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5/11 『한국의 민중봉기 』 3,4장 세미나 기록

작성자
bomi
작성일
2019-05-19 14:05
조회
116
다음 역사비판 세미나는 '맑스 코뮤날레' 일정으로인해 6/8에 진행됩니다.
세미나 범위는 5,6장으로 할지, 5,6,7장으로 할지 현재 논의 중입니다.
아직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분은, 게시판의 <6월 8일 세미나 범위에 대한 건의사항>에 댓글로 의견을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미나 범위가 결정되면, 후에 다시 공지 올리겠습니다!

<근황토크>

손보: 요즘 추리 소설에 관심이 생겼다. 혹시 추천해 주실 것이 없으신가?

박상: 히가시노 게이고. 감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추리소설작가다. 나도 고등학교 때 좋아했다.갈릴레오, 홈즈처럼 각인되는 캐릭터. 가가형사 시리즈가 있다. 물만두라는 알라딘 파워 블로거의 '물만두의 추리 책방'이라는 추리소설 리뷰만 올린 블로그가 있다. 추리소설 리뷰만 1000여편이 올라와 있다.

문주: 어버이날 선물로 케이크를 샀는데, 너무 비싸서 이 가격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프렌차이즈가 아닌 다른 빵집에서 살려고 하니, 그게 또 너무 비쌌다. 자본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이용당한 건 아닌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김정: 맑스코뮤날레 단행본을 만들고 있다.
*제9회 맑스코뮤날레*
<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를 주제로 5월 24일(금)~26일(일)까지 3일동안 서강대학교, 정하상관(24~25일)/다산관(26일)에서 개최된다.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 주제 : 페미니즘, 정동정치, 그리고 공통장
■ 일시 :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
■ 장소 : 서강대 정하상관
많이들 오시라!!!

박상: 전주 국제영화제에 처음 가봤다. 김미례감독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다큐영화를 보았다. 1970년대 일본이 가해자라는 의식을 가지고서 망각된 것. 가해자로서의 의식을 깨우친 사람들의 전범 폭탄테러 사건 등이 나왔다. 그리고 적군파나 특정 조직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일반 대학생이 만든 조직,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조직들도 등장했다. 가해자로서의 의식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폭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영화를 통해 많은 관심이 생겼다. 마침 나도 케이크를 동네 가게에서 사봤다. 케이크의 데코를 직접 하게 했다. 평소에 해 본 적 없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케이크에 직접 썼다. 처음 해본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멜: 세월호, 촛불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광화문에 가봤다. 그런데 내가 갔을 땐 이미 해산 분위기였다. 대신 우파 집회를 보았다. 대한애국당과 자유한국당이 노선을 달리해서 각자 집회를 하고 있었다. 그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지난 촛불 집회 때의 노선싸움이 떠오르면서 우파 집회에도 노선싸움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애국당이 더 열정적이었다. 태극기 들이 자유한국당보다 대한 애국당에 더 많이 모여있었다. 정말 열사들이 모여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자유한국당의 김성태나 바른미래당 갔다가 복귀한 사람들의 사진을 크게 걸어놓고 을사5적 처럼 취급하는 플랭카드들이 대한애국당에 크게 걸려 있는 걸 봤다. 우파가 사회운동 하는 풍경을 이번에 더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주로 나경원이나 황교안 얘기만 들을 수 있는데, 현장에서는 대한애국당과 자유한국당 양 세력의 힘이 비등비등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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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거리 1>
미디어는 봉기를 기록하지 못한다. 봉기를 봉기로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왜 실눈을 뜨고 보아야만 다중의,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분명히 봉기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봉기에 대해 "여러분"이라 칭하고 "감사"를 표하고 "지지"를 하고 "응원"을 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김정: 토론거리 1번에 관해 논의해보자. "미디어가 대안적으로 다뤄지는 사례들이 있다."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 있는가?

박상: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군중의 지위도 변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중이 자신의 소통을 마련하는 것. 주류적 미디어에 맞춰 민중도 자신의 소통 미디어를 만들어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항 다큐멘터리, SNS의 다른 사용 등이 있다. 아랍의 봄의 예도 있다.

