가 여가와 개인의 사적 생활까지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도포라보로’가 대표적. 이는 새마을운동이 농촌에서 시작했지만 전 국민에게 파급된 것과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된 파시즘 체제 특유의 국가 동원 체제.(223)
14.2.3 청년 조직 ‘오페라 나치오날레 발릴라’와 확대 개편된 ‘파시스트 이탈리아 청년조직’은 전투적‧군사적 성격이 강함.(224)
14.2.4 파시즘 체제는 가톨릭에 화해의 손짓을 내밀었으며, 가톨릭 교육 시스템의 부활은 파시즘의 동의를 조직화하는 데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됨.(225)

15. 문화적 측면에서의 유사성과 이질성 연구
15.1 지배계급 헤게모니 유지의 결정적 요소인 피지배 계층의 동의 획득과 지배 이데올로기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적 동원 체제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음.
15.2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의 문화적 헤게모니 구축: 파시즘 체제에 적합한 인간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 정비, 파시즘 경제 체제에 적합한 노동장을 양성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 가톨릭을 파시즘 체제 안으로 포섭.
파시즘 문화 정책의 목표는 체제 홍보와 파시즘 정신의 확산. 영화와 미디어를 통한 선전과 홍보가 파시즘 체제가 선택한 주요 수단.(227)
15.3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 역시 문화의 중요성 강조, 문화정책의 우선성을 국가 정책이나 다양한 국민 연설에서 드러냄.
15.3.1 민족문화의 창달과 국민 계몽 및 정신문화의 고양이라는 축약된 구호: 문화를 창달 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새로운 사회 풍조는 이룩하는 것이라는 단편적 사고를 즉각적으로 실행. 국가가 주도하는 문화와 예술 관련 기구와 협회를 다양하게 조직.(232)
15.3.2 민족주의의 고양을 위해 국민 정신을 개조하고 개인의 영달이나 권리보다 집단과 사회 나아가 민족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체주의적 의식을 다양한 문화 체계와 교육을 통해 강제하고 통제. (예: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영웅 중시, 멸사봉공의 정신 추앙, 충효와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와 정신 강조.) 즉 박정히 시대의 문화나 예술은 국가 정신과 국가 정책을 홍보하고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 군사문화의 확산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정착을 위한 도구.(233)
15.3.3 개인과 가정에 대한 통제와 조직화 역시 끊임없이 시도. 주민등록증 제도 도입, 향토예비군의 창설 등은 개인의 의식을 국가와 민족 안에 가두고, 개인의 희생이나 인권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유예 가능하고 희생이 필요한 여역으로 만듦.
15.3.3.1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 법률에 따라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의 풍속까지 통제하고 지배하려 함.(234)
1968년 전후로 시행된 수많은 가정 단위의 운동들(혼식 권장, 근검절약의 강조, ‘잘살아 보세’)은 가정을 국가 통제와 주도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으려 했음을 보여줌.(235)
15.3.4 그러나 자유주의적 현상과 시장의 작동에 따른 변질된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개인과 가정을 통한 조직화와 동원의 구조화는 실패. 박정희 체제의 강제적 동원의 양상들이 보다 견고하고 연속성을 갖지 못한 것은, 문화적 수준에서 보자면 체제의 안정성을 담보해줄 헤게모니의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평가할 수 있음.(236)

5. 한국의 지배계급 형성 과정을 통해 본 그람시 이론의 적용 가능성

한국 지배계급의 구조
1. 박정희 체제와 더불어 시작된 신군부와의 유착과 군부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기업가의 출현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성격과 틀을(249) 이 전과는 다른 형태와 내용으로 바꿔놓았음. 지배계급의 성격과 특징을 결정짓는 중대한 전환기.
이 시기 이후 지배계급의 구성이나 특징이 큰 변동 없이 세습이나 승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계기를 마련, 결국 부르주아는 최초 형성기를 거치면서 세습을 통해, 또는 유사한 상류계급 등으로부터 폐쇄적으로 충원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임.(250)

