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본

작성자
july123
작성일
2019-12-14 17:48
조회
623
Introduction: Wages for Housework in Historical Perspective

When in the summer of 1972, at a gathering in Padova, Italy, we launched an international campaign for wages for housework, I believed that we were pioneers. I realized later that I was wrong in this assumption.
1972년 여름 이탈리아 파도바의 한 모임에서 우리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국제 캠페인을 발족하였다. 나는 우리가 선구자라 믿었었지만, 후에 이것이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By the end of the 19th century wages for housework had already entered the feminist agenda.
19세기 후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운동은 이미 페미니스트 어젠다에 들어왔던 것이다.

Between 1880 and 1930 it was among the strategies that feminists adopted in the United States in what Dolores Hayden has called the “Grand Domestic Revolution.”
1880년에서 1930년 사이에 돌로레스 헤이든이 “거대한 가정의 혁명”이라 명명했던 그 어젠다는 미국에 있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채택된 전략 중에 있었던 것이다.

As she wrote: Between the end of the Civil War and the beginning of the Great Depression three generations of material feminists raised fundamental questions about what was called the ‘woman’s sphere’ and ‘woman’s work.’
그녀는 미국 내전의 끝에서 대공황 시작까지의 세 세대의 유물론적 페미니스들이 ‘여성의 영역’과 ‘여성의 일’이라 불리던 것에 대해 원론적인 문제제기를 했다고 썼다.

They challenged two characteristics of industrial capitalism: the physical separation of household space from public space, and the separation of the domestic economy from the political economy.
그들은 산업자본주의의 두 가지 특징을 문제 삼았다. 공적 영역으로부터 가사 영역의 물리적 분리와 정체 경제로부터 가정 경제의 분리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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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den adds that in order to overcome these separations feminists “proposed a complete transformation of the spatial design and material culture of American homes, neighborhoods, and cities.”
헤이든은 이러한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미국 가정, 이웃 그리고 도시의 물질 문화와 공간 디자인의 완전한 변형을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They built new neighborhood organizations, created housewives cooperatives, promoted new housing projects provided with day care centers and public kitchens, and “They demanded economic remuneration for women’s unpaid household labor.”
그들은 새로운 이웃 조직을 세우고, 주부들의 협력 시스템을 도입하고, 공공주방과 데이케어가 제공되는 새로운 주거 공간 프로젝트를 주창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성들의 무급 가사 노동에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였다.”

It is hard tell how widespread such a demand was but a New York Times editorial from August 10, 1876 rebuking a woman from Kentucky who demanded wages for housework from her husband, suggests that it may have not been limited to a few radical circles (see editorial on facing page).
그 운동이 얼마나 퍼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76년 8월 10일자 뉴욕 타임스 사설에 켄터키에 사는 한 주부가 남편에게 가사 노동에 대한 임금을 요구 한 것을 비판한 것을 보면 이 운동이 몇 몇 급진적인 모임에만 한정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pressed in different ways, interest in WFH continued into the new century.
그 양상이 똑같지는 않았지만,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 운동에 대한 관심은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Mother’s pensions,” that is stipends for mothers widowed or single, were advocated by the General Federation of Women’s Clubs in the period before WWI.
“어머니 연금” 즉 남편이 죽거나 혼자 사는 어머니를 위한 급여가 1차 대전 전에 여성 클럽 연합에 의해 주장되었다.

In the 1920s, the socialist feminist Crystal Eastman also proposed a “mothers’ endowment” so that women who wanted to have children would not have to depend economically on their husbands.
192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크리스탈 이스트맨 역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어머니의 자산”을 제안하였다.

This first wage for housework movement was international as well.
첫 번째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 운동도 외국에서였다.

A supporter of WFH was the German feminist Kathe Schirmacher.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의 지지자였던 독일 페미니스트 Kathe Schirmacher에 의해서였다.

During WWI Schirmacher became a rightwing nationalist.
1차대전 기간 동안 Schirmacher는 우익 국가주의자가 되었다.

But in 1904, as a co-founder of the Association of Progressive Women’s Groups and the World Association for Women’s Suffrage, she had been an active internationalist who participated in feminist gatherings across Europe and had written in support of the recognition of the economic contribution of women’s unpaid domestic labor.
하지만 1904년 진보적 여성 그룹 협회와 여성의 고통 세계 협회 공동 설립자로서 그녀는 전 유럽의 페미니스트 모임에 참여하는 국제적 활동가였고 여성의 무급 가사 노동의 경제적 공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글을 썼었다.


