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4부 세미나 기록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19-04-13 23:16
조회
71
2019년 4월 13일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세미나 기록

사회 : 추유선
기록 : 김정연

1. 2주간 이슈 및 삶 공유

아멜 : 오늘 오후 광화문에 다녀왔다. 한국의 모든 정치경향이 소용돌이치는 공간이었다. 태극기 집회가 시청에서 광화문 쪽으로 행진 중이었다. 집회의 느낌이, 예전 우익집단들은 관제 동원, 행정조직의 하나였는데 지금은 우파 운동이 사회운동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성이 느껴지고, 동원된 사람들이 아니라 진실로 나라의 위기를 느끼는 것 같고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익의 시민운동화, 사회운동화가 뚜렷해졌다. 시위 테크놀로지도 촛불집회 벤치마킹을 통해서 향상이 되어서 다양한 시위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다. 분장도 하고, 체계도 잡고, 앞에서 선정선동만 하지 않고, 촛불집회 분위기가 느껴져서 나름대로 참여한 사람들이 시위에서 흥미나 재미를 느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태극기 집회의 진화. 하지만 여전히 촛불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을 대오 속으로 끌어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짐. 살벌한 느낌을 주는 도구들이 많다. 김정은 몸에 창을 박아놓음. 창칼로 사람을 파괴하는 아이콘들. 분위기가 잔인하다는 느낌. 그래서 사람들을 오히려 배척할 수 있겠다. 그리고 거짓말이 너무 많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을 사실인 것처럼 명제화하거나 주장하는 그런 것들의 너무 많이 눈에 띄었다. 예컨대 독립군 수백 명이 한꺼번에 볼셰비키에 의해 죽은 사건이 있었다고 (레닌 집권기에), 그것을 벽보로 크게 붙여놓았다. 빨갱이들이 독립군을 많이 죽였다. 그 이유가 일본이 러시아 볼셰비키들을 매수를 해서 그들로 하여금 독립군을 죽이도록 일본이 만들었다는 것. 그런데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사실이 아니다. 독립군 내부 파벌 다툼 과정에서 상해파가 살해당하는 것. 소수의견일 수 있는데 거기다 크게 붙여놓았다. 등등 거짓말이 많아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에는 열악한 상태에 있다는 생각. 세대적으로는 중장년, 노년 집단이 주류다. 옷차림들이 가난해 보이지는 않았다. 워낙 큰 확성기를 사용하고 있어서 광화문이 쩌렁쩌렁 울리는 상태였고. 잔디밭 광장에서는 대학생 진보연합 쪽에서 결의대회를 하는데 숫자가 2-300명 정도밖에 안 되어서 태극기 집회가 계속 원형으로 돌며 포위하는 형국이었다. 조계사 앞에 모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 주장 노동자집회를 보러 갔는데 규모가 엄청났다. 2-3만 모일 것이라고 하더니 거기 가보니 태극기 집회가 매우 왜소하게 느껴졌다. 맨 앞에 퀵서비스 부대가 오토바이로 행진하고, 택배 차량들이 트럭을 가지고 그 뒤를 따르고, 화물연대 대오가 있고, 화물차들이 오고, 수만 명이 거리를 채우니 엄청났다. 근데 시위의 분위기로 보면 태극기 집회가 더 절박했다. 태극기 집회는 문재인을 죽이자, 노동자 집회는 문재인 비판이긴하지만 약속을 지켜라는 것이었다. 세월호 집회는 적폐청산을 잘 해 나가자는 스타일이었다. 문재인 지지, 노동자는 비판적 지지, 태극기는 적대적인. 오늘은 정당이나 정파 깃발이 안 보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다 보니 정의당, 학생진보연합 등이 합류를 해서 저녁 무렵에 행진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세월호 5주년 기념 문화공연이 있는데 그때 부재의 기억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 같더라.

손보 : 청소년기후소송단은 없었는지?

아멜 : 보지 못했다. 항공유에 유해물질을 섞어서 뿌리는 것(chemtrail). 토양에서 유기적 물질이 성장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거대 씨앗 회사들이 미군과 손을 잡고 대기 중에 화학제품을 섞어서 뿌린다고 한다. 섞는 방법이, 항공유에 그것을 섞어서 싸게 판다고 한다. 비행사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항공유를 싸게 하서 뿌리는 것이다. 그것이 미세먼지와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손보 : 오늘 낙안에 다녀왔다. 차가 너무 많이 막혔다. 순천 인구가 점점 늘어난다. 해가 갈수록 주차난과 교통난이 심화. 4월이고 주말이라 관광객이 많이 몰린 것 같다. 순천에서 정책적을 관광산업을 육성한다.