개발독재 체제와 한국 지배계급의 구조
2. 개발독재 체제 안에서 지배계급의 성격: 역사적 블록 개념을 통한 지배블록의 구성과 특징.
2.1 개발독재 시대의 지배계급 연구의 두 쟁점.
① 개발독재 시대 지배계급을 구성했던 이들이 누구였는가?
② 그러한 지배계급이 유지되고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어떤 것이었는가?(252)
2.2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지배계급의 구조적 단절과 함께 연속성이 강조되는 다소 기이한 이중적 변화가 동시에 수반된 시기. 특히 이전까지 지배계급 구조 속에서 비교적 영향력이나 수가 많지 않았던 군부와 군인이라는 제3세계 지배계급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계층의 등장은 한국 지배계급 형성과 발전 과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253)
2.2.1 5‧16 쿠데타는 4‧19 민주혁명으로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역사적 전통성 회복의 명분과 요구를 잠재운 군부 정치 개입의 출발점. 군부는 하나의 사회 집단이 다른 사회 집단과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를 지배하고 지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쿠데타라는 수단을 사용. 대중의 참여 없이 진행된 이 정치적 격변은 ‘수동적 혁명’이라 할 수 있음.
2.2.2 박정희와 군부는 쿠데타라는 무력을 사용하여 국가 권력을 쟁취했지만, 역사적 통일성을 위해 군부가 아닌 다른 집단과 손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위한 것.
2.2.2.1 박정희와 군부는 체제를 수립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254) 위해 새로운 자본가 계급 및 전문 관료들과 손잡음. 박정희와 군부가 지배계급으로 편입되어 지배계급을 형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군의 문제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분석해야 함. 즉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형성하고 유지했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항상 주류에 서 있던 기업이나 관료, 또 사회의 중심에 있는 지식인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살펴야 함.(255)
2.2.3 박정희와 군부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의 신분이 아닌 민간인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뒤 체제와 권력 유지를 위한 정당[민주공화당]의 건설 그리고 하부 조직의 창설까지 무솔리니와 유사한 과정과 경로를 거침.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당성을 얻기 위해, 한편에서는 강제를 동원하고 한편에서는 동의를 조직하는 과정을 반복한 것.(256)
2.3 군부가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권력으로 부상됐더는 건 이후 한국 정부에서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결정적으로 확정하는 것. 군대식 문화에 젖은 상명하복식 관료주의는 오랫동안 한국형 정치문화에 큰 영향을 끼침.(259)
2.4 부정부패한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진정한 국가 변혁과 개혁을 위해 군부와 박정희는 엘리트 의식에 기반하여 한국 사회를 새로운 사회로 이끄는 자코뱅 세력임으로 자처하고자 했음. 공화단 창당과 중앙정보부 등 강제를 담보할 수 있는 정치권력 기구를 창설한 것은 새로운 계급의 형성과 질서 구축을 위한 자체적 노력.
그러나 혁명적 질서 수립에 실패하고, 그들만의 정치권력을 연장하고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흐름. 이 시기와 과정에서 군부와 일부 군인 출신 엘리트들은 지배계급으로 자연스럽게 편입.
2.4.1 박정희 체제는 기존 기득권을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장해주고, 새로운 지배계급을 확장하며 하위 계급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지도하면서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구조화하는 데 성공.
2.4.2 박정희 체제는 기존 지배계급 구조에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계층과 집단을 유입시킴으로써 역사적으로 이미 형성되어 발전해오던 기존 지배계급의 공고화가 가속화되었음.(260)
2.4.2.1 지배계급의 공고화와 가속화의 두 가지 수준.
① 군부와 재벌의 지배계급 편입을 통한 확장과 공고화 과정.
② 중산계급과 하위 계급을 분리하고 격리하는 고립 정책. 이를 통해 계급 동맹의 틀을 깨뜨리면서 이데올로기적 유대와 연대의 구조화가 진행될 수 없도록 국가의 하부조직과 정치‧사회를 움직임.