문주: 미디어라고 하면 보통 티비와 같은 기성 매체를 말하는데, 소셜네트워크를 똑같이 미디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SNS를 TV같은 미디어와 같은 선상에 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아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간다는 의미에서는 SNS도 미디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TV와 같은 매스미디어는 중앙에서 사방으로 전파하는 방식이었다. SNS는 쌍방향 소통이라는 성격을 볼 때 매스미디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발신자의 성격을 놓고 보더라도 TV와 같은 매스미디어는 중앙집권적이라고 할 만큼 발신자의 덩치가 크지만, SNS는 개개인들이 발신자가 된다.

김형: 페이스북 관련 다큐를 보면 구글 자체에 언더 스탭핑이 진짜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스텝을 회사에서 고용하지 않는다. 모두 프로그램이 대신 한다. 아랍의 봄을 촉발한 것과, 이후 강경파가 확산 된 것. 이 둘 다 SNS의 속성과 힘에서 나온 것이다. SNS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들 얘기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다방면에서 많이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진지한 내용은 다 증발시키고 클릭 수에 의존해 동일한 내용만 확산시키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아멜: 나는 일부러 페이스북에 직접 글을 쓰지 않는다. 직접 글을 쓰게 되면 정치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글의 소유권이 페이스북에 귀속되게 된다. 난 그걸 원치 않는다. 그리고, 반응이 너무 많은 것도, 그러니까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반응은 안 좋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가능한 반응을 억제하는 방법을 써서, 반응을 꼭 하고 싶은 사람만 하게 하는 방식으로 글을 게제한다. 자극적인데 반응하는 사람의 숫자가 진지한 데 반응하는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SNS라는 공간을 저급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상: 기술의 발달은 돌이킬 수 없다.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 많긴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점유 할 수 있는 부분을 넓힐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형: 자극적인 것과 진지한 것은 어떻게 다른가?

아멜: 약품 같은 걸로 비교하면 짜릿한 맛, 단 맛, 이런게 없는 밋밋한 맛이 아닐까? 나의 글은 그냥 가볍게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숙고를 요구하는 케이스이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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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거리 2>
10월 항쟁의 중심지였던 대구를 카치아피카스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급진적 좌파가 잘 조직된 도시에서 미군정은 마치 '적성국'에 주둔한 것처럼 대구를 통치했다. 그 어떤 시도로도 미국은 대구 인민위원회를 해체시킬 수 없었다."(144) 또한 1946년 10월봉기를 동학 이래 가장 중요한 무장 민중운동으로 보기도 했다. 보수의 심장으로 표상되는 지금의 대구와 전혀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급진적이었던 지역이 군사독재시절 어떻게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변모한 것일까? 그 요인과 사건들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김정: 대구에 대한 질문이다.

박상: 대구하면 보통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대구는 10월 항쟁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박상희가 10월 봉기 때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급진적이었던 곳이 어떻게 이렇게 보수적으로 되었을까? 대구의 발전사도 궁금하다.

아멜: 대구에 비해 전라도는 어떤가? 전라도는 비교적 진보적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전라도가 정부와 가까워졌다. 레디컬한 야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김대중 정부 이후 광주가 정부와 밀착되면서 달라졌다. 대구는 박정희 정권과 밀착되어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자신도 형의 영향을 받아 남로당에 가입했었다. 박정희는 취조 과정에서 칼날을 우파로 바꿨다. 하지만 박정희의 우파는 내셔널리즘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파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박정희는 자신의 배신적 행위들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됐다. 서울과 대구,부산을 잇는 경남지역의 준 수도권화를 진행했고 지역분활 정책을 통해 민중들을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눴다는 생각이 든다. 분할 통치를 하면서 경상도는 지금 말하는 보수 지역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게 18년 동안 이어지고, 전두환이 그것을 계승하고. 이런 흐름이 엄청나게 긴 시간(일본 식민통치와 맞먹는시간)동안 이어졌다. 약 38년동안 영남통치가 계속 됐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경상도의 보수화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형: 대구사람들의 보수주의를 내셔널리즘이라 볼 수 있는가?

