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 『초월과 자기-초월』 김동규 역자와의 인터뷰

인터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4-01-06 14:03
조회
598
 

『초월과 자기-초월』 김동규 역자와의 인터뷰



Q. 메롤드 웨스트폴은 누구이고, 어떤 학자인가요? 또 역자 선생님의 연구와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메롤드 웨스트폴은 1940년생으로 미국 휘튼칼리지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예일대학교와 호프칼리지를 거쳐 포덤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같은 학교 철학과 명예석좌교수로 있는 인물입니다. 원래 그는 헤겔 전문가로 명성이 드높았으나 헤겔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지향을 기반으로 삼아 키에르케고어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키에르케고어를 포스트모던 사상의 선구자적 인물로 해석하면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영어권 학계의 포스트모던 논쟁에 대담하게 뛰어드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포스트모던 흐름에 접속하는 방식은 좀 색다른 것이었는데요.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터전인 그리스도교 신앙, 더 정확하게는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를 유지한 채 19~20세기 철학을 더 깊이 파헤칩니다. 이를테면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나 종교 비판과 무척 잘 어울린다는 것이지요. 또한 레비나스와 리오타르가 전체성을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국가의 전체성을 비판하는 그리스도교 사상가 키에르케고어와 공명한다는 것이 그의 색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요약하자면, 포스트모던 사상의 그리스도교적 전유라고 할까요? 바로 이런 작업을 통해 현재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철학적 흐름으로 성장한 유럽 대륙종교철학, 또는 포스트모던 종교철학의 거목 중 하나로 선 사람이 바로 웨스트폴입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유럽대륙종교철학이라는 주제가 매우 생소합니다. 서구 철학계와 달리 종교와 철학이 첨예하게 구별되는 경향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분야가 무엇보다 다종교사회인 우리 사회 현실 속에서 꼭 필요하다고 보고 해당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럽대륙종교철학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자면, 이는 유럽대륙철학의 주요 흐름, 이를테면 현상학, 해석학, 구조주의, 최근의 신유물론 등의 사조를 통해 종교철학의 주요 주제를 새롭게 탐구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갈무리 출판사에서 2021년에 출간된 리처드 카니의 『재신론』이 바로 그런 사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술 가운데 하나고, 이번에 나온 『초월과 자기-초월』도 그런 흐름에 속하는 책입니다. 이 사유에서는 신을 전통철학처럼 형이상학적 대상이나 증명을 요구하는 존재자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을 우리에게 주어지고, 나타나는 체험되어야 할 현상으로 간주하거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기호로 보지요. 이렇게 하면 신과 계시는 증명을 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와 삶에서 풍요로운 의미를 불러오는 독특한 현상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신과 종교를 단지 전통적 교리의 틀에서 벗어나 훨씬 더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종교 간 대화나 타자와의 대화가 촉진됩니다. 더 나아가 이방인 환대나 윤리적 책임의 문제도 이런 사유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사유할 수 있습니다. 즉, 유럽대륙종교철학의 신-담론은 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신과 신앙에 연루된 우리의 삶의 성격과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실적인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장 뛰어난 포스트모던 철학자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좌파 사상가 쟌니 바티모는 우리 시대 혁명이 가능하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 속에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좌파 정치는 적어도 현실 의회 정치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힘을 못 쓰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 와중에 사회 변화와 희망의 계기를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신앙공동체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프란치스코 교황과 바티칸에서 일으키고 있지요. 얼마 전 로마가톨릭은 사제들이 성소수자 커플을, 비록 제한적인 형태이긴 하나 축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공식 문서를 공표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로마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이 따라야 하는 지침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큽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소수자들이 교회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사회가 막다른 골목에 처하고, 혐오가 깊어질 때, 환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종교에서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보수건 진보건 종교에 대한 이해가 극히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한 번 생각해 보지요.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이슬람 신앙을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 늘어날 것입니다. 