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7_발제] 12고원 (p.709-718)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9-04-17 10:16
조회
20
제 12고원. 1227년 – 유목록 또는 전쟁 기계

p. 709-,
『티마이오스, 플라톤』에서의 두 과학 모델
1. 공분(共分) : 왕립 과학이 채택하는 법적 내지는 합법적인 모델이다. 법칙의 추구는 설령 상수가 변수들 간의 관계(방정식)에 불과하더라도 상수를 끌어내는 데 있다. 변수들 간의 불변의 형식, 불변항의 가변적인 질료, 이것이 바로 “질료-형상”도식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2. 이분(離分) : 유목 과학의 요소인 이분은 “질료-형상”도식이 아니라 “재료-힘”의 도식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는 변수로부터 상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변수 자체가 연속적 변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여기서도 방정식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적합식 또는 부등식일 것이며, 미분 방정식이라고 하더라도 대수 형식으로는 환원 불가능한,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감각적인 직관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미분 방정식일 것이다. 이러한 방정식은 일반적 형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질료의 독자성을 파악 또는 규정한다. 또한 그것은 질료와 형상에 의해 형성된 “대상”이 아니라 사건 내지 <이것임>을 통해 개체화를 행한다. 모호한 본질이 바로 <이것임>이다.

이 모든 측면에서 볼 때 로고스와 노모스, 법과 노모스는 대립하는 셈이며, 따라서 니체는 법은 “아직 지나치게 도덕적인 뒷맛”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공분 모델에 대응하는 등질적 공간. 등질적 공간은 결코 매끈한 공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와 반대로 이것은 홈이 패인 공간의 형식 그 자체이다. 즉, 기둥들의 공간인 것이다. 이 공간은 물체의 낙하, 중력이 미치는 수직선들, 평행한 절단면으로의 물질의 분배, 박편 또는 층류 모양의 흐름에 의해 홈이 패인다. 이러한 수직의 평행선들이 독립된 일차원을 형성해 전달된 다른 모든 차원에 동일한 형식을 부여하고 공간 전체를 모든 방향을 향해 홈을 판 결과 공간이 등질화된다. 두 점 간의 수직적 거리가 다른 두 점 간의 수평적 거리를 측정하기 위한 방식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만유인력은 두 물체 간의 일대일 대응을 규제하는 법칙이므로 일종의 법 중이 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은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때마다 중력 법칙의 방식에 따라 이것을 형식화하려고 한다. (...) 유클리드 공간은 유명한 평행선의 공준에 의거하고 있으나 이 평행선들은 우선 무엇보다 중력이 작용하는 수직선들이며, 유클리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고 가정된 물체의 모든 요소에 작용하고 있는 중력에 대응한다. 이들 평행한 모든 합력의 작용점은 이러한 힘들의 고통 방향을 바꾸거나 물체를 회전시키더라도 변화하지 않는다(무게중심). 요컨대 중력은 박편 모양으로 홈이 파여 중심을 소유하고 있는 등질적인 공간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것이 계량적인 또는 나무형 다양체들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다양체의 크기들은 주위 상황과는 무관하며 단위나 점(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이동)을 이용해 표현된다. 19세기 과학자들이 종종 모든 힘이 중력에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력에 보편적 가치(모든 변수에서 성립하는 항상적인 관계)를 부여하고, 또한 일대일 대응 관계의 유효성(그때마다 항상 두 물체가 존재했으며, 그 이상은 아니었다)을 부여하는 인력 형식으로 귀착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했던 것은 무슨 형이상학적인 관심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과학적 관심에서였다. 이 인력 형식이야말로 모든 과학의 내부성의 형식인 것이다.

노모스 또는 이분은 이와 전혀 다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힘들이 중력을 거부하거나 인력과 모순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중력이나 인력에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힘들이 중력이나 인력에서 유래하거나 종속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히려 이들은 항상 보충적인 사건 또는 “가변적인 변용태”를 타나낸다. (...) 이 장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 즉 잉여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이러한 잉여 또는 간격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화학이 결정적인 진보를 이룩하게 된 것은 중량에 전혀 다른 유형의 결합, 가령 전기적인 결합을 추가함으로써 화학식의 성질을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주 46. 몽주는 처음에는 열과 빛과 전기를 ‘물체의 가변적인 변양’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다루는 것이 ‘특수 물리학’인 반면 ‘일반 물리학’은 연장과 중력과 이동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몽주가 이처럼 다양한 장 전체를 ‘일반 물리학’의 대상으로서 통일한 것은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었다.)