아멜: 그것을 민족주의로 번역하기는 어려운 내셔널리즘인 것 같다. 국가주의가 강하게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에 의존하는 미국의 총독정부로 있으면서 또 동시에 미국으로부터 (남한정부를) 독자화하려는 이중적인 인격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차관을 수입대체 산업으로 전환하려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자립이라는 목표 아래 미국을 활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전두환부터 완전히 달라져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고 생각된다. 전두환 정부는 광범위하게 신자유주의를 시행하면서 (이때는 미국도 완전히 신자유주의화 되던 시기)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수입하려 했다. 하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국가주의가 그대로 남은 채 이어졌다.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이루어진 건 김대중 정부 때다.

문주: 박정희 시절이 벌써 30년이나 지났는데, 박정희 정권의 환상이 만든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어떻게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손보: 실질적인 이득이 있었다고 본다. 근거 없는 향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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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거리 4>
커밍스는 46년 10월 봉기를 내전으로 묘사하기 위해 미국을 빼놓고 서술하며 카치아피카스는 민족독립 투쟁 성격을 새기기 위해 미국의 강압을 묘사한다. 이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152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는 카치아피카스의 관점과 내전으로 규정하는 브루스 커밍스의 차이가 함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202-3 내전론과 민족해방전쟁론이 결합될 수는 없는가?

김정:
카치아피카스(이후 피카스)가 미국을 (커밍스와는)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토론거리 4번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아멜: 책의 3장 첫 페이지를 보면, (...) 피카스는 식민지에서 신식민지로의 이행을 민족해방투쟁의 측면에서 많이 독해하고 있다. 신식민체제를 미국이 신식민지로의 이행을 통해서 식민체제를 유지해 나가려고 하는 식민체제 유지의 방법으로서 이야기 하고 있다. 반공식민지화가 신식민지화였다. 아래로부터의 민족해방투쟁을 신식민지화가 냉전구도 속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저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흥미있고 주목해야 할 만한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년(1945~1952)을 바라보는 피카스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8년 동안이 일제를 통한 지배의 연장 기간이었다는 이야기와 이 구절이 중요하게 닿아있다. 굉장히 인상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8년을 내전이 아닌 민족해방 투쟁으로 바라보는 것이 피카스의 독특한 점이다. 8년을 커밍스가 단절로 이야기한다면, 피카스는 연속으로 이해한다. 피카스의 관점이 어떻게 평가돼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토론거리) 4번, 5번에서 또 이야기했다.

김정: 커밍스의 피카스의 차이, 그것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멜: 80년대에는 주로 커밍스의 책으로 한국전쟁을 공부했다. 보통 한국전쟁이라고 하면 남침 전쟁일 뿐 아니라 빨갱이들이 (남쪽을) 적화하려는 것이었다는게 주류 공식관점이었다. (투쟁은) 빨갱이를 물리칠 수 있는 반공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 당시 지배적 분위기였다. 커밍스는 수정주의 이론가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지난날 한국전쟁을 공부하는데 있어 거의 교과서였다. 피카스는 커밍스의 이 책을 계속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좋다. 소작 노동자와 지주층 사이의 투쟁이 있었고, 노동자의 자본가에 대한 투쟁을 거기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분석을 이어가고 있다.) (남한에서 일어난 봉기는) 남북한 모두에서 일본강점기 때부터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계급 갈등이 폭파되어 온 방식이고 그것이 열전의 방식으로 터진 게 한국전쟁이었다. (그런데) 피카스는 커밍스가 미국이라는 요소를 빼먹고 있다고 보고 있다. (피카스는) 미국이 한반도를 구조화함에 있어서 얼마나 큰 부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밝힌다.) 미제국적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남한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과정 하나하나를 다 조직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들, 특히 거기에 우파까지도 결합되어 있는 민족해방투쟁을 철저하게 박멸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노선에 가까운 관점이다. 하지만, 끝에가서는 달라진다. (토론거리 9번) 피카스는 새로운 반란세력이 창출됐다고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4,19 이전까지의 60년간의 역사를 서술함이 있어서는 NL관점이다. 이에 비해 커밍스는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박상: 박명(?)님의 커밍스 비판이 있다. 커밍스의 책이 NL계열의 지지기반이 됐다고 비판했다. 피카스는 커밍스보다 미국을 더 깊이 비판한다.