3. 역사적으로 형성된 블록으로서 한국 지배계급.
3.1 역사적 경로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경제적 조건이 박정희 체제라는 정치적 구조화와 맞물리면서 한국 사회 구조의 독특한 지배계급 블록을 형성. 오랜 세월 친일이라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계급적 토대 위에 군부와 재벌이라는 정치경제적 토대가 결합되면서 한국적 지배계급의 형성과 구조화가 진행.(261)
3.2 조선 이후 지배계급 구조에 수많은 변화가 수반되기는 했지만, 서구 사회 같은 내부 동력에 의한 변화를 맛보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일반적으로 외부적 요인에 의해 형성.
3.3 한국의 지배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개입하고 작용한 몇 가지 이데올로기들: 친일, 반공, 친미, 개발과 성장, 기독교, 보수주의, 권위주의, 민족제일주의, 엘리트주의, 경제제일주의, 전체주의적 성향, 유사 파시즘 경향.(262)
이들은 근대 국가 전환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체주의 경향과 독재 체제가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지형과 만나면서 형성된 것. 박정희 체제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근대 국가로 진입하기 시작한 한국의 정치경제적 환경을 결정.
3.4 박정희 체제를 움직이고 작동했던 기제와 원리들은 결국 지배 집단의 유지를 위한 전체주의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냄. 국가의 모든 활동 속으로 모든 집단의 자율성을 귀속시키고, 국민 생활을 지배 집단의 수중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집중시키는 전체주의 국가.(263)
3.5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들은 일반적으로 지배계급의 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데(265) 항상 앞장서 왔음. 친일과 친미 등의 사대주의적 논리와 남북 분단의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는 반공주의가 가장 중요한 지배계급 논리였다는 점에서 지식인들의 변절과 기회주의적 형태는 시대에 따른 지배계급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거대한 힘이자 기반.
3.5.1 박정희 체제는 이처럼 변절의 경험과 역사적 경로가 뚜렷한 지식인들을 지배계급으로 포섭함과 동시에,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구별을 뚜렷하게 함.
3.5.2 친일과 친미, 반공 이데올로기로 투철하게 자유보수주의 지식인들만이 국가 권력과 손을 잡음. 노동자 계급성보다는 근로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노력과 학문적 봉사를 함.
이는 한국 사회의 변혁과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의 부족과 지식인에 의해 지도되는 중간 계급과 하층민을 부족하게 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에 충성하고 희생하는 국민으로서 중간 계급과 하층 계급만이 존재하게 하는 주요 원인.(266)