박상 : 집 근처에 시민자유대학이 생겼다. 은평구, 중랑구 등 서울 네다섯 곳에 있다. 시민들 대상으로 강좌가 열리는데 자본론, 시민과 이데올로기 등 다양하다. 어머니 대신 대리출석을 했는데 러시아 혁명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도 수강회원들도 지역 주민이다. 중학교 근처에 마을 공동체에서 독서모임하고 오신 분들도 많았다. 우쿠렐레 모임도 있고, 시민자유대학에서 강의도 듣고, 얼마 전에 생긴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이 있으면 책 빌리고, 척박했던 망우동이었는데 찾아보니 마을자치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게 되었다. 지역적으로 활동하고 지구적으로 사고하라는 말도 있었다.

김정 :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정치적 망명 상태였던 위키리크스 줄리언 어산지가 에콰도르 정부가 정치적 망명 지위를 박탈하면서 영국 경찰에 넘겨졌고 체포되었다. 현재 첼시 매닝도 감옥에 있다.

아멜 : 어산지를 미국으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추유 : 어제 춘천에 다녀왔다. 중도라는 곳이 있는데. 강원도에서는 춘천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관광도시를 만들고자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레고랜드를 유치를 했는데 거의 다 강원도 돈이고 레고업체는 앉아서 돈을 버는 상태라고 한다. 춘천에 대해서 기록을 읽어보니 땅을 파면 역사적 유물이 나오는 지역이라고 한다. 맥국이라는 나라, 선사시대 유적이 묻혀 있는데, 댐 만들 때도 유물이 나오는 상태에서 묻고 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안에도 많은 유물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중도도 고인돌부터 고구려 시대 무덤 등 기록 등이 많은데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측과 개발해야 한다는 측이 다툼이 있어서 아직 진행은 안 되고 있지만 개발될 것 같다는 전망이 많다. 7층 석탑도 있고 고려시대 유물도 있는데 흙을 나르는 차들이 계속 오가면서 덮고 레고랜드를 지으려고 한다. 아까 순천도 지역경제를 관광으로 활성화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역사적인 부분들이 더 이거를 발굴하고 더 지역 경제, 지역 관광물로 만들면 더 좋은데 왜 레고랜드인가 라는 것이 의문점이다. 지금도 6-70년대도 아닌데.

손보 : 관광도시를 해서 소비가 늘고 지역경제가 살아나면 좋을 것 같은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가냐를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실질적으로 삶의 질이 좋아지거나 이런 것보다는 순천에 특색있 었던 것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순천에 사는 사람들이 핵심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보러 올 것인가가 포인트가 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나를 기준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과연 순천은 어디로 가고 있나를 고민하게 된다.

추유 : 춘천도 레고랜드 전에 중도 말고도 붕어섬도 있고, 여러 섬들이 있는데 붕어섬은 현대가 샀다고 한다. 다른 섬은 개발을 하려고 마임축제 같은 것을 하던 자연이 좋던 곳인데 누가 사서 개발을 한다고 나무를 모두 베어서 폐허가 된 상태이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활용이 안 되는 상태, 요트 박물관도 만들었는데 그것도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요트가 있는데 건물을 부수지 않는 이상 요트를 뺄 수가 없다고 한다. 지역경제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2. 책 내용 토론

추유 : 그런데 대체 [다] [부] [해]가 무엇인가?

아멜 : 공부해다오 하고 비이다. 공은 공감, 부는 부연설명, 해는 텍스트가 어려운 부분을 자기 식으로 해석한다, 다는 해석을 하되 필자 방식으로가 아니라 다르게 해석한다, 오는 오류, 즉 나는 이것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비는 비판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해다오 + 비로 외우면 된다. 그렇게 머리글을 달자고 제안했다.