속도에 관한 가장 초보적인 고찰에서조차 이미 수직 낙하 운동과 곡선 운동의 차이, 더 일반적으로는 클리나멘, 즉 최소 간격, 최소 잉여라고 하는 일종의 미분 형식으로서 직선과 곡선 간의 차이를 끌어들이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끈한 공간이 바로 이러한 최소 편이의 공간이다. 따라서 이 공간이 갖게 되는 등질성은 무한 근방에 있는 점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며, 이러한 근방들의 접점은 규정된 길과는 무관하다. 이것은 유클리드적인 홈이 패인 공간처럼 시각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촉각적인, 즉 손에 의한 접촉 공간, 미세한 접촉 행위의 공간이다. 매끈한 공간은 수로도 운하도 갖지 않은 하나의 장, 비-등질적인 공간으로서 아주 특수한 유형의 다양체, 비계량적이며 중심이 없는 리좀적 다양체, 즉 공간을 “헤아리지” 않고 차지하는 다양체, “탐색하려면”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다양체와 결합된다. 이러한 유형의 다양체는 외부의 한 점에서야 관찰될 수 있다는 시각적인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가령 유클리드적 공간과 대립하는 음 또는 색채의 체계조차 이러한 유형의 다양체에 속해 있다.

inq. 즉 공간을 “헤아리지” 않고 차지하는 다양체 : 물과 히스테리

빠름과 느림, <신속함(Celeritas)> <중후함(Gravitas)>을 대립시킬 때는 이러한 대립을 양적인 것으로 파악하거나 신화적 구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인 오히려 질적인 동시에 과학적인 대립이다. 왜냐하면 속도는 단순히 운동 일반의 추상적 성격이 아니라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낙하의 수직선, 즉 중력선에서 일탈하며 운동하는 물체 속에서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느린 것이 양적으로 아무리 빨라도, 또 빠른 것이 양적으로 아무리 느려도 느리거나 빠른 것은 운동의 양적 정도가 아니라 질적인 성격을 가진 운동의 두 가지 유형이다. 엄밀히 말해 아래로 떨어지는 물체는 아무리 빠르게 낙하하더라도 본래적인 의미에서 속도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중력의 법칙에 따라 무한히 감소해 가는 “느림”을 가졌다고 말해야 한다. 공간에 홈을 파고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박편 모양의 운동이야말로 중후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도나 신속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단지 최소 편이에 의해 매끈한 공간을 차지하는 동시에 이러한 공간을 그려내는 소용돌이 운동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후함-신속함, 무거움-가벼움, 빠름-느림 등의 질적 대립은 계량 가능한 과학적 규정의 역할이 아니라 과학과 외연을 같이하면서 이 두 모델의 분리와 혼합, 즉 양자의 상호 침투, 한쪽에 의한 다른 쪽의 지배, 이쪽 아니면 다른 쪽이라는 양자택일 관계를 동시에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두 모델간의 혼합이나 조합은 다양하게 존재하나 미셸 세르는 양자택일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관계를 가장 훌륭하게 정식화한 바 있다. 즉 물리학은 언제나 “두 가지 과학으로 즉, 도로와 길에 대한 일반 이론과 물결에 관한 포괄적인 이론으로 환원된다.”

p. 713-, 과학적 절차의 두 가지 유형 <재생산하기 vs 따라가기>
과학의 두 가지 유형, 즉 과학적 절차의 두 가지 유형도 구분해야 한다 – 한쪽을 “재생산하기” 절차라고 한다면 다른 한쪽은 “따라가기”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재생산, 즉 조작을 되풀이하고 반복하는 절차이고 후자는 이동 절차로서, 이동적·순회적 과학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동은 너무 쉽게 기술적 조건, 즉 과학의 응용과 검증 조건으로 환원되어왔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즉 따라가는 것은 결코 재생산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재생산하기 위해 따라갈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재생산하는 것은 반드시 재생산되는 것의 외부에 위치하는 고정된 관점의 항상성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마치 물가에서 물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따라간다는 것은 재생산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다르다. 형식을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료, 즉 재료의 다양한 “독자성”을 탐구하려 할 때, 중력을 피해 신속함의 장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방향이 한정된 박편 모양의 유속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을 멈추고 소용돌이치는 흐름에 휩쓸려 가려고 할 때 그리고 변수에서 상수를 도출하는 대신 변속의 연속적 변주 속에 휩쓸리려고 할 때는 직접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p. 714-, 두 과학적인 절차에 따른 <대지>의 의미
합법적 모델에 따르면 사람은 일련의 불변적인 관계의 총체에 따라 어떤 영역의 어느 한 가지 관점에 끊임없이 재영토화되는 반면 이동적인 모델에서는 바로 탈영토화의 운동이 영토 자체를 구성하고 확대한다.