4. 역사적 블록으로서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278)
4.1 지배 블록의 성격을 규정하는 개념으로서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몇 가지 키워드.
4.1.1 첫째, ‘반공’은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기반.
초기 이승만 정부의 강력하고 무력적인 승공과 멸공의 반공주의 주창과, 박정희 체제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증폭, 세뇌 작업을 통해 남한의 보수주의자들과 희생자에게 내면화.
친일 세력들에게 반공주의는 자신의 과오를 덮는(271) 효율적인 이데올로기. 감시와 통제의 명분을 만들고, 수많은 사상범을 양산. 노동 계급성 이데올로기를 사전에 차단하고, 국가적 이해관계를 개인의 존엄이나 인권보다 우선하는 가치로 만드는 데 직접적 공헌.
4.1.2 둘째, 반공주의라는 국가 체계의 기본 이데올로기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부역하거나 동조했던 친일 세력들 해방 이후 미군정의 선택을 받은 일부 정치가와 귀속재산 불하를 통해 성장한 몇몇 독점기업, 그리고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군부 세력 등을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만듦.(272)
박정희 체제 지배계급 양상의 새로운 내용은 ‘군부’와 함께 수출 지향의 국가 주도 경제개발개획의 수혜를 받은 ‘재벌’의 안정적인 구조화와 확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아울러 ‘경제 부문 전문 관료들’이 대거 상층 지배계급으로 편입된 점.
4.1.3 셋째,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친일을 정점으로 하는 다양한 집단의 연합으로 구성된 사회적 기반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경제 정책을 세우고 다양한 경제개발 운동을 벌여 지배계급의 블록화를 공고히 함.(275)
박정희 체제가 내걸었던 경제개발과 민족 중흥을 위한 경제 성장 정책은 대내외적 당위성을 부여하기에 충분.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는 국가가 주도하는 시스템으로 국가를 조직하고, 상층부 기득권을 가진 정치가, 군인, 그리고 미국 자유주의 시장체제에 익숙한 전문 경제 관료들이 결합한 경제적 토대를 구성.
박정희 체제가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개발을 통한 고성장 경제 정책은 두 가지 기본 틀과 구도를 통해 실시됨: 첫째 새마을운동, 둘째 중화학 공업을 담당한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정책.(276)
중화학공업 위주 경제 정책과 재벌 중심의 경제 정책은 국민 모두에게 그 혜택이 귀속되지 않았음. 이런 국민적 불만을 잠재우고 경제 혜택과 성장의 열매가 국민들에게 공유되고 귀속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장치가 새마을운동.
그러나 새마을운동보다 분명한 구조적 토대를 형성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의 확충과 안정이 필요.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에 의한 경제적 기반의 확충과 안정이 필요.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에 의한 충분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한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는 수출 중심의 경제 체제로 변화. 재벌은(277) 박정희 체제의 경제 구조와 지배계급 구성의 중요한 계층적 기반이자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집단.
개발과 성장이라는 경제적 토대의 목적을 위해 국가가 주도하고 개입하면서 국가 경제 구조는 더더욱 외국, 특히 미국의 자본주의 구조 속으로 편입됨. 끊임없는 자본의 차관과 외자 유치는 국가를 성장시킨다는 경제 정책이 자립 경제 구조의 기반을 허물어뜨리고 외국 자본에 대한 종속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음.
당시의 국제 정치‧경제적 요인에 대한 유기적 분석도 중요: 베트남 전쟁, 중동 특수, 일본과의 외교 관계 복원과 대일 청구권 문제, 미국의 굳건한 군사적 지원과 개입.(278)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값싼 임금, 수출 주도형 기업 육성, 국가가 육성하는 중화학 기업, 국가의 지원과 혜택에 의한 성장과 발전, 국가에 의한 금융 통제, 정부 주도형 국가 개발 전략 등은 박정희 체제의 경제적 토대가 국가가 주도하는 ‘국가 독점 자본주의’라는 의미. 특히 노동 탄압과 농촌 인구 도시 유입 등을 통해 형성된 값싼 노동력 덕에 성장한 몇몇 대기업 중심의 국가 주도 산업은 결국 상층부를 위한 지배 전략의 일환이었을 뿐, 대한민국을 근대화하고 현대적인 의미의 국민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과정이나 시기로 볼 수 없는 이유.
4.1.4 넷째, 한국 사회 지배계급 구조를 형성시킨 상부구조와 물적 토대를 연결하고 구성하는 방식의 문제. 반공주의라는(279)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통해 구성된 친일을 공통점으로 하는 사회의 지배 계층, 그리고 개발과 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출 중심의 무역 국가로 전환해 근대화와 서구화라는 경제적 토대 구축을 추구했던 이들 한국 지배계급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규정하는 방식의 문제.
이 지배계급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연합’이라 명명할 수 있는 요인:
① 정치역학적으로 친일과 반공 그리고 친미 세력들과 국가로부터 혜택과 지원을 통해 성장한 몇몇 독점 재벌 및 군부를 비롯한 전문 관료 집단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독재 체제와 비민주적 사회를 용인하고 오히려 조장한 점.
특히 전통적 혈연, 지연, 학연, 종교 등 비정치적 요소들은 상층부 지배계급을 묶어두기에 적합한 요소. 이들은 영호남 지역주의 조장, 노동자를 계급적 유대나 연대보다 직장과 소득 수준에 따라 분류, 농촌과 빈곤층에 정치적 권리나 내용보다 부에 대한 열망을 심어줌, 자유‧평등‧연대 등 민주적 가치보다는 민족과 국가 등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교육하는 우민화 정책 실행.(280)
② 한국 사회의 지배계급 구조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왔으며, 제도적 요소에 의해 고정되고 안정화됐다는 특징을 지님. 따라서 한국 사회 지배계급의 성격을 규정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지배 블록’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과정과 경로에 주로 의존하는 ‘경로 의존성’을 통해 형성.(281)
박정희 체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변환기이자 전환점이었지만, 결국 역사적 우연성에 불과한 사건이며 지배계급의 전환이나 구조적 변화를 초래하지도 못함. 다만 지배계급의 외연(282) 확장과 안정화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지배계급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함.