토론거리 : [다] 인간의 취약성과 상호의존의 불가피성에 기초하여 정의된 ‘반려의 권리’(318)를 인간의 ‘공통(능)력’(commonable power)으로 긍정어법에 따라 정의해 보면 어떨까? 공통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인간은 위기에 처하고 심지어 소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공통력이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는 원리가 되어야 하고 공통권(common right)이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사유권 이전의 권리이며 사유권이 공통권의 왜곡과 침해, 불구화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멜 : 318쪽의 반려의 권리. 반려란 곁에서 함께해 나간다는 것인데, 그것을 설명할 때 저자가 인간이 취약하고 취약하기 때문에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에서 비롯된다고 쓰고 있어서, 어찌 보면 맞는 말인데, 사람이 어찌 보면 약하게 보일 수 있겠는데, 오히려 광범위한 생명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생명체가 한 덩어리로 되어 있지 않고 각개로 개인이면 개인, 개체면 개체 이런 식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인과 개인이 어떻게 다른지 찾아봤다. 각인이라고 쓴 이유는, 개는 사람 인자에 고자를 쓰는데, 고자가 관 속에 있는 인간이다.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개는 죽어 있는 사람을 한 명 두 명 헤아릴 때 쓰는 말이다. 생명체를 지칭하기보다 수로서 헤아릴 수 있는 비생명적 의미에 더 가깝다. 그에 비해 각 자는 사람들이 문 앞에 당도하는데 조금씩 다 다르게 당도한다는 의미이다. 각기 따로 문으로 도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요즘 네00 사전이 훨씬 좋아져서 한자의 어원을 갑골부터 시작해서 설명을 해준다. 생명체가 개체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그 생명이 서로 상호관계를 통해서 더 훌륭하게 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나약성에서부터 이해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러한 각개성들이 서로 공통될 수 있는 능력을 오히려 사유해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취약한 자들의 상호의존보다는 각개자들의 공통능력으로 이해할 때에 역사를 적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토론거리 : [다] 각인은 각각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취약하다. 하지만 그 ‘취약함’을 낳는 각인화는 실은 자유, 속도, 창발, 상호의존의 테크놀로지로서 생명진화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전략이다. 요컨대 그 고독함과 취약함이야말로 생명 각체적 고유함과 강건함의 잠재성이다. 고독사(320)는 삶의 각체성이 상호의존과 상호창발을 통해 새로운 공통장의 발명으로 나아가는 것을 저지하는 개인적 사유화의 법, 관습, 문화의 생산물이다.

손보 : 혼자는 못 살기 때문에 같이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서 같이 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한 명 한 명도 있지만, 여수, 순천 등 행정구역으로 나눠놓은 것도 분리해 놓은 것인데, 지방 도시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는데, 개인의 고립에 대한 위기감과 유사한 것 같다. 그리고 개별 도시들끼리 경쟁을 엄청나게 한다. 순천은 여수와 “올해 몇 명 왔다더라. 아파트값이 얼마라더라”식으로 경쟁한다. 못 살겠다 죽겠다는 위기감보다는 더 잘 살기 위해서 함께 하는 거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정 : 그런데, 위기감과 부정적인 현실은 어떻게 표현할까? 약하기 때문에 뭉친다는 것이 아니라면 강하기 때문에 뭉친다는 것인가?

손보 : 약함을 설정할 것인가, 강함을 설정한 것인가보다 때문에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뭉칠 수 있음 자체를 능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아멜 : 강하다가 부유하다거나 금융력이 세다거나보다는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니체는 1900년에 죽었는데 당대의 사회주의 운동을 알았지만 굉장히 싫어했다. 왜냐하면 떼거리문화라고 생각했다. 떼거리문화라서 약자라서 스스로를 떼를 만들어서 내적인 원한을 풀어내려고 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보았다. 원한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부정적인 문화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고, 각자가 주인됨을 가질 때에 비로소 긍정적인 문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짜라투스트라 같은 인물형을 그리는 게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위버멘쉬(초인으로 번역되는데 인간을 넘어선 인간), 위버가 “위”(up)라는 뜻이다. 인간 위라는 의미다. 그런 것인데, 인간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니체도 약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인간이 약한, 스스로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이다. 스스로를 노예화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초인을 부르는 것은 인간다움을 지금까지의 인간다움과는 다르게 보려고 하는 주장이다. 보통 취약하다는 느낌이 들 때에는 오도가도 못 하게 되는 상황인 것인데, 이 오도가도 못 하게 되는 상황은 표준 속에서 그러하다. 표준이나 법. 정해진 것을 지키려고 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비상시에는 도둑질도, 강도질도 잘한다. 지켜야 할 것을 안 지킨 사람들이 재미있게 등장한다. 그러니까 자기 필요를 자기 스스로 충족시킴에 있어서 표준을 넘어서는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면 이도저도 못 하는 궁지 같은 것은 필연적이지 않다. 궁지라는 것이 오히려 자기가 다르게 살 수 있는 그 길을 여는 그 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성을 말하는 것이다. 무조건 인간은 위대하다고 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박상 : 태극기 집회 이야기를 하셨는데 애완견에 태극기를 묶어 놓기도 하고, 재미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산업역군이었다가 남은 사람들, 태극기 집회에 나와서 구국의 심정으로 외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멜 : 태극기 집회가 실체를 갖추어 가는 상황이 되니, 그 구호를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56년생인데 전쟁이 끝난 지 3년 뒤에 태어났다. 전쟁 이후 태어난 전후세대인데, 전쟁을 겪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다. 어린 시절에 전후의 참혹한 시절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겪어 왔다. 전쟁을 실제로 겪었던 사람들, 당시에 5~10세였던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겪었을까. 나이 든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볼 것은 아니다. 서북청년당은 땅을 뺏긴 지주들의 자식들이고, 그런 류 말고 다른 흐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상 : 공동체, 반려의 능력을 나누고, 긍정적인 역량을 주고받는 것을 책에서 이야기하시는데, 고미숙 선생님 책에서도 관련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제도 안에서 지금의 많은 연구자들이 놓인 딜레마이기도 한데, 선생님께서도 수배기간에 갈무리 출판사도 만드시고 하셨는데, 어떤 고독과 단절 이런 것이 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속에서 표출하려는 것이 또 갈무리라든가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그 부분과 연결되어서 부연해 주실 수 있는지.