아멜: '한국전쟁의 기원'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한국전쟁을 이념대립으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서 계급갈등으로 보는 것은 그 당시 매우 새로웠고, 그때의 흐름과도 부각되는 관점이었다. 해방공간뿐만 아니라 계급관점에서 이행을 바라보려는 관점의 책, 조선 후기에 자생적 부르주아 계급이 형성되었다는 해석의 책이 나오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커밍스의 관점과도 상통하는 관점이다. 막시스트 관점에서 역사를 보려는 흐름이었다. NL적 과점은 계급적 관점이라기보다는 민족 갈등이라는 관점이다. 계급적 관점을 넘어서서 민족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식민지 민족들이 어떻게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자율적 민족국가를 건설할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한다. 피카스는 그 점에서는 적어도 (4,19 이전까지) 60년간에 있어서는 NL관점이다. (...) 이러한 서술의 효과는 미국이라고 하는 것을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인식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지금의 문제인 정부도 우리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을 굉장히 크게 느끼게 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주국가로 느껴지지 않는 지점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분명 이런 관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커밍스와의 변별력을 강조하려다 보니까 계급갈등 관점과 민족주의 관점이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서술된 한계가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을 결합한 NLPDR(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cy Revolution)이 있다. (NL이냐 PD냐는) 강조점의 차이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안병직과 이병천, 특히 안병직의 중진 자본주의론에서 NL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있다. 그리고 PD대신 CD로 전환한다. '중진 자본주의'가 이미 자립을 의미한다. 이것이 나중에 뉴라이트로 바뀐다. 이러한 발전과정 속에서 우파로 전환되었다. 민족해방과 민중민주는 함께 가는 것이고 적 개념은, 반제(민족해방의 문제) 반파쇼(계급 해방의 문제)다. (NL과 PD) 이것들은 결합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따로 떨어져 나가는 경우는 그 전에는 사실 없었다. 그런데 피카스에게서는 그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경향이 보인다.

이종: 해방은 됐는데, 국가가 들어서지 않아서 독립되지 않았다, 빨리 민족단위의 국가를 세워야 되고, 신탁통치등의 형태를 빌더라도 분단되지 않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단일 국가로 건설되지 못하고 UN으로 입안되어 분단화 되면서, 좌우할 것 없이 분단을 막기 위해 민족을 계속 내세웠던 흐름이었던 것 같다. 좋든 나쁘든 민족이라는 키워드가 분단에 반대한다는, 제국주의에서 벗어나고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키워드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멜: 피카스는 그보다 더 세게 말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조선은 자주독립 역량이 없는, 부족하기 때문에 더 훈련되어야 할 나라이므로 우리가 일정하게 보살펴주마 하는 논리를 펼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45년 6월 9일에 한국에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여운영 주도하는) 완전히 자립적인 국가가 생겼는데, 미국이 그것을 깨트리고 들어온다고 (피카스는) 말한다. 군사점령의 형태로 폭력적으로 미국이 그걸 붕괴시켰고, 소련은 배후에 통제장치를 다 해놓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빨리 빠져나갔다고 말한다. 45~49년까지의 일들은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을 키워나가는 인큐베이터가 아니었고 오히려 자립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 깨버리는 과정이었다. 있었던 민족국가를 침공한 것이다. 그러한 미국의 파괴적 역할에 대한 서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것 같다. 46년 10월 봉기(우리는 흔히 그걸 46년 추수 폭동으로 배워왔다.), 47년도 3월에 있었던 봉기, 48년도 제주 43봉기, 10월 여순봉기, (...) 미국이 이승만이라는 꼭두각시를 미국에서 수입해 와서 군사력으로 이런 봉기들을 폭력적으로 짓밟아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진 게 한국전쟁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내전이라기보다는 민족해방전쟁의 성격이 강해서 (북한은 이미 자립하고 있었으므로) 남쪽의 미국을 몰아내는 것이 핵심적인 과정이었다고 피카스는 서술하고 있다.