5.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유지와 지속의 메커니즘.
5.1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정치적인 세력과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또 다른 외부 세력과 공조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취함. ‘정치적 지배 체제의 공고화’.
5.2 개발독재 체제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법과 제도를 세 가지 방향에서 실행.
5.2.1 첫째, 정치적인 방향에서 시행된 국가 강제력의 직접적이고 제도적인 구조화 방식.
주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법과 제도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정치적인 강제동원 방식.(283)
법적 예: 국가 보안법, OO금지법 및 다양한 영역의 법들(집시법, 통행금지법, 미풍양속법, 경범죄 처벌에 관한 법 등)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제한함으로써 국가 공권력의 강제성에 대한 국민들의 암죽적인 복종과 순응성을 양성하는 방식.
5.2.2 둘째, 경제적인 방향에서 국민들로부터 자발적인 동의와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간접적인 방식. 주로 다양한 ‘운동’의 방식으로 전개되거나, 포상이나 상장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고 장려하는 방식.
운동의 예: 새마을운동, 허례허식 줄이기 운동, 가정의례준칙,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기, 근검절약 운동.
5.2.3 사회문화적 방향에서 가장 간접적인 방식. 국가가 아닌 시민사회나 관변단체에 의해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구조화 방식.
군대나 몇몇 국가(284) 공권력이 미치는 집단과 단체만이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교련 교육, 여러 관변단체 활동까지. 이를 거부하거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사람에게 정부와 정치권력이 부여했던 모욕과 불명예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285)

6.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이론적 함의

개요
1. 한국 사회 지배계급 구조가 단순히 친일, 반공, 지배, 발전, 연합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로만 구성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이 개념은 적어도 한국의 지배계급이 형성되어온 역사적 과정과 경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290)

2. 파시즘 체제가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청산되지 않은 파시즘 잔재 세력들은 정당 활동 및 외형을 바꾼 다양한 방식으로 통치의 기회를 노리고 있음.
한국의 개발독재 체제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들과 군부 및 자본가 계층이 상당한 주류를 구성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진행형.(291)

3. 이어서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주체들과 이들이 유지시키고 있는 다양한 제도와 요인에 대해 간략히 볼 것.(293)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주체들: 지배계급과 지식인 문제
4. 한국의 지식인 유형
① 일제강점기 전후의 친일 세력과 해방 전후 시기의 친미 세력. 사회의 주류로서 항상 기득권을 누릴 수 있던 계급.(296)
② 군인과 행정관료 및 자본가 계급, 그리고 사법부를 구성하는 계층. ①과 겹치기도 하지만, 대개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의 지도층으로 인식되는 지배계급으로 고착화된 계층.(297)
4.1 이들 두 유형의 지식인들에게 일반 국민은 국가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구성원에 불과. 일반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자 자신들의 지배를 잘 수용해야만 하는 우매한 대중.