아멜 : 고립은 컸지만, 그 시기가 매우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80년대를 생각하면 80년에서 90년까지 전국 지명수배를 당한 것이 90년 10월 30일이다. 80년 광주항쟁부터 그때까지의 10년간이 엄청 바빴다. 물론 80년대 초에는 언더활동을 했지만 86~87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86년에는 감옥, 87년에는 풀려나자마다 감옥, 병원에서 나와서 다른 조직을 준비하고 회의하고 공부를 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2년 정도 이상을 책보다는 문건생활을 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생활. 하루에 반은 문건을 읽고 (보고서가 산더미로 있었으니까), 반은 문건을 써야 하는 생활이었다. 그런 생활이 2년 이상 지속이 된 다음에 수배생활이 시작. 조그만 골방에서 공부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부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되니 고3 학생과 다를 바 없이 1~30일까지 빈칸 달력으로 내가 오늘 무엇을 했나 적으면서 맑스의 전 저작, 레닌 저작을 전부 훑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유럽의 알튀세르, 푸코 책도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간. 책을 완전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 10여 년 주어져서, 99년 크리스마스날 수배 해제가 되었다. 실제로 수배가 풀리고 나서는 체계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다. 그때 10년이 심리적으로는 위축되고 긴장되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학술적으로 자신있게 발언할 수가 없지 않았을까. 그 시간이 그런 의미에서 고맙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토론거리 : [다]민가협 유가협 세월호가대위(321)는 가족이 그것의 협소한 이기적 틀을 벗어나 사회적 삶을 느끼고 생각하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탈가족적 경계선의 조직들이 아닐까? 타자와 함께 함으로써만 가족들의 고통스런 경험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실제 경험으로 겪은 증언자들의 조직이 이들이 아닌가? 가부장주의적 가족주의에 체화되었던 사(적 소)유의 틀이 와해되는 경험을 통해 사유에 뚫린 창 밖으로 사회, 생명의 광대한 바다를 보게 된 사람들이 이들이 아닐까?

손보 : 세월호가대위의 모습이 즐겁고 신나게 느껴졌다. 생명은 안 뭉치면 죽을 수도 있어서 뭉친다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기쁘고, 생명 자체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하고 있는 모습은 죽음에 내몰려서 발악을 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계기를 통해서 부모들뿐만 아니라 공감하는 이들이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라는 고민이 있다.

