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나만의 주석 달기(3) 정은희

작성자
sumi
작성일
2019-05-02 08:01
조회
42
『에티카』 정리 30~1부 끝까지/2019년 5월 2일 목/ 정은희



‘우연’이라는 회피처


『에티카』 정리 33을 보자. “사물들은, 산출된 것과 다른,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도, 어떠한 다른 질서에 따라서도 산출될 수 없었다.”(p88) 사물들은 양태를 말한다. “양태는 실체의 변용,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p55)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했다. 일체의 사물은 일체의 양태라고 볼 수 있다. 양태는 실체의 변용으로 다른 것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양태들은 산출될 때 어떠한 다른 방식이 아닌 신의 존재방식으로 산출되며, 이 방식은 신의 존재방식의 질서에 따른다. 이 말은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p88)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양태가 산출될 때 일정한 방식이 있고, 그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작용된다는 이야기다.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말이다. 신은 실체이고,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의 변용으로 양태가 존재하는 방식은 필연적이라는 이야기.

스피노자가 증명하는 세계에서 신은 유일하고 필연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무한히 많은 속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세계의 사물들, 그리고 나는 양태이다. 양태인 나는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물들도 그러하다. 그러면 나와 내 주변의 사물들, 즉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는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필연성으로 구성된 세계 속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나와 내 관계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필연성 밖에 없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우연은 없다는 이야기. 헌데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거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물들과 사건들에 마주쳤을 때 ‘에이~~우연이야’, 혹은 ’우연일 걸~’이라고 말하거나 중얼거린다.
우연이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우연이니까. 그 다음번에 비슷한 종류의 사물들과 사건들이 찾아와도 또 다시 우연이라고 말하고 지나간다.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서 온 일정한 방식으로 작동한 것들이라고 인식하기에는 그 마주침을 직시할 힘이 없다. 왜냐하면 필연적이라고 인식하려면 불쾌함과 마주볼 용기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우연이라고 해버리면, 불쾌함을 빠르게 던져버릴 수 있다. ‘우연일걸~’이라는 내 중얼거림은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서 온 것이라는 인식으로부터의 도망이었던 것. 스피노자의 주석 속의 말은 매우 가슴에 찔렸다. “사물이 우연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결함 이외의 다른 이유로 인한 것이 아니다.”(p88)

음…….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산출된 양태라는 인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많은 힘이 들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쾌감을 마주해야하는 일이라는 이 불길한 예감!! ‘우연’으로 이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게 만드는 스피노자의 전략에 빠져들었는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