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미나요약 발제

작성자
yabol
작성일
2020-04-21 14:31
조회
148
1.1
칼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주권자는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자’라는 정의로 주권과 예외상태의 본질적 연관성을 규정했다. 그러나 공법학에서는 예외상태가 기초하고 있는 긴급 사태는 어떤 법률적 형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예외상태에 관한 이론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견해로 예외상태는 “법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교차하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경계선”에 위치한다. 만약 예외상태가 법률이나 헌법적 토대가 아닌 정치적 위기에 따른 결과로서 정치 영역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면 법률적 형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법률적 형식으로 출현한 것이 된다. 반면 법이 생명에 가 닿고 스스로를 효력 정지시켜 생명을 포섭하기 위한 근원적 장치가 예외상태라면, 이는 곧 살아있는 자를 법에 묶는 동시에 법으로부터 내버리는 관계를 정의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1.2
이처럼 예외상태가 정치적인 것과 법률적인 것, 법과 살아있는 자 사이의 ‘모호한 영역’으로서 규정 불가능한 요인 중 하나는, 그것이 내전, 봉기, 레지스탕스 등 심각한 국내 갈등에 대한 국가 권력의 직접적 대응이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1933년 ‘국가와 민족 보호에 관한 긴급조치’를 공표해서 개인의 자유에 관한 헌법 조항들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법률적 관점에서 제3제국은 12년 동안 지속된 예외상태로 간주될 수 있다. 현대의 전체주의는 예외상태를 통해 정치 체제로 통합할 수 없는 모든 범주의 시민들을 육체적으로 말살시킬 수 있는 “(합)법적 내전”을 수립한 체제이며, 항구적인 비상 상태의 (자발적) 창출이 현대 국가의 본질적 실천이 되었다. ‘전 지구적 내전’에 직면한 현재, 예외적으로 취해진 잠정적 조치가 통치술로 전환되면서 헌법 형태들 간 전통적 구분이 가지는 의미가 변질되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예외상태는 민주주의와 절대주의 사이의 확정 불가능한 문턱처럼 보인다.

1.3
예외상태는 법이 스스로를 효력 정지시켜 살아있는 자들을 포섭하는 근원적 구조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생명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2001년 11월 13일 부시 대통력의 ‘군사 명령’은 테러활동에 연루된 비내국인에 대한 ‘무기한 구금’과 ‘군사 위원회’의 재판을 허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붙잡힌 탈레반은 전쟁 포로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며 미국 법률 규정상의 어떤 범죄 용의자도 되지 못한다. 즉 법적 지위가 철저하게 말소되고 따라서 법적으로 명명하거나 분류할 수 없는 존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은 순수한 사실적 지배 대상인 그저 ‘수감자’이며 이들에 대한 구류는 그 자체에서 한계가 없다. 관타나모에 이르러서 벌거벗은 생명이 극한의 규정 불가능성에 다다랐다.

1.4
독일 법학에서는 예외상태와 ‘긴급 상태’가 익숙한 용어인 반면, 이탈리아와 프랑스 법학에서는 긴급 명령과 (정치적 혹은 픽션적)계엄을 선호한다. 앵글로색슨 법학에서는 전시법(martial law)과 긴급 권한을 주로 사용한다. 전시법이나 계엄 상태의 경우 전쟁 상태와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데, 예외상태는 전쟁법(law of war) 같은 특수한 법이 아니다 법적 질서를 효력 정지시키는 한에서 예외상태는 법의 문턱 혹은 한계 개념을 정의한다.
(‘픽션적 또는 정치적 계엄 상태’는 1811년 12월 24일자 나폴레옹의 법령에서 “보다 많은 힘과 행동을 군사 경찰에 부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실제로는] 긴급하지 않더라도 해당 지역에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규정에서 유래한다. 이는 1791년 프랑스 제헌 의회에서 ‘평화 상태’와 ‘전쟁 상태’ 그리고 ‘계엄 상태’를 구별하는 것에 그 기원을 두며, 실질적 계엄에서 픽션젹 계엄으로 변화해간다. 헌법의 효력 정지는 혁명력 8년 프리메르 22일자 헌법 제92조에서 드러나며, 문제가 되는 도시나 지역은 헌법 바깥에 있는 것으로 선포된다. 문민적 영역에 군사적 전시권한의 확장이든 헌법 효력의 정지든 결국 하나의 ‘법률적 현상’ 즉 예외상태라는 현상으로 귀결된다. ‘전권’은 입법이나 행정 등의 권력 형태들이 구분되지 않은 충만한 원초적 상태로서, 자연상태와 유사한 법적 신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외상태 속에서 권력이 취하는 양태 중의 하나이지 예외상태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1.5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론은 2차대전 전시와 전후의 시기에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이 와해되는 과정 속에서 ‘입헌 독재’를 둘러싼 유사 논쟁의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헤르베르트 팅스텐은 1차 세계대전동안 계엄상태가 선포되거나 전권법이 포고된 국가들에서 통치 권력의 체계적 확장에서 비롯된 상황들을 검토한 뒤, 전권의 일시적이고 통제된 사용은 민주적 헌법과 양립 가능하지만, 그런 제도의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실행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파산으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감벤은 1차 대전 및 이후 몇 년의 기간이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의 실험실이었다고 말한다. 프리드리히는 입헌 독재와 비입헌 독재의 두 대립항을 설정하지만, 입헌독재론의 아포리아를 피할 수 없었다. “현대 헌정 체제의 모든 준독재적 조치들은 일시적인 권력 집중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어떤 기준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쉽게 전체주의 체제로 변형될 위험을 떠안아야 했다.” 클린턴 로시터는 민주적 체제는 정상상황에서 기능하는 것으로 구상되었기 때문에 위기 시에 일시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입헌 독재가 실제로 통치 패러다임이 된 내재적 필연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나 로시터가 비입헌 독재와 입헌 독재를 구분하기 위한 11개의 기준을 제시하지만, 결국 둘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정의하지 못한다. 그는 “위기 시의 일시적 조치들이라 서술된 통치 수단들은 … 점차 모든 나라에서 그리고 평시에도 존속할 제도들”이라 예언한다.