아멜 : 저자가 민가협, 유가협 이야기를 했을 때 가족중심주의 때문에 모든 책임이 유가족에게 가는 것을 문제시한 대목이었다. 분명히 그 지점은 있다. 민가협, 유가협, 세월호 유가족 같은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인데, 가족 바깥으로 나오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 눈 뜨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되다 보니 그 경험 속에서 가족의 일원 이상인 사람으로서 발화를 하기 시작하는 계기였다고 생각이 든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이 든다. 세월호 가대위의 활동을 보는 것은 『절대민주주의』에도 썼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가족주의에 전혀 굴절되지 않는, 아주 올곧은 발언을 수년간 지속적으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80년대 가족들을 생각해 보면 대표적인 가족 이미지가 파업파괴자였다. 파업하면 공장 같은 것 점거하거나 높은 데 점거하면 엄마를 데려와서 누구야 제발 내려와라 이렇게 유도한다. 가족이라는 틀을 파업을 파괴하고 진보적인 행위를 가로막는 방패로 국가권력이 사용을 했고 잘 이용당했다. 지금 드는 사례들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사례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는 단위 자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통의 우리가 가지는 가족 이미지와 다르게 역전되었던 사례였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되지 못했을 사람들. 최근에 윤지오라는 사람은 장지연과 가족이 아니다. 그런데 장자연을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친분관계라는 틀이 자기 자신을 증언자로 내세워서 장자연 사건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드러내는 전위 기능을 하게끔 한다. 연예인들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고발자이면서 사건에 대한 증언자로 되어 가는 동력이 언니라는 관계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추유 : 죽음과 한계를 뛰어넘어서 가능성을 보는 이야기를 하는데, 소진이나 죽음, 한숨은 전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근데 그게 발판이 되어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힘이 되는데, 왜 스피노자 등이 정동을 이야기할 때 왜 희망이나 이런 것들이 정동을 일으킨다고 이야기하는지. 기쁨도 그렇지만 자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할 때에는 부정적인 것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아멜 : 스피노자는 희망을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았다. 희망을 동력으로 보지는 않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희망이 희망버스 등으로 희망이긍정적 언어로 서술이 되어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단어가 같다고 해서 뜻이 같은 것은 아니다. 소진은 저자의 경우에는 ecstasy 자기 자신의 기존의 지점에서의 막장, 끝장 부분에서 자기를 벗어나는 자기 바깥으로 나가는 ec가 바깥이고 stasy가 선다는 뜻이므로. 이 체험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들뢰즈 같은 사람을 빌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스피노자는 소진 경험 그 자체를 언급하지는 않고, 수동적 경험 속에서 (슬픔의 경험) 합리적인 요소들, 기쁨의 요소들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수동이 슬픔이 동일시될 수는 없고, 기쁨의 요소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 요소들이 연합, 연대해서, 그것을 공통, common sense로 만들어내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이성에서 주어진다고 본다. 제2종인식인 이성이 common sense를 만들어내어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이 생겨난다. 이 글에서는 그것과는 달리, 소진의 체험을 공동체화의 모멘트로 보는 관점을 채택을 했다.
저자는 소진의 체험을 제도 바깥 인문학 운동들이 겪었다고 보는 것 같은데 현실에 대한 설명인지 잘 모르겠다.
다지원도 2009년도에 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간 경험이 있다. 그러한 분화의 경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분화의 경험은 필요했다. 하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1986년에 민중미학연구회라는 것이 있었다. 그 모임이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쓴 첫 모임이었다. 그때 내가 민미연 사건으로 구속이 된 것이었는데, 감옥에서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다. 내가 갇혀 있던 사동 안에 86년 말 건대 사태 때 건국대를 점거했던 학생들이 있었다. 1200명 정도가 한꺼번에 구속이 되었는데 핵심이 구학련이다. 이들의 핵심이 전부 서울구치소 10사에 들어와 있었고 같은 시기에 CA그룹이 들어와 있었다. 근데 한 사동에 2-30명에서 최대 50명 정도가 한 층씩 수용돼 있었는데, 재소자 인권 투쟁을 통해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보고 참여를 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웠다. 감옥을 나오면서 더 래디컬해졌다. 나와서 민미연으로 갔는데, 이름이 문학예술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왜 바뀌었냐고 했더니 우리가 5-6명이 구속이 되었는데 들어간 다음에 압박을 받아서 민중이라는 단어를 떼서 안전을 도모해보려는 취지였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연구자로서 구속이 되어서 연구자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민미연보다 더 연구자적인 태도로 돌아서있다는 것을 느끼고 굉장히 실망을 했다. 그것이 민미연에서 문예연으로 간 부분에서 노동해방문학이라는 부분으로 잘라져나오는 계기다. 반 정도가 문예연에 남고 반 정도는 나와서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하는 데 참가를 했다. 그것을 보면 문예연의 분열인데, 거기에는 정치적 내용이 있다. 민미연은 순수한 연구자 조직이 아니었다. 연구자적 존재이지만 연구자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문예연은 이름 그대로 연구자 조직이었다. 분열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남을 사람 남고 떠날 사람 떠나는 식으로 하면서 세포 분열하는 것과 같다.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분열은 때로는 발전의 방법이고, 때로는 퇴화의 방법이고, 그런 의미에서 분열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박상 : 분열도 어느 것이 옳다 나쁘다가 아니라,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발전시키는 분열이 있는가 하면은 꼬이고 꼬인 것에서 세대갈등, 상징자본의 문제 등이 있는 경우도 있다. 분열이 되었는데 동질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자나 몇몇이 부대낌의 과정을 갖지 못하고... 그런 식의 분열도 있을 것 같다.