영국에서 Wage for Housework(WFH)를 주장한 중요 인물은 여성참정권운동가이자 후일 국회(하원)의원인 된 Eleanor Rathbone이다. 레스본은 25년이 넘게 여성의 재정적 독립을 위한 캠페인을 벌려왔고 1945년에 영국 의회가 “모든 戰後 복지국가 법안 가운데서 가장 급진적인 널리 여겨지는” 어머니(mother)에게 최초로 국가가 지급하는 보편적인 가족 수당(family allowance)을 도입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법안이 [영국에서] 통과되자 이 문제가 미국에서도 제기되었다. 1947년 2월 Kay Lanly Bernard는 『미국가정(American Home)』 에 발표한 글에서 묻는다. “가정주부가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나 미국에서는 좌우 모두 이 제안을 반대하였다. 공산당 당원인 Mary Inman이 우리의 운동이 이후에 명확히 주장한 의견을 미리 예견하면서, 그녀의 혁신적인 작품인 「여성을 위한 변호1940(In Woman’s Defense 1940)」에서 WFH를 요구했을 때, 공산당은 그녀의 입장을 비난했고 그녀는 당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러한 최초의 승인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대중적이고 제도적인 개념의 정치적 변환을 표시한다. 이 승인들은 가정주부가 노동자이고 그들 나름대로 노동계층의 한 구성원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고, 남편의 계층에 따라 여성을 분류하는 경향을 깨트렸다. 그러나 19세기에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지금 우리가 벌이는 운동의 관점 사이에는 심오한 차이가 있다. 그들 대부분에게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은 그들이 알아내고 개선하기를 바랐던 노동에 대한 보수일 뿐이었다. 헤이든이 표현하였듯이, 10세기의 WFH 지지자들은 여성의 활동 구역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따라서 [활동을 이끈 것은]산업 노동 모델의 현대화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요구를 하면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힘을 줄 수 있도록 덜 분리된 방식으로 가사노동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주로 중산층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정치적 관점에서 부재하는 것은, 남과 여 그리고 흑인과 백인 여성 사이에 가사노동에 관련한 더 평등한 분배에 대한 비전뿐만 아니라. 노동력 생산에 가사노동을 자본주의적으로 예속시키는 행위에 대한 비평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지금 행하는 운동의 이론과 실제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테마이다. 그들에게는 WFH를 요구하는 것이 가사노동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지만, 우리들에게 WFH는 우리가 갇혀있다고 느끼는 어떤 작업 그리고 그것의 목적 (값싸고, 말 잘듣고, 훈련이 잘된 노동자라는 규정)을 우리가 거부하는 어떤 부정denial의 작업을 사회적이고 여성적인 이상으로써 표현하였다.

가사노동에 대한 19세기의 임금 개념과 우리가 지금 전개하는 운동의 임금 개념과의 차이는 각각 진행된 맥락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함으로써도 알 수 있다. 19세기와 현재의 개념이 지닌 차이에는 5천만 명이 파괴된 두개의 전쟁이 있었고, 반 식민주의/반 인종차별주의 투쟁의 세기가 있었고, 최초의 원자탄 투하(폭발)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통합된 결과, 최소한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발달이라는 진보적 특성에 대한 믿음과 재생산의 보증인 국가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모든 현상들이 있었다. 초기 단계는 아니더라고, 최소한 이러한 역사적 매개요인(parameter) 속에 우리들을 의식적으로 관련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학)는 60년대와 70년대의 반체제적(anti-systemic) 운동으로 형성되었고, 19세기에 이미 형성된 여성 정치 사상(feminist political thought)의 흐름을 지속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우리의 정치(학)은 사실 그러한 흐름으로부터 극적으로 벗어났다.

우리의 입장은 1939년에 우리 스스로 쓴 <여성을 위한 변명( IN Woman’s Defence)>에서, 모든 상품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이---노동력 labor power (옆 페이지에 있는 발체문 참고)이며, 여전히 이곳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아내들은 그들의 남편만큼이나 생산과정에 필수적이고 가정은 생산하는 장소이기를 중단하지 않는다고 쓴 Mary Inman의 입장과 비슷하다.

<여성을 위한 변명 (IN Woman;s Defence)>

Mary Inman

캘리포니아, 사우스게이트 Firestone 공장에서 타이어를 만들고 있는 그녀의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한 여인의 노동은, Firestone 노동자가 식사하는 카페에서 요리사나 웨이트리스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타이어 생산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가정에서 그들이 행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노동에 따라 Firestone의 모든 노동자의 모든 아내들은 Firestone Tires 생산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녀들의 노동은 그들 남편들의 노동만큼 그 타이어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예는 Republic Steel, Standard Oil, Henry Ford등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을 대상으로 얼마든지 들 수 있고(사례는 곱셈하듯이 늘어난다), 아내들의 노동은 이 공장들에서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일(service)이라는 언제나 동일한 답을 얻는다.

생산노동자를 위해 옷을 빠는 세탁소 노동자의 노동은 생산 시스템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생산 노동자들이 다음날을 준비하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들이 자거나 쉬는 숙소의 마루를 쓸고, 침대를 정리하고, 방을 정리하는 하녀나 포터(짐꾼)들은 생산과정과 필수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옷을 빨고 침대와 바닥을 깨끗이 하는 일을 하는 생산 노동자의 집에 있는 가정주부의 노동 역시도 생산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But here too political perspective branched in a different direction. While Inman anticipated one of the main themes of our campaign, recognizing the productivity of housework, her conception of the nature of this work and the “road ahead” was significantly different. House work for Inman is a limited set of activities (shopping, cooking, washing, caring for children) rather than a practical social relation defining the identity of millions of women, and her solution to the housework problem is equally reductive: more efficient housing, day nurseries and other social services relieving the families from the burden of child and elder care, and the formation of ‘housewives leagues’, Dealing with “their specific economic needs.”