1.6
서구 국가들의 법적 전통 속에서 예외상태는 1)헌법 조문 속에 규정하고 있는 법질서(프랑스, 독일) 와 2)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법질서(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미국) 로 나뉜다. 그러나 실질적 구성 차원에서 예외상태는 양쪽 법질서 모두에서 존재할 수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1.7
저항권의 문제는 예외상태 문제와 유사성을 보인다. 이탈리아 헌법 초안은 “억압에 저항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지 의무”라는 조항을 포함했는데, 논쟁과정에서 본질상 실정법 영역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무언가를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팽배했고 동의를 얻지 못했다. 반면 독일 연방 공화국 헌법은 “질서를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이에 맞서 모든 독일 국민은 다른 시정 수단이 없을 경우 저항권을 갖는다”고 아무 유보 없이 저항권을 법률화했다. 예외상태나 저항권 모두 법이 반드시 규범과 일치해야 한다는 쪽과 규범을 넘어서는 법의 영역을 고수하려는 쪽으로 나뉘며, 그 자체가 법 바깥에 있는 행위 영역이 법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 궁극적인 문제가 된다. 그러나 두 입장은 법 전체가 제거된 인간 행동 영역의 존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1.8
예외상태에 대한 법학 학설은 두 조류가 있으며, 법률적 전통의 차이는 두 조류의 차이와 대응한다. 법질서의 영역에 포함시키려는 쪽에서는 예외상태의 기초가 되는 긴급사태가 자율적 법의 원천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실정법에 포함되어야 할 부분으로 간주하거나, 예외상태를 국가의 자기 보존을 위한 주체적(자연적/합헌적) 권리로 이해한다. 반면 예외상태를 법률 외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쪽에서는 긴급사태를 법률 바깥에 있는 사실적 요소들로 간주한다. 율리우스 하첵은 입장들의 차이를 ‘객관적 긴급 사태론’과 ‘주관적 긴급 사태론’ 사이의 대립으로 요약했다. 그러나 단순한 법률 안/바깥의 대립이라는 전제는 충분하지 않다. 예외상태는 법질서의 안도 밖도 아니며, 내부와 외부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식별하지 못하는 구분 불가능한 영역이 문제가 된다. 규범의 효력정지는 규범의 폐지가 아니며 효력정지가 만들어낸 아노미 영역은 법질서와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예외상태의 문제는 그 문제가 자리하는 장을 규정하는 문제가 된다.