아멜 :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 섹트화가 진행이 되면서 그 섹트가 기존의 조직들을 파괴하면서 분화되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분열의 성격을 잘 보아야 한다. 분열을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보는 것은 안 맞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소진이라는 것이 분화의 유일무이한 모멘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다지원에서 2009년에 겪었을 때 그것은 소진이 었었나 라는 질문을 해보면 그렇게 겪지 않았다. 왜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냐면, 80년대에서부터 나아오면서 공동성, 공동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갖고 있는 기본 성격을 보면 80년에는 패밀리라고 불렀는데 패밀리 구조가 계속 전승되어온 측면이 있다. 가족, 형, 동생, 선배, 하는 이름들, 정서적 위계조직. 관료적 위계조직이 아니라 정서적 위계조직으로서 한국 운동권의 고유한 위계성이 있어 왔는데, 그게 동아리지으려고 하고 정체성화하려고 하는 경향성을 갖고 왔고, 저자도 쓰고 있지만 commune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commune이 좋게 보면 좋을 수도 있지만, 안 좋게 보면 안 좋을 수도 있다. commune이 프랑스에도 두 종류가 있다. 1) 중세 코뮌 - 형제들의 결사체, 서로 동업하는 사람들의 형제들의 결사체. 2) 그런데 1870년의 파리 코뮌은 대체 정부이다. 중세 코뮌과 파리 코뮌은 전혀 다른 코뮌이다. 한국에서 코뮌이라는 쓸 때, 중세의 코뮌으로 이해하는 경향들이 있다. 소규모의 정서적 위계공동체. 정서적 형제애를 갖는 공동체. 같이 밥 나눠먹고, 같이 우애를 나누고, 이해관계도 같이 공유하고. 그러면 그게 너무 협소해서 개방성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다지원에 전사로 보면 다중네트워크센터, 다중문화공간 왑, 등이 알게 모르게 소규모 코뮌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념적 동질성과 자주 만나고 형제적인 것을 갖고 서로 돌봐주고 선배 후배 이런 식으로 반혈족적인 성격을 갖는 면이 있어 왔는데, 2009년에 그런 성격이 없어져버렸다. 전통적 운동관에서 보면 무력해진 것이다. 바로 그러한 형제적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시위에 나가서 같이 싸우고 그랬으니까. 그런 동력이 약화되는 것인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개방성이 훨씬 더 강화된 것이다. 공동체 주인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됨으로써 한편에서의 무력화라는 것이 한편에서의 개방화를 통해서 경향적인 공통화를 꾀하는 데 훨씬 더 좋게 변하지 않았는가. 전통적 패밀리 성격에서는 무력화되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대외적 외부에서 경향적으로 공명하는 사람들과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랬으면 못 냈다. 왜냐하면 패밀리 성격이 있을 때는 우리가 글 쓰고 강의하고 책 내고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코뮌이 되니까 다른 코뮌과 나란히 할 수는 있어도 혼종관계가 이뤄지는 것은 못할 가능성이 더 많았다. 여기가 공동화됨으로써, 비어 버림으로써 상대적으로 개방화되고 자유롭게 여러 생각의 사람들이 합류할 수 있는 그런 변화가 오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소진 체험으로도 독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취약성, 고독, 분리, 소진 같은 언어들로 짜여 있는 체험에 대한 진술들이, 우리가 겪어온 것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손보 : 다른 성격의 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 공동체라고만 해도 코뮌이란 말도 쓰일 때 소규모 단단한 공동체로 쓰이는 경향도 있다고 하셨는데, 공동체라는 말에도 강력한 친밀한 정서적 유대관계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새롭게 이야기된 것이 느슨한 공동체인 것 같다. 가족 같은 공동체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다른 성격이라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 약간 부족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단하게 친밀한 공동체가 있음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개방성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느슨하다는 말에 개방성이라는 긍정적인 의미까지 담기지 않은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느슨한 공동체라는 말밖에 떠올르지 않는데 새롭게 명명할 말이 없을까.

아멜 : 공동체라는 말은 영어 community의 번역어다. 우리 말에서는 동자가 같을 동 자이다. 길드면 길드, 직업이 같다거나 동일성에 대한 강조가 된다. 그것을 피하자 해서 네트워크라는 말을 다중네트워크센터에서 사용했다. 네트워크과 공동체를 구별짓기 위한 장치였다. 공동의 ‘동’은 문제적이다. 특히 포스트모던에 대한 고민 속에서 과거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의 차연, 차이 등에 대해 학습을 하면서 다름에 대한 고려가 없는 공동체 대신에 공통체라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공통은 다른 것들이 서로 통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공동이 같을 동이 아니라 동을 움직일 동으로 생각하면서 공동체라고 쓴다고 했다. 함께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소진이라는 말이 합리적인 타당성이 있다면 코뮌이나 공동체나 아주 오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적어도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소진되어 가는 개념이라고 본다. 그것은 이제는 좀 다르게 생각해야 할 상황, 시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공동에서 공통으로의 변화는 단순한 변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common, commons, commoning, commonwealth 등등의 다양한 개념몰이들은 공동체라는 말로는 감당하기가 힘든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김정 : commons로 이통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다를 이 자 가 어원을 보면 "양손으로 물건(物件)을 나누어줌의 뜻. 전(轉)하여 다름의 뜻이 됨"이 있다.