보수건 진보건, 우파건 좌파건 이주민 환대, 이방인 환대를 실천하려면 바로 이 종교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는 전광훈만 있는 게 아니고, 이슬람에는 하마스만 있는 것이 아니며, 유대교에 시오니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종교라고 하면, 가장 최악의 형태만을 생각하고 무시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선용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에는 종교적 유산도 포함됩니다. 유럽대륙철학, 곧 현상학과 해석학 등을 기반으로 삼아 사유하는 종교철학에는 바로 이론적인 차원에서 종교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선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유럽대륙철학에는 이런 실천적 함의가 있고, 저도 또 저자인 웨스트폴도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의 저자의 결론도 결국 초월을 따라 일어나는 자기-초월이란 자기가 중심이 된 주체가 신과 이웃을 향해 개방된 탈중심화된 주체로 변형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에서 종교적 초월은 윤리적 책임이나 사랑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이 책이 재확증해 주는 셈이지요. 지극히 이론적인 내용 가운데 서려 있는 실천적인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Q. ‘존재-신학’이란 무엇이고 종교철학에서 왜 그토록 논쟁적인 단어인가요? 하이데거는 ‘존재-신학’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유럽대륙철학 전통에서는 일종의 계시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하이데거의 존재-신학 비판입니다. 이것은 전통 형이상학의 신-담론이 신을 그저 자기-원인이나 최고 존재자처럼 형이상학의 개념으로,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사유하는 한에서 존재하는, 우리가 사유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개념화된 신으로 고착시켰다는 비판을 골자로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과 신앙을 사유함에 있어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형이상학에 입각하면 신은 유일실체나 자기원인, 정신의 현시 가운데 드러나는 절대자처럼 기껏 체계를 정당화해주는 하나의 계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신은 성서나 꾸란, 토라에 등장하는 인간의 기도를 듣고, 인간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그런 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좀 역설이긴 합니다만,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신-담론, 곧 아우슈비츠 이후 다시 신을 말하기 위한 사유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제가 역설이라고 한 이유는 어떤 식으로건 나치에 연루된 하이데거의 사유가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사유하는 신-담론과 공명했기 때문입니다. 고통 받는 인간이 남겨진 세상, 대참사 이후 다시 희망을 말해야 하는 세상, 진보가 아닌 종말론을 말해야 하는 세상에서 다시 신을 말해야 한다면, 우리는 근대인들처럼 개념으로 사유되는 신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런 개념의 신 앞에서는 기도도, 예배도 할 수 없고, 춤도 출 수 없다고 한 하이데거의 이야기가 새로운 신-담론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Q.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자 웨스트폴이 범신론과 유신론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도달한 곳은 어디입니까? 저자는 초월의 의미를 갱신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저자가 말하는 초월은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신의 초월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신의 초월은 절대적 존재의 초월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초월을 목도하는 인간의 자기-초월을 소환한다는 게 제목의 의미입니다. 특히 저자가 다시금 이런 초월의 의미를 소환하는 데는 웨스트폴 자신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이해 ― 바꿔 말하면 포스트모던 문제의식 ― 가 주요 동기로 작동합니다. 말하자면, 근대적 사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한 몇몇 사유, 특히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스피노자와 헤겔의 범신론이 신의 초월을 제거하고 덩달아 이 초월과 연동된 인간의 자기-초월의 가능성도 제거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초월에 대한 복원은 그 자체로 근대성 비판이라는 함의를 가집니다. 그럼, 유신론 전통은 어떨까요? 웨스트폴은 유신론 전통에서도 신을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팽배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전통을 재해석합니다. 우선 그는 부정신학을 매개로 삼아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의 초월의 의미를 파헤치면서 우리가 신을 존재론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말할 수 있는 법을 제안합니다. 그런 다음, 칼 바르트, 레비나스, 키에르케고어로 논의를 옮겨가지요. 저자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하자면, 19~20세기로 넘어가는 이들의 사유는 포스트모던의 통찰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직접적으로 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레비나스가 사유의 동력을 제공합니다. 타인인 무한의 절대적 타자성이 어떻게 우리 인식의 지향성을 파훼하고, 전도시키는지를 보여주지요. 이를 통해 저자는 키에르케고어의 그리스도교 유신론이 레비나스적 의미의 윤리적 초월과 그리스도교 전통의 종교적 초월을 함께 성취한다고 봅니다. 즉, 한편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신의 초월의 의미를 갱신함과 동시에 이것이 비단 종교적 영성의 차원에 국한되는 게 아닌, 주체의 윤리적 각성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즉, 신의 초월은 자기-초월을 일으킴과 동시에 타자성을 향한 개방도 함께 일으킨다는 점이 독특한 지점입니다.