1.9
긴급 사태(필요)가 예외상태의 기초가 된다는 의견은 흔한데, 이로 인해 예외상태의 정당성은 긴급 상태의 지속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해소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긴급 사태는 법률을 갖지 않는다”는 격언은 “긴급 사태에서는 어떤 법률도 인정될 수 없다”와 “긴급 사태는 그에 고유한 법률을 만들어낸다”는 두 가지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된다. 그라티아누스의 『교령집』에서는 적법하지 않은 것을 적법한 것으로 만드는 힘이 긴급 사태에 부여되는 듯한데, 의례 집행방식에 대한 본문에서는 희생물이 제단 위나 성화된 장소에 바쳐져야 하며 “적절하지 않은 곳에서 미사를 올릴 바에는 아예 미사곡을 부르거나 듣지 않는 편이 좋다. 단, 최고도로 긴급한 사태일 경우 긴급 사태는 어떠한 법률도 갖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에서 “법률을 말 그대로 지켜도 곧바로 대처해야 할 즉각적인 위기 같은 것을 초래하지 않는 경우 나라를 위해 무엇이 유익하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해석하는 권한”은 “법률로부터 면책될 권위를 가진 군주에게 배타적으로 부여”되지만, “상급자에게 보고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위험이 돌발적일 경우 그러한 긴급 사태 자체가 면책을 가능케 한다. 왜냐하면 긴급 사태는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주석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긴급 사태론은 특수한 개별 사례에서 위반행위를 정당화 하거나 법률 준수의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예외(면책)론’에 다름 아니다. 긴급 사태는 법률의 원천도 법률의 효력정지도 아니며, 법률을 문구대로 지킬 수 없는 개별사례로부터 판단된다. 예외의 궁극적 토대는 “모든 법률은 만민의 공동의 행복을 위해 질서를 명령한다. 그리고 오직 이 때문에 법률로서의 힘과 근거를 갖는다. 만약 여기에 어떤 결함이 있다면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는 원리이다. 즉 법률의 힘과 근거가 적용될 수 없는 모든 개별 사례가 문제인 것이다.
(중세의 예외상태가 외부의 사실을 향해 법률 체계를 열어두는 것이었다면, 근대의 예외상태는 법질서 속으로 예외를 포함시켜 사실과 법이 식별 불가능한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10
긴급 사태는 근대에 이르러서 법질서 속에 포함되며 법의 고유한 ‘상태’가 된다. 법률적 구속력이 상실되는 특이한 상황을 나타내는 원리가 법률의 궁극적 기초와 원천을 구성하는 원리로 전환되는 것이다. 산티 로마노는 긴급사태를 법률의 최상위이자 근원적 원천으로 개념화한 극단에 서있는데, 그에 따르면 법(권리)와 법률을 구분해야 하며 법(권리)의 고유한 기초는 입법 행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한다. 또한 긴급 사태의 조건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규범이 실제로 효력 있는 방식을 통해서는 통제할 수 없는 사례의 조건으로 봐야하며, 만약 혁명을 통해 국가가 세워진다 할 때 그러한 국가의 헌정 질서의 원천과 정당성은 위와 같은 긴급 사태에서 찾아져야 한다. 따라서 긴급 사태라는 형태를 띠는 예외상태는 ‘비합법적’이지만 ‘법률적이고 헌법적인’ 하나의 조치로 드러나며, 새로운 규범(법질서)의 생산으로 구체화된다.
1944년 이탈리아 전국이 내전으로 치닫자 로마노는 긴급 사태를 혁명과의 연관 속에서 다시 다룬다. 그에 따르면 혁명이 ‘반법률적’으로 보이는 것은 국가의 실정법에 비추어볼 때뿐이다. 그러나 혁명은 자체에 고유한 법으로 스스로를 지배하고 규제하는 운동이며, 원래적인 법질서의 범주에 포함되는 하나의 질서인 것이다. 아감벤은 여기에서 긴급 상태가 혁명과 예외상태라는 형태를 통해 (반법률적 사실이 법속으로 이행해서 전개되어 법률적 규범과 단순한 사실이 식별이 불가능한) 모호하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즉 긴급 상태는 사실과 법 사이의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문턱이 된다.
긴급 상태론이 마주치는 극단의 아포리아는, 긴급 상황이란 어디까지나 긴급하고 예외적이라고 선언되는 상황일 뿐이며, 따라서 전적으로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기존질서가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 또는 “현존 질서가 새로운 요구를 고려하는 가운데 전복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의견의 일치”와 같은 달성하려는 목적에 따라 긴급 사태의 개념은 달라진다. 어느 쪽이든 긴급 사태에 의존한다는 것은 법률 외적인 가치평가에 의해 법질서가 판단된다는 점이다.

1.11
예외상태는 법의 공백이라는 문제와도 연관된다. 법률에는 공백이 있지만 법에는 공백이 있을 수 없다는 원리에 따라 예외상태도 공법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백으로 해석되어, 행정권력에 의해 복구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백은 질서의 존립을 보증하기 위한 효력 정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오히려 규범의 존립과 정상상황에 대한 규범 적용을 보증하기 위해 질서 안에 만들어내는 ‘픽션적 공백’으로서 예외상태는 나타난다. 이 공백은 법률 내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법률의 적용 가능성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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