아멜 : 아나키즘의 사고법을 보면 작은 공동체로의 분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촛불집회 같은 것을 보면 “이게 나라냐”고 하면서 나라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아나키즘적 사유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세월호 집회에서 어떤 사람이 유민 아빠와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 제일 큰 과제가 뭐냐는 질문에 유민 아빠가 “촛불이 안 꺼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지역적 차원에서의 자기조직화, 소규모의 자기조직화는 중요한데 이것을 붙들고 집착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 지역적인 자기조직화, 소규모의 자기조직화들이 항시 더 큰 것에 대해서 감각하고 지각하고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쪽으로 반은 열려 있어야 나라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그 측면을 코뮌, 공동체론들이 많이 놓치고 있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다.

추유 : “정동정부”와도 연결될 것 같고, 개방성을 갖고 있는 정동정부가 생긴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일까가 궁금하다. 더 개방되고 더 열려 있다는 것은 너무나 나라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더 열리는 개방성이라는 것은 되게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아멜 : 그러나 나라와 국가는 구분해야 할 것 같다. 국가는 가족 형태에 사람들의 정치적 활동을 가두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굉장히 개방적 해석을 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수제치평이라는 동사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것을 재해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때에 ‘가’와 ‘국’은 두 번째 세 번째에 놓여 있다. 그것을 합치면 국가인데, 만약에 ‘국’을 나라라고 본다면, ‘가’는 지역적으로 작업하고 자치하는 그러한 모임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신이라는 것은 몸이니까, 각인들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경험하는 국가라는 형태는 동양에서 굉장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정체체제다. 서양만 하더라도 국가가 제대로 형성이 안 되었다. 영화에서도 왕이 별 볼 일 없는 존재다. 봉건시대에 영주들이 강했다. 상대적으로 왕권이 약했고 게다가 신정 체제가 강해서 종교적 권력과 경험을 벌이는 식의 권력체제여서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조직형태였다. 그에 반해서 동양은 굉장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권력체제로서 중앙집권체제였고 우리에게 그것이 강하게 남아있다. 국가 체제 바깥을 상상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우리가 나라를 재구성한다고 했을 때는 역사적으로 강고해져 온 국가형태보다는, 광화문 같은 데서 그것을 느끼는데, 오늘 같은 것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는데, 관광객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노동자들이 파업가를 부르면서 팔뚝질을 하는데 그것을 보면서 한복을 입고 따라서 팔뚝질을 하니까 노동자들이 좋아서 박수를 치다가 자기가 들고 있는 생수병을 마시라고 던져준다. 히잡을 쓴 이슬람교 사람들도 많았다. 세계인들이 쫙 몰려 있는 데서 노동자, 시민, 태극기부대, 세월호 등으로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흘러다니는, 파동치는 분위기였다. 누군가 휘어잡는 것이 아니라 힘이 비등비등하게 느껴지면서 서로 경찰들이 단절시켜 놓았기 때문에 서로 뒤섞이지는 않지만 물결들이 회오리치는 느낌. 정부가 그런 식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태극기 부대도 거짓말 덜하면서 자기표현을 잘 하면 좋겠다. 그런 거기에 맞춰서 이쪽도 생각을 진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우파들의 오랜 낡은 관습 때문에 잘 안 되고 있을 뿐이다. 여러 생각들 위에 떠있는 배처럼 국가가 굴러가는 것을 생각해 본다.

토론 거리 : [부]이것이 ‘윤리’(353)라면 이 말을 우리가 어떤 의미로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아멜 : 레비나스의 접근은 타자를 하나님, 신으로 받아들이는 것. 어두운 분위기를 갖고 있는 철학자인데. 스피노자적 윤리이냐, 레비나스적 윤리냐고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저자에 대한 생각이 낭시, 레비나스 같은 이론가들과 보조를 맞추어가는 경향이 있어서, 들뢰즈나 네그리 같은 경우도 부분 부분 인용되지만, 주된 흐름은 어두운 색조를 띠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랬을 때 윤리가 스피노자가 말한 것과 다를 것이다. 스피노자의 윤리는 에너지론이다. 에너지가 증대되는 것을 기쁨이라 부르고, 힘이 빠지는 것을 슬픔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어떤 태도에 가까운 윤리 개념이 아니겠는가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놓다는 것도 안심이라는 말이다. ‘안’이 집 안에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헤겔 같은 경우에는 안심보다는 불안이 우주의 본질이라고 정의한다. 운루헤. 불안, 불안정. 이것이 헤겔이 변증법을 낳는 원리로 된다. 변증법이 동적인 것은 불안이 기본적으로 핵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긍정과 부정, 부정의 부정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서 역동하는 세계사를 그린다. 그런 불안심, 불안정에 대한 철학과 안심을 추구하는 철학이 부딪힐 수 있을 것 같다. 헤겔의 관점에서 안심은 죽음을 의미한다. 운동의 끝에서 안심이 온다고 본다. 변증법 일반에서 대부분 그렇게 되는데,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다음 책에 대한 논의