김정: 미국이 왜 그렇게 움직였을까? 미국도 어떤 저항에 직면해서 그런 건 아닐까. 자본처럼.

아멜: 투쟁에 대한 흡수의 측면은, 직접 미국이 전면에 나서서 진압하면 남북 민족 구성원들의 합작을 통한 반민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끼워 넣어서 움직였다는 게 주목할 만한 점이다. 미국이 자주적인 인민 공화국을 해체시킴으로써 사람들이 국가가 제대로 서 있지 않아서 생산력도 저하되고 삶이 곤궁해지니까 이를 원조라는 방식을 통해서 보충해나갔다. 국가 파괴의 부정적 효과를 원조로 (전환한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미국은 우리를 구제하기 위해 온 나라지 우리를 해치러 온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각인되었다. 따라서 봉기가 끊임없이 일어났는데도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봉기는 거의 없었다. 미군 사망자도 거의 없었다. 미군은 그들의 얼굴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이 띄우는 비행기는 (일본 비행기는 적대적인 대 비해) 위험 요소로 보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는 광주항쟁까지 이어져서, 광주상고에 떴던 미국항공기(이 항공기는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학살할 때 있을 수 있는 문제 상황을 돕기위한 것이었음에도)를 본 광주사람들은 이제 살겠다는 희망을 하룻밤 가졌었다. 하지만 책에도 나오듯이 (미항공기는) 전두환 정부와 단단히 손을 잡고 진압 작전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환상, 바로 이런 환상이 깨져나가는 게 80년대 초였다. 이때 학생운동, NL운동이 폭발했다.

박상: '녹두서점의 5월'이라는 책을 보면, 미국 항공모함.... 이를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김상윤)의 고민이 나온다. 광주시민들이 미국을 너무 우호적으로 보기 때문에 적대적으로만 쓸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김정: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지금도 일본만큼은 심하지 않은 것 같다.

박상: 미국인에 대한 (비판적)인식이 한국인들에게 퍼질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 학생운동 시절 신자유주의 흐름과의 관련은 많이 인식했다.

아멜: 전두환은 이미 미국의 지침을 받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지하철(관련 문제와) 반핵 운동이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 광주항쟁을 진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그것들을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교섭협상단을 파견했다. (미국은) 자기 나라의 잉여자본을 수출하게 해 주는 조건으로 전두환 정부를 승인해 준다. 그 이후 미국 자본의 직접투자가 급속히 늘어난다. 신자유주의 과정이 그때부터 전개됐다. 그러한 행보들이 운동권에는 반미운동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작동했다. 대중 차원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친미적으로 되었다. 운동하는 사람들과 대중들의 인식차가 벌어지는 과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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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거리 6>
전쟁의 기원보다 전쟁의 성격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까지 미국과 북한 사이에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성격도 이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205 이 주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속에서 남한의 역할, 특히 남한 사회운동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멜: 아까 했던 이야기의 연속인데,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커밍스 책은 왜 전쟁이 났냐? 누가 시작했냐? 등의 기원의 문제가 주로 등장한다. 어떤 성격의 전쟁이었느냐의 문제를 다루는 게 필요하다. 커밍스의 책이 기원을 다루는 문제로 시작하다 보니, 지주와 소작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으로 1장을 시작한다. 그것들이 해방 후에도 어떻게 잔존해 이어졌느냐를 주로 다룬다. 북한은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남한은 농지개혁으로 토지개혁의 범위를 좁혔다. 나중에는 이것이 농지를 유상으로 사게 하는 것으로 전환됐다. 그러한 남한에서 잔존하는 토지개혁을 둘러싼 계급 갈등, 그것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전쟁의 촉발론이 커밍스의 이론이다. (...) 피카스는 (한국전쟁을) 민족해방 전쟁이라는 성격의 측면에서 봐야 하고 (한국전쟁은) 1945년부터 쭉 전개되어온 봉기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박상: 피카스의 서술중 어떤 부분을 보면, 미국이 아니었으면 북한이 빨리 (한반도를) 점령해서 통일을 이루고 (한국은) 동북아의 핵심성장을 이루었으리라 가정하고 있다. 미국에 절대적인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서술된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무리한 가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과 소련에 대해선 너무 온건적으로 다룬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이상적인 가정을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보았다. 낙동강 전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인민군이 다 점령했는데 군인들이 곡식의 낱알을 세고 있는 장면묘사가 있었다. 전라도 쪽에서 낱알을 세는데 사람들이 왜 세냐고 물어봤더니, 이 토지에서 나올 세금을 계산하기 위해서 닡알을 세고 있다고 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런 묘사는 북한이 기본적으로 관료 통치로써 전쟁 기간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세금 메길 방도만 연구하고 있었다는 게 북한의 인기를 떨어뜨렸다는 저자의 평가로 보인다. 그런 것들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디테일한 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주: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그것만으로도 북한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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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거리 7>
동북아시아의 지속적 긴장과 북한 위협에 대한 과장은 미국의 미사일 대항 시스템을 판매하는 데 도움이 되고 군사산업을 진작시킨다. 214 그런데 지난 수년간 북한의 무장력은 한국 정부들에 의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 않았는가? 왜 그랬을까?