“먼저 너의 최초의 식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 빗물이 어떤 형태로 흘러가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그러면 이미 비가 식물의 종자를 먼 곳까지 실어 날랐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빗물이 파 놓은 도랑을 따라가보아라. 그러면 흐름의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쪽 방향에서 너의 최초의 식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ㅇ서 자라고 있는 식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식물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식물은 네 것이다. 나중에 (...) 네 영토를 확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Castaneda

일반적으로 매끈한 공간, 벡터, 장, 비계량적 다양체는 항상 “공분”으로 번역 가능하며, 또 반드시 번역되어야 한다. 이처럼 번역이라는 기본 조작을 통해 반복해서 충분한 차원수를 가진 유클리드 공간의 접선이 매끈한 공간의 각 점에 접하도록 할 수 있으며, 두 벡터간의 평행성을 재도입해 “길찾기를 통해 탐색”을 따라가는 대신 이 비계량적 다양체를 재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등질적인 홈이 패인 공간에 꼭 들어맞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주49. 로트만은 리만 공간이 어떻게 유클리드적 접합접속을 받아들여 그 결과 근접해 있는 두 벡터간의 평행성을 규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통합의 결과 [비계량적인 리만]다양체는 한층 더 진행시키면서 탐구해야 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수의 차원을 가진 유클리드 공간으로 연장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노모스에 대한 로고스 또는 법의 승리이다.

이 두 모델의 경합으로부터 오히려 순회적 과학, 유목 과학은 성격상 자율적인 권력을 장악할 수 없을뿐더러 자율적으로 발전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목 과학은 그러한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모든 조작을 직관과 구축을 위한 감각적 조건, 즉 물질의 흐름을 따라가고 매끈한 공간을 그리고 부합한다는 조건에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현실 자체와 뒤섞이게 되는 유동적인 객관적 지대 속에 들어가 있다.

“근접 인식(connaissance approchee)”은 아무리 미세하고 엄밀하더라도 감각적이고 민감한 평가에 의존하는데 이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 제기적인 방식으로밖에는 인식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왕립 과학과 이 과학에 특유한 정리적 내지 공리적 권력의 특징은 모든 조작을 직관의 조건으로부터 분리시켜 이것을 진정한 내재적 개념, 즉 “범주”로 만드는 데 있다. 탈영토화가 왕립 과학에서는 항상 개념 장치로의 재영토화를 수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범주적이고 필연적인 개념 장치가 없다면 미분적 조작(=연산)은 현상의 진전을 따라가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 왕립과학의 요청 사항 중의 일부는 “안전성”이라는 요구로 번역되고 있음

순회과학은 이 과학에 독특한 절차로 인해 이내 계산 가능성을 초월해 재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을 초과하는 초과(en-plus) 속에 포함되어버리는 바람에 계산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극복 불가능한 곤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곤란을 순회 과학은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대처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해결은 다양한 조작의 총체에 의해 초래되는 것으로서 자율성을 갖지는 못한다. 이에 반해 개념 장치 또는 (실험 과학을 포함한) 과학의 자율성을 정의할 수 있는 계량적 역량을 소유한 것은 왕립 과학뿐이다. 따라서 순회적 공간들을 등질적 공간과 결합시킬 필요성이 대두하는데, 이러한 등질적 공간이 없다면 물리학 법칙은 공간 안의 특수한 점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성의 문제이다. 즉 순회 과학 자체로서는 이러한 구성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도 구비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 두 과학의 상호 작용의 장에서 순회 과학은 여러 가지 문제를 발명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무제들의 해결은 비과학적인 집단적 활동 전체에 의해 초래되는데 비해 과학적 해결은 이와 반대로 왕립 과학에 또 이 왕립 과학이 스스로의 정리적인 개념 장치와 노동 조직 속으로 편입해 들임으로써 이 문제를 변형시키는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이 두 과학의 관계는 베르그송 철학에서의 직관과 지성의 관계와 흡사한데, 베르그송에 따르면 오직 지성만이 직관이 제기하는 문제를 형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 수단을 소유하고 있고 직관은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물질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질적인 활동에 맡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주 50. 베르그송에 따르면 직관과 지성의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며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불리강의 명제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와 ‘포괄적 종합’이라는 두 가지 수학적 요소의 이원성은 이러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의 장에 들어갈 때 비로소 전개되는데, 이러한 작용 속에서 비로소 포괄적 통합이 범주들을 확정하며, 이러한 범주들 없이는 이 문제에 대한 일반적 해답을 얻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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