1) <움직이는 별자리>는 출간된 후 저자와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

2) 아멜 : 카치아피카스의 책은 <한국의 민중봉기> <아시아의 민중봉기> 두 권인데, 저자가 그리스 사람이다. 이 책을 제안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전통적인 것은 힘센 자의 역사를 다루는 것, 승리자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다. 히스토리란 그 분의 이야기, 왕의 이야기, 신의 이야기,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비판의 관점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역사는 근본적으로는 혁명사여야 하고, 혁명의 역사 속에 왕들의 이야기는 부산물로 나오지, 진짜 역사는 감추어져 왔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민중봉기>는 한국의 최근대사를 봉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아시아사까지 그렇게 본다. 한국만으로 한 권을 냈고, 아시아 여러 나라를 그렇게 했다. 사실 아시아라는 지평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역으로서 보는 것인데, 중국이나 필리핀이나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역사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베트남은 최근 북미회담 때문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면이 있는데, 그 외 다른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몰라서 세계를 상상하는 데서 제한되고 장애를 겪고 있다. 그 쪽의 생생한 역사를 한국사와 더불어서 필요하다는 생각. 우선은 한국의 민중봉기를 읽고, 아시아 쪽도 살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눠보니 다섯 번 정도에 읽을 수 있겠다.

3) 손보 : 이번에 했던 것이 여성항쟁과 페미니즘이었는데, 어린이 역사, 어린이 항쟁사가 궁금하고 공부해 보고 싶다. 텍스트를 제안해 주시면 좋겠다. (아멜 : 아감벤의 <유아기와 역사>가 있는데 그것은 역사책은 아니다. 니체도 어린이 역량을 엄청나게 중시한다. 역사적인 것으로 텍스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4) 다음 번 세미나 때는 1, 2장을 읽기로 한다.
전체 2

  • 2019-04-14 10:00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이통'을 찾아보았는데 이동통신사가 주로 걸려서 위와 같은 정의가 어디 나오는지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물론 '공통'의 공자에도 스물, 여럿이라는 뜻이 이미 들어 있기는 합니다. 2)어제 저녁 뉴스를 못보고 오늘 아침에 jtbc뉴스를 보았는데 세월호 집회는 대학생집회와 문화제 팽목항 이렇게 세 군데 집회를 모두 상세히 보도하고 태극기 집회도 그것과의 관계(충돌 없었다) 속에서 잠깐 보도했는데, 어제 집회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특수고용노동자(퀵서비스 택배 화물노동자 등)들의 집회(::이들의 요구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노조법 2조를 개정함으로써 특구고용노동자들의 노동조합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는 완전히 삭제해서 한 마디도 보도하지 않더군요. jtbc의 계급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집회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이 이 뉴스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묻게 됩니다. 가장 공정한 보도를 하는 언론으로 알려진 jtbc가 언론행위를 통한 노동말소에 동참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입니다.

    • 2019-04-15 12:17
      1) "이통"이라는 말을 생각한 것은 서예 수업 시간에 다를 異의 기원을 찾아보다가 commons가 갖는 여러가지 뜻과 다를 異의 의미들을 연결시켜 보니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였습니다! ("얼굴에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을 그린 것"이라는 상형문자의 기원도 그렇고요. ㅎㅎ) 서로 통한다, 협력한다는 의미는 通 자에서 주어지므로, commons의 특이함, 혹은 commons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것들의 특이함을 나타내기 위해 첫 글자는 다르고 기이하다, 이상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異여도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양손으로 물건(物件)을 나누어준다는 공유의 의미가 다를 異 자에 있다니, 共보다 동적인 느낌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함께 공에도 "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를 이 한자 사전 링크 : https://hanja.dict.naver.com/hanja?q=%E7%95%B0&cp_code=0&sound_id=0 / 함께 공 사전 링크 : https://hanja.dict.naver.com/hanja?q=%E5%85%B1) 그리고 저도 지금 찾아보았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이통이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이동통신사'의 줄임말로서 이외에는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국어 사전도 보았는데 없습니다;.

      2) jtbc의 계급적 뉴스 선별에 분노하면서 관련 한겨레 기사 링크와 발췌 문단을 찾아보고 덧붙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9899.html

      "특수고용직은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대가로 소득을 얻어 생활하면서도 형식적으로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직종을 뜻한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인터넷 설치기사, 화물차 운전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민주노총은 노조법 2조가 규정하는 '근로자'(노동자)의 개념에 특수고용직을 포함해 노조 활동을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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