아멜: 위협은 늘 과장되어 왔다. (이러한) 위협은 주로 관념적 위협에 가깝다. 70년대 말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사는 나라였다는 것은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80년대 이후로, 신자유주의화 이후로 점차 북한이 고립되어 갔다. 중국과 미국이 핑퐁외교를 통해 수교를 해버리고 소련도 91년도에 남한이랑 수교를 시작하면서 북한은 일본과도 남한과도 수교하지 못하는 국제적인 외교상의 비대칭이 전개되었다. 80년 이전에는 중국과 소련이 확실히 북한을 써포트했었다. 따라서 힘 관계가 한미일과 중소북으로 대칭이 유지됐다. 하지만 80년 이후로는 비대칭이 되면서 북한이 적어도 군사적으로 자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으로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남한의 경우, 이데올로기 상으로는 끝없이 반북이 필요하니까 북한의 위험성을 선전하지만, 북한에 대해서 실제로는 우습게 보는 경우가 많다. (굶어 죽고 녹슨 장비로 전쟁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적) 깔보면서 동시에 위협을 과장하는 모순적인 과정이 계속되어 왔다. 핵무기 개발을 북한이 한다고 할 때, 그것을 무시해 온 역사가 길다.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이 몇 차례나 실험하면서 미사일의 고각 발사를 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북한의 무장력을 우습게 봐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모순(이데올로기적 위협을 과장하는 동시에 군사력에 대해서는 과소평가)이 지금도 여전히 있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에게 북한은 그냥 '끝'이라는 인식이 있다. 미국 고위 관료 한 사람이 북한의 OOO탄(? 핵미사일)이 있는데, 그걸 쓰면 미국국민의 90%가 절멸할 위험이 있으므로 북한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기사가 며칠 전 실렸다. 어쨌든 보통 사람이 인식하는 것보다는 북한의 군사력은 강력하다. 어쩌면 핵기술에 있어서는 미국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적으로는 미국보다 생산량이 적지만, 테크놀로지 측면에서는 미국과 같은 나라들의 핵기술은 오히려 옛날 기술이 많고, 북한은 최신 기술, 경량 핵 등 더 앞설 수도 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에게서 나오는 정보다. 미국에 선제공격을 주문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박상: 게임에서도 미국이 북한을 점령한 것을 가정한 것들이 많다. 그렇게 가정한 문화예술 컨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선거 때 모든 유력 대선 후보들이 군복을 입고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군대에 가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안보군사이데올로기적인 게 자연스럽게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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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거리 8>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남한에서보다 더 심하게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214 그 왜곡은 지금까지는 주로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졌다. 윤지오에대해서는 빨갱이라는 공격보다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비난 받는다. 홍가혜, 미네르바, 드루킹과 유사하게. 이 변화의 의미가 무엇일까?