5. 이러한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시민사회와 정치 사회의 구분과 역할이 전통적으로 분명하게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 한국의 시민사회의 역사가 서구에 비해 매우 짧고 그 범위가 좁음. 이는 정치권력의 성격 여부에 따라 국가의 성격이 쉽게 변하는 이유.(298)
5.1 이는 개발독재 체제에서 두 유형의 지식인들이 시민사회를 적절히 조정하면서 국가 기구의 강제력을 보다 쉽고 강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299) 만약 한국의 시민사회가 견고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었다면 독재 체제나 군사 쿠데타에 의해 쉽게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5.2 한국의 친일 세력과 미국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자생적인 시민사회나 유기적 지식인들이 부족한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었음.
일반적으로 지식인들은 지적 기능의 수행을 위해 전문화된 범주로 구분되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한국에서는 갑작스러운 정치적 환경 변화에 의해 핵심적인 지식인 계급에 편입되면서 그 세력을 확장해내가는 방법으로 만들어져 옴.
그럼에도 한국의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지식인에 비해 특정 사회 집단(친일 혹은 친미)과의 연관성을 갖고 형성되어 옴. 또한 개발독재 시대에는 유기적 지식인들이 빠르게 친일 세력 및 군부 세력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중심적이고 중추적인 주체로 성장.
5.3 시민사회의 얇은 층과 유기적 지식인들의 빠른 지배계급 편입으로, 동의보다 복종에 더욱 익숙한 순응적 지식인들이 만들어지고 있음.(300)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현재의 구조와 요소
6. 역사적 블록 형성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서 교육 제도와 정책.
6.1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상부구조인 문화 영역에서 구성원들에게 공식적이고 자연스럽게 헤게모니가 작동될 수 있는 분야의 하나가 교육제도.
6.2 한국의 경우에도 교육은 중요한 체제 안정화의 수단.(302)
교육 제도를 통해 반공,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를 국민에게 각인시킴. (예: ‘공산당이 싫어요’, <똘이 장군>, <국민교육헌장>.
6.2.1 실제 1960~70년대에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현재 50~60대들은 안보나 국방 문제에서 상당히 보수적 입장을 견지. 무의식중에 굳어진 국가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일반 국민들 속에 재현되고 반복되어 일상화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6.3 이러한 교육 제도의 지속성과 이데올로기의 항상성은 현재의 지배계급에게도 영향을 주고, 지속적으로 편입할 수 있는 엘리트 계층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음. (예: 뉴라이트, 극우 세력) (303)
6.4 1980년대 개방화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교육적인 이데올로기를 대체한 것이 바로 ‘영어’ 교육.
6.4.1 영어는 한국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신분 상승의 중요한 도구. 영어를 잘해야 출세할 수 있기에 재산 유무에 따라 영어 교육에(304) 대한 투자액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1980년대 이후 영어 연수생이나 유학생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이어짐.
6.4.2 한국에서 서양은 곧 미국이며, 미국에 대한 동경과 숭배는 상식을 뛰어넘음. 지배계급이나 친미론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비상식적(305)인 편향은 반미가 곧 친북이나 종북으로 치부되는 현실로 이어짐.(306)
6.5 영어와 수학 등을 중심으로 한 교육에 대한 과중한 부담은 대학입학을 위해 영어와 수학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응적인 학생과 청년을 만들어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나 선택은 거의 불가능.
이러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거나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되지 못하며, 결국 체제 순응적인 세대를 양산하여 지배계급을 공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됨.(307)