Q. 저자가 특별히 하이데거, 스피노자, 헤겔, 아우구스티누스, 위-디오니시오스, 아퀴나스, 바르트, 레비나스, 키에르케고어에 특히 주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디오니시오스라는 인물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레비나스는 키에르케고어보다 후세대 인물임에도 저자가 키에르케고어를 마지막 장에서 살펴본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디오니시오스는 6세기 초 인물로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신학자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신을 긍정적으로 정립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파악 작용에서 미끄러지는 신에 대한 부정적 방식의 접근을 고안한 인물입니다. 그의 신비신학은 이후 신학에서만이 아니라 부정의 사유나 존재론적 개념의 해체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장-뤽 마리옹의 경우에는 형이상학 해체 또는 탈형이상학적 사유의 선구자로 위-디오니시오스를 꼽기도 합니다.

저자 웨스트폴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키에르케고어에게서 일종의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유신론적 전통에서 키에르케고어야말로 거대담론의 위력에 빠지지 않은 채로 신과 신앙을 사유한 탁월한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웨스트폴은 키에르케고어를 단지 신을 공경한 사상가로만 보지 않고, 니체나 마르크스와 같은 급진적 사상가로 이해합니다. 이는 실제 키에르케고어의 삶에서 주된 행적을 돌아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코펜하겐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덴마크의 현자는 덴마크 국가 교회를 자신의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습니다. 당시 덴마크 사회에서 사람들은 국교회 소속이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됩니다. 여기에 주체성의 결단 같은 것은 없지요. 또한 교회는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가에 저항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일상적 생사화복에 체계적으로 관여할 뿐입니다. 키에르케고어가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이 중산층 그리스도교의 안온함을 보여주는 사태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면을 평생에 걸쳐 끈질기게 비판한 것이 바로 키에르케고어의 비판 정신입니다. 웨스트폴은 이런 점에서 키에르케고어에게는 신에 대한 공경 이전에, 레비나스처럼 체계와 전체성에 대한 도전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체성에 대한 도전을 부각하고자 레비나스를 경유하고요. 그가 레비나스를 존중하면서도 이 유대교 사상가에게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명시적인 형태의 신-담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웨스트폴이 보기에는 레비나스의 문제의식을 선취하면서도, 그의 윤리적 초월을 윤리적-종교적 초월로 확장할 가능성이 키에르케고어에게 충만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그를 레비나스를 거쳐 키에르케고어로 이끈 이유입니다.


Q. 이 책이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일단 유신론적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이 적절한 신인지, 혹시 개념화된 우상을 내가 신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나 신 이해를 점검할 수 있겠지요. 아울러 종교적 초월의 이유는 결국 이웃 사랑, 타자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점을 이해함으로써 종교의 의미를 갱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철학에서 말하는 초월과 신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웨스트폴이 철학자들을 풀어내는 솜씨는 가히 최고라고 평할 만합니다. 적당하게 텍스트를 버무리는 게 아니라 일차 텍스트들을 본인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에 독자들은 초월, 신, 주체성, 타자성 등에 대한 엄밀하고 상세한 이해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종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신자들은 지나치게 교회의 소위 정통 교리에 무비판적으로 빠져 있고, 비신자들은 종교와 종교철학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칫 상대방에 대한 무지나 혐오를 생산하는 데 일조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신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면서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까지도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체계나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 주체의 탈중심화, 타자성의 고양 등을 쟁점으로 삼는다면, 이것이 종교와는 어떻게 접속될 수 있을지를 본서가 아주 잘 가르쳐줍니다.


*


초월과 자기-초월


※ 편집자 주 : 이 인터뷰는 <초월과 자기-초월> 보도자료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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