?: 남한에서만큼 진실이 왜곡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피카스는 말한다. 물론 남한에서 진실이 많이 왜곡되고 있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최고라고 할 정도인가?

아멜: 분단이라는 조건이 진실을 심하게 왜곡시키는 조건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가장'이 1등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분단이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현실의 판단이 왜곡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시기상으로 보면 김대중 정부 때까지는 빨갱이 정부라는 말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는 빨갱이 정부라는 말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오히려 장난스럽게 됐다. 한국의 최고 보수당 새누리당의 상징색도 빨간색이 되었고, 또 2002년도에 월드컵 때의 빨간색, 붉은악마 이후부터 붉은색에 대한 트라우마적 반응양식이 굉장히 많이 사라졌다. 빨간색을 적극적으로 많이 사용함으로써 그에 관한 알레르기적 반응을 무력화시켰다. 요즘은 빨갱이 공격이 많이 약화되니까 (완전 무력화 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거짓말쟁이라거나 사기꾼이라는 공격이 많이 가해진다. 감옥에도 2종류가 있어서 독방은 주로 빨갱이들,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가는 곳. 여러명이 사용하는 방은 잡범들이 가는 곳이었다. 정치범과 잡범을 갈라서 수용한다. 감옥이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정치범도 잡범화 시키는, 즉 인격을 말살시키는 공격이 이뤄진다. 빨갱이로 공격할 때는 인격을 말살시키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출소 후엔 영웅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잡범화 테크놀로지가 사회 내의 적극적인 여론을 통제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도 그랬다. (이전에는) 걸핏하면 엮어서 조직사건으로 만들고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돈의 문제로 바뀌었다. 감당할 수 없는 벌금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처벌의 각개화, 처벌을 개개인들이 부담하게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지금 윤지오도 사기죄로 박훈이 고소한 상태다. 이처럼 이제 돈으로 고통을 가하거나 사람의 인격을 파탄시켜서, 사회로부터 격리돼야 할 파탄난 인격으로 내몰아 버림으로써 목소리를 눌러버린다. 홍가혜 때도 인터뷰 후 벌떼 같은 공격이 이루어졌다. 모든 언론이 홍가혜를 연예인병 걸린 사람으로 도배했다. 2008년에 미네르바는 글을 쓰는 능력도 없는 사람이 남의 기사 짜집기를 자기 글처럼 하고 있다는 공격을 받았다. 지금 윤지오에게도 이 비판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필 작가가 썼기 때문에 그것은 윤지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고 몰아간다.

김정: 진실을 둘러싼 싸움이 현실에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세월호 노래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이다.

김형: 2002년 이후 빨갱이 콤플렉스가 극복됐다고 하지만 당시 초등학교 때는 그런 걸 몰랐다. 오히려 최근 대학교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학교에 비판적인 소리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공격이 있었다. 정권이 바뀐 후부터는 그런 게 줄어든 것 같다. 민중들도 충분히 성숙했다. 왜곡된 진실에 대해 극복했다. 예전에는 국가가 권력기관을 이용해 왜곡하는 공격을 주도적으로 했는데 최근에는 분명히 덜한 것 같다.

문주: 다르게 생각한다. 빨갱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있던 위협이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굳건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약해진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혹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없어진 건 아니다. 그리고 빨갱이라는 이름에 낙인찍혀서 영웅이 된 사람은 소수다. 오히려 그 낙인 때문에 피해를 입거나 낙오되고 공권력에 처벌을 받은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 굉장히 소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사람만을 보고 이것이(빨갱이 공격이) 그래도 좋은 영향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빨갱이는 (...) 우리가 지금은 그걸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봐야 한다. 넓은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분단이라는 것도 그걸 세계적으로 공식화된 개념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만) 분단이라고 말하지만 내전이 진행되는 많은 국가를 생각해 보면 거기에도 (사실상) 많은 분단이 있다. 우리만 분단이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다.

김형: 대중 전체의 변화라는 시간적 측면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그 기점이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기점이라 생각했다. 공산주의가 체제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체제위협이 일상에서도 있다고 생각한다.