그러나 이때도 정치적 관점은 다른 노선으로 갈라졌습니다. 인만은 가사노동의 생산성을 인식하는 것을 우리 캠페인의 주요한 주제로 기대했으나, 가사노동의 본성과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그녀의 개념은 심각하게 달랐습니다. 인만에게 가사노동은 쇼핑, 요리, 청소, 자녀양육으로 한정된 일련의 활동이었습니다. 수백만 여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실질적인(실재하는) 사회적 관계로서 가사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해법은 동시에(equally) 환원적이었습니다. 자녀와 노인 돌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효율적인 주택공급, 보육시설, 사회서비스를 비롯해 전업주부만의 경제적 요구를 처리하기 위한 ‘전업주부연맹’의 형성 따위 말입니다.

In other words, WFH for Inman is a union demand, a recognition of the ‘social usefulness’ of domestic work, but understood as an occupation only of concern for mothers and wives. It was not (as it was for us) an anti-capitalist strategy intended not only to end women’s dependence on men but also to subvert the hierarchies constructed on our unpaid domestic labor and the use of the wage as a means of exploitation and social control. As with the 19th century materialist feminists quoted by Hayden, so in Inman’s case as well, what differentiated our perspective was our refusal of housework as defined in capitalist society. We refused housework as unpaid labor, as a particular form of segregation, as a social identity, so pervasive and so naturalized as to characterize the labor even of women performing very little actual domestic work.

다시 말해서, 인만의 WFH는 조합요구와 가사노동의 ‘사회적 유용함’에 대한 인정이었으나 어머니와 아내를 위한 고충처리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는 여성의 남성 의존성을 종식하거나 무급가사노동과 억압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서 임금으로 구축된 위계를 전복시키려는 의도의 반자본주의적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헤이든에게 인용된 19세기 유물론적 페미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인만의 경우 역시, 우리의 관점을 차별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규정된 가사노동에 대한 우리의 거부였습니다. 우리는 무급노동이자, 특정한 형식의 차별이자, 사회적 정체성으로서 만연하고 자연화되어서 실제 가사노동을 거의 하지 않는 여성의 노동마저 특징짓는 가사노동을 거부했습니다.
Wages for Housework, as we intended it, was a product of the same revolt against domesticity and ‘male supremacy’ that the rise of the feminist movement of the ‘70s expressed, although we brought a different strategy. Proof of this continuity is that even before our international campaign took off in the summer of 1972, the question of housework was broadly debated among feminists in the US. Margaret Benston’s “The Political Economy of Women’s Liberation” are exemplary in this sense. If we, moreover, look at the issues that feminists focused upon, we see that they were all centered on a redefinition and critique of reproduction in all its forms.

우리가 의도한대로, 비록 다른 전략을 취했지만,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Wages for Housework)도 70년대 여성운동의 상승으로 표현된 ‘남성패권’과 가정을 상대로 한 반란의 결과물입니다. 이 연속성의 증거는 1972년 여름 우리의 국제적 캠페인이 시작하기 전부터 가사노동에 대한 질문이 미국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널리 논의되었다는 것입니다. 마가렛 벤스톤의 “여성해방의 정치경제”는 모범적인 예입니다. 더욱이 페미니스트들이 주목한 현안을 살펴보면, 그들은 모든 형태의 재상산에 대한 재정의와 비판에 집중했었습니다.

Kate Millet’s ‘Sexual Politics,’ Carol Hanisch’s argument that the ‘personal is political,’ Judy Syfer’s “I want a Wife,” the denunciation of women’s sexual objectification and ageism: all these ‘struggle concepts’ challenged the dominant view of housework as something natural for women, as a ‘labor of love’, and deflated the idealization of family life, reinterpreting the home as a place of work and confinement for women. Often referred to as ‘body politics,’ feminist politics, at least in its first phase, was a ‘reproduction politics,’ centered on the idea that domestic life is a site of unequal power relations and ‘revolution begins at home.’ Thus, when a group of women in 1970 put out a journal call Off Our Backs few of us doubted that, together with men, housework too, as we knew it, had to be unloaded.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 캐롤 하니쉬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주장, 주디 시퍼의 “나는 아내를 원한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연령주의에 대한 비난. 이 모든 ‘투쟁 개념’은 가사노동을 자연스러운 여성의 일, ‘사랑의 노동’으로 규정하는 지배적 관점에 도전했습니다. 투쟁 개념은 또한 가정생활에 대한 부푼 이상화를 꺼뜨리고, 가정을 여성의 직장이자 감금의 장소로 재해석했습니다. 종종 ‘몸의 정치학’으로 언급되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첫 단계는 ‘혁명은 가정에서 시작된다’를 중심으로 가족생활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장소라는 생각에 기반한 ‘재생산 정치학’이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 여성집단은 Off Our Backs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가사노동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내려놓아야 할 일이라는 것을 남성들과 함께 논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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