7. 지배계급 체제 안정을 위한 제도와 정책.
7.1 민주화를 거치면서 일반 국민에게 반민주적인 성격의 제도나 법률을 강제할 수 없게 됨. 따라서 지배계급은 일반 국민이 공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순종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고안할 수밖에 없었음. 이러한 시도와 제안은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와 종교계 및 산학 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체제 순응적이거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경제적 목표와 신분의 제시.(308)
7.2 ‘성장 숭배’의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국정 방향으로 제시.
7.2.1 민주주의의 문제보다는 개발과 성장을 통한 신화에 가까운 신념이 위정자들과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듦.
7.2.2 도시 외곽, 부도심(309), 서울 많은 지역에 대한 개발, 수출 우선 정책, 아파트 건설 붐(310)과 국가의 부동산 투기 방조, 재벌에게 무한한 양적 성장과 확대 가능케 함, 정경유착의 고리는 더욱 은밀하게 고착.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성장과 개발 어젠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함.(311)
7.2.3 이러한 경제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지배계급의 논리 ‘선성장 후분배 원칙’. 이런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효율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개발독재의 무의식적 일상화.
7.2.4 인권과 민주주의는 경제적 부와 성장을 막는 방해물이었기에, 이를 주장하거나 앞세우는 이들에게 가차 없는 국가의 힘이 가해짐.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경찰과 검찰 등 체제 수호 권력기관을 통해.
7.3 이는 투기 자본가, 족벌 재벌, 국가의 법률 체제와 하수인들, 수구정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변종 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대한민국을 만듦.
7.4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한 후속 세대 충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부와 권력을 승계하려는 노력: 특수 중고등학교, 일류 대학, 스펙, 사법고시 폐지와 로스쿨이나 의학전문 대학원의 도입, 입학사정관 제도,(313) 대학 입시 제도의 다양화.
-> 부와 권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일자리나 핵심적 권력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듦.
7.5 정규직,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로 구분된 대학 졸업 이후의 취업 시장에서는 부모의 신분과 스펙의 수준에 의해 직종 종류가 결정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수용.
순응적인 교육체제에서 자란 학생들은 사회 변혁이나 개혁보다는 체제를 뒷받침하는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세대로 육성되고 있음.(314)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현재와 미래
8. 이명박 정부 시기의 건국과 광복 논쟁(316): 친일과 친미 세력이 갖는 정통성과 정체성의 취약함에 기인.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가 한국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사회주의나 좌파 계열 정치 단체와 사상은 대한민국 정체성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침. 따라서 가장 치열한 사회주의 논쟁 구도가 조성된 1945~47년의 해방정국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배제되어야 하며, 1948년 건국이야말로 근대 한국의 출판점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짐.(317)
8.1 건국 논쟁의 정치‧사회적 의미
①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성립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이데올로기인 반공과 개발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재편되고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국가적 논의가 필요했음.
② 대한민국 정치‧사회에서 북한과 미국이 상수라면, 친일의 약점이 있는 지배계급에게 북한이나 미국 관련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용하고 의미 있는 접근 방식.
③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익에 민감한 일반 국민의 정서에 비춰 보면, 경제 성장과 개발 논리를 앞세운 정치권력의 방향에 뉴라이트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었음.
④ 이명박은 박정희 체제 당시 주류의 재등장을 용인하는 상징이었음.
⑤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 지배계급 자체적으로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가 필요했을 만큼 정치‧사회의 환경이 변화했음.
8.2 ‘종북 논쟁’ 역시 변형된 반공 이데올로기로서 제시됨.

9. 지금까지 모든 정치권력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들의 경제 정책 실패의 원인을 내부적인 무능이나 부패에 두지 않고, 외부의 조건과 환경으로 돌렸다는 것. 이런 의제와 구도는 경제 위기의 희생을 일반 국민에게 요구하는 근거로 작용.

10. 현재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계층과 계급은 향후 더욱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을 통해 지배 구조를 안정화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재구조화를 시도하고 조성할 것. 현재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어떤 정치권력이 들어서도 별반 커다란 변화나(309) 개혁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
10.1 그람시가 우려했던 파시즘 체제의 끊임없는 재생과 부활은 그 자체의 생명력과 공고함 때문이 아니라, 파시즘이 지배계급이 요구하는 체제 안정성과 자신들의 이익 보존에 가장 적합한 체제라는 특성이 작용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음.

11.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지배계급 구조를 확실하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최적화된 정치권력.
11.1 친일반공지배발전연합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제시: 친북 논쟁, 제2의 새마을운동,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애국과 충성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의 재등장.(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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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공지] 9월 1일 오후 4시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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