박상: 북한의 낙후... 이런 것도 영향이 있지만,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 박근혜 정권이 우습게 몰락하고 빨갱이에 관련된 것이 희화화된 것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김형: 정권의 변화에만 치중하면 안 되겠다. 민중의 변화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아멜: 혁명이라는 개념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국가권력을 특정한 집단이 장악하는 과정으로 (혁명을) 연상했다. 지금은 그런 권력 장악 현상이 배후로 밀려나고 우리 삶의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오히려 혁명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도래했다. 소수 집단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혁명이) 나타날 때는 빨갱이 공격이 의미를 가지지만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혁명)은 전혀 이념적인 것과 상관이 없다.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엘리트라 불리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혁명적 힘이 쏟아져 나온다. 여성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다양한 정치적인 이슈들에 개입해 들어오고 그 힘이 집단화되어 국가가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될 힘으로 다가온다.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게 이념이랑은 상관이 없는 욕망이라거나 예술적 기량...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힘들로 움직이고 있다. 2008년 촛불 집회 때 유모차 부대가 있었다. 유아와 엄마가 함께 나와서 광장을 누비는 행위가 이명박 정부를 헤집어 놓는 상황이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연예인 팬클럽과 유사한 부분들이 집단화해서 촛불집회 때 마스크나 촛불이나 물을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활동을 했다. 큰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광주민중항쟁 당시에는 시장 아주머니들이 했던 것들이다. 화장을 강하게 한 여성들, 엄청 화려한 복장의 여성들이 촛불 대오 속에서 행사를 벌였다.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혁명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단역 엑스트라 배우였던 사람이 진실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진실이란 말을 쓴다. 진실규명을 이야기하고, 증언자에 대한 사회적 위치를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른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윤지오는) 보통 통념에서 보면 무력하기 그지없는 개인이다. 옷과 외모에만 관심을 보일듯한 통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국가에 대항하는 행보를 보였다. 기자들이 최전선에 있고, 그 뒤에 우파, 그 뒤에 중도 우파, 그 뒤에 엄청난 댓글 부대가 포격을 해대는데, 그것을 그 개인이 감당한다. 이러한 보통 사람의 힘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유모차를 끌고 투석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환경 속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오는 힘. 한 개인이 국가 전체와 맞서는 힘이 아니면 그렇게 나오기 힘들다. 그 과정을 굉장히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고 있는 게 윤지오다. 촛불집회의 한명 한명이 그러한 모양이 아니겠는가.

김형: 유모차 부대처럼 당파성을 가지지 않는 개인이 정치의 주체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은 우리 민족의 봉기 역사에서 죽 이어져 왔다. 이러한 게 새로운 혁명이다. 함석헌 선생님은 진정한 혁명은 유혈혁명이 아니고, 인간혁명이라고 했다. 인간이 역사의 주체로 스스로 서는 것이 인간혁명의 과정이다.

아멜: 들뢰즈의 싱귤레리티, 특이성, 단수성. 싱귤러하다는 것은 하나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우주이기 때문에 우주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건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싱귤러한 힘 앞에서는 어떤 것도, (예를 들면) 윤지오가 공항에서 쫓겨나듯 갈 때, 기자들에게 윤지오가 자신의 카메라로 되려 기자들을 찍을 때, 기자들이 카메라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윤지오 카메라의 취재 대상이 되는 역전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그것이 싱귤러의 힘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다만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등 거대한 민중이 움직일 때, 특수한 역사적 순간에 분출되는 경우는 있는데 일상의 순간에 홀로 남겨진 개인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다.) 그걸 해나가는 존재가 생겨나고 있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에너지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이 있다.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사 속에서는 자연스럽고 늘 있어왔던 일이다. 진실이나 민중이 범죄화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1운동 제주 43 모두 범죄화되었었다. 범죄화의 움직임은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비판하면 되는 거다. 여기에서 생겨나는 성격과 정치를 주목해서 볼 때는 싱귤러의 에너지가 굉장히 강력해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감동이 있다.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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